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현담 2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序
淸凉山大華嚴師沙門澄觀撰述
至聖이 垂誥하사 鏡一心之玄極하시고 大士- 弘闡하사 燭極言之幽致로다 雖忘懷於詮旨之域이나 而浩瀚於文義之海라 蓋欲寄象檕之迹하야 窮無盡之趣矣시니 斯經文理는 不可得而稱也로다 晉譯秘典에 賢首- 頗得其門하고 唐翻靈篇에 後哲이 未窺其奧일새 不揆膚受하고 輒闡玄微하니 偶溢九州하고 遐飛四海라 講者- 盈百하야 咸扣余曰大敎趣深하고 疏文致遠하니 親承指訓하야사 髣髴近宗이라 垂範千古인댄 慮惑高悟하노니 希垂重剖하야 得覩光輝케하라하야늘 順斯雅懷하야 再此條治하니 名爲隨疏演義하니라
至聖이 가르침을 내리사 一心의 玄極을 비추시고 大士가 널리 밝혀서 微言의 그윽한 이치를 밝힘이라. 비록 詮旨의 경계에는 생각이 없어졌으나 文義의 바다에는 넓고 넓음이라. 대개 象繫의 자취에 의지하고자 하야 다함이 없는 旨趣를 궁구함이니 이 經文의 이치는 가히 얻었다고 稱할수 없음이로다. 晉譯秘典에서는 현수가 자못 그 門을 얻고 唐翻靈篇에서는 後哲이 그 깊음을 엿보지 못할새 피부로 받음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문득 현미함을 밝히니 우연히 구주에 넘치고 멀리 四海에 퍼짐이로다. 강하는 자 백여명이 다 나에게 와서 물어 가로되 대교의 지취가 깊고 䟽文이 이치가 심원하니 친히 指訓을 받들어서 비슷하게 宗에 가까움이라. 천고에 모범을 드리울진대 높은 깨달음을 미혹할까 두려워하나 바라는 바는 거듭 분석함을 드리워서 光輝 볼 수 있게 하소서 하거늘 이 아름다운 생각을 따라서 다시 이를 條治하니 이름이 隨疏演義니라.
昔人이 云人在則易어니와 人亡則難이라하니 今爲此釋은 冀遐方終古에 得若面會로다 然이나 繁則倦於章句하고 簡則昧其源流이로다 顧此才難이라 有慙折衷이어니와 意夫後學은 其辭不枝矣리라
(按此序 初無釋文이니 係後人所綴이라 筆法이 不顃淸凉하고 特稷子等函北藏及方冊에 具載라 姑錄於左로다)
옛 사람이 이르대 사람이 있는 즉 쉽고 사람이 없은 즉 어렵다 하니 이제 이를 위하여 해석함은 먼 곳까지 퍼지고 오래도록 유통되어 얼굴을 대함과 같이 하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번거로우면 章句에 권태로위지고 간단하면 그 원류에 昧함이로다. 재능이 없음을 돌아보건데 절충하는데 부끄러움이 있거니와 생각컨데 후학들은 그 말이 번잡하다고 여기지 말지니라.
(이 序를 살필진댄 처음 釋文이 없음이니 이어 後人이 이를 엮은 바라. 筆法이 청량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직자등 함북장 및 방책에 갖추어 실음이라. 조금 옆에 기록해 둠이라)
(釋文)將釋此序에 大文分三호리니 初明題目이요 次弁撰人이요 後解本文이라 初中에 經疏鈔題는 具如下釋이라 序者는 由也며 始也니 陳敎起之因由하야 作法興之漸始일새 故名爲序라 又序因鈔起요 鈔因疏起요 疏因經起니 三重次第가 展轉相由라 疏主- 仰遵聖德하야 而有述作일새 故通序之하야 冠於鈔首니 故名序也니라
(釋文) 장차 이 序를 해석함에 大文을 三으로 나눔이니 처음은 題目을 밝힘이오 다음은 撰한 사람을 밝힘이요 後는 본문을 해석함이라. 처음 가운데 經 疏鈔의 題目은 갖추어서 아래에 해석한 것과 같음이라. 序는 由며 始이니 敎가 일어나는 因由를 설명하며 法이 일어나는 漸始를 지음일새 그러므로 이름이 序가 됨이니라. 또 序는 鈔을 인하야 일어남이오 鈔는 疏를 因하야 일어남이오 疏는 經을 因하야 일어남이니 三重의 次第가 전전히 서로 말미암음이라. 疏主는 聖德을 우러러 쫓아서 述作함이 있을새 그러므로 통히 이를 序하야 鈔 머리에 둠이니 그러므로 이름이 序가 됨이니라.
次撰人니 淸凉山大華嚴寺는 寺者는 卽所依處也라 淸凉者는 瑞靉凝空하고 茂林森聳하며 夏仍飛雪하고 冬積堅氷하야 曾無炎署일새 故曰淸凉이라 山者는 峙也니 地踊層巒하야 衆峯齊峙하니 岷峩拂漢하고 峭領埼天일새 故名山也라 大華嚴寺者는 一一藍之局號라 亦名化園寺니 寺前有園하야 地方數頃에 名花間發하고 瑞草時敷하야 有異常境일새 故名花園寺라 沙門者는 正擧能述人也라 梵語에 具云하면 室羅末努라 此云勤息이니 經에 云息心達本源일새 故號爲沙門이라하니라 然有勝義世俗示道汚道之異하니 如十輪經하니라 次二字는 卽疏主號也니 唐九宗聖世에 而爲七帝門師일새 特賜淸凉之號니 廣如碑傳하니라 述者는 疏主自謙이니 言不作也니라 意云我但述古人之義하야 爲此鈔文이요 非新製作也니라
다음은 찬술한 사람이니 청량산 대화엄사의 寺는 의지하는 바의 처소라 청량이라는 것은 상서로운 기운이 허공에 엉켜있고 우거진 나무가 빽빽히 솟아있으며 여름은 이에 눈이 날리고 겨울에는 두꺼운 얼음이 쌓여 있어서 일찍이 炎暑가 없을새 고로 가로되 청량이라 하니라. 산은 높음이니 땅에 層巒이 솟아서 뭇 봉우리가 가지런히 높아서 岷峩가 은하수를 떨치고 가파른 봉우리가 하늘에 의지함일새 고로 이름이 山이라. 대화엄사는 한 가람에 국한한 호라. 또한 이름이 花園寺이니 절 앞에 정원이 있어서 地方의 數頃에 이름 난 꽃이 간간히 피고 상서로운 풀이 때따라 피어서 이상한 경계가 있음으로 이름이 花園寺이니라. 沙門은 바로 능히 술하는 사람을 듦이라. 범어에 具云하면 室羅末努이니 此云하면 勤息이니 경에 이르대 마음을 쉬고 본원을 達하는 연고로 이름을 사문이라 하니라. 그러나 勝義와 세속과 示道와 汚道의 다름이 있으니 十輪經과 같음이라. 다음 二字는 즉 疏主의 호니 당에 九宗聖世를 지나서 七帝門師가 될새 특히 청량이라는 호를 내리시니 자세한 것은 碑에 전한 것과 같나니 述이라는 것은 疏主가 스스로 겸손함이니 창작하지 않음을 말함이라. 뜻에 이르대 내가 다만 고인의 뜻을 述하야 이 鈔文을 지음이요 새로이 제작한 것이 아니니라.
至聖垂誥下는 三本文中에 分二호리니 初는 敎起源流요 後는 鈔興本末이라 初中에 二니 初는 通明諸敎요 後는 別指當經이라 又初中에 四니 一은 明如來說經이요 二는 明菩薩造論이요 三은 縱奪遣妨이요 四는 出示經意니라 今初에 明如來說經이라 就二段中하야 具彰三寶니 至聖은 佛也요 垂誥는 法也요 大士는 僧也니 三寶- 最吉祥일새 故我經初說이라 至者는 極也요 聖者는 正也니 爲如來- 能以正智로 證窮法界하야 更無過者일새 故名至聖이라
至聖垂誥下는 三의 본문 가운데에 二로 나누니 初은 敎가 일어난 원류요 後는 鈔가 일어난 本末이니 처음 가운데 二니 初은 모든 교를 통히 밝힘이요 후는 當經을 따로 지시함이라. 또 처음 가운데 四니 一은 여래가 설한 경을 밝힘이요 二는 보살이 지은 논을 밝힘이요 三은 縱奪로 방난함을 보냄이요 四는 경의 뜻을 드러내 보임이라. 이제 처음에 여래께서 설한 경을 밝힘이라. 二段 가운데에 나아가서 삼보를 갖추어 밝힘이니 至聖은 佛이요 垂誥는 法이오 대사는 僧이니 삼보는 가장 吉祥할새 그러므로 내가 경의 초에 설함이라. 至라는 것은 極이요 聖이라는 것은 正이니 여래가 능히 바른 지혜로써 법계를 다 증득하고 궁구하여 다시 지남이 없음일새 고로 至聖이라 이름하니라.
又至揀因位요 聖揀凡夫라 集玄記에 云聖者는 生也니 視物之生하야 知其終始하며 智通乎大道하야 應變而無窮일새 故名至聖이라하니라 然이나 諸敎不同하니 畧分爲五이라 初는 小乘敎는 以五分身으로 爲法身하고 丈六身으로 爲報身하고 隨類로 爲化身하야 名至聖이라 二는 大乘始敎中에 有二宗하니 一은 破相宗中엔 以勝義諦中에 離一切相하야 非蘊界處로 爲法身하고 智隨物現하야 爲報化身하야 名至聖이요
또 至는 因位를 가림이요 聖은 범부를 가림이라. 集玄記에 이르대 “聖은 生이니 物의 生함을 보아서 그 마침과 시작을 알며 智는 大道에 通하야 變化에 應하야 다함이 없음으로 至聖이라 이름한다” 함이라. 그러나 모든 교가 같지 않으니 간략히 나누어서 五가 됨이라. 처음 소승교는 五分身으로써 법신을 삼고 丈六身으로 보신을 삼고 類를 따르는 것으로 화신을 삼아서 至聖이라 이름함이라. 二는 대승시교중에 二宗이 있으니 一은 破相宗中에 勝義諦 가운데에 一切相을 여의어서 五蘊 十八界 十二處가 아닌 것으로 법신을 삼고 智가 物을 따라서 나타남으로 報化身을 삼아서 至聖이라 이름함이라.
二는 立相宗中엔 以淸淨法界로 爲法身하고 四智相應心品所現으로 爲報化身하야 爲至聖이라 三은 終敎이니 依起信論컨댄 以體大로 爲法身하고 相大로 爲受用身하고 用大로 爲他報化身하야 爲至聖이라 四는 頓敎中엔 不分三異고 絶待離言한 一實之性으로 爲至聖이라 五는 圓敎이니 卽以法界無盡身雲으로 眞應相融하며 一多無礙하야 圓滿十身으로 爲至聖이니라 若具實爲論인댄 唯圓敎佛이라야 方名至聖이니라
二는 立相宗中에 청정법계로 법신을 삼고 四智相應心品에 나타난 바로 報化身을 삼아서 至聖이라 함이라. 三은 終敎이니 기신론을 의지할진대 體大로 법신을 삼고 相大로 受用身을 삼고 用大로 저 報化身을 삼아서 至聖라 한다. 四는 頓敎中에 세가지 다른 것으로 나누지 않고 待를 끊고 말을 여읜 一實의 性으로 至聖을 삼음이라. 五는 圓敎니 즉 法界無盡身雲이 眞과 應이 서로 융합하며 一과 多가 무애하야 十信이 원만함으로 至聖을 삼음이라 만약 實을 갖추어 논할진대 오직 원교가 佛이라야 비로서 이름이 至聖이라.
垂誥者는 卽所說之敎也라 垂者는 布也니 垂布典誥하야 宣揚法化하야 利益衆生일새 故云垂誥라 又尙書에 有大誥康誥等篇하니 告上曰告요 發下曰誥라하니라 有云王言이 爲誥라하니 皆不定也라 今謂如來演說三乘十二部經하사 利益有情일새 故云垂誥니라
垂誥라는 것은 곧 說한바의 가르침이라. 垂라는 것은 베품이니 典誥를 멀리 펴고 법화를 선양하야 중생을 이익하게 함일새 고로 이르대 垂誥라. 또 尙書에 大誥 康誥등의 篇이 있으니 윗 사람에게 알림을 가로되 告요 아래사람에게 發함을 가로대 誥라고 하니라. 어떤이가 이르대 “王의 말씀이 誥가 된다” 하니 다 일정하지 않음이라. 이제 이르대 여래가 三乘 十二部 經을 연설하야 有情을 이익케할새 그러므로 이르대 垂誥라 함이라.
鏡一心等者의 鏡者는 喩也니 鏡有照鑑之功은 喩能詮敎法이요 鏡中之像은 喩一心이니라 玄極은 卽所詮之法也라 淸凉이 云以聖敎로 爲明鏡하야 照見自心하고 以自心으로 爲智燈하야 照經幽旨라하시니 卽斯意也라 今依五敎하야 略明一心호리라 初는 小乘敎中엔 實有外境하야 假立一心이니 由心造業하야 所感이 異故요 二는 大乘始敎中엔 以異熟賴耶로 爲一心이니 遮無外境이요 三은 終敎엔 以如來藏性으로 具諸功德일새 故說一心이요 四는 頓敎엔 以泯絶無寄일새 故說一心이요 五는 圓敎中엔 總該萬有하야 事事無礙일새 故說一心이니 良以如來- 隨機設敎일새 故有千差이어니와 殊途同歸는 皆一致也니라
鏡一心등 이라는 것의 鏡은 비유이니 거울이 照鑑의 功이 있음은 능전의 敎法을 비유함이오 거울 가운데의 像은 一心에 비유함이니라. 玄極은 所詮의 法이라. 청량이 이르대 聖敎로써 밝은 거울을 삼아서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고 자심으로 지혜의 등을 삼아서 경의 그윽한 이치를 비추라 하시니 즉 이 뜻이라. 이제 오교에 의하야 간략히 一心을 밝히리라. 처음 小乘敎 가운데는 實로 外境이 있어서 거짓으로 一心을 세움이니 마음을 말미암아서 업을 지어서 감득하는 바가 다른 연고요 二는 대승시교 中에는 異熟賴耶로 一心을 삼으니 外境이 없다고 부정함이오 三은 終敎에서는 여래장성이 모든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一心을 說함이오 四는 頓敎에서는 泯絶無寄일새 고로 一心을 說함이라 五는 원교 中에는 총히 만유를 꾸려서 事事가 무애할새 고로 一心을 설함이니 진실로 여래가 機를 따라 교를 施說함일새 고로 千差가 있거니와 길이 다르나 한가지로 돌아감은 다 같은 이치니라.
玄極者는 深妙也라 又玄者는 幽也며 遠也요 極者는 盡也니 謂至理幽奧하고 深遠難測이라 故로 老子- 云杳冥之內에 衆妙存焉이라하시니 皆不思議之境也라 又海慧禪師- 云森羅萬象은 至空而極이요 百川衆派는 至海而極이요 一切聖賢은 至佛而極이요 一切敎法은 至圓而極이라할새 故云玄極이니라
玄極이라는 것은 깊고 妙함이라 또 玄이라는 것은 그윽하며 먼 것이요 極이라는 것은 다함이니 이르대 지극한 이치가 幽奧하고 深遠하야 헤아리기 어려움이라. 고로 노자가 이르대 “杳冥속에 衆한 이치가 있다”고 하니 다 부사의한 경계라. 또 해혜선사가 이르대 “삼라만상은 空에 이르러서 다하고 百川衆沠는 바다에 이르러서 다함이오 一切聖賢은 佛에 이르러서 다하고 일체교법은 圓에 이르러서 다한다” 하니 고로 玄極이라 말하나니라.
○大士下는 菩薩造論이니 筆削記에 云發大心하며 信大法하며 解大敎하며 修大行하며 證大果일새 故名大士라하니라 又大士者는 有德之稱也라 此通凡聖이니 若論弘闡인댄 亦兼餘疎鈔主也라 是以西域東夏에 造論釋經은 或地上菩薩이며 或當代英賢이니 皆思拔群位하고 智出衆情하야 弘道利生일새 故名大士니라
○大士下는 菩薩이 論을 지음이니 筆削記에 이르대 “大心을 발하며 대법을 믿으며 大敎를 알며 大行을 닦으며 大果를 증득할새 고로 大士라 이름한다” 했나니라. 또 大士란 德이 있음을 稱함이라 이는 凡聖에 通함이니 만약 널리 천양함을 논할지댄 또한 나머지 疏鈔의 主를 겸함이니라. 이로써 서역과 동하에 논을 짓고 경을 해석함은 혹 地上菩薩이며 혹 당대의 英賢이니 다 생각이 群位에서 빼어나고 지혜가 衆情에서 출중해서 도를 넓혀 중생을 이익하게 할새 고로 대사라 이름하나니라.
弘闡者는 弘者는 大也오 闡者는 開也니 或分宗立敎하며 或顯正摧邪하며 或高建法幢하며 或廣揚聖化가 皆爲弘闡也라 燭謂燈燭하니 有照了之義라 故로 下經에 云호대 譬如暗中寶를 無燈不可見하야 佛法無人說하면 雖慧莫能了라하니라 然이나 上에 云호대 鏡者는 在明卽見이니 如對上根하야 見經生解也오 言燭者는 在暗卽見이니 如諸下根은 覩疏鈔文하야사 方乃生解하니라 亦如起信之說四根과 法華之明三品이 皆其意也라
弘闡이라는 것은 弘은 큰것이요 闡은 여는 것이니 혹 宗을 나누고 교를 세우며 혹 正을 나타내어 邪를 꺽으며 法幢을 높이 세우고 혹 聖化를 널리 드날리는것이 다 弘闡이 됨이니라. 燭은 이르대 燈燭이니 비추어 안다는 뜻이 있음이라. 고로 下經에 이르대 “비유컨대 어두운 가운데 보배를 등불이 없으면 가히 보지 못함과 같아서 불법도 사람이 설함이 없으면 비록 지혜로우나 능히 요달하지 못한다” 하니라. 그러나 위에 이르대 “鏡이라는 것은 밝음이 있은 즉 봄이니 上根을 대하여 경을 봄에 解를 내는 것과 같음이오. 燭이라 말한 것은 어둠이 있는 즉 봄이니 모든 下根은 疏鈔文을 보아야 비로소 이에 解를 내는것과 같나니라. 또한 저 기신론의 설한 四根과 법화의 三品을 밝힘이 다 그 뜻이라.
微言者는 微妙之法故로 名微言이니 唯識에 云호대 激河辯而贊微言等이라하며 孝經序云호대 夫子가 沒而微言絶라하니 皆以聖敎로 爲微言也라 幽致者는 幽者는 遠也요 致者는 趣也라 卽上玄極之理가 幽遠하고 深邃故로 云幽致라 雖忘懷下는 次縱奪遣妨에 二니 初는 縱이니 法本離言이요 後는 奪이니 不礙言說이니 今初라 雖者는 縱其無言이니 應有問云호대 上言理趣가 玄極하고 微言幽隱하야 忘懷絶慮하야사 方可契會어늘 何用廣陳言敎하야 翻欲擾人耶오할새 故로 縱云하며 雖忘懷於詮旨之域하니 忘懷者는 忘情絶慮를 謂之忘懷요 詮旨者는 所詮理也요 域者는 疆域이니 謂能詮三藏이 有包含義故라 今皆超之일새 故로 云爾也니라
微言이라는 것은 미묘한 법일새 고로 微言이라 이름하니 유식에 이르대 “激河의 辯으로 微言等을 찬탄한다” 라고 하며 孝經序에 이르대 “夫子가 돌아가심에 微言이 끊어졌다” 하니 다 성인의 가르침으로써 微言을 삼음이라. 幽致라는 것의 幽는 遠이요 致는 趣라는 뜻이니 위의 현극의 이치가 幽遠하고 深遂할새 고로 이르대 幽致라 했나니라. 雖忘懷下는 다음 縱奪遣妨에 二니 처음은 縱이니 법이 본래 말을 여임이요 後는 奪이니 언설에 걸리지 않음이니 이제는 처음이라. 雖라는 것은 그 말이 없음을 따름이니 응당 어떤이가 물어 이르대 “위의 말에 이취가 玄極하고 微言이 幽隱하여 생각을 잊어버리고 생각을 끊어야사 바야흐로 가히 契會할수 있다고 했거늘 어찌 널리 言敎 폄을 써서 도리어 사람을 어지럽게 하리오” 할새 고로 긍정하여 이르대 “비록 詮旨의 영역에서 생각을 잊는다” 하니 忘懷라는 것은 情을 잊고 생각이 끊어짐을 이를 일러 忘懷라 하고 詮旨라는 것은 所詮의 이치요. 域이라는 것은 疆域이니 이르대 能詮三藏이 包含의 뜻이 있는 연고라. 이제 다 이를 초월할새 고로 그렇게 말함이라.
○而浩瀚下는 奪其無言이 不碍言也니 謂諸佛菩薩이 有大智故로 上契無爲하고 有大悲故로 下垂言敎니라 浩瀚者는 大水之貌이니 疏序에 云호대 湛湛忘言이나 而敎海之波瀾이 浩瀚이라하니 謂此大經하야 文廣理深일새 故로 喩如海니라
○而浩瀚下는 그 無言이 언설에 장애되지 않음을 부정함이니 이르대 모든 제불보살이 大智慧가 있는 고로 위로 無爲에 계합하고 대자비가 있는 고로 아래로 言敎를 드리움이라. 浩瀚이라는 것은 大水의 모양이니 疏序에 이르대 “담담하야 말을 잊으니 敎海의 波蘭이 浩澣하다” 하니 이르대 이 大經이 文이 넓고 이치가 깊을새 저 바다에 비유했나니라.
蓋欲下는 四에 出示經意에 二니 初는 擧例設敎요 後는 因言悟入이라 今初擧例設敎라 蓋者는 承前起後니 發語之端이요 欲者는 將也요 寄者는 託也라 象繫者엔 象은 謂爻象이요 繫者는 繫辭니 卽周易十翼之文이라 謂上彖이 一이요 下彖이 二요 上象이 三이요 下象이 四요 上繫는 五요 下繫는 六이요 文言이 七이요 說卦는 八이며 序卦는 九요 雜卦는 十이니 鄭學之徒- 並同此說하니라 皆孔子의 所作이니 讚明易道하야 發揮至賾하니 有類菩薩의 造論釋經之意니라
蓋欲下는 四에 出示經意에 二니 처음은 예를 들어서 敎를 設하고 後는 말을 因하야 깨달아 들어감이라. 이제 처음 例를 들어 교를 施設함이라. 蓋라는 것은 前을 이어서 後를 일으킴이니 말을 發하는 실마리요 欲이라는 것은 장차 하려 함이요 寄라는 것은 의탁함이라. 象繫라는 것은 象은 효를 이름이요. 繫라는 것은 繫辭니 즉 周易 十翼의 文이라. 이르대 上彖이 一이요 下彖이 二요 上象이 三이요 下象이 四며 上繫가 五요 下繫는 六이요 文言이 七이요 說卦는 八이며 序卦는 九요 雜卦가 十이니 鄭學의 무리가 아울러 이설과 같음이라. 다 孔子의 지은 바이니 周易의 도리를 讚明하야 지극한 이치를 발휘하니 菩薩이 論을 짓고 經을 해석한 뜻과 유사함이 있나니라.
跡者는 蹤跡이니 如尋其兎인댄 先尋其跡이니 得兎忘跡이니 得象忘言이니 謂假託言象之跡하야 以契言絶之理니라 下經에 云호대 了法不在言하야사 善入無言際하야 而能示言說이 如響遍世間이라하니 卽其意也니라
跡이라는 것은 자취를 쫓음이니 그 토끼를 찾으려면 먼저 그 자취를 찾음이요 토끼를 얻으면 자취를 잊는 것과 같음이니 모양을 얻음에 말을 잊음이니 이르대 言象의 자취를 假託하야 言絶의 이치에 계합함이니라. 아래 經에 이르대 “法이 말에 있지 아니함을 요달해야사 잘 말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서 능히 언설을 보이는 것이 마치 메아리가 세간에 두루함과 같다” 하니 곧 그 뜻이라.
○窮無盡下는 因言悟入이니 窮者는 盡也니 易에 云窮理盡性하야 以至於命이라하니라 無盡之趣者는 卽上一心玄極之理니 謂假託言象하야 以契無言이요 非有無言이 可爲棲託이니 下經에 云雖復不依言語道라하니 亦復不着無言說也라하니라 故知文字性離하면 雖終日言而無言이니 豈可緘言而守黙哉아
○窮無盡下는 말을 인하여 깨달아 들어감이니 窮이라는 것은 다함이니 주역에 이르대 “이치를 궁구해 성품이 다하면 命에 이른다” 하니라. 무진의 趣란 즉 위의 一心 玄極의 이치이니 이르대 言象을 假託함으로 써 말이 없음에 계합함이라. 無言이 가히 棲託할 것이 있지 아니함이니 아래 經에 이르대 “비록 言語道에 의지하지 아니하나 또한 언설이 없음에 着하지 아니한다” 하니라. 고로 알라 文字性을 여의면 비록 종일토록 말하나 말한 것이 없음이니 어찌 가히 말을 봉하여 침묵을 지키겠는가.
斯經下는 別顯當經하야 以伸旨趣라 分二호리니 初는 標指요 後는 嘆勝이라 今初也니 謂此大經이 文言廣博하야 非心可測이라 就言象中하야 略標三本하니 上本經은 有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偈와 一四天下微塵數品하고 中本經은 有四十九萬八千八百偈와 一千二百品하고 下本經은 有十萬偈와 四十八品하니 今所傳者는 是略本經이로대 有四萬五千偈어든 豈況此經의 一字法門을 海墨書而不盡也리오 理者는 所詮義也니 橫該三藏하고 竪貫十宗하야 六相十玄과 重重妙用과 無盡敎體를 海印發揮하니 菩薩도 猶迷요 聲聞도 不測이니 豈非斯經文理를 不可得而思議矣리오 不可得而稱也者는 後歎勝也라
斯經下는 따로 當經을 나타내어서 지취를 폄이라. 둘로 나누니 처음은 뜻을 標함이요 後는 수승함을 찬탄함이니 이제 初라. 이르대 大經이 文言이 廣博하야 마음으로 가히 헤아리지 못함이요 言象 가운데에 나아가서 간략히 三本을 표하니 上本經은 十三千 大千世界 微塵數偈와 一四天下 微塵數品이 있고 中本經은 四十九萬 八千八百偈와 一天二百品이 있고 下本經은 十萬偈와 四十八品이 있나니 이제 전하는 바는 이 略本經이라. 四萬五千偈가 있거든 어찌 하물며 이 經의 一字法門을 海墨으로 써서 다하지 못하리요. 이치라는 것은 所詮의 뜻이니 橫으로 삼장을 꾸리고 竪로로 十宗을 꿰어서 六相 十玄과 重重妙用과 無盡敎体라. 海印으로 발휘하니 보살도 오히려 迷하며 聲聞도 헤아리지 못하나니 어찌 이 經의 文理를 가히 얻어서 思議하지 못함이 아니리요. 不可得而稱이라는 것은 後에 수승함을 讚歎함이라.
後晉譯下는 鈔興本末에 二니 初는 依經製疏요 後는 請集鈔文이라 初文에 分三호리니 初는 晉譯先彰이요 二는 唐翻後闡이요 三은 疏成廣播라 初中에 二니 初는 旨趣玄微요 後는 賢首得旨라 且初旨趣玄微라 晉譯者는 東晉安帝義熙十四年에 覺賢三藏의 所譯六十卷經이라 譯者는 傳也니 傳梵爲華일새 故言翻譯이라 幽者는 隱也요 祕者는 密也니 晉經이 文多隱奧하야 取悟無由일새 故云幽祕라하니라
後晋譯下는 鈔가 일어난 本末에 二니 처음은 經을 의지하여 疏를 짓고 後는 鈔文 集하기를 청함이라. 初文을 셋으로 나누니 처음 晉譯을 먼저 드러냄이요 二는 唐翻을 後에 드러냄이요 三은 疏를 이루어 널리 전파함이라. 처음 가운데에 둘이니 처음은 지취가 玄微함이요 後는 현수가 뜻을 얻음이라. 우선 처음에 旨趣가 玄微함이라. 晉譯이라는 것은 東晋의 安帝 義熙 十四年에 覺賢三藏이 번역한 바 六十卷 經이라. 譯이라는 것은 傳이니 범어를 전하여 중국말로 할새 고로 번역이라 말함이라. 幽라는 것은 隱이요 秘라는 것은 蜜이니 晉經은 글이 隱奧함이 많아서 깨달음을 취함에 말미암음이 없을새 고로 이르되 幽秘라 함이라.
○賢首下는 後에 賢首得旨니 纂靈記에 云僧法藏의 字는 賢首니 洞悟眞宗하고 深窮法界하야 造探玄記하시니 解釋晉經이 雖有古德多家疏文이나 唯賢首一人이 多得其妙일새 故云頗得其門이라 唐翻下는 唐翻後闡에 二니 初는 新經罔博이요 後는 刊定迷宗이니 今初也라 唐翻靈篇者는 正譯時에 卽當則天이 設正하야 改唐爲周나 至中宗立하야 却復舊號爲大唐하니 今云唐翻者는 據復號爲言이라 靈篇者는 靈妙篇章이 又多靈感일새 故云靈篇이라
○賢首下는 뒤에 현수가 뜻을 얻음이니 纂靈記에 이르대 법장스님의 字는 현수니 眞宗울 훤출히 깨달아서 깊히 법계를 궁구하야 탐현기를 지으시니 晉經을 해석한 것이 비록 古德多家의 疏文이 있으나 오직 현수 한사람이 많이 그 묘함을 얻음으로 이르대 자못 그 門을 얻음이라. 唐飜下는 唐飜을 後에 밝힘에 二니 처음 新經은 博함이 없음이요. 後는 간정기는 宗을 迷함이니 이제 초라. 唐飜靈篇이라는 것은 바로 번역 할 때에 즉 측천무후가 設正할 당시에 唐을 고쳐 周라 하니 中宗이 즉위함에 이르러서 도리어 옛 이름을 회복하여 大唐라 하니 이제 이르대 唐飜이라는 것은 회복한 호를 의거하여 말함이라. 靈篇이라는 것은 靈妙篇章이 또 靈感함이 많을새 고로 이르대 靈篇이라.
○後哲下는 刊定迷宗이라 哲者는 智也니 卽指凈法苑公이니 造刊定記二十卷하야 以解唐經하니라 未窺者는 窺者는 視也라 未窺者는 不見也라 刊定釋義에 多失經旨일새 所以로 未見經中之玄奧也라 論語에 云叔孫武叔이 語大夫於朝曰子貢이 賢於仲尼하니라 子服景伯이 以告子貢한대 子貢이 曰譬如宮墻컨댄 賜之墻也는 及肩하야 闚見室家之好어니와 夫子之墻은 數仞이라 不得其門而入이면 不見宗廟之美와 百官之富하나니 得其門者- 寡矣라하니 今借其文하야 以喩華嚴之室이 深奧而刊定이 未達일새 故云未窺玄奧라 故로 淸凉이 歎曰大哉라 新經이여 而無得意之疏어니 安可指南이리오하시니 乃興述作之意也니라
○後哲下는 刊正이 宗을 迷함이라. 哲이라는 것은 智니 곧 정법사의 慧苑公을 가리킴이니 간정기 二十卷을 지어서 唐經을 해석함이라. 未窺者의 窺는 視니 未窺라는 것은 보지 못함이라. 간정기에 뜻을 해석함에 많이 經의 뜻을 잃음이니 이런 까닭으로 經中에 玄奧함을 보지 못함이라. 논어에 이르대 叔孫武叔이 朝宗에서 大夫를 말하여 가로대 자공이 중니보다 현인이라 하니 子服景伯이 자공에게 고할진대 자공이 가로대 “宮闕의 담장과 비교 할진댄 賜의 담장은 어깨에 미침이라. 室家의 좋은 것을 엿볼수 있거니와 夫子의 담장은 數仞이라 그 門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宗廟의 아름다움과 百官의 富를 보지 못하나니 그 門을 얻는 자가 적다” 하니 이제 그 文을 빌려서 화엄의 室이 深奧하여 刊定이 達하지 못함을 비유함일새 고로 이르대 玄奧를 엿보지 못한다 하니라. 고로 청량이 찬탄하여 가로대 “크도다 新經이여 뜻을 얻은 疏가 없으니 어찌 가히 指南이리오” 하시니 이에 述作의 뜻을 일으킴이라.
不揆膚受下는 三에 疏成廣播에 二니 初陳謙述이요 後는 疏遠流通이니 今初陳謙述也라 揆者는 度也요 膚者는 皮也니 皮膚之受일새 故云膚受라하니 馬融이 曰膚外語受- 非內實也라하며 東京賦에 云末學膚受하야 貴耳賤目也라하야늘 濟曰所受- 膚薄하야 貴於耳而賤於目이라하니 意云我不自度膚淺之學하고 輒便解釋此經하니 是自專也라
不揆膚受下는 三에 疏를 이루어 널리 전파함이라에 二니 처음은 겸손히 述함을 펴고 後는 疏가 멀리 유통함이니 이제 초니 謙述을 진술함이라. 揆라는 것은 度이요 膚라는 것은 皮니 피부로 받을새 고로 이르대 膚受라 하니 馬融이 가로대 “피부 밖에 받은 말은 안으로 실답지 않다” 하며 동경부에 이르대 “末學은 피부로 받아 들여서 귀는 귀하나 눈은 천하다” 하니 濟가 가로대 받은 바가 膚薄하야 듣는 것을 귀하게 여기나 보는 것을 천하게 여김이라“ 하니 뜻에 이르대 내가 스스로 膚淺의 학문을 헤아리지 못하고 문득 이 經을 해석하니 이는 스스로 마음대로 함을 말함이라.
偶溢九州下는 疏遠流通이니 偶者는 不期而會요 溢者는 盈滿之義라 九州者는 通典에 云雍荊靑豫冀幽兗揚徐- 是爲九州라하다 遐飛者는 遐者는 遠也요 飛는 揚也라 四海者는 東夷西戎南蠻北狄이 爲之四海라 疏主謙云호대 我所造所는 自備遺忘하야 敎示童蒙이요 非敢望於遠布러니 忽然盈溢於九州하야 遠揚於四海之內也라 觀其噬象之夢과 飛龍之瑞인댄 實乃洞契佛心하야 使之然也니라
偶溢九州下는 疏가 멀리 유통됨이니 偶者는 기약하지않고 만남이요 溢者는 차서 넘친다는 뜻이라. 九州라는 것은 通典에 이르대 옹주 형주 청주 예주 기주 유주 연주 양주 서주니 이것이 九州가 됨이라. 遐飛라는 것은 遐는 遠이요 飛는 揚이라. 四海라는 것은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 四海가 됨이라. 疏主가 겸손히 이르대 내가 지은 바 疏는 스스로 遺忘에 대비해서 童蒙에게 敎示함이요 감히 멀리 유포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으나 홀연히 九州에 차서 멀리 四海의 안에 떨침이라 그 像을 삼키는 꿈과 飛龍의 상서로움을 관할진댄 實로 이에 통연히 佛心.에 계합하야 이로 하여금 그렇게함이라.
講者下는 後에 請集鈔文에 四니 初는 學徒咨請이요 二는 冀遠重宣이요 三은 法師承領이요 四는 述作體式이라 且初中에 四니 初는 標衆이요 二는 陳詞요 三은 按定이요 四는 謙承이라 且初標衆이니 講者는 解也며 論也니 解釋文義하고 論量邪正하야 敎示學徒를 名爲講者라 或當代英賢이며 或聽習之者니 盈滿百人하야 同時伸請이라
講者下는 後에 초문을 集하기를 請함에 四니 처음은 學徒가 물어 請함이요 二는 널리 거듭 펼치기를 바람이요 三은 법사가 領을 받듬이요 四는 述作의 體式이라. 우선 初中에 四니 처음은 標衆이요 二는 陳詞요 三은 按定이요 四는 謙承이라. 우선 처음 대중에게 標함이니 講이라는 것은 解요 論이니 文義를 해석하고 邪와 正을 논하여 헤아리며 학도에게 교시함을 이름하여 講者라 함이라. 或은 當代에 英賢이며 或은 聽習의 者니 백여명이나 되는 사람이 동시에 펴기를 청함이라.
○咸叩下는 二에 陳詞니 咸者는 皆也요 叩者는 擊也라 余者는 我也니 意云講者百人이 皆詣我所하야 用言激勵하야 勸造鈔也라 ○大敎下는 三에 按定이라 大敎는 揀非泛常之典이니 乃如來不思議大威德法門일새 故云大敎라 趣者는 旨也며 深也니 旣所釋之經이 洪深일새 故로 能釋之疏幽遠이라
○咸叩下는 二에 陳詞니 咸이라는 것은 皆며 叩라는 것은 擊이라 余라는 것은 我니 뜻에 이르대 강하는 사람 백인이 다 나의 처소에 와서 격려의 말을 써서 鈔 짓기를 권함이라. ○大敎下는 三에 按定이라. 대교는 泛常의 典이 아님을 가림이니 이에 여래부사의 大威德法門일새 고로 이르대 대교라. 趣라는 것은 旨요 深이니 이미 해석한 바의 經이 넓고 깊을새 고로 능히 해석하는 疏는 그윽하고 멀음이라.
○親承下는 四에 謙承이니 卽當時聽習之者- 口傳心授하야 啓悟眞宗이라 髣髴者는 相似之義니 唯識疏에 云雖則髣髴糟粕이나 未能曲盡幽玄이라하니 意云我等이 非敢洞明幽趣라 親蒙指訓하야 相似近宗也니라 垂範下는 二에 冀遠重宣에 二니 初는 慜後요 後는 正請이라 且初慜後라 垂者는 布也요 範者는 儀範이라 十口所傳이 爲古니 今云千古者는 乃萬世之津糧矣니라 慮者는 思慮요 惑者는 疑也니 慮恐傳之後世에 疑惑高遠之悟니라
○親承下는 四 겸손히 받음이니 당시에 聽習하는 者가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주어서 眞宗을 열어 깨달음이라. 髣髴이라는 것은 비슷하다는 뜻이니 유식소에 이르대 “비록 糟粕이 비슷하나 능히 幽玄을 자세히 다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뜻에 이르대 우리등이 감히 그윽한 지취를 훤출히 밝힌 것은 아니라 친히 가르침을 입어서 비슷하게 宗에 가까움을 이름이라.
垂範下는 二 冀遠重宣에 二니 처음은 後를 근심함이요. 後는 바로 청함이라. 또 우선 처음은 후를 근심함이라. 垂는 布요 範은 儀範이라. 열 입으로 전한 바가 古가 되니 이제 이르대 千古라는 것은 이에 만세의 津糧이라. 慮라는 것은 思慮요 惑이라는 것은 疑니 이를 後世에 전함에 高遠의 깨달음를 의혹할까 염려함이니라.
○希垂下는 二에 正請이니 希望再作鈔文하야 剖析疏義하야 燦然明白일새 故로 云得覩光輝니라 ○順斯下는 三에 法師承領에 三이니 初는 明製鈔意요 次는 引古釋成이요 後는 出意製鈔라 且初明製鈔意니 雅者는 正也요 懷者는 情懷니 順斯雅正之懷하야 重啓利生之念하고 再爲條貫義理하야 令無盡法門으로 宛如在目이라 尙書에 云如網在綱하야 有條而弗紊이라하야늘 注云如網在綱하야 有條而不亂也라하니 故名隨疏演義鈔라하니라
○希垂下는 二 正請이니 다시 鈔文을 지어서 疏義를 분석해서 燦然하고 명백하기를 희망함일새 고로 이르대 光輝를 볼 수 있다고 말함이라. 順斯下는 三에 法師承領에 三이니 처음은 鈔짓는 뜻을 밝힘이요 다음은 옛을 이끌어서 해석을 이룸이요 後는 초를 짓는 뜻을 나타냄이라. 우선 처음 鈔를 짓는 뜻을 밝힘이니 雅라는 것은 正이요 懷라는 것은 情懷이니 이 바른 생각을 따라서 거듭 중생을 이롭게 하는 생각을 열고 다시 의리를 조목조목하게 꿰어서 무진법문으로 하여금 완연히 눈에 있는 것과 같이 함이라 尙書에 이르대 “마치 그물에 벼리가 있는 것과 같아서 條理가 있어서 문란하지 않는다” 했거늘 注에 이르대 “그물에 벼리가 있는 것과 같아서 條理가 있어 문란하지 않는다” 했으니 그러므로 隨疏演義鈔라 이름 하나니라.
○昔人下는 引古釋成이니 纂玄等에 述楊子書造船之事나 而未見文이니 不敢依憑이요 今依楊子法言컨대 問經之難易曰存亡이니 或不敏者- 請益하면 則曰人在則易니 有所請益이요 人亡則難이니 無所請益이라하니라
○昔人下는 引古釋成이니 纂玄等에 楊子의 책에 배 만드는 기술을 술했으나 글을 보지 못함이니 감히 依憑하지 못하고 이제 楊子의 법언에 의지 할진대 “經의 어렵고 쉬움을 물어 가로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니 或 敏捷하지 못한 자가 이익을 청하면 가로대 사람이 있은 즉 쉬움이니 청익 한 바가 있음이요 사람이 없은 즉 어려움이니 청익 하는 바가 없다” 하니라.
○今爲下는 出製鈔意니 今爲順請하야 重釋此疏하야 冀望遠方에 流通於後世하야 凡有覩斯鈔文인댄 皆如與我面對니 卽疏主의 普現色身三昧之謂也라 然繁則下는 四에 述作體式이라 三이니 初는 正顯이요 次는 謙陳이요 後는 出理라 且初正顯이니 爲離廣略二過라 疏에 云文華도 尙然翳理어든 繁言이 豈不亂心가하니 故知所作이 則不易也로다
○今爲下는 出製鈔意니 이제 請을 따라서 거듭 이 疏를 해석함은 遠方과 후세에 유통하야 무릇 이 鈔文을 보는 자가 다 나와 더불어 面對하는 것과 같기를 바람이니 즉 疏主가 널리 色身三昧 나툼을 이름이라. 然繁則下는 四는 述作하는 체식에 三이니 처음은 바로 나타내고 다음은 겸손히 폄이오 後는 이치를 드러냄이라. 우선 처음에 正顯이니 廣과 略의 두가지의 허물을 여임이라 疏에 이르대 文의 화려함도 오히려 이치를 가리거니 번거로운 말이 어찌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리오 하니 그러므로 알라 지은 바인 즉 쉽지 않음이로다.
○顧此下는 次謙陳이라 才難은 論語泰伯篇에 孔子曰才難이 不其然乎아하니 彼意는 嘆國家人才難得이어니와 此特借用하야 以見折衷之才之難아 故로 疏主謙云我無折哀之才어늘 輒述鈔文하니 實爲慚愧라하시니라 ○意夫下는 後出理니 若離繁簡二失하야 注述鈔文이라 庶使學者로 其詞無枝蔓矣라
○顧此下는 다음에 謙陳이라. 才難은 論語泰伯篇에 공자가 가로대 才難이 그렇지 않는가 하니 저 뜻은 국가의 인재를 얻기 어려움을 한탄하거니와 이에 특히 借用하야 折衷의 인재를 얻기 어려움을 나태냄일새 고로 疏主가 겸손히 이르대 내가 折衷의 재주가 없거늘 문득 鈔文을 지으니 실로 慚愧함이라 하시니라. ○意夫下는 後에 出理이니 저 번거롭고 간략함의 두가지의 허물을 여의어서 鈔文을 주술함이라. 바라건대 學者로 하여금 그 말이 枝蔓이 없기를 바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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