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 5
무여 (無餘)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시방세계가 또 어디 남았는가
허공이 손뼉치며 라라라 노래하매
돌계집이 소리에 맞춰 쉬지 않고 춤을 추네
고산 (杲山)
밝은 해가 허공에 올라 한 점의 흐림도 없어
우뚝한 묏부리들이 푸른 하늘에 꽂혔네
뜬구름이나 엷은 안개가 거기 갈 수 있겠는가
백억의 수미산들이 그 앞에 늘어섰네
본적 (本寂)
오랜 겁토록 밝고 밝아 다른 모양 없나니
맑고 고요한 한 맛이 가장 단연 (端然) 하여라
원래 티끌에 흔들리지 않고
바로 위음왕불의 공겁 전에 이르렀네
서운 (瑞雲)
갑자기 비상함을 얻어 참경계 나타나니
밝고 밝은 해와 달이 어둡고 깜깜하다
어찌 구태여 용화회 (龍華會:미륵의 회상) 를 기다리랴
한 줄기 상서로운 빛이 큰 허공을 메우네
오암 (晤菴)
밝고 밝은 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환하고 편안하다
모든 것에 늘고 줆이 없음을 환히 알았거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겁 (劫) 밖에 오묘하다
무위 (無爲)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하는 일이 모두 다 공 (空) 이로구나
아무 것도 없는 그 경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리
꼿꼿하고 드높게 고풍을 날린다
담연 (湛然)
바닥까지 맑고 맑아 한없이 차가워서
서쪽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움직이기 어렵더니
깊고 넓고 또 먼데 가을달을 머금으매
흙무더기와 진흙덩이도 모두 다 기뻐하네
환산 (幻山)
하늘 끝에 줄지어 있어도 바탕은 실로 비었나니
기묘한 묏부리들은 지극히 영롱하다
바라볼 때는 있는 듯하나 잡을 수가 없으니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다
곡란 (谷蘭)
만 골짝 깊고 깊은 돌바위 틈에
향기로운 이상한 풀이 시냇가의 솔을 둘러쌌다
층층히 포개진 많은 봉우리 속에
갑자기 꽃을 피워 온 누리를 덮었네
신암 (信菴)
명백하고 의심없어 몸소 밟으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망령되이 이리저리 달리지 않으리
조그만 이 암자는 언제나 철저히 맑은 것을
찬암 (璨菴)
반짝이는 묘한 광채 누가 값을 정하리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때도 없이 비추도다
찬란한 광채는 언제나 깨끗하여 항하사 세계에 두루했나니
맑은 바람에 실려 창에 날아들어온다
묘봉 (妙峰)
바라볼수록 멀고 우러를수록 더욱 높구나
불쑥 솟아 우뚝이 푸른 하늘에 꽂혀 있다
28조사와 6조사님네도 알지 못하거니
누가 감히 그 가운데 마음대로 노닐랴
전암 (電菴)
천지를 진동하며 번쩍번쩍 빛나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작용이 더 많으리
비바람에 실려다녀도 자취가 없으니
네 벽이 텅 빈 늙은 작가 (作家) 로다
장산 (藏山)
은은하고 침침하여 허공에 가득한데
험준한 묏부리들은 저 멀리 아득하다
그림자 〔形影〕 없는 데서 그림자를 알 수 있나니
오악 (五岳) 과 수미산이 그 발 밑에 서 있다
성암 (省菴)
갑자기 잘못됨을 알고 이제 문득 깨쳤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티끌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리라
네 벽이 영롱하여 안팎이 모두 맑다
곡계 (谷磎)
그윽하고 넓고 먼 그곳을 누가 일찍이 보았던가
냉랭한 한 줄기가 사시사철 차갑구나
만 골짝 가을 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은
언제나 흐르는 물 속에 떨어진다
본적 (本寂)
겁겁 (劫劫) 에 당당하여 바탕 자체가 공 (空) 하건만
가만히 사물에 응하면 그 자리에서 통하네
원래 한 점도 찾을 곳이 없건만
온 세계도 옛 주인을 감추기 어려워라
정암 (正庵)
흑백이 갈라지지 않았는데 어디 피차가 있으랴
여섯 창의 호젓한 달은 앞에 오지 않고
금까마귀 옥토끼도 찾을 곳이 없거니
신령한 빛 본래 고요함을 비로소 믿겠구나
벽산 (璧山)
옥 보배의 정해진 값을 그 누가 알리
묏부리들 빼어나 허공에 꽂혀 있다
찬란한 빛 예나 이제나 항상 빛나건만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네
의주 (意珠)
물건에 응해 분명히 그 자리에 나타나니
세간의 보물이 어찌 이에 미치랴
가죽 주머니에 숨어 있으니 그 누가 알리
밤낮 맑은 빛은 영원히 차가워라
고경 (古鏡)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체가 본래 견고하고
찬 빛은 멀리 천지 이전을 비추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또 앞뒤도 없는 것이
쳐부수고 돌아오매 오묘하고 오묘하다
식암 (息菴)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고 자취도 안 남기매
한 방이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을 뛰어났네
그리고부터는 모든 티끌 다 없어졌나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은 맑은 바람과 어울리네
시암 (是菴)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 한 점 티도 없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항하사 세계를 둘러쌌네
그 가운데 어찌 부질없는 길고 짧음 있으랴
법계를 모두 머금어 한 집을 만들었네
보산 (寶山)
주머니 속의 귀한 물건, 그 값이 한없는데
묏부리들은 사철 허공에 가득하고
밤을 빼앗는 찬 달빛은 멀고 가까움 없으나
그 꼭대기에는 원래 길을 내기 어렵다
무애 (無礙)
똑똑하고 분명하며 텅 비고 트이어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고 한 점 티끌도 없다
비고 밝아 위음왕불 밖을 꿰뚫고 비추거니
돌벽이나 산천인들 어찌 그를 막으랴
일산 (一山)
삼라만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우뚝하고 험준하여 사시사철 차가운데
수미산과 큰 바다가 여기 돌아와 합했나니
층층의 뾰족함을 누르고 혼자 따로 관문이 되었네
옥전 (玉田)
아주 깨끗하고 티가 없는 세간 밖의 보물인데
신령한 싹은 나서 자라나 인연의 티끌을 끊었다
큰 총림 속에서는 일찍부터 비싼 값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묘한 씨를 심었다
곡월 (谷月)
만 골짝 깊고 그윽한 시냇물 속에
밤중의 은두꺼비가 스스로 뚜렷하다
덩굴풀 우거진 원숭이 우는 곳에
한 줄기 맑은 빛이 영원히 차구나
철문 (鐵門)
온몸이 다 강철인데 누가 움직일 수 있으리
양쪽 사립 모두 잠가 세상 풍속 아니더니
과연 저 새매눈 가진 억센 사람이
한 주먹으로 밀어제쳐 단박 길을 뚫었다
축운 (竺雲)
총령 (叢嶺) 서쪽 너머 이름난 땅에
한 조각 상서로운 연기가 허공을 메웠는데
그로부터 한없이 많은 보살들이
오색 광명 가운데서 옛 풍모를 얻었다
허암 (虛菴)
사방에 원래 한 물건도 없나니
어디다 문을 낼지 알지 못하네
이 가운데 조그만 암자 텅 비어 있어
밝은 달 맑은 바람이 흰 구름을 쓸도다
준산 (峻山)
기이한 바위가 높이 솟아 하늘을 긁는데
층층이 포개진 것, 공겁 전부터이다만
만 길되는 이 벼랑에 누가 발을 붙이리
수미산과 오악 (五岳) 도 겨루지 못한다
고산 (杲山)
금까마귀 날아올라 새벽 하늘 밝았나니
온 땅의 묏부리들 푸른 빛이 역력하다
번쩍이는 그 광명에 항하사 세계가 깨끗한데
전령 (嶺) 에서 우는 원숭이 소리는 무생 (無生) 을 연설한다
심곡 (深谷)
누가 아주 먼 저쪽까지 갈 수 있나
조각 구름 동문 (洞門) 앞에 길게 걸렸네
그 가운데 훌륭한 경계를 아는 사람은 없고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푸른 냇물을 희롱하네
역연 (歷然)
또렷하고 분명하여 감춰지지 않았나니
푸른 것은 푸르고 긴 것은 길다
확신하고 의심없이 한 번 몸을 뒤집으면
고개 끄덕이며 즐거이 고향에 돌아가리
중암 (中菴)
동서와 남북의 길이 서로 통했고
네 벽은 영롱하여 묘하기 끝이 없네
여덟 면이 원래 막히지 않았거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은 맑은 허공 비추네
성곡 (聖谷)
범부를 뛰어넘어 들어가는 그곳을 누가 따르리
시냇물은 잔잔히 골짝 속으로 흐른다
근진 (根塵) 을 단박 벗어나 한 번 몸을 뒤집으면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마음대로 노닐리라
무실 (無失)
형상을 떠난 그 자체, 원래 공 (空) 하여
부딪치는 사물마다 그 작용 끝이 없다
또렷하고 분명하나 자취 끊겼고
언제나 역력하여 절로 서로 통한다
포공 (包空)
자비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세계를 메웠는데
그 속은 비고 밝아 호젓하고 잠잠하다
순식간에 항하사 세계 밖까지 두루 흩어보지만
그 가운데 모양 없는 것 누가 전할 수 있으랴
형철 (冏徹)
당당하고 찬란하여 끝없이 비추니
영원히 간단없는 이것을 누가 전할 수 있으랴
밤을 빼앗는 찬 달빛에 무슨 안팎이 있으랴
밝고 밝아 공겁 (空劫) 을 비춘다
정암 (靜菴)
온갖 생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졌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지극히 고요하여라
툇마루에 다다른 보배달은 언제나 고요하여
맑은 바람에 실려 네 벽에 나부낀다
극한 (極閑)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어디로 향해 갈꼬
동서와 남북에 어디든 의심없네
그대를 따라 펴고 거둠에 걸림이 없고
첩첩 기이한 바위에도 의지함이 없노라
유곡 (遊谷)
한가히 오고 가매 더없이 한가한데
언제나 천 바위와 만 골짝 사이로 다니네
물구경 산구경도 오히려 부족하여
통문 (洞門) 깊은 곳에 겹관문을 만든다
설악 (雪嶽)
하룻밤에 옥가루 펄펄 내려
기이한 바위들은 뾰족한 흰 은덩이 되었네
매화나 밝은 달인들 어찌 여기 비하랴
층층이 포개져 차고 또 차다
자조 (自照)
바다 같은 삼천세계 본래 다른 것 아니라
탁 트이고 신령스레 통함에 어찌 차별 있으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짝할 것조차 없어
밤을 빼앗는 찬 빛은 많던 적이 없었네
정암 (晶菴)
아침해가 동쪽 바닷문으로 나오려 하매
방 하나는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이 끊겼네
산하대지가 역력한데
여섯 창 안팎에는 맑은 바람 스친다
묵운 (黙雲)
침침하고 적적하여 다니는 자취 끊어졌는데
어찌 동서와 남북의 바람을 가리랴
저 집에 말할 만한 것 없다고 말하지 말라
때로는 저 큰 허공을 모두 휩싸들인다
형암 (冏菴)
동서에도 남북에도 한 점 티끌 없는데
사립문 반쯤 닫히고 찾아오는 사람 없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아무 까닭 없이
밤마다 창문을 뚫고 이 한 몸을 비추네
효당 (曉堂)
뭇별이 사라지는 곳에 앞길이 보이는데
한 방은 고요하고 안팎이 밝아진다
이로부터 어두운 구름은 모두 사라지리니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절로 맑고 새로우리
무일 (無一)
동서도 남북도 탁 트여 비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물건을 으뜸이라 부를 것인가
허공을 모두 빨아마시고 몸을 뒤집는 곳에는
온 하늘과 온 땅에 서리와 바람이 넉넉하리
요봉 (요峰)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나오자
한없고 맑은 바람이 묏부리를 모두 비춘다
산하대지가 분명하고 역력한데
수미산인들 어찌 여기에다 견주리
도봉 (堵峰)
밤을 빼앗는 달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뭇산들은 여기 와서 추녀 끝에 늘어서네
세간의 어떤 보배를 여기에다 견주랴
수미산을 뚫고 나가 홀로 우뚝 솟았네
옥계 (玉磎)
티없는 바탕은 지극히 영롱한데
양쪽 언덕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며 지나간다
한 자 구슬의 물결치는 광채를 누가 값을 정할 것인가
신령한 근원은 깊고 멀어 무궁함을 내놓네
영적 (永寂)
먼 과거로부터 돌아다니다 이 생까지 왔지만
고요한 그 바탕 〔正體〕 은 자유자재하였나니
티끌겁 모래겁이 다하면 무엇 따라 변할까
이승에나 저승에나 스스로 다닐 뿐
추풍 (秋風)
만 리 먼 하늘에 구름 모두 흩어지고
서쪽에서 오는 한 줄기 바람 가장 맑고 시원하다
그로부터 변방의 기러기는 하늘 끝에 비끼고
중양절 (重陽節:9월 9일) 흰 국화는 눈과 서리 원망하리
명통 (明通)
쓸 때는 모자람이 없으나 찾아보면 자취 없고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음에 응용이 무궁하다
사물마다에 분명하건만 누가 보아내는가
영원히 당당하여 옛 풍모를 펼치네
견실 (堅室)
활활 타는 겁화 (劫火) 에도 항상 스스로 편안하며
허공을 싸들여 그 안에 두었나니
티끌세계 모래세계가 끝나더라도 바꿀 수 없고
영원한 서리와 바람에 뼈가 시리다
무변 (無邊)
동서남북에 네 경계가 없거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어라
경계가 끊어진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천 물결 만 물결에 한 몸을 나타내리
유봉 (乳峯)
밝고 맑은 한 모양을 누가 알 것인가
우뚝 솟아 높직이 하늘에 꽂혀 있네
물과 달이 어울려 되었으며 모양 아닌 모양인데
그 견고함이야 어찌 쌓인 티끌 같으리
경암 (璄巖)
겁 (劫) 이전의 묘한 그 빛에 어떤 것을 견주리
우뚝 솟고 뾰족하여 하늘 복판에 꽂혀 있네
불조인들 어찌 비싼 그 값을 알건가
우뚝하고 뾰족하며 또한 영롱하구나
일암 (日菴)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오르니
조그만 암자의 높은 풍모를 뉘라서 따르랴
이로부터 티끌마다가 밝고 역력하리니
여섯 창의 기틀과 활용이 따로따로 트이리라
착산 (窄山)
바늘도 송곳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비좁아
우뚝 솟아 높직이 온갖 묏부리 누른다
어찌 미세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을 뿐이랴
수미산이 겨자 속에 들어가 한 덩이 되었네
고담 (古潭)
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몇 해나 지났던가
맑고 깊고 밑이 없어 공겁보다 먼저이다
매번 큰 물결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이와같이
맑고 고요하며 가득히 고여 그 자체 완전하네
형철 (冏徹)
아주 깨끗한 빛이 만상을 삼킨 가운데
천지가 하나로 합해져 서쪽도 동쪽도 없네
맑고 뛰어난 점 하나, 사람들의 헤아릴 바 아니나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음에 자재하게 통한다
한극 (閑極)
무심하고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리
허공을 휩싸들여 그 작용 무궁하다
문득 따뜻한 바람을 만나 노닐다 흩어지나니
또 어떤 물건을 잡아 진종 (眞宗) 이라 정할꼬
횡곡 (橫谷)
봉우리 끝에 있다가 굴 속에 있기도 하여
돌아오는 새들도 여기 와서는 길을 분간하지 못한다
갑자기 두루미를 짝하여 바람 따라 날으나니
만 골짝 천 바위도 가까이에 있지 않네
월당 (月堂)
바다 문 동쪽에서 달이 날아오르니
고요한 방에 네 벽은 텅 비었네
뉘라서 빛과 그림자를 분명히 분간하랴
여섯 창이 전부 다 주인공이라네
무급 (無及)
차례를 싹 잊어 바탕이 그대로 드러났거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깨치는 곳을 두랴
안도 밖도 중간도 텅 비어 트였는데
백추 (白槌) 를 들고 불자 세우며 부질없이 법문하네
복우 (伏牛)
채찍으로 때려도 가지 않고 야단쳐도 가지 않나니
공겁 전에 배불리 먹고 이미 주림 잊었음이라
길에서 편히 잔 지 몇 해나 되었던가
한 빛깔 분명하여 온 세상에 드물어라
인암 (刃艤)
칼집에서 나온 취모검을 누가 감히 당하랴
이 집에서는 위험하여 간직하기 어려웠네
저 철 눈에 구리 눈동자를 가진 사람에게 맡기니
한 주먹에 열어제치매 눈과 서리 가득하네
계봉 (鷄峰) *
세 곳에서 헛되이 전한 옛 늙은이의 도풍이여
깊숙이 은거하는 맨 꼭대기는 네 겹으로 되어 있는데
음광 (飮光:가섭) 의 그 자취를 뉘라서 찾으리
꼭대기에는 서리가 깊어 길이 통하지 않네
수암 (秀巖)
공겁 전에 우뚝 서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여
송백이 오래 산들 어찌 저와 견주리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것은 안 무너져
일찍이 설법 듣고 진공 (眞空) 을 깨쳤네
적당 (寂堂)
면밀한 공부를 이미 익혀 성취하고
문득 거기서 나와 뜰앞에 서 있네
안심 (安心) 은 언제나 나가정 (那伽定:부처님의 선정) 에 있어
이리저리 오가면서 화두는 절로 신령하다
익상 (益祥)
갑자기 비상 (非常) 함을 만나 기운이 서로 통하면
그로부터는 고향에서 언제나 편안하리
거듭거듭 상서로운 일이 겹쳐 일어날 때
평지에서 하늘 위의 하늘을 다니리라
연당 (演堂)
티끌마다 세계마다 묘한 소리 내나니
어느 쪽으로 문을 내랴
말 없는 곳을 말해 분명한 것을 알면
창 앞의 마른 나무에서 저무는 봄을 보리라
해운 (海雲)
바다는 넓어 끝이 없고
구름이 많으니 어디쯤인고
여기서 단박 분명한 것을 알면
앉거나 눕거나 거닐거나 고풍 (古風) 을 펼치리
무학 (無學)
역겁토록 분명하여 허공 같은데
무엇하러 만 리에 밝은 스승 찾는가
제 집의 보물도 찾기가 어려운데
골수를 얻어 가사를 전하는 것, 가지 위의 가지다
우매 (友梅)
같은 마음 묘한 뜻을 누가 기뻐하는가
눈 속의 맑은 향기, 방에 새어들어온다
난간 앞의 소나무와 대나무만이 유독히
그와 함께 찬 서리를 견딘다
서봉 (西峰)
동쪽에서 솟은 해는 어디로 가는가
남쪽 산이 아니면 북쪽 산이리
아무리 가보아도 다른 길이 없거니
금년에도 또 꼭대기의 광명을 보노라
현기 (玄機)
알면서 거두지 않는 것이 큰 흔적 되나니
마주치자 꺼내보이는 것이 돈오 (頓悟) 의 근기니라
어찌 강을 사이 두고 가로달리는 자같이
지금까지 자취를 길이 남겨 두는가
탄암 (坦菴)
티끌 같고 모래 같은 차별 인연 모두 없애버리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이 항상 닿아 있다
그로부터 눈의 경계 〔眼界〕 에 조그만 가림도 없고
네 벽은 텅 비어 세상 밖에 오묘하다
경봉 (玉敬峰)
이처럼 값진 것이 이 사바세계에 또 있는가
모든 산 가운데서 영롱하게 불쑥 솟았네
바다 신 (神) 은 그 귀함을 알아 언제나 바라보는데
고금에 우뚝이 큰 허공에 꽂혀 있네
징원 (澄源)
빛나며 크고 넓어 그림자 형체를 끊었고
밑도 없이 아주 깊어 헤아리기 어려워라
어룡 (貌龍) 과 새우와 게의 자취 용납 않나니
만 길 되는 큰 파도, 물은 깊고 맑도다
무문 (無聞)
눈과 귀는 원래 자취 없는데
누가 그 가운데서 원통 (圓通) *을 깨칠 것인가
텅 비어 형상 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개 짓는 소리, 나귀 울음소리가 모두 도를 깨침이네
계월헌 (溪月軒)
버들 그림자와 솔 그늘은 물을 따라 흐르는데
두렷한 밝은 달은 따라가려 하지 않네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의 맑은 물결 속에서
맑은 바람에 실려 난간 머리에 있네
매월헌 (梅月軒)
섣달의 봄바람은 눈과 함께 돌아오는데
은두꺼비는 한밤중에 난간에 올라온다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가 빛과 한데 어울려
바닥에서 하늘까지 한결같은 찬 맛일세
스승을 뵈러 가는 환암장로 (幻艤長老) 를 보내면서
남은 의심 풀려고 스승 뵈오러 가나니
주장자 세워 들고 용같이 활발하네
철저히 파헤쳐 분명히 안 뒤에는
모래수만큼의 대천세계에 맑은 바람 일어나리
무학 (無學) 을 보내면서
주머니 속에 별천지 있음을 이미 믿었거니
어디로 가든지 마음대로 3현 (三玄) 을 쓰라
어떤 이나 그대에게 참방하는 뜻을 묻거든
콧배기를 때려부수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또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물면서
이별한 뒤에 따로 생각하는 점이 있었나니
누가 알리, 그 가운데 뜻이 더욱 오묘함을
여러 사람들일랑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공겁 (空劫) 이전을 뚫고 지났다 하노라
참방 (參方) 하러 떠나는 종선자 (宗禪者) 를 보내면서
주장자를 세워 들고 참방하러 떠나나니
천하의 총림에 자기 집을 지으리
값할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나니
동서남북 어디든 인연 따라 가거라
주시자 (珠侍者) 를 보내면서
만 리를 참방하는 그 생각 끝없거니
부디 나라 밖에서 다른 종 (宗) 을 찾지 말라
주장자를 잡기 전에 종지 (宗旨) 를 드날리면
그곳도 허공이요 여기도 허공이리
참방하러 떠나는 곡천 (谷泉) 겸선사 (謙禪師) 를 보내면서
본래 원만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나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입을 열고 그대 위해 말하리
주장자를 세워 들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달이 되고 구름이 되어 가고 또 돌아오리
남방으로 행각길 떠나는 연시자 (璉侍者) 를 보내면서
세 번 부르고 세 번 대답하면서 화살 끝을 맞대
천차만별한 것들을 모두 쓸어버렸나니
그런 깊은 기틀을 간직하고 노닐며 지나갈 때에
분명히 조사들과 맞부딪치리라
관시자 (寬侍者) 를 보내면서
몸을 따르는 누더기 한 벌로 겨울․여름 지내고
주장자 하나로 동서를 분별한다
그 가운데의 깊은 뜻을 누가 아는가
귀가 뚫린 오랑캐 중 (달마) 이 가만히 안다
산으로 돌아가는 명상인 (明上人) 을 보내면서
백번 기운 누더기로 머리 싸고 초암에 머무나니
허공과 온 땅덩이를 한몸에 머금었네
온몸 속속들이 남은 생각 없거니
어찌 다른 사람을 따라 두번째, 세번째에 떨어지리
강남으로 돌아가는 통선인 (通禪人) 을 보내면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도를 묻는 것, 딴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네
반걸음도 떼지 않고 몸소 그 땅 밟으면
어찌 수고로이 나라 밖에서 누라 (口婁囉) *를 부를 것인가
강남으로 가는 난선자 (蘭禪者) 를 보내면서
이곳도 허공이요 저곳도 허공이라
분명히 있는 듯하나 찾으면 자취 없네
단박 빈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죽은 뱀을 내놓고 산 용을 삼키리라
강남으로 가는 고산 (杲山) 승수좌 (昇首座) 를 보내면서
사구백비 (四句百非) 를 모두 다 설파한 뒤에
지팡이 끝으로 해를 치며 강남으로 가는구나
조주 (趙州) 는 나이 80에 다시 참선하였나니
남은 자취 분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금강산으로 가는 대원 (大圓) 지수좌 (智首座) 를 보내면서
천산만산을 모두 다 지나면서
한가닥 주장자와 함께 한가하여라
단박에 금강산 꼭대기를 밟을 때에는
온몸 뼛속까지 눈 서리 차가우리
신광사의 판수 (板首) 가 감파하러 왔을 때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다 쓰되 틀림이 없었고
장님과 귀머거리를 인도해 밝은 눈을 열어 주어
항하사 겁토록 끝내 의심 없게 하였네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무주 (無住) 행수좌 (行首座) 를 보내면서
차림새는 마치 사납게 나는 용과 같은데
주장자를 세워 들고 동쪽으로 향하나니
금강산 꼭대기를 다시 밟는 날에는
큰 소나무와 늙은 잣나무가 향기로운 바람을 떨치니
참방 떠나는 박선자 (珀禪者) 를 보내면서
평생의 시끄러운 세상 일을 다 쓸어버린 뒤에
주장자를 세워 들고 산하를 두루 돌아다니네
갑자기 물 속의 달을 한 번 밟을 때에는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에 돌아가리라
참방 떠나는 문선자 (文禪者) 를 보내면서
돌아가누나 돌아가누나
바랑은 안팎으로 여섯 구멍이 뚫려 있네
하루 아침에 고향 길을 밟게 되거든
주장자 걸어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
참방 떠나는 징선자 (澄禪者) 를 보내면서
어머니가 낳아준 참 면목을 찾기 위하여
주장자를 세워 들고 앞 길로 나아가네
단박에 진짜 사자를 후려치는 날에는
갑자기 몸을 뒤쳐 한 소리 터뜨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