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말 그리고 2000년 초 녹차에 치명타 두 개가 나왔다.
처음은 스타벅스의 출연과 아라비카 커피의 열풍.
둘째는 녹차재배를 농약과 화학비료로 한다는 사실.
커피는 몸에 나쁘고 맛이 없다는 일종의 사회적 절대진리 상식이 스타벅스의
한국진출로 무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20년을 우리의 자부심 자존심으로 여겼던 신선의 명약 녹차
그 녹차가 농약 덩어리에 화학비료로 만든다는 것이 pd수첩 등등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에서 사실로 밝혀졌고 그 배신감이 커피로 돌아서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시사프로그램 때문인가?
자업자득이다. 지금의 백수오 사태처럼.
1990년 녹차 중국차에 심취했던 필자에게 동경대 석사과정에 있었고 6년간 일본유학
중에 있던 고등학교 동기가 필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70년대까지 일본을 지배하던 녹차가 80년대 들어 커피로 돌아서고 있고
지식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글라인더로 원두를 갈아서 우려내 먹는게 유행이다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90년 초 일본은 자가로스팅, 바리스타 열풍이었다.
20년 후의 우리의 모습이 일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이 우리를 자신들의 아류로 본다.
문화가 20년에서 10년 뒤지기 때문이다.
실지로 80년도 후반과 90년도 초반 일본에 유학갔던 많은 이들 중에
공부 보다는 커피에 힐링이 되고 거기에 미쳐서 바리스타가 되고 한국에 돌아와서
커피 보급을 시작했다. 일본을 통해서 또는 미국을 통해서 원두를 수입해
자가로스팅의 세게에 빠진 커피 매니아는 주로 일본 유학파에서 시작 발전되다가
미국이나 유럽 유학파로 확대 되는 시기가 90년도 후반과 2000년도이다.
오늘날 유명 로스팅업자들이 이들이거나 이들의 제자이다.
한국에 원두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한게 90년도 중반이다.
그때는 정말 싸구려 원두가 들어왔다. 차에 관심 있던 필자도 지금으로서는
천원 주고도 안사는 싸구려 커피 한통을 2만원 이라는 거금을 주고 마셨다.
너무 궁금해서 일본 유학파 동창에게 들은 얘기도 있고해서.........
먹다가 버렸다. 커피는 영원히 중국차나 녹차를 따라올 수 없다고 외치며.....
그러다가 90년 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커피가 더 맛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스타벅스가
돌풍을 일으키자 KBS에서 특집 방송을 했다.
커피유행을 박살내자는 의도로.....
개스트가 일본 유학파에 미국 남미로 커피공부를 다녀온 약 20년 경력의 커피전문가였다.
식품영양학과 여교수와 기타 다도 전문가 4인과 커피전문가 혼자 대결하는 정말
의도가 느껴지는 대결이었다.
1시간반 가까운 대결에서 그 바리스타는 "지금 한국인이 먹는 커피는 로브스타종이며
아라비카도 페기처분하는 싸구려가 들어왔다."며 다양한 커피를 직접 제조하여 사람들에게
먹이며 패널들의 비판 질문에 조목 조목 빈틈 없이 반박하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다.
나름 茶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혹시 내가 잘못알고 있는 거 아닌가?"
라는 반성을 일으켰다.
그때 그가 한 말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자신도 녹차가 좋고 효능이 있다는 거 인정한다.
그러나 전 세계 선진국이 커피의 효능과 맛에 반해 심취하고 있다.
결국 우리 경제수준이 높아지면 서구의 질좋은 아라비카 커피가 들어오고
우리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러면 녹차는 설곳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후 모 신문의 칼럼에서 녹차의 대중화 보편화 고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녹차산업은 망한다는 유기농 녹차 재배업자의 비판을 읽었다.
이 글과 tv시청을 한지 불과 3년후 2000년을 기점으로 스타벅스를 중심으로 커피 광풍이 불고
녹차재배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친다는 방송으로 녹차산업는 된서리를 맞고
주저앉았는데, 지금도 재생불능이다.
이미 의식있는 사람들이 90년도 중반부터 유기농 재배와 고급화를 외쳤지만
대다수의 재배 농민들은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대량생산을 위한 농약과 비료를
포기하지 않았고 녹차농업은 자멸하였다.
그리고 2010년이 되어서 생두를 수입해 자가로스팅으로 파는 인터넷 업체가 많아지면서
커피의 진짜 맛을 알게 되었다. 20년 아니 50년의 세월을 거쳐 비로소 커피를 마신 것이다.
가짜 커피를 마시다가 녹차와 중국차에 빠졌다가 비로소 진실을 마주한 것이다.
농약 파동은 국내산 한약재배에 영향을 주었고 중국산의 농약과다 검출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신토불이의 위용을 높였다. 사람들이 무조건 중국산 한약을 불신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국내산 한약들 전부 농약친다.
잔류농약이 기준치를 충족할 뿐이다. 그래서 요즘 중국산도 잔류농약 검사하고 보낸다.
국내산이 좋다고?
인삼 칡 쑥 등 소수의 원산지가 한국인 제품에 한한다.
한약의 대다수는 중국산이다. 중국에서 한약제 나는 곳이 백두산 자락과
운남성 근처의 고산 지대이다. 국내산 보다 약효가 좋다.
이유는 알겠죠? 명산에 물좋은 곳에서 나는 명약들이다.
신토불이라는 애국심도 녹차처럼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오가피 구지뽕 옻 백수오 등등으로 대중을 희롱한 한국의 약장사들
앞으로 5년 후 또 뭐 뻔한 약제로 난리를 칠건가?
어리석은 국민들은 또 어떤 약제에 미쳐서 날뛸건가?
아참 80년대에 개소주가 열풍이었다.
엄청난 개가 가마솥에 들어가 액기스 소주로 바뀌었다.
개 한마리에 소주댓병 하나......... 원래는 2-3병 나오는데 업자들이
사기를 침. 일반 직장인 월급 70~100 하던 시절에 댓병 하나 20~30만원.
원가는 2만원 미만..... 병든 개 늙은 개로 폭리를 취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에 미쳐 날뛰는 시기이다.
진실이 드러나면 질서가 잡힌다.
지금 지리산 자락에는 녹차재배에 농약 안치고 자연재배한다.
다들 녹차밭 갈아엎고 약초재배한다고 분주하니 진정으로 녹차 좋아하는
사람만 남았다.
20년전에 10만원에도 못사는 유기농 녹차가 4천원이다.
인터넷으로 00마켓에서 판다. 너무 싸서 맛없으면 비누나 만들자고 샀는데
와~우 진짜다. 간만에 저렴하면서 진짜인 차를 만나다.
떨거지와 잡놈들이 물러나니 진짜가 남는다.
이제 비로소 반찬가격에 한 달치 녹차를 마신다.
그것도 손으로 가마솥에 덖은 것을.....
에가체프나 시나몬 1-2잔에 녹차 하나........
녹차 하나는 2-3잔의 찻물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우엉차 마테차 등 10여가지의 차가 내 손을 기다린다.
그중 30년된 상당량의 보이차는 내 노후에 마시려고 향후 20년을 더 숙성시킬 계획이다.
이 보이차는 북경 시내 차 도매상가에 있는 유일한 보이차 도매상에서 산 것이다.
2000년에 가서 찾았는데, 중국인중 보이차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문으로 써서 가이드를 주고 가이드가 그걸 들고 수소문하니 북경전체에서 딱 한군데만
취급하고 있었다. 그당시 관광객 상대하는 기념품 차판매상에 있던 보이차는 6만원 이었다.
국내 가격과 차이도 없었다. 한국가이드랑 짜고 치는 장사였다.
티벳만 상대하고 중국인도 외국인도 한번도 오지 않는 보이차 도매상은 오히려
우리를 신기해 했다. 중국인도 모르는 보이차를 어찌 아냐고......
"운남칠자병차" 그 유명한 차가 20년 묵은건데 수 천개가 있다고 한다.
1개 5천원....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물건을 확인 후 아는 지인에게 맘놓고 사라고 했고
그 사람은 50개 필자는 30개를 샀고 아직 10여개가 남아있다.
색깔과 냄새만으로 보이차의 등급을 알 정도실력은 된다.
90년부터 10년을 거의 매일 마셨는데 그걸 모르겠는가?
관광지에서 국내판매 가격과 차이가 없는 보이차 가격을 보고 결국 한국의 장사치가
중국을 버려놓을 것이라며 지인에게 수 백개를 사서 보관해 놓으라고 했는데....
2~3년안에 엄청나게 오를 거라고 했다.
블라인더 공장을 하던 단순무식 장사꾼인 이 사장은 모조리 선물로 돌렸다.
6개월에 한번 씩 중국가서 수십개씩 사다가 거래처에 돌리니 국내가격 10만원~
수백만원 하는 보이차 받고는 다들 고맙다고 난리다.
그 재미에 신나하다가 불과 2년째에 그 사장은 공황에서 몰수 당한다.
도매업자들이 손을 쓴 것이다.
5개 이상 안가져가기로 각서 쓰고 돌아와서는 또 그걸 선물로 돌린다.
국내에서 사면 최하 몇십만원이니 몇만원 해도 중국에서 산다.
그러다 그자신은 정작 한 개 도 없이 손가락만 빤다.
그후 2002년 국내 보이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고 부자들의 자랑거리로 부상하자 수요가
급증하였다. 한국부자들의 수요가 늘자 도매업자들이 중국에서 미친듯 컨테이너로
사재기를 시작했고, 중국가이드 조선족들을 중심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부자들 사이에서도 한국 일본 홍콩과의 교류를 통해 보이차의 맛과 가치를 알게되자
엄청난 수요가 일어났다. 한국의 녹차처럼 귀족화 고급화의 길을 걷는다.
중국에서도 보이차가 와인처럼 부의 과시수단이 되자 엄청나게 오르기 시작하고
한국에서 개발한 항아리 숙성법(1990년부터 한국에 보급된 방법)을 중국장사꾼이 사용하는 것이
2008년경 KBS VJ특공대에 소개 되었다.
가격이 10년 묵으면 1000~수천만원 이었다. 분명 한국놈이 저지른 짓이란 걸 알았다.
물론 국내에 왔던 조선족들도 배웠겠지....
못된 건 빨리 배우니까.... 아직도 보이차는 귀족놀이 도구로 사용된다.
세월이 흘러 2년전 인터넷 다도 카페 모임에 가보았다.
숙성된 보이차가 없어서 만든지 1년도 안된 청차(靑茶: 숙성이 안돼 먹으면 안됨)를
다도모임에서 먹는 걸 보았다. 가격도 개당 20~30만원.....
보이차는 최소 2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 3년이 지나야 제맛이 난다.
돈 많은 것들이 귀족놀이에 독약을 마시고 있다.
보이차 만드는 차잎은 생으로 먹으면 독성이 강해서 위험하다.
쪄서 차로 만들어도 독소가 안빠진다. 1년이 지나야 비로소 독소가 빠진다.
차로 먹으려면 기본이 3년이다. 세월과 인내의 茶이다.
돈에 미친 인간들이 젊은 사람들 버리고 있다.
1년미만 청차의 위험을 알리기는 커녕 오히려 청차가 더 좋다고 거짓말을 하는
차 판매업자들.....녹차 사기꾼들이 이제 보이차로 몰려들어 있구나....
이들이 요즘 치는 사기가 천량차 판매다.
중국차 특히 고급 중국차 사시면 그냥 사기라고 생각하세요.
돈이 남아도는 졸부들 당하는 건 모른 척 하시고요. ㅎㅎㅎ
진실은 모든 것을 이긴다.
진심으로 만든 차는 최고의 보약이다.
3천년을 살아남은 것이 녹차다. 결국 커피와 보이차등 발효차 녹차는 향 후 천년 이상
공존할 것이다.
비쌀 수록 거기엔 더 큰 위험이 상존한다.
다음은 보이차 및 중국차의 불편한 진실이다.
2015년 5월 31일.... 紫霞仙人.. 遊於世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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