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환 철학연구소 2010. 10. 10. 11:36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로또?... 금메달... 우승? 일류대 합격?..... 사람마다 다르리라.

그러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웠던 시절은 또는 순간은 ‘청춘의 시기 그리고 첫사랑’

이라는 데에 거의 동의를 할 것이다. 오늘 문득 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홍콩출신의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를 통해 화양연화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한 그는 영화에서 항상 철학과 사색을 배후에 깐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감동적이기는 한데 좀 어렵다”

또는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거야”라는 불평도 있다.

그의 영화를 화면구도와 색, 배우들의 눈빛 연기만을 본 사람들은 정말 멋진 영화라고 느낀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인 감독의 영화를 보면 60-70년대를 풍미한 실존철학의 세례를 받은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그리고 동양사상의 깊은 향취도 느껴진다. 평론가들은 노장사상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가장 큰 영향은 불교 그중에서도 선불교다. 서구에서는 일본어 발음 Zen 으로 알려진

선(禪) 즉 선불교(禪佛敎)가 일반인에게 워낙 어렵게 느껴지니까 허긴 인문학 전공자들도 어려워

하니까..... '

 

왕가위 영화의 특징은 대사는 그냥 음악처럼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대사를 위주로 영화를 보면 뭔가 엇박자가되고 나중엔 짜증이 일어난다.

 2-3번을 봐도 그렇더라는 감상 글들을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불교 특히 선(禪)은 인간의 언어가 깨달음의 최대 장애물로 본다.

사람들은 한 순간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내면에 항상 욕망을 감춘다.

말은 진실이고 진리인데, 그의 마음은 항상 욕망이 몸부림친다.

관심 없다는 여자 말이 때로는 관심받고 싶다로....

맹세코 거짓이나 탈세 범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하던 사람들이 증거가 나오면 용서를 빈다.

들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들의 언어 속에 추악한 욕망을 숨기고

봄날의 꽃처럼 뿌려댄다. 인생은 아름답다며.....

성경책도 불경 책도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변하고 그걸 또 잘 이용해 먹는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선사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성철스님이 책보지 마라고 했을 때의

의미가 이거다. “성철이 지는 영어 일본어 한문 공부 열나고하고 책도 그리 많이 읽어놓고

와 우리보고 책보지마라노...“라는 볼맨 소리는 禪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연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그윽하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염화미소(拈華微笑)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마음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다. 왕가위의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 원칙을 따른다.

그래서 연기자의 눈빛과 화면 구도로만 바라보면 감동이 남는다.

이게 제일 심했던 작품이 그의 초기작품인 동사서독 東邪西毒 1994 이다.

평론가들에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이 작품은 흥행에 실패한다.

그래서 이후 오락성 짙은 영화들을 찍으며 돈을 모은 그는 화양연화를 통해 세련되게

 자기만의 영상언어를 완성한다. 화양연화에서 대사는 짧고 간단하다.

사람들이 말의 유혹에 안 빠지게 대사를 최대한 자제했다.

 

 

대사가 많았던 동사서독은 말의 유혹에 관객들의 짜증을 유발했고,

2000년 6년 만에 완성한 예술영화에서 그는 자기 인생의 화양연화를 만들었다.

예술과 흥행 둘 다 잡은 것이다. 동사서독의 처음에 나오는 멘트....

“옛날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본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자 도인이 말하였다.

깃발이 바람을 탄 것도 바람이 깃발을 흔든 것도 아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한다. 이 말은 ‘육조단경’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나온 영화 ‘적인걸’옆의 부제에 측천무후의 0000 이라고 나올 것 이다.

바로 그 측천무후의 시기에 중국 남쪽에서 최고의 고승 소리를 들었던 혜능(慧能)이 한 말이다.

현존하는 선불교의 실질적 시조이다. 사람들은 달마대사를 선의 시조로 받드는데,

시조이기는 하지만 혜능 이후에 방향이 달라진다. 중국화된 지금형태의 禪은 혜능 이후이다.

그리고 혜능의 저 멘트의 철학적 뿌리는 이전에 내가 중국 역사상 3대천재중 하나로 소개했던

 ‘승조’에게 있다. 왕필을 1편으로 하고 2편에서 소개한다고 했던 그 승조이다.

승조의 사상이 수백 년을 넘어 혜능이라는 중국의 부처에게서 나타난다.

육조단경과 선불교를 꿰고 있으면 동사서독의 시작부터 아하 !.... 라고 하면서 볼 것이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는 왕가위가 만든 말이다. 화양은 꽃처럼 놓은 자수를 말하는데,

화려한 무늬 디자인 등등의 뜻으로 쓰인다. 연화는 년광(年光)과 같은 뜻으로 나이 또는

세월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년광을 자주 쓴다. 우리식 한자는 연령年齡 인데,

그건 나이만을 나타낸 반면 저 표현들은 시절 시기를 같이 나타낸다.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 혹은 화려한 때....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우연히 마주친 두 중년 남녀의 사랑 ...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이루어질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에 몸부림치지만 용기가 없어 잡지 못하고

헤어지는 소시민적인 중년 찌질이 남녀는 이 영화에서 너무도 아름답고 화려한

주인공으로 태어난다. 가난하고 용기없고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두 중년 남녀를

어느 귀족 못지않게 멋있게 보이도록 연출한 감독의 탁월한 연출.

 맨 처음에 했던 말을 반복해 본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또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감독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중년의 사랑도 아름답고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화려한 때가 된다.

화양연화가 청춘의 몫이 아니다. 사랑이 있다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또 사랑받는다면

그 순간이 청춘이고 화려한 시기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기이다.

 

 



주역 64괘중 택풍대과(澤風大過) 괘의 5효에 보면

“枯楊生花 - 말라비틀어진 버드나무 가지에서 꽃이 핀다.” 라는 말이 나온다.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버드나무가지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이야말로 정말 아름답지 아니한가?

고목생화枯木生花- 마른 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도 위의 말의 변용이다.

한자는 말들을 결합시키면 되는 거니까.

 

 

잠이 안 오는 토요일 밤 12시를 넘기고 문득 생각나는 화양연화란 단어에 고양생화를 연상하며

다양한 사색을 한다.

그리고 10월 10일 일요일 중년의 나는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향기를 발할까....라고 문득 물어본다.

그래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지금부터이다.

 

 

 

 

 

2010.10.10         自由 ......... 紫霞仙人 遊於世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