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권 화엄경 19~22
제 19장 여래승도솔천궁품(如來昇兜率天宮品)
부처님께서는 자재한 신통력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모임이 있던 장소에 머물면서 도솔천궁에 있는 일체보장엄전(一切寶莊嚴殿)으로 향하셨다.
그때 도솔천왕(兜率天王)은 저 멀리서 여래의 모습을 보고 일체보장엄전 안에 여래의 사자좌를 마련하고 온갖 보배로 사자좌를 장식하였다.
도솔천왕은 여래의 자리를 장식한 다음, 무수한 도솔천의 천자(天子)와 함께 여래를 맞이하여 온갖 미묘한 꽃을 비처럼 뿌려 여래를 공양하였다. 또 미묘한 전단향(旃檀香)과 온갖 화환, 아름다운 하늘 옷을 뿌려서 여래를 공양하였다. 또 온갖 향을 피웠는데 그 향내는 모든 시방의 세계에 충만하였다. 그러한 속에서 무수한 천자와 천녀들은 삼매에 들어 한결같이 여래의 경지에 뜻을 모았다.
모든 천자와 천녀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부처님을 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여래의 출현(出現)을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애가 없는 지혜를 갖춘 여래를 지금 만나 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때 다른 국토에서 모여든 무수한 천자와 천녀들, 그리고 무수한 불국토에서 온 보살들도 여래의 위없는 깨달음을 접할 수 있었다.
여래의 몸은 무량하여 헤아릴 수 없으며, 불가사의한 기적을 나타내어 중생을 기쁘게 하고, 끝없는 대허공에 충만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성품에 머물도록 하였다.
여래는 위없는 공덕을 나타내고 그 지혜는 다함이 없으며 그 법신은 모든 중생에게 두루 충만 되어 부족함이 없었다.
여래는 중생의 능력에 따라 모습을 나타내고, 그 경계는 모든 중생을 받아들이고 모든 중생의 활동을 알며, 중생으로 하여금 미혹의 세계를 초월하게 하여 한결같이 위없는 [無上]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한다.
그때 천자와 천녀 등 모든 신들이 여래를 우러러보자 그 몸의 털구멍 하나 하나에서 무수한 광명이 뿜어 나오고 그 빛 하나하나는 온갖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또 여래의 몸을 우러러보자 그 몸으로부터는 불가사의한 광명의 바퀴가 나타났다. 그 광명의 바퀴에는 불가사의한 빛깔이 있어서 시방의 끝없는 세계를 비추고 무수한 기적을 나타내었다.
그때 모든 중생은 여래의 미묘한 향내를 맡고 자기도 모르게 불가사의한 게송(偈頌)을 읊어 뛰어난 여래의 광명을 찬탄하였다. 그러나 여래의 광명을 충분히 찬탄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은 여래의 다함이 없는 자재력(自在力)안에서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때 여래는 대자비로써 끝없는 모든 세계를 덮고, 중생으로 하여금 아직 믿지 않는 자는 믿게 하고, 이미 믿는 자는 그 착한 성품을 지속하게 하고, 착한 성품을 지속하고 있는 자는 청정한 경지에 이르게 하며, 청정한 자는 보다 더 성숙하게 하며, 이미 성숙한 경지에 이른 자는 마침내 해탈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도솔천왕은 여래를 위하여 사자좌의 준비를 끝내고 무수한 도솔천의 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합장 예배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잘 오셨습니다. 바라옵건대 자비로써 이 궁전에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일체보장엄전은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 빛나며, 온갖 보배로써 장식되고, 주옥(珠玉)의 그물이 그 위를 덮었다. 하늘옷의 비, 전단의 비, 묘향의 비, 불가사의한 꽃비가 뿌려지는 가운데 오묘한 음악이 흘렀다.
이윽고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모든 음악은 그쳐 고요해지고, 도솔천왕은 삼매에 들어 그 착한 성품을 길러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도솔천왕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과거의 부처님들 밑에서 닦은 착한 공덕을 스스로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그 옛날 무애(無碍)라고 하는 여래가 계셨습니다. 여래는 흡사 보름달과 같아서 온갖 축복 중에 가장 뛰어난 부처님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이 오셔서 이 장엄전(莊嚴殿)에 드셨기 때문에 이 궁전을 더욱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또 그 옛날 무변(無邊)이라고 하는 여래가 계셨습니다. 그의 지혜는 매우 깊어서 모든 축복 가운데 제일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은 금색전(金色殿)에 드셨습니다. 때문에 이 궁전은 더욱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또 그 옛날 무량(無量)이라고 하는 여래가 계셨습니다. 그 빛은 끝이 없어 모든 축복 가운데 제일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이 이 연화전(蓮華殿)에 드셨기 때문에 이 궁전은 보다 더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때 세존은 일체보장엄전의 사자좌에 올라 결가부좌하셨다.
제 20장 도솔천궁보살찬불품(兜率天宮菩薩讚佛品)
그때 무수한 나라의 무수한 보살들이 저마다 자신의 동족을 이끌고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들은 부처님께 삼가 공경하여 예배한 다음 결가부좌하였는데 그들의 수는 시방에 차고 또 넘쳤다. 그들은 저마다 부처님의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고 있었으며,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진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두 무릎에서 무수한 광명을 발하여 끝없는 시방의 모든 세계를 비추셨다. 그 때문에 모든 보살들은 여래의 신통력이 자재함을 볼 수가 있었다.
이들 보살들은 비로자나 부처님이 그 옛날 보살의 도를 행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닦을 때의 선지식들이었다.
보살들은 항상 여러 부처님의 깨달음과 신통력을 찬탄하며 스스로 부서지지 않는 법신을 이루었고, 장애가 없는 삼매에 들어, 불가사의한 부처님을 만날 수 있어도 마음에 집착함이 없었다. 보살들은 항상 여러 부처님의 가호를 받으며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위없는 깨달음을 완성하여 부처님 마음의 근본 자리에 들고, 그 청정한 법신은 부처님이 사는 곳에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 금강당(金剛幢)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끝없는 시방 세계를 관찰하고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여래께서는 커다란 원력으로 자유자재한 불법을 나타내십니다. 이 법은 불가사의하며, 오직 피안에 도달한 사람만이 여러 부처의 경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모양으로 나타난 신체는 여래가 아닙니다. 음성도 또한 여래가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자재력은 모양과 소리를 떠나지 않고서 작용합니다.
부처님은 이곳에 오는 일도 없고, 저곳으로 가는 일도 없으면서 오직 청정한 법신만이 자재력을 나타냅니다.
만약 보살이 일체의 지혜를 구하여 스스로 위없는 깨달음을 완성하고자 생각한다면 먼저 참으로 그 마음을 맑게 하고 꾸준히 보살행을 닦아야 합니다.”
그때 견고당(堅固幢)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끝없는 시방 세계를 관찰하고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세계는 매우 깊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청정함은 흡사 허공과도 같습니다. 또 부처님의 설하시는 법은 배우 깊거니와 인연을 따라 청정한 몸을 나타내십니다.
이와 같은 대승의 지혜가 곧 모든 부처님의 경계입니다. 만약 이 지혜를 구하고자 하면 항상 부처님을 친근히 모시고 배워야 합니다. 만약 청정한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을 받들고 공양하기를 쉬지 않으면 드디어 불도를 이룰 것입니다.”
그때 야광당(夜光幢)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시방의 모든 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시방의 모든 세계, 모든 중생은 남김없이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유컨대 한 생각의 힘이 여러 가지 생각을 낳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한 법신도 여러 가지 부처의 몸을 낳습니다. 법신은 둘이 아니며 또 자성(自性)도 없으며, 청정하게 장엄되어 있어서 시방의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법신은 흡사 허공과 같고, 그 공덕은 다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모든 부처님만의 경계입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그 법신이 낱낱이 청정하여 중생의 능력에 따라 그 모습을 여러 가지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지금까지 내가 어떠한 모습을 나타내리라고 생각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중생의 근기에 따를 뿐입니다.”
그때 이구도(離垢道)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시방 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은 원만하여 세간을 청정하게 합니다. 만약 사람이 중생의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여래는 그 모든 소망에 따릅니다. 그러나 결코 이곳으로 오는 것도, 저곳으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의 경계를 염(念)하여 무량한 마음을 내면, 보이는 모든 여래의 수는 무량한 그 마음과 같습니다.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중생의 능력에 따라서 진리를 설하고 남김없이 부처의 몸을 나타냅니다. 일체의 모든 부처님은 무량한 자재력을 지니고 있어서 중생의 소망에 따라서 부처의 몸을 나타내고 여러 가지 모습에 의하여 세계를 청정하게 합니다.”
제 21장 십회향품(十廻向品)
금강당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명지삼매(明智三昧)에 들었다. 삼매에 완전히 들어가자 시방 세계의 무수한 불국토에 계시는 무수한 부처님들을 뵈올 수 있었다. 이 무수한 부처님들의 이름은 모두 ‘금강당’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때 여러 부처님들은 금강당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불자여, 그대는 능히 명지삼매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대가 삼매에 들 수 있는 것은 시방 세계의 무수한 부처님들이 그대에게 신통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또 비로자나 부처님의 본원력에 힘입었기 때문이다. 또 그대로 하여금 청정하고 지장 없는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또 그대로 하여금 무량한 불법, 열 가지 회향의 실천을 설하게 하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또 그대로 하여금 큰 원을 개발케 하여 모든 보살을 기쁘게 하고 모든 부처님과 똑같은 공덕을 체득하게 하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불자여, 그대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마땅히 이 법을 설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대는 부처님의 집에 머물며 세간을 초월하는 온갖 공덕을 길러 두루 법계를 비추며, 지장 없는 불법의 광명 속에 안주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때 여러 부처님께서는 금강당보살에게 무량한 지혜를 주시고, 지장 없는 불법의 광명을 주시고, 일체의 여래와 똑같은 몸을 주시고, 온갖 보살의 불가사의한 삼매의 방법을 주시고, 모든 처소에서 끊어짐이 없는 설법의 능력을 주셨다. 그것은 저 명지삼매의 공덕의 힘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때 여러 부처님들은 각기 오른손을 내밀어 금강당보살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러자 금강당보살이 삼매로부터 일어나 여러 보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자여, 이 보살의 불가사의한 대원은 두루 일체 중생을 구하고 지켜 주려 함입니다. 보살은 이 원을 세우고 삼세제불의 회향을 배우고 있습니다.
불자여, 보살의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의 회향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부처님들은 모두 이 회향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 중생이라는 관념을 떠난 회향, 둘째는 깨뜨려짐이 없는 회향, 셋째는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 넷째는 모든 처소에 이르는 회향, 다섯째는 다함이 없는 공덕장(功德藏)회향, 여섯째는 평등에 따르는 공덕의 회향, 일곱째는 평등하게 일체 중생에 따르는 회향, 여덟째는 진여(眞如)의 실상으로 향한 회향, 아홉째는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 열째는 한량없는 법계의 회향입니다.
불자여! 이 보살의 열 가지 회향을 삼세의 부처님들이 설하시는 것입니다.
불자여! 첫째로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 중생이라는 관념을 떠난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수행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내가 행하는 바의 선(善)은 일체 중생에게 도움이 되고 중생으로 하여금 마침내는 청정하게 할 것이다.
내가 행하는 바의 선으로써 일체 중생을 지옥, 아귀, 축생 따위의 고통으로부터 구하자.’
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이 선을 회향해서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한 집이 되자. 그것은 중생의 고통을 멸하게 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해 구호자가 되자. 그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해 귀의처(歸依處)가 되자. 그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공포를 떠나게 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해 안락처가 되자. 그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궁극적인 안락처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해 큰 광명이 되자. 그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무지를 없애고 지혜의 빛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일체 중생을 위해 등불이 되자. 그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궁극적인 광명 속에 안주케 하기 위함이다.’
불자여, 보살은 이와 같은 무량한 선을 회향하여 일체의 지혜를 완성시킬 것이다.
불자여, 보살은 친한 자를 위해서나 원한이 있는 자를 위해서 온갖 선을 회향하여 결코 차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를 평등이 보아 멀고 가까움을 초월해 있기에 항상 자애의 눈으로 온갖 중생을 보는 까닭입니다.
만약 중생이 나쁜 마음을 품고 보살을 해치려 든다면 보살은 그 중생을 위해 좋은 안내자가 되어 온갖 훌륭한 진리를 설명해 줄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독도 바다를 해칠 수 없듯 중생의 어떤 죄악도 보살의 좋은 마음을 어지럽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켜 온갖 선을 회향하는 것은 한 중생을 위하는 까닭도 아니며, 한 불국토를 위하는 까닭도 아니며, 한 부처님을 믿고자 하는 까닭도 아니며, 한 부처님의 법을 듣고자 하는 까닭도 아닙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온갖 선을 회향합니다.
일체의 불국토를 정화하고, 일체의 부처님을 믿고, 일체의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고, 일체의 부처님이 설하시는 바른 법을 듣기 위해 온갖 선을 최고의 깨달음을 향해 회향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보리심의 보배를 발굴하는 것은 여래의 힘이다. 보리심은 여러 부처님과 같고 광대하고 평등하다. 아무리 오랫동안 수행하고 배운다고 해도 얻기는 어렵다.’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회향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항상 여러 부처님들을 뵈옵고, 부처님들 밑에서 깨뜨려지지 않는 신심을 얻고, 바른 법을 듣고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지혜와 해탈을 완성하며, 일체 중생에 대해 자애의 눈길을 돌려 마침내는 부처님 계신 곳에 안주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체 중생은 헤아릴 수 없는 악업을 거듭 짓고 있다. 또 숙업(宿業)을 거듭 받고 있다. 이 숙업으로 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여래도 뵈올 수가 없으며 정법(正法)을 듣지도 못한다.
나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 속에서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아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겠다.’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평화로운 나라에 안주케 하겠다. 그것은 결코 자기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함이 아니다. 오직 중생으로 하여금 미혹의 세계를 떠나 지혜를 얻게 하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하여 집착하는 데가 없습니다. 중생이나 세계의 모양에도 집착하지 않고, 말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살은 오직 중생으로 하여금 진실한 법을 깨닫게 하기 위해 회향하고, 일체 중생은 평등하다고 알아 회향하고, 자신의 욕망을 떠나 온갖 선을 관찰하여 회향합니다.
보살은 이러한 선의 회향에 의해 영원히 일체의 악을 떠남으로써 부처님께서 찬탄하는 자가 됩니다.
불자여, 이것이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 중생이라는 관념을 떠난 회향’입니다.
불자여, 둘째로 '깨뜨려짐이 없는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깨뜨려짐이 없는 믿음을 얻었기에 모든 부처님들께서 기뻐하고 계십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깨뜨려짐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얻고 있습니다. 왜나 하면 온갖 선을 실천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보살은 모든 회향에 있어서 깨뜨려짐이 없는 믿음을 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해탈을 얻어 만족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보살은 여래의 자재한 신통력에 있어서 깨뜨려짐이 없는 믿음을 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명백히 여러 부처님의 불가사의함을 믿고 있는 까닭입니다.
불자여, 보살은 이같이 깨뜨려짐이 없는 믿음에 안주함으로써 부처님이나 보살이나 일체 중생의 무수한 세계에서 온갖 선을 실천하고, 보리심을 기르고 자비심을 길러 여러 부처님들을 따라 모든 청정한 선을 섭취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평등이 관찰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온갖 선을 지혜에 회향하여 항상 여러 부처님들을 뵙고, 좋은 스승을 가까이 하며 무수한 보살들과 회합하여 일체 중생을 가르치고 인도합니다.
보살은 온갖 선의 회향을 끝내고 이런 선의 회향을 끝내고 이런 선의 회향이 가져오는 힘에 의해 보살행을 닦을 때 생각 생각마다 모든 부처님들을 뵙고, 그 부처님들을 모두 기쁘게 하여 드리고, 무수한 보배, 꽃, 향, 화만, 의복, 당기(幢旗), 자리, 궁전, 수목 따위로 헤아릴 수 없이 긴 시일 동안 마음을 가다듬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합니다.
보살의 마음은 물러섬이 없고 휴식이 없고 잠시도 태만함이 없습니다.
보살은 근심이나 고민도 품지 않고 모든 집착을 떠나 부처님 계시는 곳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는 진리 자체의 세계를 관찰하며 그 보리심은 진리 자체가 되어 있으며 어떤 존재에도 집착하지 않고 회향하며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킨 이래 뛰어난 선을 실천하여 남김없이 회향합니다. 보살이 실천한 선은 비록 생사 중에 있어서도 깨뜨려지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진실한 지혜를 구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으며 일체의 중생을 깨닫게 하고자 노력하며 집착하는 바가 없습니다.
보살은 이같이 무명을 떠나 보리심을 성취하며 청정한 마음으로 일체가 평등함을 관찰하여 존재의 진실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업은 마치 꿈과 그림자 같고, 업보는 번개같고, 인연에서 생긴 존재들은 메아리 같고, 보살행은 그림자 같다고 알며, 또 집착을 떠난 지혜의 눈이 열리는 곳, 보살의 활동은 언제나 늘 작용하면서도 조금도 작용함이 없어서 모든 존재에 있어서 둘이 아님을 깨달아서 보살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도달합니다.
보살은 이렇게 온갖 선을 회향하여 두루 일체 법계를 비추고 일체의 지혜를 성취하고 있습니다.
불자여, 이것이 '깨뜨려짐이 없는 회향'입니다.
보살이 이 회향에 안주하면 무수한 부처님을 뵐 수 있으며 온갖 청정한 진리를 얻게 되며 일체 중생에 있어서 평등한 마음을 지니며 무명을 떠나 일체의 존재를 깨달으며 온갖 여래의 자재한 신통력을 얻어서 모든 악마를 꺾으며 장애 없는 지혜를 얻어 스스로 마음의 눈을 뜹니다. 보살은 스스로 '깨뜨려짐이 없는 회향'의 힘을 가지고 온갖 선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블자여, 셋째로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삼세제불의 회향을 배웁니다. 보살이 보살행을 닦을 때, 그 마음은 청정하여 사랑도 미움도 없으며, 모든 근심과 고민을 떠나 정직한 마음을 얻어서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깨끗해집니다.
이런 기쁨을 얻을 때에 보살은 여러 부처님께 회향하여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이상 없는 맑은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거니와 다시 다음과 같이 되기를 축원하자.
즉 부처님들께서는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즐거움을 갖추시고,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삼매의 즐거움을 닦으시고, 헤아릴 수 없는 대자비의 즐거움을 성취하시고, 다시 부처님들의 헤아릴 수 없는 힘의 즐거움을 성취하시고, 다시 부처님들의 헤아릴 수 없는 힘의 즐거움, 영원히 일체의 번뇌를 떠나는 즐거움, 적멸의 극치에 이르러 결코 변함이 없는 즐거움, 어지러워지지 않고 깨뜨려지지도 않는 행(行)의 즐거움을 갖추시게 되시라.‘
보살은 이렇게 온갖 선을 부처님들께 회향한 다음 다시 또 일체의 보살들에게 회향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원컨대 아직 만족하고 있지 않는 자는 모두 만족시켜 주고, 아직 마음이 청정해지지 않은 자는 모두 청정하게 해 주어서, 금강(金剛)같이 견고한 보리심에 안주하여 일체의 지혜에 있어서 물러섬이 없도록 하여 주고, 태만한 마음을 떠나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여 각자의 소원을 만족케 하자.’
이와 같이 보살은 온갖 선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합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 승가에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회향합니다.
즉 오로지 부처님을 생각하게 하고자 회향하며, 청정하고 뛰어난 법을 염원하게 하고자 회향하며, 스님을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고자 회향합니다.
또 보살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을 뵙고 멀어져 감이 없게 하고자 회향하며, 온갖 청정한 마음을 완성케 하고자 회향하며 모든 의혹을 제거하게 하고자 회향합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그 마음을 길러서 오로지 일체의 지혜를 구하게 합니다.
보살은 집에서 처자와 함께 있어도 잠시라도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떠나지 않고, 모든 지혜의 경계를 마음에 떠올려 스스로 깨달음을 지향하며, 다른 사람들도 깨달음으로 인도합니다.
보살은 솔직하고 평등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 모습으로 처자, 친척 앞에 나타나 방편의 지혜로써 모두 궁극의 해탈을 완성케 하며 함께 살면서도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습니다.
또 보살은 대비심(大悲心)에 의하여 집에서 행동하고, 대자심(大慈心)에 의하여 처자와 함께 있어도 보살의 청정한 실천에 있어서는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이 집에 있을 때에는 일체의 지혜의 마음을 가지고 온갖 선을 회향합니다.
이를테면 보살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걸을 때나 설 때나 앉을 때나 잘 때나 항상 언행에 조심하여 결코 흐트러지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이런 생활 방식으로 온갖 선을, 최고의 깨달음을 중생에게 회향합니다.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거의 보살은 모두 부처님들을 공경, 공양하고, 중생을 해탈케 하고 온갖 선을 행하여 깨달음에 회향했으며, 그리고도 집착함이 없었다. 모든 존재는 불생불멸이므로 어디에도 집착할 데가 없고 파괴될 수도 없으며 진실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다고 체득하고 있었다.
이런 과거의 보살 같이 나도 또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체득하여 모든 것은 환상 같고 번개같고 물에 비친 달과 같고 거울 속의 그림자 같아서 실체가 없고 공(空)한 줄을 알자. 오직 여래만이 내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세계다.‘
보살은 이렇게 온갖 선을 회향하여 행동과 말과 마음이 청정해지며, 안주해야 할 곳에 안주하여 일체의 존재는 공이며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하기에 세간을 초월하는 진리를 배워서 마음에 조금도 집착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것이 보살의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입니다.
불자여, 넷째로 ‘모든 처소에 이르는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온갖 선을 배울 때, 그 선을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나는 이 선의 힘을 모든 처소에 이르게 하겠다. 이를테면 사물의 실상은 세간에나 중생에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 에나 이르지 않는 곳이 없듯이 내 선의 힘도 모든 처소에 이르러 두루 모든 부처님의 처소까지 도달하여 그것으로 부처님들을 공양하겠다.’
보살은 부처님들 밑에서 온갖 선을 행하여 일체의 힘을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오직 한마음으로 어지러움이 없고 흔들림이 없으며 집착을 떠난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보살은 막힘이 없는 진리의 등불을 얻어 중생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모든 선을 중생에게 회향하면서 생사의 세계를 초월하게 합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무량한 부처님들을 뵙게 하며 온갖 것 중에 안주케 하며 모든 사물에 집착함이 없게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세계에 들어가게 하고 또 선의 힘을 회향하여 모든 여래의 신통력 속에 들어가게 하고 그리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시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선을 회향해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나라를 정화시키며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힘을 얻어 중생들을 가르쳐 인도하고 스스로 모든 세간의 최상의 복전(福田)이 되어 중생을 위해 불법의 보배를 발굴하는 인도자가 됩니다.
보살은 일체 세간을 위해 밝은 등불을 켭니다. 보살이 닦은 하나 하나의 선은 법계에 차고 넘쳐서 중생을 지켜 주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청정한 공덕을 완성케 합니다.
불자여, 이것이 ‘모든 처소에 이르는 회향’입니다.
불자여, 다섯째로 ‘다함이 없는 공덕장(功德藏)의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온갖 선을 배움으로써 모든 숙업(宿業)의 장애를 뛰어넘습니다.
보살은 삼세제불과 모든 선(善)의 기쁨을 나누며 과거, 현재, 미래에 있는 일체 중생과도 선의 기쁨을 나눕니다.
온갖 여래를 존중, 공경하고, 예배, 공양하여 생기는 선(善), 여러 부처님들의 설법을 듣고 기억하여 그대로 수행함으로써 불가사의한 경계로 들어가는 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닦으신 다함없는 선, 모든 보살이 수행하는 선, 모든 부처님이 깨달음을 완성할 때의 최고선, 보살은 이와 같은 일체의 선에 의한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보살은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지향하는 뜻을 일으키신 후, 여러 보살행을 실천하여 마침내 부처가 되어 열반을 실현하는 사이에 얻는 선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여 그 모두와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보살은 이러한 모든 선을 남김없이 회향합니다.
보살은 온갖 청정한 공덕을 갖추고 지혜를 완성하여 모든 중생의 세계를 인식하고 어리석음을 떠나 해탈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믿고 불가사의한 법을 기억하고 청정한 승가를 찬탄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원만하게 법을 성취하니 그 지혜의 광명은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춥니다.
그 마음은 깨끗하기 허공과 같으며 일체의 법계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또 온갖 불가사의한 삼매에 자유자재로 출입하며 일체의 지혜로 나아가고, 부처님들의 나라에 안주하여 능히 부처님들의 신통력을 분별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바가 없습니다.
보살은 일체 제불, 일체 보살, 일체 정각, 일체 대원, 일체 중생, 일체 세계에 회향하여 항상 여래를 뵙고 법계와 평등해지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온갖 선을 회향함으로써 모든 세계를 정화하며, 모든 중생의 바다를 정화하며,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법계에 충만케 하며, 또 여래의 청정한 법신으로 하여금 모든 불국토에 충만케 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비길 데 없는 회향으로써 일체의 지혜를 향해 나아가 그 마음의 깨끗하기가 허공과 같으며, 흔들리지 않기가 대지와 같아 온갖 불가사의한 회향으로 들어갑니다.
보살은 이렇게 온갖 선의 회향을 마친 다음, 다함이 없는 선의 힘을 얻습니다.
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항상 찬탄하여 다함이 없는 선의 힘을 얻고,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정화하여 다함이 없는 선의 힘을 얻고, 중생의 세계를 정화하여 다함이 없는 선의 힘을 얻고, 깊고 넓은 법계에 들어가 다함이 없는 힘을 얻고, 헤아려 알 수 없는 마음을 배우고 정화하여 다함이 없는 선의 힘을 얻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이해하여 다함이 없는 선의 힘을 얻습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할 때 그 회향의 위력에 의해 보살의 행위는 뛰어나서 비길 데 없고, 모든 세간도 이를 파괴하지 못하며, 온갖 악마를 항복 받아 물러섬이 없는 공덕의 힘을 완전히 성취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소원은 완전히 채워집니다.
보살의 마음은 더욱 크고 넓어져서 순간에 무량한 모든 불국토에 갈 수 있으며, 무량한 지혜의 힘을 얻어 빠뜨림 없이 부처님의 경계를 이해하고, 항상 일체의 불법을 보호하여 헤아릴 수 없는 대지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함이 없는 공덕장의 회향’입니다.
불자여, 여섯째로 '평등에 따르는 공덕의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이 국왕이 될 때는 백성은 편안하고 부유하며 모든 나라들은 귀순하여 그 명령을 어기는 자가 없습니다.
왕은 바른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며 그 덕은 시방에 번져서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천하는 태평해집니다.
보살은 숙업의 장애를 떠나 청정한 몸이 되고, 모든 보시를 행합니다. 이를테면 마실 것, 먹을 것, 의복, 가옥, 약, 기타 갖가지 보배를 보시하는 것입니다.
죄수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 보살은 대비심을 일으켜 스스로 감옥을 찾아가 그를 구하고, 또 죄수가 사형장으로 호송되는 것을 보면 스스로 몸을 버려서 그의 목숨을 건집니다.
만약 중생이 희망해 오는 것에 대하여서는 부귀 빈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보시하여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온갖 선을 회향한 다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행하는 보시는 집착과 번뇌가 없고, 그 마음은 곧아서 아까워하는 바가 없다. 나는 이런 보시의 공덕의 힘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큰 지혜를 얻게 하고 마음에 장애가 없도록 하겠다.'
보살이 마실 것을 보시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선행에 의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의 감로를 마시게 하고 보살도를 완성하고 애욕을 제거하여 항상 대승을 희구하도록 하겠다. 삼매에 의해 마음을 가다듬고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 대법(大法)의 구름을 일으켜 대법의 감로를 비오듯 내리게 하리라.'
보살이 보시하는 음식, 이른바 매운 것, 신 것, 짠 것, 단 것, 담백한 것, 쓴 것 등의 무한한 음식은 먹어도 싫증이 안 나며 몸을 부드럽게 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그 힘은 온몸에 넘쳐 기력이 강해지고 유쾌한 기분이 되며 눈과 귀 같은 각 기관은 밝고 깨끗해지며 살결은 윤이 나고 어떤 독도 침범하지 못하며 모든 병은 소멸하여 청정한 불법을 즐기게 하여 줍니다.
보살은 이렇게 무량한 음식을 보시할 때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선행에 의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법미(法味)의 깊은 지혜에 안주케 하며, 온갖 맛의 작용을 알게 하며, 법의 구름에서 두루 비오게 하여 법계에 충만케 하며 모든 중생의 몸을 부드럽게 해 주겠다. 다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무애(無碍)의 맛을 얻게 하며, 지혜의 수레를 타고 불퇴전(不退轉)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여 청정한 불법에 안주하게 하겠다.'
보살이 집을 보시할 때는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선행에 의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불국토를 얻게 하며 공덕을 닦아 그 불국토를 장엄케 하며 깊은 삼매의 경지에 안주케 하고 그리고 그 경지에 집착함이 없게 하겠다.’
보살이 약을 보시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선행에 의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장애에서 떠나게 하며, 병든 몸을 버리고 모두 여래의 청정한 법신을 얻게 하며 약의 성능을 좋게 하여 모두 악업의 병을 고치게 하며, 여래의 약을 완성하여 번뇌의 가시를 뽑게 하며, 세상의 모든 치료법을 터득하여 일체의 병을 고치도록 하겠다.’
보살이 온갖 보배의 창고를 열어 보시할 때는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선행에 의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부처님을 뵙고 어리석음을 떠나 정념(正念)에 머물도록 하겠다.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어 세계를 밝게 비치게 하며 일체 제불의 보배를 지키도록 하겠다.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승가에 의지하여 인색한 마음을 떠나 보시를 행하도록 하겠다.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를 깨닫는 마음의 보배를 얻어 청정한 보리심에서 물러섬이 없도록 하겠다.’
보살이 감옥의 죄수가 고통받고 있는 모양을 보건대 혹은 결박당하고 얻어맞으며 혹은 어두운 방에 갇혔으며 혹은 손발에 쇠사슬을 차고 피를 흘리며 혹은 굶주리고 목마름을 못 견뎌 바짝 말랐으며 혹은 머리칼이 길어져 몸을 덮었는데 이처럼 한없는 고통을 받건만 아무도 구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재물이나 가족을 버리고 다시 자기 몸까지도 버려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합니다. 보살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할 때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선행에 의해 모든 중생을 애욕의 구속으로부터 해방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흐름을 끊고 지혜의 피안에 이르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무명(無明)을 제거하고 맑고 청정한 지혜를 얻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구히 번뇌를 없애고 장애 없는 지혜를 얻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깊은 마음을 얻어 항상 부처님들에 의해 수호되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집착과 구속이 없는 마음을 얻어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궁극에 도달하기 허공 같이 되게 하겠다.’
죄수가 호송되어 사형장으로 가는 것을 보면 친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옥졸의 감시를 받는, 그 마음의 고뇌가 몸에 스며 옵니다. 어떤 이는 처형대 위에 실리던가 혹은 칼을 받고 혹은 불에 태워지는 등 끝없는 고통을 받습니다.
보살은 이런 모습을 보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져 죄수의 고난을 구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내 몸을 버려 그 목숨을 대신해 주자. 비록 내 고통이 헤아릴 수 없더라도 고통을 대신 받아 그를 해탈케 해 주자.’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고통을 보고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면 큰 이익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오로지 중생을 구하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을 희생하여 그의 고통을 받아 주자.’
보살은 이와 같이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할 때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이 보살행에 의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떠나게 하며, 또 모든 중생을 온갖 공포에서 구하여 악도를 떠나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어 죽음을 초월한 지혜에 이르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청정한 행위를 닦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석존과 같이 보리수 밑에 앉아 번뇌의 마군(魔軍)을 항복 받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공포 없는 경지에 이르러 모든 고뇌를 겪고 있는 중생을 지키도록 하겠다.’
진리의 말씀을 보시하는 사람이 있어서, ‘당신이 만약 몸을 불에 던진다면, 당신에게 법을 들려주리라’고 한다면 보살은 이를 듣고 기쁨에 차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진리의 말씀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떨어져 무량한 고뇌를 받겠다. 하물며 인간 세계의 작은 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법을 들을 수 있음에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법은 이렇게 얻기 쉽지 않은가. 나는 다행히도 지옥의 무량한 고통을 면하고 작은 불 속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정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부디 법을 설해 달라. 나는 불 속에 뛰어들겠다.’
보살은 기꺼이 불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악도의 불을 제거하여 즐거움을 받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법을 희구하여 보살의 마음을 얻어서 법을 체득하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의 마음을 얻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을 끄게 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의 삼매를 얻어 널리 여러 부처님을 뵙고 크게 기쁜 마음을 얻도록 하겠다.’
보살이 정원이나 동산을 보시할 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스스로 진리의 숲이 되겠다.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즐거운 처소를 보여 주겠다.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청정한 진리의 문을 열어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보살은 이와 같이 정원이나 동산을 보시하고 모든 중생에게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뛰어난 공덕을 얻어 마침내는 더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완성케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진리의 숲을 원하고 부처님 나라의 동산을 얻게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자유자재한 활동을 동경하여 두루 시방에 놀도록 하겠다.’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할 때 안에도 집착하지 않고 밖에도 집착하지 않고 환경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작용에도 집착하지 않고 인연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살은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생기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고 스스로의 실체도 없으며 선도 없고 악도 없고 고요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하나라던가 둘이라고 하는 것도 없는 까닭입니다.
보살이 이런 진리를 깨닫고 보면 사실 그런 진리도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언어로 나타낼 수 없으며 꿈과 같고, 음향과 같고,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고, 그러면서도 인연과 숙업을 어기지 않는 까닭입니다.
깊은 숙업 속에 들어가 인생의 진실을 깨달으면 털끝만큼의 수행도, 활동도 없으면서 숙업과 수행의 길이 틀림없음을 알게 됩니다.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고뇌로 가득찬 생사의 피안에 건너가기 때문에 회향이라 하며, 오온(五蘊)의 피안에 건너가기 때문에 회향이라 하고, 언어의 세계의 피안에 건너가기 때문에 회향이라 하며, 중생의 모습의 피안에 건너가기 때문에 회향이라 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하고 나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진리를 얻게 하고 또 부처님을 뵙게 하며 진리에 있어서 어김이 없고 잃음이 없으며 그리고도 부처님의 힘을 얻어 활동을 쉬지 않습니다. 이것이 ‘평등에 따르는 공덕의 회향’입니다.
불자여, 일곱째로 ‘평등하게 일체 중생을 따르는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선을 실천하여 중생을 성숙시키고 마침내는 중생의 깨달음을 완성케하여 영원히 부정한 마음을 떠나 일체제불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됩니다.
보살은 두루 일체 중생을 위해 복덕의 밭이 되며 온갖 선을 낳아 그를 성숙시키며 자유자재한 힘을 얻어 일체 제불을 공양합니다.
보살은 모든 여래의 힘을 궁극까지 추구하며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온갖 수행에 집착하지 않으며 생사 속에서 중생을 구해 내되 중생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일체의 지혜의 문을 엽니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겠다. 그리고 온갖 선을 남김없이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겠다.’
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보시를 행할 때, 집착 없는 마음, 속박 없는 마음, 큰마음, 깊은 마음, 애증(愛憎)을 떠난 마음, 지혜의 광명으로 충만한 마음으로써 하겠다.’
보살은 또 생각 생각마다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함이 없는 공덕의 보물 창고를 갖추게 하며, 일체 제불을 뵙게 하며, 모두 청정하고 평등한 마음을 얻게 하며, 부드러운 보시의 마음을 얻게 하며, 미래제가 다하도록 보시를 하게 하며, 깨뜨려짐이 없는 정직한 마음을 갖게 하며, 평등한 지혜를 얻어 온갖 것을 관찰케 하며, 모두 보살의 불퇴전의 힘을 얻어 평등이 만족케 하겠다.’
이와 같이 보살은 대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불쌍히 여겨 평등한 마음의 회향을 완성합니다.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편안케 하며 궁극의 해탈을 얻게 하고 장애 없는 마음의 눈과 자유자재한 신통력을 얻어 중생을 가르치고 인도합니다.
보살은 이렇게 온갖 선을 회향할 때, 숙업에 집착하지 않고 회향하며 중생에 집착하지 않고 회향하며 또 중생을 떠나지 않고 회향합니다.
보살은 이렇게 회향할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혜를 만족하게 얻고, 청정한 몸을 얻어 고요한 마음으로 삼세 제불의 집에 태어날 수 있게 하겠다.’
보살은 이같이 회향을 행해서 평등한 숙업을 얻으며, 평등한 과보를 얻으며, 평등한 도(道), 평등한 원, 평등한 일체지(一切智), 평등한 일체행(一切行)을 얻어 이것으로 일체 중생을 완성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평등하게 일체 중생에게 따르는 회향’입니다.
불자여, 여덟째로 ‘진여(眞如)의 실상에 회향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자여, 보살은 지혜를 완성하여 부동의 세계에 안주합니다. 모든 경계에 있어서 불퇴전이요, 두려움이 없는 대승의 용맹심을 얻습니다.
보살은 다함이 없는 온갖 선을 닦고 일체 제불의 청정한 법을 염하면서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에게 회향합니다.
보살은 이같은 온갖 선을 닦아 오로지 일체의 지혜가 둘이 아닌 경계를 관찰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온갖 선을 중생에게 회향하여 장애가 없는 몸을 성취하고 장애가 없는 마음의 작용을 갖추어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의 세계에 안주케 하려고 합니다.
보살은 자유자재한 마음을 얻어 모든 존재를 비치며 깨뜨려짐이 없는 마음을 얻어 일체의 지혜를 갖추며 삼세의 일체 제불을 염하여 완전히 염불 삼매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보살은 두루 모든 세계에 놀되 조금도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세계에 안주하되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으며, 일체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되 일찍이 휴식한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한 순간에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정화하며, 모든 지혜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한 나라에 있어서 모든 나라를 보며, 깨뜨려짐이 없는 지혜를 완성하여 모든 나라를 지탱합니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온갖 선과 온갖 원을 닦아 마치 큰 구름이 비를 내리듯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케 하며, 온갖 장애를 떠나 청정한 법계에 안주케 하며, 노여움을 떠나 드디어는 일체의 지혜를 성취하게 하겠다.’
보살은 온갖 선을 육성하여 항상 선지식으로 불리워지고, 여래의 지혜에 의해 그 마음이 밝게 비춰져서 무명을 제거하며, 온갖 선의 대해(大海) 속까지 들어가 지혜를 성취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온갖 선을 회향하되 중생에 집착하지 않고, 국토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고요히 가라앉아 있어서 조금도 어지러워짐이 없고, 여래의 도리에 수순하여 널리 세계를 비추고 있습니다.
보살은 두려움이 없는 마음으로 온갖 선을 모든 부처님께 회향하며, 헤아릴 수 없는 마음으로 온갖 선을 모든 부처님께 회향하며, 무아(無我)의 마음으로 온갖 선을 시방 세계에 회향하되 조금도 집착함이 없습니다.
보살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존재를 이해하게 하고자 회향하며, 모든 존재는 자성(自性)이 없다고 회향하며, 부처님들 의 법에서 물러섬이 없고자 회향하며, 모든 중생을 안주케 하고자 회향합니다.
보살은 미래세가 다하도록 불법을 따르겠다고 회향하며, 모든 세상의 거주지를 떠나 궁극의 거주지에 안주하려고 회향하며, 모든 번뇌를 타파하려고 회향하며, 모든 보살도를 행해서 싫증이 없게 하기 위해 회향합니다.
보살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정직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하고자 회향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큰 지혜의 광명으로 두루 일체를 비추게 하고자 회향합니다.
보살은 미래세가 다하도록 청정한 보살행을 배우고 닦아 무량한 대원을 성취케 하고자 회향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순간에 일체 제불을 뵈오며, 그러면서도 일찍이 순간도 떨어짐이 없게 하고자 회향합니다.
보살은 새롭게, 거듭 새롭게 보리심을 일으켜서 원컨대 미혹에서 오는 생사를 제거하여 중생을 청정하게 하려고 회향하며, 완전히 번뇌를 제거하여 일체의 지혜를 만족케 하고자 회향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나라와 평등하게 회향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세계를 정화하는 까닭입니다. 또 모든 세간과도 평등합니다. 왜냐하면 세간을 향해 깨뜨려짐이 없는 청정한 불법을 설하는 까닭입니다. 또 신통력의 자재함도 부처님들과 평등합니다. 왜냐하면 세간에 수순(隨順)하여 부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까닭입니다. 이것이 ‘진여의 실상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불자여, 아홉째로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모든 선에 있어서 경박한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생사의 해탈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 오로지 온갖 선을 구하기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 부처님을 예배하기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 등입니다.
보살은 항상 온갖 선을 닦아 그 선에 안주하며, 그 선에 마음을 쓰며, 그 선을 육성하고 그러면서도 그 선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온갖 선을 회향하고, 보현보살과 같은 행위와 변재(辯才)와 마음의 작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보현보살과 같이 모든 부처님들을 뵈올 수 있으며, 무량한 진리를 전하며 자유자재한 신통력을 나타냅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보현보살과 같이 순간 순간 속에서도 무량한 부처님을 뵙고, 그 설법을 들어 결코 잊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보현보살과 같이 미래 영겁에 걸쳐 온갖 세계에서 진리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궁극의 깨달음을 완성하여 현실 세계에 나타나 한 광명으로 모든 세계를 비추며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써 항상 보현보살의 행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모든 부처님의 장애 없는 법신을 얻어 부처님의 경지에 안주하며, 자유자재한 대승의 활동을 일으켜 온갖 중생을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여 보현보살의 행과 원에 회향합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여래의 집에 태어나 보살행을 수행함으로써 무량하고 불가사의한 진리를 체득하고, 무량한 대원은 빠짐없이 완성하여 보현보살의 행을 따라 지혜의 세계를 다함없이 탐구합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심을 가지고 무한한 시간을 한 순간으로 만들며 일체 중생의 무수한 생각을 한 순간에 이해하며 무량한 여러 몸을 한 몸 속에 섭취하여 보현보살의 깊은 마음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보살은 속박도 집착도 없는 마음을 가지고 한 처소에서 무량한 여러 처소를 인식하며 한 업(業)에서 무량한 여러 업과 연기(緣起)를 분별하여 한 법에서 모든 법을 알며 한 마디 말에서 무량한 음성이 마치 음향 같은 줄 알며 한 진리 속에서 무수한 진리를 전파합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순간 순간 속에서 뛰어난 법신을 육성하고, 미래 영겁에 걸쳐 모든 세계의 모든 부처님 밑에서 허공 같은 보살행을 수련하여 보현보살의 경지에 안주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그것은 삼세제불과 여러 보살의 회향과 평등하여 그 회향을 완성해서 거기에 안주할 수 있습니다.
보살이 이 회향에 안주하여 일체의 선을 회향하면 보살은 일체 중생 중 가장 훌륭한 자가 되어 어떤 악마라도 보살의 마음을 방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도리어 악마의 활동을 항복 받고 없애며 두루 모든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들의 법을 설하고 일상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항상 보살의 의무를 다하여 잠시도 쉬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입니다.
불자여, 열째로 ‘한량없는 법계의 회향’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대자비를 완성하여 중생의 마음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고 중생을 위해 활동함에 잠시도 쉬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보리심을 가지고 온갖 선을 닦아 모든 중생을 위해 지도자가 되어 지혜의 길을 보여주며, 모든 중생을 위해 진리의 태양이 되어 두루 일체의 국토를 비추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여 잠시도 쉬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진리를 듣고 분별하여 다시 그것을 중생에게 설법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나는 마음을 오로지하여 무량무변한 세계의 삼세제불을 바로 염원하여 보살의 의무를 행하겠다.
나는 한 세계에서 한 중생을 위해 미래 영겁에 걸쳐 보살의 의무를 행하겠다.
나는 모든 세계에서 모든 중생을 위해 미래 영겁에 걸쳐 보살의 의무를 행하겠다. 그리고 부처님과 보살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보살은 항상 현지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 일찍이 한 부처님으로부터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보살은 스스로 정직한 마음을 가지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보살은 스스로 무엇에나 인내하고, 온갖 선에 의해 그 마음을 가다듬으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에나 인내하고, 온갖 선에 의해 그 마음을 가다듬게 합니다.
보살은 스스로 온갖 의혹을 떠나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보살은 스스로 기쁜 신심(信心)을 얻으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기쁜 신심을 얻게 합니다.
보살은 이같이 온갖 선을 회향합니다.
‘무량무변한 모든 부처님을 뵙고, 무량무변한 모든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고, 무량무변한 모든 불국토를 정화하고, 무량무변한 보살의 온갖 지혜를 얻고, 무량무변한 온갖 선을 체득하겠다.’
또 보살은 온갖 선을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진리의 세계가 무량하듯 지혜 또한 무량하다.
진리의 세계가 무량하듯 뵈옵는 부처님들도 또한 무량하다.
진리의 세계가 무량하듯 불국토에 들어가는 것도 또한 무량하다.
진리의 세계가 무량하듯 보살의 행(行)도 또한 무량하다.
진리의 세계는 끊을 수가 없듯 일체의 지혜도 또한 끊을 수가 없다.
진리의 세계가 한결같듯이 일체의 지혜도 또한 한결같다.
진리의 세계가 스스로 청정하듯 일체 중생도 또한 스스로 청정하게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함으로써 진리의 세계는 주체가 없음을 깨닫고, 진리의 세계는 그 자신의 본성이 없으며 의지할 근거가 없음을 깨닫고, 진리의 세계는 적정하여 모든 형상을 떠났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 보살은 온갖 선을 다음과 같이 회향합니다.
‘모든 불국토를 청정케 하고, 한 불국토에 모든 불국토가 나타나게 하고, 모든 불국토에도 그와 같이 되게 하겠다.’
이와 같이 보살이 온갖 선을 회향하는 것은 그 선을 육성하기 위함이며, 불국토를 정화하기 위함입니다.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하고 평등하게 하며, 성내는 마음을 떠나게 하며, 깊고 깊은 불법을 체득케 하며,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어 부처님들의 지혜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보살은 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온갖 선에 의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행을 닦아 무량한 진리의 바다에 들어가게 하고, 진리의 바다와 평등하고 청정한 지혜를 가지고 두루 모든 세계를 비추게 하겠다.’
보살은 진리의 세계에 안주하는 온갖 선을 회향하고 무량한 몸의 행위, 무량한 일의 변설, 무량한 마음의 작용을 각기 진리의 세계에 회향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회향할 때 진리의 세계와 같은 무량 청정한 몸의 행위에 안주하고, 입의 변설에 안주하고 마음의 작용에 안주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선을 다 회향하고 나서 보현보살의 무량무변한 모든 행과 원을 성취하고, 무량무변한 모든 불국토를 정화하며, 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과 같아지게 합니다.
보살은 무량무변한 지혜를 완성하여 모든 사물 속에 깊이 들어가 생각 생각마다 무량무변한 온갖 세계의 부처님들을 나타내어 무량무변한 부처님들의 자유자재를 얻습니다.
보살은 생각 생각마다 삼세 제불의 청정한 지혜를 완성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 청정케 하고, 평등의 관찰을 체득하여 결정적인 지혜를 가지고 마침내 열반의 세계에 이릅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일체 시방 세계는 여섯 가지 모양으로 진동했다.
하늘로부터는 꽃과 화만과 옷과 보배와 불가사의한 음악의 꽃이 쏟아졌다.
수많은 여러 신들이 공경, 예배하고 환희 하여 부처님을 염원하면서 미묘한 음악을 연주하여 부처님을 공양하고 광대무변한 광명을 발해 모든 불국토를 비춰서 무량한 부처님의 화신(化身)을 나타냈다.
그대 시방 세계의 불국토에 무량무변한 보살이 있어서 부처님의 신통력을 힘입고 모두 구름처럼 모여 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불자여, 그대는 온갖 대회향에 대해 잘 설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같은 이름으로서 금강당이라 하며, 금강광세계(金剛光世界)의 금강당 부처님 처소로부터 이 국토에 왔습니다.
저 온갖 세계에서도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같은 진리가 설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저 국토로부터 왔거니와 그대를 위해 증명하겠습니다.”
그때 금강당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 세계의 온갖 사물을 관찰하고 무량 광대한 마음을 수련하여 위없는 대비(大悲)로써 모든 중생을 뒤덮었으며, 그 마음은 삼세 일체의 부처님의 세계에 안주하여 일체 중생의 바라는 바를 모두 알고 법신에 따라 보살신을 나타냈다.
제 22장 십지품(十地品)
그때 부처님께서는 타화자재천왕궁(他化自在天王宮)의 마니보전(摩尼寶殿)에서 큰 보살들과 함께 계셨다.
그 보살들은 모두 최고의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들로서 다른 세계로부터 모여 왔다.
그들은 모든 보살의 지혜로 다니는 곳마다 자재를 얻었고, 모든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가는 곳마다 일체 세간을 잘 교화하며, 찰나 찰나 사이에 모든 일을 두루 나타내 보이고, 모든 보살의 소원을 갖춰 세간의 모든 겁, 모든 국토에서 항상 보살행을 닦았다.
그리하여 보살의 복덕과 지혜를 완전히 갖추어 다함이 없고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며, 일체 보살의 지혜와 방편으로 저 언덕에 이르렀고, 중생들로 하여금 탐욕의 길을 등지고 열반의 문으로 향하게 하며, 모든 보살의 행을 끊지 않고 모든 보살의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잘 얻어서 신통과 밝은 지혜로 모든 일을 잘 나타내 보이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모임에 가서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그 법륜을 받들어 지녔다.
언제나 큰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항상 모든 큰 보살들의 행하는 바를 닦아 익히며 그 몸은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나타나고 그 음성은 두루 들려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 마음은 탁 트이어 삼세를 훤히 보고 모든 보살의 온갖 공덕을 다 닦아 익혔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 마하살의 공덕은 무량무변하여 무수한 겁이 흘러도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름은 금강장보살, 보장보살, 연화장보살, 덕장보살, 일장보살, 월장보살, 묘덕장보살, 여래장보살, 불덕장보살, 해탈월보살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보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금강장보살이 가장 으뜸이었다.
그때 금강장보살 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큰 지혜 광명 삼매에 들었다.
그때 시방세계의 한 쪽으로 십억 부처님 국토의 티끌 수 같은 세계를 지나 십억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모두 함께 그 몸을 나타내시니 그 이름은 모두 금강장이었다. 또 시방세계에서도 그와 같으니 그 부처님들은 모두 같은 음성으로 금감장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금강장이여, 그대는 보살의 큰 지혜 광명 삼매에 들었구나. 그것은 시방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다 같은 이름으로 그대에게 위신력을 더한 것이니 이른바 비로자나 부처님의 본래 원력 때문이며 그대에게 큰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모든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모든 불법의 광명을 펴기 위한 것이니 이른바 지혜의 자리에 들게 하려는 것이며, 일체 선근을 포섭하게 하려는 것이며, 일체 불법을 잘 분별하게 하려는 것이며, 법의 지혜를 넓히게 하려는 것이며, 분별없는 지혜로 잘 분별하게 하려는 것이며, 일체 세간법이 물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며, 출세간의 선근을 청정하게 하려는 것이며, 불가사의한 지혜의 힘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이른바 보살 십지(十地)의 차별을 여실히 말하게 하려는 것이며, 보살 십지에 편히 머물게 하려는 것이며, 번뇌 없는 법을 분별해 말하게 하려는 것이며, 큰 지혜 광명으로 잘 분별해 스스로 장엄하게 하려는 것이며, 원만한 지혜의 문에 들게 하려는 것이며, 걸림 없는 변재의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며, 걸림 없는 큰 지혜 자리를 모두 갖추게 하려는 것이며, 보살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모든 중생의 세계를 교화해 성숙시키게 하려는 것이니라.
금강장이여, 그대는 이 법문의 차별을 말해야 할 것이니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신력을 위해서이며, 그대의 선근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법계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일체 세간의 길을 뛰어나기 위해서이며, 세간을 뛰어난 선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곧 시방의 여러 부처님은 금강장에게 진실하고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주고 걸림 없이 잘 말하는 변재를 주며, 잘 분별하는 청정한 지혜를 주고, 잘 기억하여 잊지 않는 힘을 주며, 잘 결정하는 지혜를 주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지혜를 주며, 모든 부처님의 무너지지 않는 힘을 주고, 모든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을 주며, 모든 부처님의 모든 법을 잘 분별하고 법문을 잘 아는 걸림 없는 지혜를 주고, 모든 부처님의 가장 묘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주었다.
그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다 오른손을 펴서 금강장보살의 머리를 어루만지셨다. 금강장 보살은 곧 삼매에서 일어나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이 모든 보살의 서원은 잘 결정되어 허물도 없고 부술 수도 없으며, 광대하기는 법계와 같고 끝이 없기는 허공과 같아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을 두루 덮습니다. 그것은 일체 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요, 모든 부처님들의 신력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 마하살은 과거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갔고 또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갔고 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지혜의 자리인가. 보살 마하살의 지혜의 자리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장차 말씀하실 것이요, 또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위해 나도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환희지(歡喜地)이며, 둘째는 이구지(離垢地)이며, 셋째는 발광지(發光地)이며, 넷째는 염혜지(焰慧地)이며, 다섯째는 난승지(難勝地)이며,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이며,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이며,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이며,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이며, 열째는 법운지(法雲地)입니다.
이 십지(十地)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시며 또 장차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이 십지를 말하지 않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십지는 보살이 수행하는 최상의 미묘한 진리이며, 최상의 밝고 깨끗한 법문으로서 이른바 십지의 일을 분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일은 불가사의한 것이니, 이른바 보살의 모든 자리[地]의 지혜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금강장보살은 십지의 이름을 설명한 뒤에 다시는 분별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때 모든 보살은 십지의 이름을 듣고는 모두 그 진리에 대해서 듣고자 바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금강장보살은 십지의 이름만을 말하고 잠자코 있는가.’
그때 금강장보살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십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불자들이여, 초지인 환희지(歡喜地)에 들어가자마자, 보살은 범부지(凡夫地)를 초월한 자가 되며, 보살의 확정된 자리에 들어가며, 여래의 집에 태어나며, 깨달음을 궁극의 목적으로 해서 미래의 혈통에 속하는 자가 됩니다.
불자여! 그래서 환희지에 들어간 보살은 많은 환희가 있게 됩니다. 그는 환희의 보살지에 들어가자마자, 곧 이러한 서원을 세웁니다.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기 위해, 모든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뛰어난 확신에 의해 마음을 청정히 하겠다.
모든 여래께서 설하신 진리의 눈을 수지(受持)하고, 그 가르침을 지켜 가겠다.
여러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오시는 온갖 세계에서 갖가지 보살의 생존의 모습을 나타내겠다.
모든 보살의 십지에 이르는 길을 있는 대로 가르치며 바라밀의 청정한 가르침을 설하며, 보시에 의해 이룩된 발심을 하겠다.
모든 중생계를 성숙시키기 위해 불법에 들어가고, 모든 미혹을 끊으며 전지자의 지혜에 안주하게 하기 위해 모든 중생계의 성숙에 힘쓰겠다.
넓고 좁고 크고 작은 모든 곳에 두루 들어가, 제석천의 그물같이 시방의 온갖 분별에 들어가는 지혜를 얻겠다.
모든 국토가 한 국토에 들어가고, 한 국토가 모든 국토에 두루 들어가, 무량한 불국토의 광명으로 장식되며, 모든 번뇌를 떠나 청정한 도에 도달하며,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 중생을 채워 주겠다.
어떠한 대가도 바람도 없는 선근(善根)을 닦기 위해, 여러 부처, 보살과 떨어짐이 없기 위해, 궁극에 도달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기 위해, 불가사의한 대승의 진리를 갖추도록 하겠다.
물러섬이 없는 보살행을 하기 위해, 신(身), 구(口), 의(意)의 활동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모든 세계에서 더없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또 온갖 중생의 경계 안에서 위대하고 완전한 열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또 부처님의 위대한 경계, 위신력(威神力),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또 중생의 소원에 응해 그때 그때에 알맞은 분별과 편안을 나타내기 위하여, 대지(大智)의 활동을 계속하겠다.’
불자들이여, 제 1의 보살지에서 아주 청정한 수행을 한 보살은 제 2의 보살지인 이구지(離垢地)를 원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열 가지 마음가짐이 일어납니다. 열 가지 마음가짐이 무엇입니까.
즉, 정직, 유연, 근면, 교화, 정적, 진실, 잡란되지 않는 것, 돌아보지 않는 것, 큰 마음가짐이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러움을 떠났다[離垢]라는 제 2의 보살지에 들어간 것이 됩니다.
불자여, ‘이구’라는 보살지에 든 보살은 본래 열 가지 선한 행위의 길[十善業道]을 갖춘 구도자입니다.
열 가지 선한 행위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살아 있는 목숨을 해치는 것으로부터 떠납니다.
그는 주어지지 않은 것을 훔치는 일에서 떠납니다.
그는 욕정에 사로잡힌 행위에서 떠납니다.
그는 거짓말에서 떠납니다.
그는 이 말 하고 저 말하는 일에서 떠납니다.
그는 욕설에서 떠납니다.
그는 야유하는 말에서 떠납니다.
그는 탐욕이 없는 자가 됩니다.
그는 성내지 않는 자가 됩니다.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됩니다.
또한 그는 중생을 관찰한 끝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아, 그들 중생은 악한 견해에 떨어지고, 지혜도 악하며 뜻도 악하다.
아, 그들 중생은 사이좋게 못 지내고 서로 배반하여 항상 증오하고 있다.
아, 그들 중생은 만족할 줄 몰라서 남이 얻은 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아, 그들 중생은 욕심[貪], 성냄[瞋], 어리석음[痴]에 사로잡혀서 여러 가지 번뇌의 불꽃 속에 타고 있다.
아, 그들 중생은 큰 어리석음[無明]에 덮여서 깨달음의 지혜의 광명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아, 그들 중생은 항상 큰 윤회의 숲을 헤매어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다.
아, 그들 중생은 정욕과 무지의 흐름 속에 떨어지고, 윤회의 물결에 표류하여 갈망의 기슭에 도달한다.
아, 그들 중생은 많은 고뇌와 근심과 불안을 수반하고 탐욕에 의해 방해받는다.
아, 그들 중생은 자기와 자기 소유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아, 그들 중생은 보잘 것 없는 것을 믿고 대승에 귀의하려 하지 않는다.’
불자여, 제 2의 보살지에서 마음이 청정해진 보살은 제 3의 보살지인 발광지(發光地)로 들어갑니다.
불자여, 이 보살은 제 3의 보살지에 머물면서 모든 존재가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또 그것이 고뇌요, 깨끗지 못한 것임을 관찰합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존재를 관찰하면 그것들은 반려가 없고, 편이 없고, 모든 근심과 슬픔, 고뇌가 없어 그의 마음은 여래의 지혜 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여래의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비할 데 없으며, 무량함을 잘 관찰합니다.
이리하여 그는 중생계의 많은 고난을 잘 관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력을 일으킵니다.
‘이들 중생은 마땅히 나에 의해서 구제되어야 한다.’
그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여 다음과 같이 관찰합니다.
‘어떠한 방편으로 저토록 고뇌에 싸인 중생들을 구원하며, 궁극의 안락처인 열반에 안주시켜야 하는가.’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지혜에서 생기는 깨달음을 얻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더욱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자 원합니다.
주야로 진리의 가르침에 대해서 듣기를 원하며,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기뻐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듣는 진리의 말씀에 접하면 기뻐하지만,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보배를 얻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잘 설해진 한 시구를 들으면 기뻐하지만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섭사(四攝事)의 실천 가운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실천[利行攝]이 가장 뛰어나며, 십바라밀 중에서는 인욕 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불자여, 제 3의 보살지에서 청정한 광명을 체득한 보살은 제 4의 염혜지(焰慧地)에 도달합니다.
보살은 염혜지를 얻자마자 곧 스스로 진리를 얻기 위해 지혜를 성숙케 하는 열 가지 진리를 가지고, 여래의 집에서 성장하는 자가 됩니다. 그 열 가지 진리란 무엇입니까.
퇴전하지 않는 생각을 지닐 것, 삼보에 대한 궁극의 신앙에 도달할 것, 존재의 생멸을 관찰할 것, 모든 것의 자성은 불생(不生)임을 관찰하는 지혜, 세계의 생성과 소멸을 관찰하는 지혜, 업(業)에 의해 생존이 생김을 관찰하는 지혜, 윤회와 열반을 관찰하는 지혜, 중생의 국토와 업을 관찰하는 지혜, 원초와 종말을 관찰하는 지혜, 비존재(非存在)와 소멸을 관찰하는 지혜가 그것입니다.
불자여, 염혜지에 든 보살은 개체는 실재한다는 견해와 이것으로 야기되고 사고되고 관찰된 모든 것을 떠나 버립니다.
그는 도를 깨닫기 위해 여덟 가지 바른 진리를 수행해 감에 따라 그 마음은 윤택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부지런해지고 순수해 갑니다.
그는 사섭사 중에서 중생과 더불어 불도를 행하는 실천[同事攝]이 가장 뛰어났고, 십바라밀 중에서는 정진 바라밀이 뛰어납니다.
불자여, 제 4의 보살지에 이르러 도가 정화된 보살은 제 5의 난승지(難勝地)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이른 보살은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에 의해 청정한 활동이 생기고 고결한 마음이 생겼으므로 다시 다음 단계의 도를 구하면서 실다운 성품[如實性]에 도달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 자비에 의해 중생을 버리는 일이 없이 복덕과 지혜를 닦아 점점 위를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그는 ‘이것은 고(苦)라는 성스러운 진리[苦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또한 ‘이는 고의 원인[集諦]이다. 이는 고의 소멸[滅諦]이다. 이는 고의 소멸로 이끌어 가는 길[道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또한 그는 세속적 진리와 불법의 진리에 다같이 뛰어난 자가 됩니다.
그는 ‘모든 존재는 헛되고 허망한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중생에 대한 위대한 연민의 정이 나타납니다.
그는 이리하여 지혜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돌아보며,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며, 온갖 존재의 원초와 종말을 관찰합니다.
그는 어떤 선을 행하는 때에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행합니다.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모든 중생의 안락을 위해,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해 선을 행합니다.
그는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기타 모든 일에 의해 중생을 교화합니다.
또 세상에서 중생 구제에 도움이 될 것, 즉 글씨, 논서, 도장, 수학, 의학, 복술 등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십바라밀 중, 선정 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불자여, 이것이 난승지라는 보살지입니다.
불자여, 제 5지에서 도가 충만해진 보살은 제 6의 현전지(現前地)에 들어갑니다.
그는 열 가지 진리의 평등성에 의해 거기에 도달합니다. 열 가지 진리의 평등성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무상(無相)이라는 평등성, 모든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무성(無性)하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불생(不生)이라는 평등성, 모든 것은 고요하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원래 청정하다는 평등성, 모든 것에는 희론(戱論)이 있을 수 없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환상, 꿈, 그림자와 같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존재와 비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평등성입니다.
그는 세간의 발생과 소멸을 관찰할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무릇 세간의 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아집(我執)에서 생긴다. 자아의 집착을 제거하면, 세간의 작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는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순역(順逆)으로 관찰한 끝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미혹의 세계가 존재하는 원인은 오직 마음뿐이다.’
여래가 설하신 십이인연도 또한 한 마음에 의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물에 대해 탐욕과 결부된 마음이 생겼을 때 인식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은 구성된 것이며, 구성에 관한 어리석음이 무지입니다.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개체입니다. 개체에서 증대된 것이 여섯 감각 기관입니다. 이 감각 기관과 결부되는 것이 접촉입니다. 접촉과 함께 생기는 것이 감수 작용입니다. 감수에서 싫증을 안 느낄 때, 그것이 갈망입니다. 핍박되는 것이 취착(取着)입니다. 이런 생존의 지분(支分)이 생기는 것이 생존입니다. 생존이 발생하는 것이 생입니다. 생은 늙음을 낳습니다. 늙음의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열두 가지 양상을 가진 연기(緣起)를 관찰하면서 자아가 없고, 중생이 없고, 개체의 존재가 없으며, 원래 공이요, 지은 자와 감수하는 자를 떠난 것으로서 관찰할 때, 모든 존재는 공(空)해서 그 본성이 없다[空無性]라는 깨달음의 문[空解脫門]이 열리게 됩니다.
그가 이런 온갖 생존의 지분(支分)의 자성을 없애고 궁극의 깨달음에 안주할 때, 어떤 상(相)도 생겨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무상의 깨달음의 문[無相解脫門]을 연 자가 됩니다.
그는 공무성과 무상의 깨달음에 들어갔을 때, 그에게는 중생에 대한 대자비 이외의 어떤 원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소원 없는 깨달음의 문[無願解脫門]을 연 자가 됩니다.
그는 십바라밀 중에서 지혜의 바라밀에 가장 뛰어났습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 6지인 현전지입니다.
불자여, 제 6 보살지에서 보살도를 만족시킨 보살은 제 7의 원행지(遠行地)에 들어갑니다.
제 7의 보살도에 머무는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중생계, 세계, 여러 가지 차별성을 지닌 진리, 겁수(劫數), 뛰어난 확신, 갖가지 의향, 마음의 작용, 성문승(聲聞乘)의 출리(出離)에 수반되는 갖가지 확신의 성질, 독각승(獨覺乘)의 완전지(完全地)의 완성, 보살행의 가행(加行)에 들어가며 그와 동시에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갑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래의 경계는 백천억 내지 무수의 겁을 세어도 셀 수가 없다. 그리고 부처님의 경계는 우리들에 의해 완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그것은 저절로 분별함이 없이 충족되어야 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며, 선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일, 이것이 그의 보시 바라밀입니다.
번뇌의 온갖 불꽃을 끄는 일, 이것이 그의 지계 바라밀입니다.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에 대해 참는 일, 이것이 그의 인욕 바라밀입니다.
선을 쉬지 않고 닦는 일, 이것이 그의 정진 바라밀입니다.
전지자의 지혜를 실현코자 어지러움이 없는 도를 갖추는 일, 이것이 그의 선정 바라밀입니다.
모든 것은 본래 불생(不生)임을 아는 일, 이것이 그의 지혜 바라밀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완성하는 일, 이것이 그의 방편 바라밀입니다.
훌륭한 지혜를 얻으려는 원을 세우는 일, 이것이 그의 원(願)바라밀입니다.
외도(外道)의 논설과 악마에 의해 도가 끊기지 않는 일, 이것이 그의 역(力)바라밀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지혜를 내는 일, 이것이 그의 지(智)바라밀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십바라밀 중 방편 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 7지인 원행지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 8부동지(不動地)에 들면 신(身), 구(口), 의(意)의 의식적 활동을 떠나고 온갖 사념이나 분별을 떠나 과보(果報)의 본성에 머무는 자가 됩니다.
불자여, 제 8지에 이른 보살은 구제와 지혜의 방편을 완성하고, 저절로 체득된 보살의 깨달음에 의해 부처님의 지혜를 관찰하면서 세계의 생성을 잘 관찰하고 세계의 소멸을 잘 관찰합니다.
그는 세계의 극소성(極小性)을 알고, 또 위대성과 무량성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그는 국토, 중생 등 온갖 것의 극소성을 알고 또 위대성과 무량성을 압니다.
또 그는 온갖 중생신(衆生身)의 차별을 이해하여 불국토와 집회에서 각기 그대로 자기 몸을 나타냅니다. 그는 온갖 신체의 분별을 떠나 평등성을 얻었건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몸을 나타내 효과를 거둡니다.
그는 중생신이 업신(業身)임을 알고 또 번뇌신, 색신(色身), 무색신(無色身)임을 압니다. 그는 이렇게 신체에 관한 지혜를 완성하여 자재한 자가 됩니다. 또 마음, 용구(用具), 업, 생을 받는 것, 확신, 원, 신통력, 진리, 지혜의 자재를 얻습니다.
그는 모든 번뇌를 떠났으므로 마음가짐이 안정되고, 도를 떠나지 않으므로 고결한 마음이 안정되고, 중생의 이익을 버리지 않으므로 대비(大悲)의 힘이 안정되고, 온갖 중생을 구제하므로 대자(大慈)의 힘이 안정되고, 진리성을 망각하지 않으므로 다라니의 힘이 안정되고, 불법을 잘 분별하므로 변재(辯才)의 힘이 안정되고, 무한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잘 구별하므로 신통력이 안정되고, 보살행을 버리지 않으므로 원력이 안정되고, 불법을 수지하므로 바라밀의 힘이 안정되고, 온갖 형태로 부처님의 지혜를 실현하므로 여래의 가지력(加持力)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또 그는 원하자마자 한 순간에 백천만억의 셀 수도 없는 삼매을 얻어 거기로 들어가고, 백천만억의 셀 수도 없는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고, 백천만억의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 8지인 부동지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 9지인 선혜지(善慧地)에 들면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법과 세간, 출세간의 법과 보살행의 법, 여래지(如來地)의 법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는 온갖 중생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마음은 다양하다는 것, 마음은 순간에 변하고 또 안 변하기도 한다는 것, 마음에는 뿌리가 없다는 것, 마음은 미혹의 세계를 따라 현존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온갖 소질의 둔하고, 예민하고, 그 중간인 것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알고, 또 처음과 끝에 따라 차별이 있고 없는 것을 압니다.
그는 온갖 미혹된 습성이 뜻과 함께 생기고, 마음과 함께 생김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는 생(生)을 받는 것의 갖가지 성질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것이 업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물질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에 생긴다는 것을 압니다.
이 보살지에 들어간 보살은 설법자가 되고 여래의 진리의 창고를 지킵니다.
그는 사무애지(四無碍智)로써 완성된 변설을 가지고 설법을 합니다. 사무애지란 무엇입니까.
법(法)무애지, 의(義)무애지, 사(辭)무애지, 변설(辨說)무애지입니다.
그는 법무애지에 의해 모든 존재 자체의 모습[相]을 알고, 의무애지에 의해 온갖 존재의 차별을 알고, 사무애지에 의해 온갖 존재를 착란 없이 설하고, 변재무애지에 의해 모든 존재가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음을 압니다.
불자여! 이리하여 보살이 위대한 설법자가 되고 여래의 진리의 창고를 수호할 때, 그는 무수한 다라니를 얻게 됩니다. 그는 무량한 다라니를 얻어 무수한 부처님에게서 진리를 듣고 그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다라니를 얻고 변재를 얻어, 설법하기 위해 한 곳에 앉았으면서도 동시에 온갖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하여 모든 중생을 위해 진리를 설합니다.
제 9지인 선혜의 보살지를 얻은 사람은 밤이나 낮이나 오로지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여래와 함께 있으면서 보살의 깊은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됩니다.
불자여, 이 보살이 제 9지에 이르면, 무량한 대상을 잘 관찰한 각지(覺知)에 의해 힘과 무외(無畏)와 불공법(不共法)을 바로 관찰하기에 이르고, 전지자의 지혜를 체득하는 경지인 법운지를 얻게 됩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 10지인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면 무수한 삼매가 나타납니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삼매를 얻고 수용하게 됩니다.
이 삼매가 실현되면 삼천 세계의 백만 배나 되는 큰 보옥의 연꽃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온갖 보배로 아로새겨지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으로 차 있습니다.
그가 전지자의 지혜를 체득하는 삼매를 얻자마자 그는 이 연꽃에 앉게 됩니다. 보살이 이 위에 앉으면 무수한 보살이 시방 세계로부터 와서 앉아 이 보살을 둘러싸고 연꽃 위에 앉습니다. 그들 각자가 이 보살을 우러러보면서 백만의 삼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법운지에 안주한 보살은 진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는 욕망의 세계, 물질의 세계, 정신계의 세계, 중생계의 세계, 기타 모든 세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는 중생신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알고, 부처님의 가지(加持)를 있는 그대로 알고, 여래가 티끌 속으로 들어가는 지혜를 알고, 여래의 모든 비밀, 그 신체, 언어, 마음 등의 비밀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리고 여래가 겁(劫)에 들어가 깨닫는 지혜, 온갖 깨달음에 들어가는 지혜를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보살지를 얻은 자는 ‘불가사의’라는 이름의 깨달음과 ‘무애’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보살의 깨달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이 십지의 보살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안주한 보살은 대개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이 되며 온갖 중생에게 바라밀을 가르치는 데 뛰어난 위력을 갖추어 진리의 세계를 분별하는 질문에 막히는 일이 없습니다.
또 보시나 애어(愛語) 등에 의해 활동을 해도 어떤 경우라도 부처님의 지혜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온갖 중생의 우두머리가 되겠다. 가장 뛰어난 자, 가장 탁월한 자, 지도자가 되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체에 대해서, 광명에 대해서, 신통력에 대해서, 음성이나 장식에 대해서, 가호나 확신이나 활동에 대해서, 그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무수한 겁이 지나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