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장자 莊子

일화로 살펴본 장주의 생애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0. 5. 9. 11:18

일 화 로 본  장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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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역시 노자처럼 생애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그는 맹자와 비슷한 시대인 전국 시대 송나라의 몽에서 태어났다 한다.(<사기>) 그는 한때 칠원리(漆園吏 : 옻나무 동산을 관리하는 하급직)를 지내기도 했으나 곧 사임하고 은사(隱士)가 되어 일생의 대부분을 학문 강의와 저술에 바쳤다.그는 거의 전생애를 직업도 없이 오직 진리 탐구에만 골몰했으므로 늘 가난하게 살았지만 차츰 학문에 일가견을 갖게 되어 명성을 얻게 되었고 양혜왕의 초청까지 받았다.

그는 엉성하게 꿰맨 베옷에 다 떨어진 짚신을 신고 궁으로 들어갔는데 이를 본 왕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러자 장자는 "사람은 도덕이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을 때 비로소 누추해지는 것이지요. 내가 가난한 것은 시대가 불행하고 영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해서이니다." 라고 말했다. 양혜왕은 장자가 이처럼 눈앞에서 자기를 비꼬자 몹시 불꽤해졌다. 이렇듯 그는 권세에 빌붙어 아부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았다.

  그는 빈천한 생활 가운데서도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았으며 통치자의 속박을 강하게 거부하였다.또한 공자를 깔보았고 제자백가의 학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오직 노자만을 높이 평가했다. 장자는 노자의 영향을 받아 "도"와 "자연"에 대해 깊이 연구하며 "불사(不死)의도"를 찾았다.그러던 어느 날 장자는 문득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자신이 하나의 나비가 되어 날아 다니는 것이었다.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며 즐겁게 노닐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었다.  장자는 생각했다."내가 꿈을 꾸어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지금 나 인지..."(<장자>. 내편) 이것이 유명한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이며 그 때 그는 도를 깨달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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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뜻 깊은 비유와 우화를 통해 세상에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가 죽었는데 절친한 친구였던 혜시가 조문을 왔다. 그때 장자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기는 커녕 땅바닥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친구는 장자를 나무랬다. 그러자 장자는 사람이 죽으면 생명과 형체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자연의 변화"라고 하며 아내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장자의 명성은 그 괴팍한 행동과 함께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어서, 어느 날 장자가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데 주나라의 사자가 와서 다시 초청의사를 밝혔다. 재상의 자리를 마다하며 장자는 "구중궁궐의 금으로 만든 장롱 속에서 존경받는 죽은 거북이 보다는 진흙탕 속에서나마 꼬리를 흔들며 살아가는 거북아가 되고싶다"고 사양했다. 하지만 장자가 좋아했던 친구 혜시는 부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장자는 어느 날 친구가 보고 싶어 위나라로 갔는데 혜시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불안해 하였다. 이를 눈치챈 장자는 "대붕이 어찌 까마귀밥을 탐내겠나"하며 친구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가난하였지만 평생 유유자적하게 살며 심오한 사상을 세상에 전하였다. 그리고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시체를 들판에 버리라고 유언했다. 제자들의 만류에 대해 장자는 "내 천지를 관으로 삼고 일월을 쌍벽삼고 별을 주옥으로 삼아 만물을 순장시키려 하는데 설마 이보다 성대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고, 들판에 스승의 시체를 버리면 까마귀에게 뜯어 먹힐 것이 두렵다고 하는 제자들의 말에 "내가 땅속에 묻히면 땅강아지와 개미들에게 물어 뜯기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왜 땅강아지와 개미편만 들고 까마귀는 푸대접하느냐"고 죽음의 순간까지 유머를 간직했다고 전해진다.
   
(<조준상 지음,만화로 읽는 철학3,1998,서광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