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환 철학연구소 2012. 4. 6. 12:01

2. 화엄경 약찬게

 

이러한《팔십화엄》의 구성 조직은〈약찬게〉에도 담겨 있다. 약찬게문은 마지막 제목을 제하면 110구 770자이다.《팔십화엄》을 간략히 엮고 있는 이〈약찬게〉의 체제와 내용을 보자.

귀경송이다. 이는 화장세계의 비로자나 진법신과 보신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등 일체 여래와 시방삼세의 모든 대성에게 귀의한다는 것이다. 이 귀경게에서는 화엄정토가 화장세계인 것과 화엄의 주불이 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과 다른 분이 아님도 시사하고 있다.

화엄교학에서는 삼불이 원융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경주(經主)로 모시니,〈약찬게〉에도 그러한 화엄교학에서의 불신관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설경인연력(說經因緣力)이다. 여기서는 해인삼매력에 의하여 전법륜됨을 말하고 있다.

운집대중이다. 보현보살을 위시한 모든 보살대중과 39류의 화엄성중을 열거하고 있다. 이들이 곧 세주라 불리는 분들이니 그 대표되는 세주의 이름이 보이는 것이다. 각 회의 설주보살 또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입법계품〉의 근본법회에 모인 대중과 지말법회의 문수보살 설법처인 복성 동방 사라림에 모인 대중들도 보이며, 선재동자의 선지식들도 운집대중으로 언급되어 있다.

선재의 선지식이다. 문수보살에서 비롯되어 보현보살에 이르기까지 53선지식이 출현한다.

경의 설처와 품명이다.

유통송이다. 이 경을 믿고 수지하면 초발심시에 문득 정각을 이루어서 화장세계에 안좌하니, 그 이름이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약찬게〉의 독송은 중생이 보살행을 통하여 자신의 본래 모습인 부처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 수행의 길이 된다.〈약찬게〉의 지송은 특히 화엄성중의 보호를 갈구하는 대중신앙의 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약찬게〉는 한국식 화엄지송경이자 다라니의 역할을 해온 것이라 하겠다.

 

 

 

 

제4강 화엄경의 내용 -초회 6품

 

초회 6품에서는 특히 다음 사항을 주목하게 한다.

6성취와 그 가운데 청법대중의 특징은 무엇인가?

《화엄경》의 교설인연, 달리 말해서 화엄교설의 내용이 무엇인가?

설주는 교설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삼매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연화장세계, 즉 화엄정토는 어떠한 세계이며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화엄교주인 비로자나불은 어떻게 해서 비로자나불이 되셨는가?

 

 

1. 세주묘엄품

 

먼저 초회 6품 중 첫품인〈세주묘엄품〉은 처음 법보리장회의 서품이면서《화엄경》전체의 서분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법보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시자 신통력으로 도량에는 모든 장엄이 조화되어 빛났다.

보현보살을 위시한 보살대중과 집금강신을 비롯한 39류 화엄성중 등 총 40중이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회상에 모여왔으며, 그들을 세주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각기 성취한 해탈문의 경계에서 본 부처님 세계를 게송으로 찬탄하여 불세계를 장엄하였으므로 첫품을〈세주묘엄품〉이라 하였다.

 

 

2. 여래현상품

 

세주들이 마음 속으로 40가지 질문을 일으키니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으셔서 답해 주고 계신다. 이를 여래현상이라고 한다. 그 질문 내용을 보면,

제불지(諸佛地) 제불경계 제불가지(加持) 제불소행(所行) 제불력 제불무소외 제불삼매 제불신통 제불자재 제불무능섭취(諸佛無能攝取) 제불안(眼) 제불이(耳) 제불비(鼻) 제불설(舌) 제불신(身) 제불의(意) 제불신광(身光) 제불광명 제불성(聲) 제불지(智) 세계해 중생해 법계안립해 불해(佛海) 불바라밀해 불해탈해 불변화해 불연설해 불명호해 불수량해(이상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며, 다음은 보살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일체보살서원해 일체보살발취해 일체보살조도해 일체보살승해(乘海) 일체보살행해 일체보살출리해 일체보살신통해 일체보살바라밀해 일체보살지해(地海) 일체보살지해(智海)이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들의 생각한 바를 아시고, 입과 치아 그리고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으셨다. 광명을 입고 보살대중들이 모여오고 백호상에서 출현한 보살들이 부처님의 공덕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여래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게송 중에서

 

부처님께서 법계에 충만하시어 佛身充滿於法界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시니 普現一切衆生前

연을 따라 나아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되 隨緣赴感靡不周

항상 이 보리좌에 앉아 계시도다. 而恒處此菩提座

 

라는 게송은 법당 앞 주련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여래현상의 경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후《화엄경》의 교설은 전체적으로 이상의 40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겠다. 따라서《화엄경》의 교설은 불․보살 경계임을 대방광불화엄이라 한 것을 알 수 있다.

 

 

 

3. 보현삼매품

 

《화엄경》에서는 각 회의 설주들은 제2회를 제외하고는 다 삼매에 들었다가 깨어나서 설법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삼매에 들어간 것은 일체 부처님의 위신력과 비로자나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과 보살 각자의 선근력(善根力) 등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 보현보살의 경우도,

 

선재선재라, 선남자여, 그대가 이 일체 제불 비로자나여래장신 보살삼매에 능히 들었도다. 불자여, 이것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그대에게 가피하심이며,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인 까닭이며, 역시 그대가 닦은 모든 부처님의 행원력인 까닭이니라.

 

라고 하여, 보현보살이 행원을 닦았기에 부처님의 가피와 서원에 힘입어서 삼매에 들 수 있었음을 설하고 있다. 보현보살은 삼매 속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온갖 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 모인 대중들 역시 보현보살과 함께 삼매에 들어서 설법을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보현보살을 비롯한 각 보살들은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도량과 모인 대중들을 관찰하고 부처님 법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온갖 법문을 내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며

또 모든 여래의 위신력을 받들어 구족히 말하리라.

 

보살들이 보살과 중생들을 위해 설법함이 다 부처님의 위신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주변의 모든 장엄도 부처님의 신통이다. 부처님과 보살의 신통은 또 비로자나부처님이 모두 나타내신 것이며, 그 한없는 신통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경에서는 보살이 원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행도, 그리고 그 보살행에 의하여 중생이 교화받음도 다 부처님의 힘임을 보이고 있다.

보살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서 시방세계 중생을 위할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이 발심하여 보살이 된 것도 부처님의 힘이다. 보살이 원을 세워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하여 중생을 위하여 보살행을 한 것도 곧 비로자나부처님이 본래 세우신 서원의 힘이며 일체 부처님께서 가피해 주시는 위신력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보현보살이 일체 부처님의 가피력과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과 보현보살 자신의 행원력으로 일체 제불 비로자나여래장신 삼매에 입정하여 지혜를 얻고 출정한다. 이 보현보살의 입․출정 내용에서 우리는《화엄경》에서 보이는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닌 세계를 만날 수 있다.《화엄경》은 보살의 수행과 중생의 신앙 즉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고, 보살의 수행 역시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님을 보이고 있다.

 

 

 

4. 세계성취품

 

이 품은 보현보살이 세계해의 10사(十事)를 10종으로 설한 것이다.

보현보살이 대중들에게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을 위시하여 세계해의 의지하여 머무름․형상․체성․장엄․청정방편․부처님 출현․겁의 머무름․겁의 변천․차별없는 일 등, 세계해의 십사를 다시 10종으로 설하였다. 예를 들면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도 10종이 있다고 하니, 여래의 위신력과 중생의 업행과 보살의 원행 등으로 세계가 성취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5. 화장세계품

 

보현보살이 다시 화장세계의 장엄을 말하였다. 이 화장장엄세계해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지난 세계해의 미진수겁 동안 보살행을 닦을 때에 낱낱 겁마다 부처님을 친근하고 큰 서원을 닦아서 깨끗하게 장엄한 것이다. 화장장엄세계해는 풍륜이 받치고 있는 향수해의 큰 연꽃 가운데에 있다. 장엄세계의 온갖 경계는 낱낱이 세계해 티끌수의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한 까닭이다.

 

 

 

6. 비로자나품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과거생 인연을 설하고 있다.

지난 옛적 승음세계에 일체공덕산수미승운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큰 광명을 놓아 중생을 조복하시니, 그 도성의 대위광태자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예전에 닦은 선근의 힘으로 즉시 10종 법문을 증득하였다.

즉 일체 제불의 공덕륜삼매, 일체 불법의 보문다라니, 반야바라밀, 대자, 대비, 대희, 대사, 대신통(방편), 대원, 변재문 등이다.

그후 대위광태자는 여러 부처님을 친견 공양하며 법문을 듣고 장차 부처되리라는 수기를 받고 비로자나여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상을 요약해서 다시 부연해 보면,

첫째,〈세주묘엄품〉에서의 청법대중은 보현보살을 위시한 보살대중과 화엄성중들로서 이들은 세주라고 불리고 있다.《화엄경》에서는 회처를 달리할 때마다 수많은 청법대중이 다시 모여온다.

둘째,〈여래현상품〉에서는《화엄경》이 교설되는 인연이 설해지고 있다. 세주들이 가만히 40가지 질문을 드리고 있으니, 이를 크게 둘로 나누면 불세계와 보살세계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여 여래께서 광명으로 출현하시니 이것이 여래현상이며, 이에 대한 언설을 통한 보살들의 재설명이 화엄교설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셋째, 초회 설주인 보살의 설법 능력은 삼매를 통해서 얻어지고 있으며 이 삼매는 자타불이력(自他不二力)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제불의 위신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력 그리고 보현보살 자신의 행원력에 의해서이다.

넷째, 이 세계가 성취된 인연을 비롯한 세계해의 갖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갖 인연 중 부처님의 신통과 보살의 원행과 중생의 업행에 의해 일체 세계가 이루어짐을 밝히고 있다.

다섯째, 화엄정토인 연화장세계를 보이고 있다.

여섯째, 화엄교주인 비로자나불의 본생 수행법을 설하고 있다.

 

 

 

제5강 화엄경의 내용 -제2회 6품

 

제2회 6품에서는 신(信)에 대해서 교설하고 있다. 문수보살의 특수한 지혜에 의해서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신심을 성취케 해주는 법회인 것이다. 이 말씀을 만남에 있어서도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두게 한다.

무엇을 믿는가? 믿음의 대상,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어떤 의심을 떨쳐 버려야 믿음이 생기는가?

어떤 의심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믿음을 성취할 수 있는가?

믿는 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즉, 신(信)의 공용(功用)이 무엇인가?

 

 

7. 여래명호품

 

첫째, 무엇을 믿는가? 부처님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한량없음을 믿게 하고 있다. 먼저 제2회의 첫품이고 전체로서는 제7품인〈여래명호품〉에서는 부처님의 신업 경계가 한량없음을 보이고 있다.

세존께서 보광명전에서 신통을 나투시니 시방세계의 부처님 세계에 있는 보살들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모여들었다. 동방 부동지불의 금색세계에 있는 문수사리보살을 비롯한 각수(覺首)․재수(財首)․보수(寶首)․덕수(德首)․목수(目首)․근수(勤首)․법수

(法首)․지수(智首)․현수(賢首) 등 9수(九首)보살들이 시방세계 티끌수만큼 많은 보살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데 나아왔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말씀하였다. 부처님의 국토, 부처님의 출현 등이 헤아릴 수 없으니, 부처님께서 중생의 좋아함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아시고 알맞게 법을 설하여 조복하시기 때문이다. 여래는 사바세계에서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알고 보게 하시므로 여래의 명호도 헤아릴 수 없음을 자세히 설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한량없어서 부처님의 명호도 한량없는 것이다.

 

 

8. 사성제품

 

〈사성제품〉에서는 문수보살이 사바세계를 비롯하여 시방세계에서의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를 10가지씩 갖가지로 달리 설하니 모두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함을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조복하게 함인 것이다. 부처님의 구업(口業)세계가 한량없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사바세계에서는 죄가 고성제(苦聖諦)이고 핍박․변해 달라짐〔變異〕․반연․모임〔聚〕․가시〔刺〕․뿌리를 의지함〔依根〕․허망하게 속임〔虛?〕․종기자리〔癰瘡處〕․어리석은 행〔愚夫行〕이 고성제이다.

고의 집성제〔苦集聖諦〕는 계박(繫縛)․멸괴(滅壞)․애착〔愛着義〕․망령된 생각〔妄覺念〕․취입(趣入)․결정(決定)․그물〔網〕․희론(戱論)․따라다님〔隨行〕․전도근(顚倒根)이다.

고의 멸성제〔苦滅聖諦〕는 무쟁(無諍)․티끌을 여읨〔離塵〕․적정(寂靜)․무상(無相)․무몰(無沒)․무자성(無自性)․무장애(無障碍)․멸(滅)․체진실(體眞實)․자성에 머무름〔住自性〕이다.

고의 멸에 이르는 도성제〔苦滅道聖諦〕는 일승․취적(趣寂)․이끌어 인도함〔導引〕․구경무분별․평등․짐을 벗음〔捨擔〕․나아갈 데 없음〔無所趣〕․성인의 뜻을 따름〔隨聖〕․선인행(仙人行)․십장(十藏) 등으로 교설되고 있다.

 

 

9. 광명각품

 

〈광명각품〉에서는 세존께서 두 발바닥으로 광명을 내어 시방 일체 세계를 비추시니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이 모두 다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문수보살과 9수(九首)보살 등 시방세계 보살들이 나타나 게송으로 부처님 세계를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의업(意業)세계가 한량없음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초회에서는 부처님께서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으셨으니 이는 깨달음의 세계를 보이기 때문이고, 여기서 발바닥으로 광명을 내시는 것은 신심이 불과에 오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으로 본다.

 

 

10. 보살문명품

 

〈보살문명품〉에서는 신심을 성취케 하기 위해 문수보살과 9수보살들이 문답을 통해 의심을 파하여 제하고 있다.

이 보살들의 10가지 문답은 십심심(十甚深)이라고 불리고 있다. 즉, 각수보살은 연기심심을 보이고, 재수보살은 교화심심을, 보수보살은 업과심심을 보이는 것이니, 이를 통해서 중생의 현실을 잘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또 덕수보살은 설법심심, 목수보살은 복전심심, 진수보살은 정교(正敎)심심으로 불교화의 모양을 보이고 있다. 법수보살은 정행심심, 지수보살은 조도심심에 의해 교화에 의한 수행을 보이며, 현수보살은 일승심심, 문수보살은 불경계심심으로 구경불과의 불가사의함을 바로 알도록 설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청정한 신심〔淨信〕을 개발토록 하였다.

이러한 보살들의 문답을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문수보살이 각수보살에게 물었다. 마음의 성품〔心性〕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갖가지 차별을 보는가? 각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법의 성품 본래 남이 없지만 法性本無生

시현하여 남이 있으니 示現而有生

이 가운데 능히 나타냄도 없고 是中無能現

또한 나타난 물건도 없도다. 亦無所現物

 

부처님의 교법은 하나인데 중생들이 보고 어찌하여 즉시에 온갖 번뇌의 속박을 끊지 못하는가?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구함에 如鑽燧求火

불붙기 전에 자주 쉰다면 未出而數息

불기운도 따라서 없어지나니 火勢隨止滅

게으른 자 역시 그러하도다. 懈怠者亦然

〈근수보살〉

 

부처님 말씀처럼 만약 중생이 정법을 받아 지니면 일체 번뇌를 끊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정법을 받아 지니되 끊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을 세어도 如人數他寶

스스로는 반전도 없는 것같이 自無半錢分

법을 닦아 행하지 아니하면 於法不修行

많이 들은 것만도 그러하도다. 多聞亦如是

〈법수보살〉

 

불법 가운데는 지혜가 제일인데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중생을 위하여 보시를 찬탄하고 혹은 내지 지혜를 찬탄하며 자비희사를 찬탄하시는가?

 

인색하면 보시를 찬탄하고 ?者爲讚施

금지함을 깨뜨리면 계를 찬탄하고 毁禁者讚戒

성 잘내면 인욕을 칭찬하고 多瞋爲讚忍

나태하면 정진을 찬탄하시도다. 好懈讚精進

〈지수보살〉

 

부처님께서는 오직 한길로써 벗어나 여읨〔出離〕을 얻으셨는데 지금보니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 국토에 있는 온갖 일이 여러 가지로 같지 아니한가?

 

문수여, 법이 항상 그러하여 文殊法常爾

법왕은 오직 한 법뿐이니 法王唯一法

일체 걸림없는 사람은 一切無 人

한길로 생사에서 벗어나니라. 一道出生死

〈현수보살〉

 

이 게송은 원효대사가 대중 속으로 회향하러 들어가면서 읊었다는 유명한 게송이다.

끝으로 여러 보살들이 문수보살에게 말씀하였다. 우리들이 아는 것을 말하였으니, 묘한 변재로 여래께서 소유하신 경계를 말씀해 주소서.

 

여래의 깊은 경계는 如來深境界

그 양이 허공과 같아서 其量等虛空

일체 중생들이 들어가되 一切衆生入

실로 들어간 바가 없도다. 而實無所入

〈문수보살〉

 

 

11. 정행품

 

보살이 어떻게 하면 신(身)․구(口)․의(意) 3업이 수승하게 할 수 있는지 지수보살이 문수보살에게 질문하였다. 이에 문수보살이 답하고 있다.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善用其心〕 온갖 승묘한 공덕을 얻어 부처님도에 머물며 제2도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140원(願)을 일으키도록 권하고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원만 소개해 본다.

 

보살이 집에 있을 때에는 菩薩在家

마땅히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집 성질이 공함을 알아 知家性空

그 핍박을 면하여지이다. 免其逼迫

 

보시를 할 때에는 若有所施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一切能捨

마음에 애착이 없어지이다. 心無愛着

 

머리털과 수염을 깎을 때에는 체除鬚髮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번뇌를 아주 버리고 永離煩惱

마침내 적멸하여지이다. 究竟寂滅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할 때는 自歸於佛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불종자를 잇도록 紹隆佛種

위없는 뜻을 낼 지어다. 發無上意

 

스스로 가르침에 귀의할 때는 自歸於法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경장에 깊이 들어가 深入經藏

지혜가 바다와 같게 하여지이다. 智慧如海

 

스스로 스님들께 귀의할 때는 自歸於僧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대중을 통솔하고 다스리되 統理大衆

모든 것에 장애가 없어지이다. 一切無

 

잠에서 처음 깰 때는 睡眠始寤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온갖 지혜 깨닫고서 一切智覺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지이다. 周顧十方

 

불자들이 이같이 마음을 쓰면 온갖 뛰어나고 묘한 공덕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12. 현수품

 

문수보살이 청정행의 대공덕을 말하고 나서 다시 보리심의 공덕을 보이려고 현수보살에게 수행공덕을 말하게 하였다. 이에 현수보살이 신심의 공덕과 공능을 게송으로 설하고 있다.

 

신심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라 信爲道元功德母

모든 선한 법을 길러내며 長養一切諸善法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 벗어나 斷除疑網出愛流

열반의 위없는 도 열어 보이도다. 開示涅槃無上道

 

믿음은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 信爲功德不壞種

믿음은 보리수를 생장케 하며 信能生長菩提樹

믿음은 수승한 지혜 증장케 하고 信能增益最勝智

믿음은 온갖 부처 시현하도다. 信能示現一切佛

 

이상의 내용을 부연해 보면,

첫째, 믿음의 대상과 내용은 부처님의 신업과 구업과 의업의 경계가 한량없음이다. 이에 대해서〈여래명호품〉과〈사성제품〉그리고〈광명각품〉에서 설하고 있다.

둘째,〈보살문명품〉에서 믿음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의심을 밝히고 있다.

셋째, 믿음을 성취하기 위해 마음을 잘 쓰도록 하며, 140원을 세우도록 한다. 이 원으로 자신의 신․구․의 삼업을 잘 다스려 나가면 제2도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넷째, 믿음의 공용이 다양하게 교설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화엄경》에서 모든 보살도를 튼튼히 받쳐주는 기초가 된다. 이 신심이 만족하면 그때가 바로 부처되는 때이므로 이를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