윤지환 철학연구소 2010. 3. 19. 15:32

▶ 성령과 다른 위격은 동등하지 않다

성령을 언급하는 몇몇 구절들은 성령이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성령이 가르치고, 증거하고, 말하고, 듣는 보혜사(paraclete :돕는자, 신세 ,협조자, 공동)로 언급되어 있다. [요한 14:16,17,26;15:26;16:13]

그러나 다른 구절들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거나 기름부음 받았음을 알려준다. [누가 1:41 ; 마태 3:11 ; 사도 10:38]

성령에 대한 후자의 언급은 명백히 인격체에 적합하지 않다.

성경에서 지혜, 죄, 사망, 물 ,피를 의인화한 것처럼, 여기 첫부분에 인용된 성구들 역시 성령을 의인화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신 카톨릭 백과사전은 이처럼 인정한다.

 

"신약의 대부분의 성구들은 하느님의 영을 어떤 인물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 나타낸다. 특히 그 사실을 하느님의 영과 하느님의 능력이 대응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967년 판, 제 13권, 575면) 그 사전은 또한 이와 같이 알려 준다. 호교론자들(제 2세기 희랍의 그리스도인 필자들)은 그 영에 대하여 아주 모호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아주 비인격체로 말했을 것이라고도 상당히 기대할 수 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Holy Spirit 항목]

 

이제는 성령과 예수가 함께 하지않고 따로 행동한다는 구절을 언급하겠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7장 39절]

 

요한복음의 위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예수가 아직 받지 못했다는 영광이 성령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신에게서 능력을 받아 사람들에게 행하는 존재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장 55절]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장 56절]

 

스데반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하늘의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성령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요한 계시록 7장10절, 22장1~3절에도 예수와 여호와가 함께 등장하지만 성령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장 33절]

 

위 구절에서 예수는 성령을 아버지에게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선지자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또, 성령은 예수와 하나가 아니요, 신에게서 성령을 받고 예수를 인도하기도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장1절]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누가복음 4장 1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3장 16절]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 22절]

 

그리고, 성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가 사용한다는 구절도 자주 등장한다.

즉, 성령은 신의 뜻을 행하는 도구이지 신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장 31~32절]

 

위의 '개역한글판'성경 구절의 표현이 애매하므로 '공동번역판'을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그러므로 잘 들어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 / 공동번역판]

정말로 이 구절로써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모순이 될 것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성령은 예수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신학 연구에서, 예수회의 카알 라흐너는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성령에 대하여 사용된 적이 전혀 없다. 또한 문자적으로, 하나님(the God)가 성령(holy spirit)에 대하여 사용된 적도 전혀 없다." [Karl Rahner / Theological Investigations]

 

신 카톨릭 백과사전에서는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약에서는 분명히....(중략)....하느님의 영을 한 위 혹은 한 인격체로 나타내지 않는다...(중략)...하나님의 영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 일뿐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과 구별되는 존재로 구분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야훼의 호흡이 겉으로 보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Holy Spirit 항목]

 

 

▶ 기독교계의 옹색한 변명

앞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신 여러분들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느정도 의문감이 생겼으리라본다.

그렇다, 성경에 삼위일체는 없다. 종교회의에서 투표로 결정된 사항일 뿐인 것이다!

기독교계가 제시하는 삼위일체의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나마 억지주장에 가깝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서 2장 6절]

 

신약에는 삼위일체에 상반되는 수많은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구절만큼은 어떻게 보면 삼위일체에 합당한 구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상의 오류일뿐이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KJV나 NIV성경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Philippians 2: 6 / KJV]

직역: "신의 모양이 된 그는, 신과 동등됨을 약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Philippians 2: 6 / NIV]

직역: "매우 자연스럽게 신이 된 그는, 신과 동등 되게 붙잡는 것을 검토하지 않았다."

 

여기서 희한하게 '약탈'(robbery) 또는 '붙잡다'(grasp)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졌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구절에는 약탈하다라는 단어인 '하르파그몬'(Harpagmon)이라고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헬라어의 하르파그몬의 어근인 하르파조(Harpazo)는 '약탈하다','강탈하다','잡아끌다'라는 뜻인데, 기독교인들은 이 단어를 '휴거'라는 용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하르파그몬(Harpagmon)을 '취하다'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번역을 해놓았다.

로버트슨 니콜의 '해설자의 그리스어 성경'는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하르파조(Harpazo)혹은 하르파그몬을 포함한 어떤 파생어가 가지고 있는 즉 보유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구절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항상 탈취하다,강제로 빼앗다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올바른 의미인 '취하려하다'에서 '굳게 보유하다라'는 온전히 다른 의미로 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W. R. Nicoll / The Expositor's Greek Testment.]

 

즉, 예수는 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신의 말씀을 전하고 신처럼 행동했지만), 신과 동등함을 나타내는게 약탈이 아니라고(=신성모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구절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상의 오류일뿐인 것이며 오히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구절인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삼위일체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장 5절]

 

위에서 바울은 사람과 여호와 사이의 중간에 존재하는 자가 예수라고 말한 것이다.

즉, 인간 보다는 높으나 신(神)보다는 낮은 것이 예수이다.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1절]

 

요한복음 1장은 삼위일체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역시 번역상의 문제일뿐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에서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함께계셨으니: 함께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는 본디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의미이며, 마주보고 서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격적인 교제를 뜻한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즉, 함께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한다.

게다가 로고스(말씀)는 여호와를 향해서 존재했다고 한다. 또한 위의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은 없다.

즉, 삼위일체의 교리가 아직 성립하지도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겠다.

예수가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이라고 언급한 '골로새서'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필립 B. 하너는 '성경 문헌지'에서 '특성을 나타내는 무관사 서술 명사; 마가 15:39과 요한 1:1'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있는 것과 같이 동사 앞에 무관사 서술어가 나오는 절들은 의미상 주로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로고스(말씀)가 테오스(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절은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Phillip B Harner /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따라서, 이 구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테오스라는 단어에 정관사(호)가 없고 그 단어가 그리스어 문장에서 동사 앞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한복음 1장1절을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번역자들도, 동사 앞에 단수 무관사 서술 명사가 나오는 다른 구절들을 번역할 때는, 부정관사(a, an)를 주저없이 사용한다.

따라서 'KJV'에서는 모두 요한 6장 70절에서 가롯 유다를 마귀(a devil)로 언급하며, 요한복음 9장17절에서는 예수를 예언자(a prophet)로 묘사한다.

예수회의 죤 J.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경 사전'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엄밀히 말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의 신성을 지닌 존재이셨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John L. McKenzie / Dictionary of the Bible]

 

즉,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로고스(말씀)는 만물에 앞서 태어난 창조물이지 신과 같은 본질의 것이 아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과 마찬가지로 신의 창조의 시작일뿐인 것이다.

요한복음의 '시작'(희랍어, 아르케)이라는 말은 예수가 신의 '창조를 시작하신 자'가 아니라, '신의 모든 창조물의 시작'으로서 예수는 신의 첫 번째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계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1서 5장 5~8절]

 

이것 역시 삼위를 표현한 구절이 아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을 증거하는 구절로 그는 물과 피로써 온것이라고 증거하는 구절일뿐이다.

물과 피가 어떻게 성부와 성령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구절에 대해서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에서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즉,성령의 감화를 받고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나야하며, 주의 성만찬에 참여하여 십자가의 피를 나누는 것이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다시 말하자면, 삼위일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구절이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16절,26절,누가복음 1장 35절,마태복음 28장 19절등의 구절에서는 성부,성자,성령이 한구절에 모두 등장한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오죽이나 삼위일체를 증거할만한 구절이 없으면 그런 것을 내세울까?

맥클린톡과 스트롱의 '성경, 신학 및 교회 문학 백과 사전'은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데 불충분하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그런 구절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이 구절 그 자체만으로는, 언급된 세 주체의 인격성 또는 동등성 또는 신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M'Clintock, Rev. John and James Strong /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 / Baker Book House]

 

예를들어 아래와 같은 구절도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디모데전서 5장 21절]

 

위의 디모데전서에서는 한 구절에 신(神)과 예수와 천사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과 예수와 천사들은 삼위일체를 이루는가? 그것으로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또한,삼위일체론자들은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에서 신의 명칭이 복수형으로 등장한다는 것으로 삼위일체를 증거하려고 한다.

복수형인 엘로힘과 우리라는 신의 언급이 삼위일체의 암시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하게 그것은 신학적으로 히브리어에서 여기에 나오는 명사의 복수형은 존엄 혹은 탁월성을 나타내는 장엄복수형이다. [참조: 성 조셉편 '성서 사전', P.330면 / '신 가톨릭 백과사전', 1967년판, 제5권, P.287]

그 말은 하나의 신(神) 안에 여러 위들이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예를들면, 잠언 1장 20~33절에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복수 명사로 나타냈다. 즉, 장엄복수의 표현인 것이다.

 

"지혜는 통상 단수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복수로 나온다. 이는 (인간이나 사물의) 본성 또는 성격을 강조하는, 이른바 '강조형 복수'(라틴말에서는 pluralis intensitatis)이거나, 가나안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주교회의성서위원회편찬 /임승필번역 / 구약성서새번역1-시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또, 앞선 단락에서 소개했던, 사무엘의 영혼과 만나 보려고 했던 사울에게 접신한 무녀(巫女)가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사무엘상 28장 13절]라고 말하는 구절이있다.

여기의 '신'은 엘로힘으로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신은 여호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유령 즉, 영적인 존재를 말한 것이다.[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또, 열왕기 상 18장 27절에는 바알을 가르켜 복수인 엘로힘으로 지칭한 구절도 있으며, 사사기 16장 23~24절에는 블레셋인들의 다곤신도 엘로힘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여기서도 장엄복수가 쓰여졌다.

그 외에도 많은 수의 거짓 우상 신들을 언급할 때, 엘로힘(신들)과 엘로헤(~의 신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출애굽기 12: 12, 20: 23) 출애굽기 4장 16절, 7장 1절에서는 모세는 아론과 파라오에게 자신이 엘로힘의 역할을 하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즉,엘로힘이나, 복수적인 신의 명칭이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에는 존엄 혹은 탁월을 나타내는 복수형이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에서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은 엘로힘에 대응되는 말로 단수형인 '호 데오스'를 사용했다.

예수가 신명기 6장4절을 인용하여 말한 그의 대답이 들어 있는 마가 12장29절에도 마찬가지로 헬라어 단수형 '호 데오스'가 사용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장엄복수일뿐이다.

 

예수회 수사 에드먼드 포트먼은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이렇게 인정한다.

"구약은....(중략).... 성부이자, 성자이자, 성령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명백하게 든 혹은 넌 저시 시사해 주는 방법으로든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중략)....어느 성경 필자도 지고의 신의 삼위일체의 존재를 어렴풋이 라도 알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중략)....구약에서 인격체들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에 대한 암시나 전조 혹은 베일에 가린 표지들을 찾는 것은 성경 저자들의 말과 의도를 넘는 것이다." [Edmund Portman / The Triune God]

 

성경 사전의 월리엄 스미스는 구약의 복수적인 신의 명칭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엘로힘이, 지고의 신 안에 있는 위들의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것이 라는 괴상한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문법 학자들이 장엄의 복수라고 부르는 것이나 하나님의 힘의 충만함, 그리고 하나님이 나타내는 능력 전체를 지적하는 것이다." [William Smith / A Dictionary of the Bible / The S. S. Scranton Company.]

 

미국 셈어 셈문학 저널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단수 동사 술어와 결합하며, 한 정사로 단수 형용사를 한다. 그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엘로힘이란 칭호는 창조 기록 가운데 35회 나오는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행하신 것을 묘사하는 동사는, 언제나 단수이다.(창세기 1: 1~2: 4) 따라서, 엘로힘은 위대함과 위엄을 묘사하는 장엄의 복수로 설명되어야 한다." [The American Journal of Semitic Languages and Literatures]

 

신 카톨릭 백과사전 역시 같은 의견을 말한다.

 

"성 삼위일체 교리는, 구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Trinity 항목]

 

여기까지 많은 성경의 구절들을 나열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는 신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미 나열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볼때 신약의 저자가 복음서들을 작성할 때까지만해도 삼위일체의 교리가 기독교에 정립되지도 않았음을 알수가 있다. 오히려 각각의 삼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점만 더욱 부각된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단자들을 정죄할수 있을까?

종교개혁당시 카톨릭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한 개신교는, 당시의 카톨릭으로부터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이라고 불렸었다.

카톨릭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신교는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회가 국교가 되었던시절 영국의 청교도들은 믿음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동하기까지조차 했다.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산 며느리가 나중에 더욱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던가?

카톨릭에게서 이단이라고 배척받았던 개신교가, 이제는 자기네들끼리 분열되어 서로간에 이단이라며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진짜 배척받아야할 기독교의 이단이 있다.

신도들을 현혹시켜서 물질과 육체,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사이비 목사들과 구약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현대사회의 도덕과 어긋나는 황당한 짓을 벌이는 종파는 이단으로 배척당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교리가 약간 다르다는 것으로 배타를 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교리가 약간 다르다고 해서 한국의 카톨릭이 "개신교는 이단입니다"라고 주장하는걸 보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한심한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많다.)

이단은 없다! 자기네들끼리 분열되어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기독교의 추한 모습만 있을뿐. 성경을 자기멋대로 해석하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십일조나 걷어가는 주제에, 그대들이 이단이라고 과연 누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나 갖추었는가!

 

 

 

 

 

제10장/ 기독교 형성사

초대교회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기독교의 교리는 어떻게 형성 되었을까?

대부분의 신자들은 기독교의 교리들이 초대교회가 등장한 이후, 애초부터 기독교의 교리가 형성된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12제자들은 어디가고 신약에서 바울이 강한 영향력을 남기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으면 않된다.

바우어(1792~1860)는 바울의 신학적인 핵심으로 반유대교적인 교리로서의 의인론을 제시했다는 것을 밝힌다 있다.[F.C.Bauer / Vorlesung ber Neutestamentliche Theologie / 1864 P.128~230]

즉, 바우어에 따르면 초대교회사란 친율법적인 성향의 유대인 중심에서 이에 반대하는 헬라지역의 유대인 내지 이방인 중심으로 축이 이동되었다는 것이다.

정의를 내리자면, 기독교란 디아스포라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이, 배타적인 유대교를 버리고 헬레니즘의 문화를 받아들인데서 생겨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 오늘날의 기독교가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배격하고는 있지만, 초대교회가 영지주의의 성격을 띠었다는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학계에서는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보는 시각도 제시 된지 오래이다.

왜,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등장했는가? 오늘날에 정경으로 채택된 신약에는 바울서신이 주를 이루고 있고,12제자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바울서신에는 바울이 유대적인 관습을 빌미로 베드로와 바나바를 비롯한 다른사도들과 격렬히 싸웠고,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선적인 자들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한 교권다툼의 흔적은 신약의 곳곳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치열한 교권다툼속에서 최후로 승리한 자는 바울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기독교의 제1창립자라면,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기독교의 제2창립자 였다.

기독교는 정치권력과 손을 잡았으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의 대부분의 교리가 성립되 가기 시작한다.

성경적이지 않은 삼위일체의 교리, 기독교의 기념일, 십자가 숭배....등은 격렬한 논쟁중에 종교회의에서 그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추어서 결정내려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리는 수많은 오류와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논쟁은 종교회의에서 끝나지 않았으며, 결국 동로마 교회와 로마카톨릭이 서로를 이단으로 파문해 버린뒤 결별하게된다.

이제 초대교회의 치열한 교권다툼의 흔적과 기독교의 교리를 형성시켰던 종교회의의 역사적 비화를 탐구해 보도록 하자.

 

 

▶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는 팔레스타인 외역(外域)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산(離散) 유대인','이산의 땅'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분산(分散),이산(離散)을 뜻한다. 역사적인 기록에서 이 단어는 헬레니즘 문화시대와 초기 기독교 시대를 통해 그리스 근역(近域)과 로마 세계에서 유대인의 이산을 가리키고 있다. 초대 기독교를 연구할 때,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연구해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유대교가 기독교로 변모해 가는데 빼놓을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가 유대교의 구약과 유대적인 관습을 지켰으면서도, 기독교와 유대교는 엄연히 차이가 난다.

기독교에는 유대인들의 헤브라이즘적인 요소에, 그리스적인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바깥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BC 8세기 후반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의 북부를 차지하고 있던 이스라엘 왕국이 BC 734∼BC 721년의 아시리아 침입으로 멸망하여 아시리아 영토에 편입되었을 때 많은 유대인이 고향을 떠났다.

또 BC 598∼BC 587년 사이의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남쪽의 유대 왕국이 멸망하자 비슷한 이주현상이 일어났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개척자 같은 정신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많은 무리가 다른 지역, 특히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그 후, BC 4세기 초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자, 근동에서는 그리스인의 통치에 의해서 파급된 그리스 문화에 실려 문화적인 혁신을 겪게 되었다.

또 교역과 상업이 급속하게 발달한데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취했던 탓으로 유대인의 이산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매우 능동적으로 반응하여, BC 1세기 말엽에는 시리아,이집트,소아시아,메소포타미아,그리스,이탈리아에 많은 유대인 공동체가 나타났다.

 

신약성경의 사도행전 2장 9∼11절에도 바르티아,메대,엘람,메소포타미아,유다,갑바도기아,본도,아시아,프리기아,밤필리아,이집트,키레네,로마,그레데,아라비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언급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중심지는 로마 제국의 3대도시인 로마,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였다. 안티오키아에 유대인들이 정착한 것은 BC 150년 이후였으며, 로마인은 그보다 더 늦었는데, 규모가 크고 부유하였으며 영향력이 강하기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신약시대의 디아스포라 학자 필로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에만도 100만 가량 있었던 것 같다.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보다 그리스 문화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어서 헤브라이어와 아람어를 사용하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헬레니즘 문화권의 도시들에서 주로 수공업과 무역에 종사하던 그들은 본토 유대인들보다 높은 수입을 올렸으며, 그들이 행하는 무역의 증요성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서는 원주민보다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로마의 시민권이 제국의 여러 곳으로 넓혀질 때, 사도 바울처럼 로마의 시민권을 얻은 사람도 많았다.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그리스 문화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리스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적 헬레니즘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은 '70인역(譯)'이라고 불리는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역본을 출간하여 초대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들 중에서 많은 학자,저술가가 나왔는데 필로가 가장 유명하였다.

또한 헬레니즘화된 유대인들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앙을 흡수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끔 디오니소스, 또는 제우스와 같은 신으로도 취급되고 있다........(중략).....한편 BC 2세기 말에는 소(小)아시아의 유대인들이 사바지오스를 제우스와 동일한 신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만군(萬軍)의 주신(主神, The Lord of Sabaoth)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사바지오스 Sabazios항목]

그리스 문화에 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그들의 정신적인 고향이며 지도력으로 생각하여 예루살렘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고, 성전과 성직자들을 후원했다.

팔레스타인 안에서는 여호와에 대한 제사는 오로지 예루살렘에서만 거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므로, 종교적 회당(會堂) 즉, 시나고그(synagogue)가 디아스포라에서 생겨났으며, 그것은 팔레스타인으로 역수입되었다.

실제로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도 유대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나고그를 통해서였으며, 이 회당 조직이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성전이 파괴되기 전 그리고 파괴된 후 얼마동안도 이집트에는 오니아스(Onias)가 세운 성전이 있었으나 오니아스의 성전은 주변의 지역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고 이집트 전체 유대인을 위한 종교 중심지의 역할조차 하지 못하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회당이 있었지만 모든 희생 제사는 예루살렘에서만 드릴 수 있었다.

헤롯 아켈라오 통치시에 이스라엘 밖에서 많은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였다고 요세푸스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 절기에 많은 유대인이 모이면 자연히 헤롯 가문이나 로마 통치자에 대한 반감 때문에 소요가 일어나곤 했다.[유대인 연대기 17권 214절]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비록 팔레스타인밖에 살고 있었으나 때때로 팔레스타인의 정치 상황을 간섭하기도 했다.

헤롯 아켈라오가 로마 황제의 인가를 받기 위해 로마로 건너갔을 때에 유대인의 대표 50 여명이 로마로 가서 아켈라오의 잔인성을 폭로하며 황제에게 그를 고소했다. 그때의 유대의 대표들은 헤롯 가문의 통치보다는 차라리 시리아의 속국이 되는 것을 택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때에 로마에 거주하던 8천 명 이상의 유대인들은 이 대표단을 지지했다고 한다. [유대 전쟁사 2권 80절] 헤롯은 그후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온갖 정책을 폈다고 한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디아스포라를 통하여 최초로 반(反)유대인적 풍조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적 배타성, 경제적 번영, 특권들 때문에 많은 도시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혐오가 퍼졌다.

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체사레아 등지에서 반유대인 폭동이 일어났고, 법정에서는 유대인에게 무거운 벌금이 부과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끊임없는 반목이 계속되어 결국 칼리굴라의 박해로 이어져, 학자 필로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로마 법정에 박해의 중지를 호소했는데 이 박해는 칼리굴라의 암살로 끝났다.

반유대적인 편견(偏見)은 키케로, 페르시우스, 세네카, 퀸틸리아누스, 타키투스 등 로마의 문학가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2000년을 두고 전유럽과 중근동(中近東)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 집요하고도 비이성적인 반유대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 초대 교회의 분열

사도행전 6장에 따르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약간의 문제가 일어난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사도행전 6장 1절]

 

즉 신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들의 과부들이 교회가 매일 베푸는 구제에서 빠지게 된다면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한다. 얼핏 보기에는 별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이 구절은 초대교회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초대 교회 내에 두 그룹 즉,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으며, 예루살렘의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한 가지 색깔을 지닌 동질집단(a homogeneous community)이 아니라 적어도 그 안에 어떤 점에서든 서로 선명히 구별되는 두 계열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이질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위에서 언급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말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성향을 보변 전체적으로는 율법의 세세하고 문자적인 규정들로 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운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인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을 이해할 때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 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수를 대략 400~600만 명으로, 그리고 유대땅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를 대략 100~200만 명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의 3명 중 2명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초대 교회는 크게 두 그룹, 즉 유대 본토 출신인 히브리 유대인과 헬라 출신인 헬라파 유대인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파 간에 문제가 생긴다. 헬라 출신 유대인들 중 특별히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이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 7집사가 선출되었는데, 이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헬라 이름이고 특별히 그들 중의 하나인 니골라는 이방인으로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출신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 7집사는 단순히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구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 만을 담당한 자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시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힘은 사도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본토 출신 히브리파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헬라 출신 과부들 만이 구제에서 빠지게 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일부가 구제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7집사를 세우고 나서 12사도들은 더욱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했다고 하는 것을 봐도 히브리파들이 명실 상부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또한 헬라 출신 유대인들은 본토 출신 유대인들과는 달리 종래의 유대교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이였고 자유로웠다. 즉 할례, 율법으로 부터 자유로운 신앙, 믿음을 통한 구원 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런 자유사상 때문에 그들은 즉시 유대인들로 부터 배교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비해 본토 출신 유대인들은 유대교라는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헬라출신 유대인들처럼 그런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초대교회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비해 여성인권에 대해 다소 나은편 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여성들이 자유롭게 수건을 벗고 지도력을 발휘하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벗는 자유로운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써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 이는 유대 사회의 전통에 어긋나지 않고, 자유주의자들의 문제를 벗어보려는 의도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유재인 / 바울서신에 나타난 여성 이해 / 서울신학대학원, 1994]

애찬식의 음식문제 역시 "서로 다투니 집에서 먹고 오라"고 원천봉쇄하고 나선다.

바울이 이토록 세세한 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당시의 고린도 교회는 예언하는 자나 방언하는 자들과, 이방인들에 의해 퇴색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를 바르게 조절해 줄 것을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요청한 것이다. 고린도 전서는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초기에는 히브리파가 초대교회의 지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기독교가 유대교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헬라 전 지역으로 점차 퍼져 나가는 후기에는 헬라파 기독교인들이 이방인 선교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의 동료인 빌립은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전도를 하며, 특히 사도행전 21장 8절 이하에서 그를 전도자(Evangelist)라고 칭하는 것들로 미루어 봐서, 그리고 11장 19절 이하에서 이들이 후일 이방인 전도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여러가지 점들을 비추어 볼 때 7집사들은 거의 사도들과 동등한 역활을 했고 비중이 있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즉 사도가 유대 본토 출신들의 지도자였다면 7집사는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지휘권은 차츰 바뀌어 간다.

사도행전 5~6장에 보면 예루살렘 유대교적 기독교 공동체(The Jewish-Christian Community in Jerusalem)초창기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한 히브리파 기독교인이 지도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5장을 보면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주의 형제'라고 불리는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서 그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후에는 바울서신이나 그 밖의 교회전승이 이 야고보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적 기독교공동체의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AD 30년부터 50년 사이의 어느 때엔가 예루살렘교회 안에 지도권의 변화가 있었고 그 결과로 베드로 같은 사도들은 시리아나 소아시아 등지로 흩어지고,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는 주의 동생 야고보가 단일 지도체제를 형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초대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갈림길에 서게된다.

스데반은 유대교를 벗어난 보편적인 헬라사상을 유대인들에게 설포하다 돌에 맞아 죽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의 죽음이후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예루살렘교회의 신자들은 뿔뿔히 흩어 졌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해를 받고 흩어져 이방인들에게 전도를 한 것은 헬라파 기독인이었다.

히브리파 기독교인은 박해를 받지 않고 유대땅에 남아서, 이방인에 대해서는 유대교의 율법인 할례를 받아 그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같은 일은 다음의 구절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사도행전 15장 1~2절]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사도들이 안티오키아로 와서 이방인들도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시비를 걸고 있고,이 문제 때문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교회의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야고보의 주재 하에 회의를 갖게 된다.

 

"이 회의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파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도행전 15장 5절]

 

그러나 결국 이방인들에게 할례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헬라파 기독교공동체의 신학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수용문제는 이 회의에서 끝나지를 않았다.

할례의 문제 때문에 베드로 분파와 바울분파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갈라디아서 2장이 증거해준다.

바울의 편지중 하나인 갈라디아서 2장에는 바울이 바나바와 그리스인 디도와 예루살렘으로 왔다.

거기서 바울은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7절에는 베드로는 할례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바울자신은 할례받지 않은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도직을 임명받았음을 알게된다.

즉, 베드로와 바울은 서로 다른 사도직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갈라디아서 2장 12~16절에서 또 다시 이방인들의 할례문제가 제기되자 바울은 베드로를 비난한다.

갈라디아서 2:12절에 의하면 베드로는 바울과 바나바와 더불어 다수의 이방인들을 포함한 안디옥교회의 교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예배습관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아마도 예배 중에 나누는 주의 만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 "야고보로부터 온 어떤 이들"(갈 2:12)이 그 곳에 나타나자 베드로가 그 할례파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식탁교제로부터 물러나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이것을 안디옥 사건이라고도 일컫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예루살렘 종교회의 이후로 추측된다.

제임스 던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는 이방인의 할례문제가 현안으로 되어 있으나, 적어도 바울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안디옥 사건에는 이 문제가 이미 타결된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 따라서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James D. G. Dunn / "The Incident at Antioch (Gal. 2:11-18)," / JSNT 18(1983), P.57.]

 

어쨌든 베드로도 여기서 유대 특수주의에 굴복하여 식탁으로부터 물러났으며, 바나바도 여기 동조했다고 한다.(갈라디아서 2장 13절) 13절에 바울은 바나바와 그들을 가르켜 위선적인 사람들(개역한글판에는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바울은 이러한 바나바와 심한 다툼 끝에 갈라서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사도행전 15장 35~41절]

 

제임스 던(James D. G. Dunn)에 의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바울은 베드로와 그리고 오랜 동역자 바나바와 갈라서게 되며,그 이후로 바울은 더 이상 안디옥교회의 지원을 받는 파송 선교사로서가 아니라, 자기 먹을 것을 손수 벌어 가면서 일하는 독자적인 선교사가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결국 바울은 이 사건 이후 그는 기존의 선교지였던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떠나서 유대 특수주의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중해의 서쪽, 즉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이다.

사도행전 16장에 의하면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 때 시리아, 길리기아, 더르베, 루스드라, 프리지아, 갈라디아, 드로아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건너간다. 갈라디아교회는 아마도 이 때 바울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마케도니아에서 바울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두 도시에 교회를 세운다. 그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로 내려간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목회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중심을 이루는 바울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 바울공동체는 헬라사상적인 영향아래 세워진 교회들이다.

그 후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반 정도 머무르면서 목회하게 되는데, 이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처음 세운 교회는 아니지만 신학적으로 바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여 바울공동체에 속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 바울공동체는 유대 특수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유대땅의 유대교적 기독교공동체와 신학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AD 50년대 초반에 바울공동체가 겪은 갈라디아 사건과 고린도 사건은 바로 이러한 신학적인 대립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외부로부터 초대교회 안에 존재하는 유대주의자들(Judaisers)이 한편으로는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할례의 복음을 기초로 하고 있는 바울의 신학에 반대하여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도들간의 분쟁은 보편적인 구원론과, 유대적인 구원론의 교리논쟁이었는가?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할례라는 문제를 표면적으로 내세웠을 뿐이고, 실상은 두세력간에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분쟁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할례를 제외하고는 헬라화된 유대인들에도 율법은 철폐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교파가 로마에 널리 전파된 후에도,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할례를 제외한 대부분이 유대적인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피에 대한 율법이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피가들어간 음식을 먹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위기 17장 10~11절]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찌니라....(중략)....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중략)....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레위기 17장 13~ 1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세기 9장 4~5절]

이러한 율법이 그대로 신약에도 등장한다는 것은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15장 29절]

 

여기서 목매어 죽인 것은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말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구약의 율법을 준수하려고 했다. 로마 시대에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와 2세기의 의사인 아레타이우스는 사람의 피가 간질 치료약이었다고 말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원형 경기장의 놀이판에서 사악한 범죄자들의 생피를 게걸스럽게 취하여....(중략).... 자기들의 간질을 고치려고 가져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오"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을 대조하여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동물의 피조차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중략)....기독교인들을 시험할 때에 그대들은 피가 가득 들어 있는 소시지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그대들은 (그것이)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된 것임을 알고 있다."

 

여기서 이상한 괴리감을 느끼실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어째서 할례는 거부하면서, 나머지 구약의 율법은 준수하려고 했는가?

다른율법은 모두 지키면서, 할례 때문에 사도들간에 격렬한 다툼이 일어나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교리논쟁이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헬라파 기독교인들과,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의 주도권을 가지고 교권다툼을 한것이라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할례는 거부하면서, 이방인들은 지키기 어려운 편협한 유대인의 다른 율법들을 지키는 모순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대교회를 이룬 두 세력간의 주도권 다툼일뿐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