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안장正法眼藏/화엄지해 華嚴之海

화엄경해설 3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2. 4. 6. 12:03

제6강 화엄경의 내용 -해인삼매

 

〈현수품〉에는 신심이 원만 성취되면 얻어지는 신심의 공능으로서 삼매가 설해져 있다.《화엄경》의 총정인 해인삼매도 교설되어 있다.

이 해인삼매는 어떠한 삼매이며, 어떻게 모든 삼매 중 으뜸인 것으로 부각되어 갔는가. 그리고 해인삼매를 얻게 되면 어떤 덕용(德用)이 있으며, 그 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연은 무엇인가.

〈현수품〉에는 신심이 원만 성취되면 얻어지는 신심의 공능으로서 10종 삼매〔圓明海印三昧門․華嚴妙行三昧門․因陀羅網三昧門․手出廣供三昧門․現諸法門三昧門․四攝攝生三昧門․窮同世間三昧門․毛光覺照三昧門․主伴嚴麗三昧門․寂用無涯三昧門〕가 보이며, 그 첫째로《화엄경》의 총정(總定)인 해인삼매에 대하여 교설되고 있다.

석존의 깨달음은 명상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명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그 가운데 삼매는 대승경전의 말씀이 교설되는 주요 방편문으로 부각되었다. 원시경전에서도 4선 8정(四禪八定)이나 삼삼매 등 중시되지 않은 바 아니나 대승경전에서는 무량한 삼매가 수없이 나타난다. 특히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모든 교설이 삼매에 들고 나서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해인삼매는《화엄경》의 총정(總定)으로까지 주시되고 있다. 입․출정 후에 설해지는 다른 경전과는 달리《화엄경》은 해인삼매 속에서 설해진 것으로 주지되고 있다.

삼매는 sam dhi(사마디)를 음사한 것으로 삼마지(三摩地)로 음역되고도 있다. 그러나 그외에도 삼마제․삼마발제․사마타․삼마혜다․타연나․디야나․선나 등으로 음사되고 있다. 의역으로서는 흔히 심일경성(心一境性)의 상태로서 정(定)이라 번역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사(正思)․등지(等持)․지(止)․등인(等引)․정려(精慮)․사유수(思惟修)․정정(正定) 등으로 번역되는 많은 용어가 정(定)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 자체가 지혜까지도 포용된 의미를 지니기도 하면서, 삼학(三學)의 하나로 매우 중시되어 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일체 모든 삼매의 근본이며 그 삼매를 다 포섭한다는 해인삼매는 경에서 해인삼마지(海印三摩地)․해인정(海印定)․대해인삼매(大海印三昧)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이는 S garamudr Sam dhi(사가라무드라 사마디) 또는 S gara Sam ddhi(사가라 삼릿디)의 음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면 경전에 나타난 해인삼매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해인삼매의 용례

 

해인삼매는《화엄경》이외의 다른 경전에도 물론 보인다. 예를 들면《대집경》,《대보적경》등 많은 경전에 설해져 있으며 화엄가들도 이 경전들을 인용하여 해인삼매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해인삼매는《화엄경》의 세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삼매로 간주되고 있다. 해인삼매는〈현수품〉․〈십지품〉․〈여래출현품〉․〈입법계품〉등에서 교설되고 있다.

 

 

 

2. 해인삼매의 의미

 

해인삼매는 대해(大海)에 비유하여 붙여진 삼매의 이름이다. 그러면 해인삼매를 큰 바다에 비유하여 명명한 그 구체적 비유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바다에 모든 영상이 다 나타나는 것처럼 일체 색상이 보리심해 중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으므로 해인삼매라 한다.

섬부주의 모든 유정 등 색류가 다 바다 가운데 영상을 나투므로 이름이 대해인 것과 같이, 이 같은 유정의 일체 심색(心色)과 음성 등 모든 영상이 다 보리심해 중에 나타나므로 해인삼마지라 한다

둘째, 모든 물〔水〕의 흐름이 다 대해에 들어가는 것처럼, 한량없는 일체 제법이 다 해인삼매 중에 들어가므로 해인이라 한다.

대해수가 무량하여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일체 제법도 그 양을 헤아릴 수가 없으며, 또 일체 중류(一切衆類)가 대해 가운데 다 들어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일체 법을 인함이 모두 제법해인에 들어가며 이 해인 중에서 일체 법을 보게 된다.

셋째, 대해에 모든 용왕․신중이 머물며 진귀한 보배가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이, 이 삼매도 일체 법 및 법선교(法善巧)가 갈무리된 곳이므로 해인삼매라 한다.

이러한 해인삼매는 의상뿐 아니라 법장, 징관을 위시하여 화엄가들이 매우 중시하였으니 해인삼매를《화엄경》의 총정으로까지 부각시키고 있다.《화엄경》전체가 바로 해인삼매 속에서 설해진 말씀이라는 것이다.

《화엄경》이 의지하고 있는 해인삼매는 십불(十佛)의 해인이고 석가불해인이며 정각해인이고 제불여래응공등정각보리며 무상보리해(無上菩提海)이다. 그래서 해인은 진여본각이며 일체지․대지(大智)․증분내증(證分內證)․여래성기심(如來性起心)이다. 응화하되 나투는 바가 없어 보리의 무심돈현(無心頓現)이 해인삼매인 것이다.

해인삼매가 모든 삼매를 섭수하는 것처럼《화엄경》의 해인삼매 또한 제경의 해인삼매를 섭수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3. 해인삼매의 대용(大用)

 

해인삼매를 체(體)로 하여 일어나는 해인삼매의 상(相)․용(用)은, 해인삼매를 왜 해인삼매라 하는지를 가리키는 해인삼매의 의미와 별개인 것은 아니다. 해인삼매는 여래지(如來智)로 일체 색상을 인현(印現)할 뿐만 아니라 또한 여래지를 의지하여 만상을 몰록 나투는 업용이 있다. 그러한 작용이 있어서 그 같은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해인삼매의 수승한 묘용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화엄부의 제 문헌에서는 해인삼매의 대용(大用)이라는 용어 대신에 업용(業用)․덕용(德用)․승용(勝用) 등의 말도 자주 보인다.

《화엄경》에서는 보살행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불보리의 경지에서 불행(佛行)으로 나투어지고 있다.

〈현수품〉에서는 현수보살이 10종삼매의 업용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있는데, 처음에 해인삼매의 대용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있다. 해인삼매의 대용을 크게 다섯으로 구분해 보기로 한다.

부처로 시현하고 법장을 설한다.《화엄경》의 해인삼매는 불보리정각(佛菩提正覺)해인이다. 어디든 부처 없는 국토에 시현하여 정각을 이루고, 법을 알지 못하는 국토에서는 묘법장을 설한다.

일념경에 시방에 두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달빛 그림자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같이 무량방편으로 군생을 교화한다. 분별도 없고 무념인지라 한 찰나에 시방세계에 두루 다녀 무공용(無功用)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

일체시 일체처에서 8상을 나툰다. 시방세계 가운데 염념이 시현하여 성불하고 정법륜을 굴리며 열반에 들고 내지 사리를 나누어 중생 위해 보인다.

성문․연각 등 삼승교를 열어 삼승문으로써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 무량겁 동안 무량중생을 제도함에 있어 근기에 따라 성문․연각 등 삼승 방편문을 시설하기도 한다.

중생들의 좋아함을 따라 모든 모습으로 다 시현한다. 혹은 남자로 혹은 여자로 나타나고 갖가지 몸을 그 좋아함을 따라서 다 보게 한다.

중생의 형상, 행업과 음성도 한량없어서 이를 따라 일체를 다 나툰다. 이러한 모든 불사가 곧 해인삼매의 위신력이다. 제불보리가 널리 일체 중생의 심념(心念)과 근성(根性)과 욕락을 나투되 나투는 바가 없으니 정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찰나찰나마다 중중무진세계에 일체 모습으로 시현하여 끝없는 중생을 다 제도하는 것이 바로 해인삼매의 위신력에 의한 해인삼매의 수승한 덕용이라는 것이다.《화엄경》에서는 한 세계에 한 부처로 시현하는 것이 아니라, 중중무진으로 응현하는 것이다. 만법이 다 해인병현(海印炳現)이요, 해인돈현(海印頓現)이 다 불현(佛現)이다. 시현해도 시현함이 없는 무심돈현이요, 응화해도 응화함이 없는 무공용행이다. 무량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법 설함을 시설한 것은 사바세계에서의 교화방편은 음성 설법이 중요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4. 해인삼매에 드는 인연

 

해인삼매가 불가사의한 경계인 만큼, 해인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연 또한 헤아리기 어려우리란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인지 경에서 명확하게 해인삼매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두드러지게 제시한 곳은 오히려 드문 것 같다.

《대집경》에서는 제일 먼저 다문(多聞)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보살이 많이 듣기를 바다와 같이 하면 지혜를 성취하여 항상 부지런히 법을 구하리라고 한다. 다문을 성취한 후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며 그 설법선근으로 해인삼매에 회향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진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보적경》에서도 모든 법문을 잘 수행함으로써 해인삼매를 얻는다고 함은 같다. 이처럼 법문을 듣고 설법함이 해인삼매를 얻는 주된 방편으로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화엄에서도 마찬가지다.《대방광총지보광명경》에서는 해인삼매가 입으로 좇아 나온다〔海印三昧口中生〕고까지 역설되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각 회마다 설주보살이 삼매에 들어 지혜를 얻고는 출정한 후에 설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삼매력으로 설법한 모든 것이 해인삼매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설주보살들의 입정인연도 간과할 수 없다고 하겠으니, 보현보살을 위시하여 설주되는 보살이 삼매에 들 수 있음은 3종인연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시방 일체 제불의 가지력(가피력), 둘째는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위신력), 셋째는 보살이 일체 제불의 행원력을 닦은 선근공덕력 또는 지혜력에 의해서이다. 보살들이 닦은 행원(선근공덕력)은 입정의 인(因)이며, 주불과 제불의 본원력 가피력은 연이 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항상 제불보살을 친근해야 해인삼매를 구족 성취하게 됨도 경에서는 보이고 있다.

〈현수품〉에서는 해인삼매 등 10삼매의 대용은 발심수행한 수승한 덕의 하나로서 설해진 것이다. 그런데 발심은 신심에 의해서 가능하니 발심성불은 신만성불인 것이다. 그 신심은〈정행품〉의 140원을 성취한 정신(淨信)을 말한다. 따라서 입정은 행원의 광대한 공덕행인 보현행덕으로 가능하며, 그 보현행덕은 무방대용인 과(果)와 둘이 아닌 인행(因行)인 것이다.

〈현수품〉에는 해인삼매 외에 아홉 삼매에 대한 설명도 보인다. 그 중 화엄삼매와 방망삼매(方網三昧)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해 보면, 우선 화엄삼매이다. 해인삼매가 만상이 다 나타나는 진여본각으로 설명되었다면 화엄삼매는 널리 보살만행을 닦아서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해인삼매가 불과무애라면 화엄삼매는 보살만행으로서의 바라밀행이다.

다음 방망삼매(方網三昧)는 동서 등의 방위나 육근과 육경, 남녀 노소, 비구 비구니, 중생과 부처, 미진과 일체처 등을 막론하고 온갖 곳에서 입정 출정함이 걸림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현수품〉에서는 동방에서 바른 정에 들어가 서방에서 정으로 좇아 나오며, 서방에서 바른 정에 입정하여 동방에서 정으로 좇아 나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안근에서 입정하여 색진에서 출정하며, 색진에서 입정하여 안식에서 출정한다.

또 동자신에서 입정하여 장년신에서 출정하며, 장년신에서 입정하여 노년신에서 출정하며, 노년신에서 입정하여 선녀신에서 출정하며, 선녀신에서 입정하여 선남신에서 출정하며, 선남신에서 입정하여 비구니신에서 출정하며, 비구니신에서 입정하여 비구신에서 출정하며, 비구신에서 입정하여 학무학에서 출정하며, 학무학에서 입정하여 벽지불에서 출정하며, 벽지불에서 입정하여 여래신에서 출정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많은 삼매가 신심의 덕용으로 교설되어 있는 것이다.

 

 

 

제7강 화엄경의 내용 -제3회 6품

 

제3회 6품은 수미산정의 제석천궁전에서 법혜보살에 의하여 십주법문이 설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주목하게 하는 점으로서는

첫째, 보살의 주처이다.

십주의 자리는 어디이며 십주보살행은 어떠한 것인가?

둘째, 발심의 인과 연은 무엇이며,

초발심시변정각의 경계는 무엇인가?

셋째, 무엇이 범행인가? 화엄의 관행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13. 승수미산정품

 

먼저 제3회 첫품인〈승수미산정품〉은 세존께서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수미산에 오르셔서 제석천의 궁전으로 향하신 것으로 시작된다. 제석천왕이 멀리서 보고 궁전을 장엄하고 사자좌를 놓고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부처님께서 결가부좌하시니 시방세계에서도 그와 같았다. 이는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인 경계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14. 수미정상게찬품

 

부처님의 신력으로 법혜(法慧)보살을 비롯한 일체혜․승혜․공덕혜․정진혜․선혜(善慧)․지혜(智慧)․진실혜․무상혜․견고혜보살 등 10혜보살이 십불세계에서 부처님 계신 데 이르렀다.

보살의 돌림자가 모두 지혜 혜(慧)인 것은 지혜가 보살행의 바탕이 됨을 의미한다. 지혜가 없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때 세존께서 두 발가락으로 광명을 놓아 수미산 꼭대기를 비추시니 제석천 궁전안의 부처님과 대중들이 그 속에 나타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법혜보살을 위시한 모든 보살들이 그 경계를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부처님께서 我等今見佛

수미산정에 계심을 보며 住於須彌頂

시방에서도 모두 그러하니 十方悉亦然

여래의 자재한 힘이로다. 如來自在力

 

온갖 법이 나지도 않고 一切法無生

온갖 법이 멸하지도 않나니 一切法無滅

만약 능히 이같이 알면 若能如是解

부처님께서 항상 현전하시리라. 諸佛常現前

 

온갖 법들이 了知一切法

자성이 없는 줄 알지니 自性無所有

이렇게 법의 성품 안다면 如是解法性

곧 노사나불을 뵈오리라. 卽見盧舍那

 

이 게송은 자장법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기도하고 받은 게송이다.

 

 

15. 십주품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보살무량방편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서 보살이 머무는 주처를 설하였다. 보살이 머무는 곳이 넓고 커서 법계와 허공과 같다. 보살은 삼세의 여러 부처님 집에 머물며〔住三世諸佛家〕, 이 보살이 머무는 곳에 10가지〔十住〕가 있다고 한다. 10주는 초발심주(初發心住)․치지주(治地住)․수행주(修行住)․생귀주(生貴住)․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정심주(正心住)․불퇴주(不退住)․동진주(童眞住)․법왕자주(法王子住)․관정주(灌頂住)이다.

 

(1) 초발심주(初發心住)는 보살이 처음 발심하는 자리이다. 발심의 인이 되는 10법과 발심의 연, 그리고 초발심주에서 닦는 10법을 차례로 교설하고 있다.

먼저 발심의 10인은 보살이 부처님의 형모가 단엄하심을 보고 발심하며, 내지는 중생들이 심한 고통 받음을 보거나, 혹은 부처님의 광대한 불법을 듣고 보리심을 내어 온갖 지혜를 구한다.

초발심주의 소연(所緣)인 여래의 10가지 수승한 지혜는 일체지로서 10지 또는 10력을 가리키는 10종지력(十種智力)이다.

처비처지(處非處智)이니, 옳고 그른 도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지혜의 힘이다.

선악업보지(善惡業報智)이니, 과거․현재․미래에 선업과 악업으로 받는 과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지혜의 힘이다.

제근승열지(諸根勝劣智)이니, 근기가 예리하고 둔함을 아는 지혜이다.

종종해차별지(種種解差別智)이니, 갖가지 이해를 아는 지혜이다.

종종계차별지(種種界差別智)이니, 여러 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이다.

일체지처도지(一切至處道智)이니, 온갖 곳에 이르러 갈길을 아는 지혜이다.

제선해탈삼매지(諸禪解脫三昧智)이니, 모든 선정․해탈․삼매의 때묻고 깨끗함이 일어나는 시기와 시기 아님을 아는 지혜이다.

숙명무애지(宿命無碍智)이니, 온갖 세계에서 지난 세상에 머물던 일을 기억하는 지혜이다.

천안무애지(天眼無碍智)이니, 천안통의 지혜이다.

삼세누보진지(三世漏普盡智)이니, 누진통의 지혜이다. 모든 번뇌가 다한 자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을 배우며, 중생의 귀의할 곳이 되는 등 10가지 법 배우기를 권하고 있다.

 

(2) 치지주(治地住)는 심지(心地)를 다스리는 자리이다. 10심으로 자기 마음자리를 다스리니, 보살이 중생들에게 10가지 마음을 낸다. 이른바 이익심․대비심․안락심․안주심․연민심․섭수심․수호심․동기심(同己心)․사심(師心)․도사심(導師心) 등이다.

 

(3) 수행주(修行住)에서는 10가지 행으로 일체 법을 관찰하여 수행한다. 즉 온갖 법이 무상․고․공․무아․무작(無作)․무미(無味)․이름 같지 않음〔不如名〕․처소가 없음〔無處所〕․분별을 여읨〔離分別〕․견실하지 않음〔無堅實〕을 관한다.

 

(4) 생귀주(生貴住)는 부처님 교법으로부터 나서 귀한 자리이다. 보살이 성인의 교법으로부터 나서 10가지 법을 성취하여 마음이 평등함을 얻는다. 10가지 법이란 영원히 부처님의 처소에서 퇴전하지 아니하며, 깊이 청정한 신심을 내며, 법을 잘 관찰하며, 중생과 국토와 세계와 업행과 과보와 생사와 열반을 잘 아는 것이다.

 

(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는 보살이 선근을 닦아 방편을 구족하는 자리이다. 보살이 닦는 선근은 모두 온갖 중생을 구호하며 내지 열반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6) 정심주(正心住)는 마음이 안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리이다. 보살이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훼방하는 등 10가지 법을 듣고도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한다.

 

(7) 불퇴주(不退住)는 보살이 부처님이 있다거나 없다는 등 10가지 법을 듣고도 마음이 견고하여 퇴전하지 아니하는 자리이다.

 

(8) 동진주(童眞住)란 동자와 같이 순진한 자리이다. 보살이 10가지 업에 머무는 자리이다. 즉 몸의 행〔身行〕과 말의 행〔語行〕과 뜻의 행〔意行〕이 잘못됨이 없고, 마음대로 태어나고, 중생의 갖가지 하고자 함〔欲〕과 해(解)와 계(界)와 업(業)과 세계의 성괴를 알고, 신통이 자재하고 다니는 데 걸림이 없다.

 

(9) 법왕자주(法王子住)는 법왕의 소행을 아는 왕자의 자리이다. 10가지 법을 잘 아니, 중생의 수생(受生)과 번뇌의 일어남과 습기가 상속함과 행하는 방편과 무량법과 위의와 세계차별과 전․후제(前後際)의 일과 세제(世諦)를 연설함과 제일의제 연설함을 잘 아는 것이다.

 

(10) 관정주(灌頂住)는 왕자가 관정식에서 왕위에 취임하는 것같이 보살이 10가지 지혜, 즉 일체종지를 얻어 주(住)의 최고 자리에 앉는다.

 

이러한 십주행은 십지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 십지에 포섭된다. 별행경에서는《십주경》,《십지경》은 함께 번역되어 쓰이고도 있다.

 

 

16. 범행품

 

〈범행품〉에서는 특히 염의 출가자를 위한 보살행으로서 10종의 관행법이 설해지고 있다.

정념천자가 법혜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온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물든 옷을 입고 출가하였으면 어떻게 해야 범행이 청정하여 보살의 지위로부터 위없는 보리의 도에 이르리이까?"

법혜보살이 이러한 정념천자의 질문을 받고 출가자가 범행을 닦아 위없는 보리도에 이르는 10가지 법을 설하고 있다. 즉 보살이 범행을 닦을 때에 10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고 뜻을 내어 관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10가지 법이란 몸〔身〕과 몸의 업〔身業〕․말〔語〕․말의 업〔語業〕․뜻〔意〕․뜻의 업〔意業〕․불(佛)․법(法)․승(僧)․계(戒)이다. 이에 대하여 무엇이 범행인가 관찰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만일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냄새나는 것이며, 부정한 것이며, 내지 송장일 것이다. 만일 신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앉는 것, 눕는 것, 가는 것 등일 것이다. 만일 말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음성․입술․고저 등일 것이며, 만일 말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인사․칭찬․헐뜯는 것일 것이며, 내지 만일 계가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계단 아사리 삭발 걸식 등일 것이다.

이렇게 관찰하면 몸에 취할 것이 없고 닦는 데 집착할 것이 없고 법에 머무를 것이 없으며 업을 짓는 이도 과보를 받는 이도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범행인가? 범행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소유인가? 이렇게 관찰하면 범행이란 법은 얻을 수 없으며, 삼세의 법이 다 공적하며, 뜻에 집착이 없으며, 내지 부처님 법이 평등함을 아는 까닭에 청정한 범행이라 한다.

만일 보살들이 이렇게 관행하여 모든 법에 두 가지 견해〔二解〕를 내지 아니하면 온갖 부처님 법이 빨리 현전해서 처음 발심할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온갖 법이 마음의 성품임을 알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다른 이를 말미암아 깨닫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여기서도 부처님의 처비처지(處非處智) 등 10법을 닦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17. 초발심공덕품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은 헤아릴 수 없어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니, 발심함으로써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임을 법혜보살이 제석천왕의 질문에 따라 점증적으로 설하고 있다.

 

 

18. 명법품

 

십바라밀(十波羅蜜)로 보살행을 청정하게 하고 있다.

법혜보살이 정진혜보살의 질문에 의해 보살로 하여금 10가지 바라밀법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케 함을 설하고 있다.

십바라밀은 이 명법품에서만 설한 것이 아니라《화엄경》의 보살행 전체를 십바라밀로 포섭할 수 있다. 따라서 화엄보살행을 다 포섭하는 십지보살행도 역시 십바라밀로 묶어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10행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하기로 한다.

 

 

 

제8강 화엄경의 내용 -제4회 4품

 

제4회 4품에서는《화엄경》의 유심설과 보살의 십바라밀행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19. 승야마천궁품

 

세존께서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야마천궁으로 향하셨다. 야마천왕이 멀리서 보고 즉시 보연화장 사자좌를 만들고 맞이하였다. 천왕은 지난 세상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 심은 것을 생각하고 불공덕과 야마천궁의 길상함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20. 야마궁중게찬품

 

상주안불 친혜(親慧)세계의 공덕림(功德林)보살을 위시하여 시방불세계의 수많은 보살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모여들자, 세존께서 두 발등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셨다. 여기에 모여든 보살이 수풀 림(林)자가 돌림자가 된 것은 보살의 공덕행이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쌓임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공덕림보살을 위시한 열 분의 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게찬하였다. 이중에 정진림보살이 부처님의 차별없는 평등한 대지혜를 말씀하는 내용 가운데 수를 헤아리는 비유가 나온다. 이는 후에 화엄교학에서 상입상즉을 설명하는 '수십전유(數十錢喩)'로 체계화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계연기설에서 살피기로 한다.

그보다 여기서는 각림보살의 게송을 살펴보겠다. 그 10게송은 유심게(唯心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림보살은《육십화엄》에서는 여래림보살로 번역되어 있다.

유심게에서는 마치 그림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다고 하여, 마음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다. 후반부 다섯 게송만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心如工畵師

모든 세간을 그려내나니 能畵諸世間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五蘊實從生

무슨 법이든 짓지 못함이 없도다. 無法而不造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如心佛亦爾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如佛衆生然

마땅히 알라, 부처와 마음이 應知佛與心

그 체성 모두 다함이 없도다. 體性皆無盡

 

마음이 모든 세간 짓는 줄을 若人知心行

아는 이가 있다면 普造諸世間

이 사람 부처를 보아 是人卽見佛

부처의 참성품 알게 되도다. 了佛眞實性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心不住於身

몸도 마음에 있지 않으나 身亦不住心

불사를 능히 지어 而能作佛事

자재함이 미증유로다. 自在未曾有

 

만일 어떤 사람이 若人欲了知

삼세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應觀法界性

모든 것 오직 마음이 지어냄이로다. 一切唯心造

 

《화엄경》의 대의를 '통만법 명일심'이라고 이해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일심 또는 유심사상은《화엄경》의 핵심 내용의 하나가 된다.《화엄경》의 일심사상은 이 유심게와〈십지품〉의 제6현전지 그리고〈여래출현품〉의 10종 성기심(性起心)이 그 주요 소의처가 된다.

〈십지품〉에서는 삼계에 있는 것이 오직 한마음〔三界所有 唯是一心〕이라 하고 있다.〈여래출현품〉에서의 마음은 여래심이며 여래성기심이다. 여래심은 10종으로 교설되어 있다.

이곳〈야마궁중게찬품〉의 유심게에 보이는 일심은 오온과 세간을 만들어내는 일심이다. 위의 두 번째 게송은《육십화엄》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如心佛亦爾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如佛衆生然

마음과 부처와 중생 心佛及衆生

이 셋이 차별이 없다. 是三無差別

 

그리고 마지막 게송의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는 '마땅히 마음이 모든 여래를 짓는 줄 관하라〔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고 되어 있다. 여기서의 일심은 부처를 만드는 마음이므로 진심이다. 따라서〈야마궁중게찬품〉에서의 마음은 표면적으로는 진(眞)과 망(妄)에 통한다.

《화엄경》은 마음을 내세우는 모든 종파의 소의경전이 되어왔다. 마음을 망심으로 이해한 유식의 제8아뢰야식에 의한 뢰야연기와 진망화합심(眞妄和合心)인 여래장심에 의한 여래장연기의 소의경전도 되고 있다. 그러나 화엄종에서는《화엄경》의 일심을 여래장 자성청정심과 여래성기심으로 이해하여 여래성기심인 진여심이 그 체성이 되는 법계연기를 체계화시켰다.

그리하여 화엄가들은 이 일심을 연기해서 나타난 일체 존재인 일진법계의 체로 보고, 만덕을 구족한 일심이며 원융한 일심이며 만유를 다 포섭하는 일심으로 보았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의 일심은 무애평등의 일심인 것이다.

마지막 게송인 '일체유심조'는 우리나라에서《화엄경》의 수많은 게송 가운데 제일 으뜸가는 게송으로 수지되어 왔다. 아침 쇠송에 '화엄경제일게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華嚴經第一偈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어서 이 게송은 지옥고를 타파한다는 뜻에서 쇠송에서는 파지옥진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도《청량소초》에 의하면《찬령기》에 소개되어 있는 전설적인 얘기와 함께 잠시 수지하여도 능히 지옥고를 파한다고 하였다. 즉, 문명(文明) 원년에 왕명간(王明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 착한 일을 한 것 없이 병환으로 죽게 되어 두 사람에게 인도되어 지옥문 앞에 끌려갔다. 지옥문 앞에 한 스님이 있음을 보았는데 지장보살이라 하였다. 그 스님이 왕씨에게 게송 하나를 외우게 하였는데 바로 이 일체유심조 게송이었다. 그리고 이 게송을 외우면 지옥고까지 배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씨가 이 게송을 외우고 들어가 염라왕을 만나보니 염라왕이 묻기를 무슨 공덕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왕씨가 답하기를 오직 한 사구게만 수지하였다고 하고 좀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니 염라왕이 더 살다오라고 내보냈다. 왕씨가 이 게송을 외울 때 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었던 사람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왕씨가 3일 만에 소생하여 이 게송을 기억해서 외웠다. 그리고 공관사(空觀寺)의 승정(僧定)법사에게 이 일을 말하니 법사가 그 게송이 바로《화엄경》의〈야마궁중게찬품〉에 나오는 이 게송임을 밝혀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일체유심조 게송은《화엄경》신앙의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야마궁중게찬품〉에 이어서〈십행품〉이 나온다. 그러므로

〈십행품〉의 10행은 일체유심조의 경계임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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