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안장正法眼藏/선의 법열 禪之法悅

나옹록 8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2. 3. 30. 15:11

발 문

 

이상은 왕사 보제존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일상의 행동을 한마디, 한 구절 모두 그 시자가 모아 `나옹화상 어록"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제자 유곡 (幽谷) ․굉각 (宏覺) 등이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세상에 간행하려고 내게 그 서문을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서문이란 유래를 쓰는 것인데, 그 유래를 모르고 서문을 쓰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오. 장님이 길을 인도하거나 귀머거리가 곡조를 고른다면 그것이 될 일이겠는가. 나는 그것이 안되는 일인 줄 알 뿐 아니라, 더구나 백담암 (白淡庵) 의 서문에서 남김없이 말했는데 거기 덧붙일 것이 무엇 있는가."

그랬더니 그들은 "그렇다면 발문 (跋文) 을 써 주시오" 하면서 재삼 간청하므로 부득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넓은 그릇과 맑은 뜻을 엿볼 수 없거늘, 어떻게 그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듣건대, 부처는 깨달음 〔覺〕 을 말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깨우치며 자비로써 교화한다 하니, 그것은 우리 유교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닫게 하고 인서 (仁恕) 로 교 (敎) 를 삼는 것이니, 그것이 같은가 다른가.

우리 군자 〔先儒〕 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는데, 탕탕하여 아무도 그것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유불 (儒佛) 이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그러나 나는 서로 비방하는 것이 그름을 안다.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요,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만 극치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 서로 맞서 비방할 뿐이요, 중니 (仲尼) 와 모니 (牟尼) 는 오직 한 덩어리의 화기 (和氣) 인 것이다.

이제 이 어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믿을 수 있으니, 언제나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닦아 임금을 축수하고 나라를 복되게 함으로써 규범을 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임금은 이 분을 존경하여 스승으로 삼았으니 이 어록을 간행하여 세상을 깨우침이 마땅할 것이다.

 

정사년 (1377) 첫여름 하순 (下旬) 어느 날에 단성보리 익찬공신 중대광계림군 이달충 (端誠輔理翊贊功臣重大翠鷄林呼李達衷) 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삼가 쓴다.

 

보제존자 삼종가

(普濟尊者 三種歌)

 

 

백납가 (百歌)

 

백번 기운 이 누더기

분소의 (糞掃衣) 여

온갖 헝겊 주워와 알맞게 기웠나니

베옷 입은 위의가 어디로 가나 족하건만

그 재미 아는 사람 옛날부터 드무네

내게 가장 알맞으니

어찌 헤아려 생각하랴

4은 (四恩) *이 가벼울수록 복은 더욱 떳떳하다

마음대로 이 물건을 가지고는 다른 일이 없나니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고향을 보호한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판 입어도 편안하구나

그때그때 입어도 스스로 편리하네

헌 누더기 그 안에 특별한 일 무엇인가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차마시며 피곤하면 잠자네

누덕누덕 꿰매어 천조각 만조각인데

깁다가 못 기운 곳 녹다 남은 눈과 같네

사람들 모두 믿기 어렵고 가지기도 어렵건만

미더워라, 음광 (飮光:가섭존자) 은 사철로 가졌었네

겹겹이 기웠으매 앞도 뒤도 없어라

오래도록 지녀옴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음광 (飮光) 만이 그것을 깊이 믿었기에

누더기로 제일 먼저 조사의 등불 전하였네

자리도 되고

애정을 끊었거니

원래 석가의 자손이 어찌 영화를 구할건가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무심히 입었나니

늘상 입고 지내니 도가 바르다

옷도 됨이여

추위와 더위를 막으며

곱거나 밉거나 대중을 따르매 늘상 그러하여라

그렇게 선이나 악을 도무지 짓지 않거니

무엇하러 구태여 깨끗한 곳에 가려 하리

철따라 때따라 어김없이 쓰이며

다른 소중한 물건 보다 쓰기 쉬우니

때때로 마시는 죽은 소화되기 어려우나

헌 누더기는 해마다 꿰매 입기 편리하네

이로부터 고상한 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가난한 가운데서 부하면 만족할 줄 알고

부한 가운데서 가난하면 만족하기 어렵지만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만족할 줄 알리라

음광 (飮光) 이 끼친 자취 지금에 있구나

백 번 기운 누더기 남은 자취 총령 (¿嶺) 서쪽에 있고

동토 (東土) 에 전해와서는 납자 (子) 라 하니

음광의 끼친 자취 지금도 남아 있네

한 잔의 차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 잔의 차가운 차를 다시 사람들에게 보일 때

아는 사람이야 오겠지만 만일 모르면

새롭게 새롭게 한없이 보여주리

일곱 근 장삼이여

가풍을 드날리니

집안의 세밀한 일들이 지극히 영롱하다

이런 재미를 그 누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서역에는 음광 (飮光) 이요 동토에는 조주 〔趙老〕 라네

조주스님 재삼 들어보여 헛수고했나니

음광 (飮光) 이 제일 먼저 일어나 장삼 입었고

조주 (趙州) 가 거듭 일어나 동토에 전했나니

천하총림이 모두 백 번 기운 누더기네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어찌하여 헌 누더기 해같이 밝은가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추며 공겁 (空劫) 이전부터

홀로 신령한 빛을 비추어 만물을 일으켰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비록 이 누더기가 다 헤졌다 해도

삼라만상이 한없이 말하나니

모든 법이 공 (空) 으로 돌아간다네, 백 번 기운 누더기여

이 누더기옷은

얼마든지 입어도 언제나 편리하다

이익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여 누가 만족했던고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여 믿고 귀의하여라

매우 편리하니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사철로 편리하며

총림 어디로 가나 걸림이 없고

인연 따라 입음에 위의가 극진하네

늘상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지 편리하구나

미우나 고우나 대중을 따르매 그것으로 법다운 모습이니

비단옷을 입은 이 아무리 존귀한들

무심한 이 누더기만 하겠는가

취한 눈으로 꽃보는 일 누가 구태여 하겠는가

누더기의 맛은 원통 (圓通) 의 깨달음에 있고

꽃을 보는 취한 눈은 그 맛이 미혹에 있으나

누더기 입는 일을 누가 감히 하겠는가

도에 깊이 사는 이라야 스스로 지킨다

도 닦는 이의 깊숙한 거처를 아는가 모르는가

마음과 법을 다 잊었거니 어찌 둘이 있으랴

천 개의 등불은 어두운 방을 비추어 똑같이 만든다

이 누더기 얻은 지가 얼마인가 아는가

필시 지녀온 지 오랜 세월 지났으리

베 빛깔을 분간할 수 없이 기운 지 오랬거니

그 바탕 녹다 남은 눈 같고 안개 같구나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이 누더기는 원래 한가하니

일없는 선정 가운데 무슨 일이 있는가

띠풀암자는 예와 같이 푸른 산을 마주했네

반쯤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앞은 날아가고 뒤에 남은 것 더덕더덕 걸려 있다

걸음걸음 비로자나의 정수리거니

걸음걸음 가면서 또 무엇을 구하랴

서리치는 달밤, 띠풀암자의 초암에 홀로 앉았으니

띠풀암자에 홀로 앉아 있기를 다시 구하랴

천만 가지 차별에서 내 고향 잃었거니

참도 〔眞道〕 는 서리치는 달밤에서 나온다네

안팎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깜깜 〔蒙頭〕 하다

이런 맛은 원래 세상에 없으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 맛 알건가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의 이 깜깜한 맛을

이 몸은 가난하나

한 물건도 전연 없는 가난한 도인이

값할 수 없는 보배구슬을 어떻게 쓰는가

그 스스로 만물을 내어놓는 봄이라네

도는 끝 없어

고요하고 쓸쓸한데 누가 그와 함께하랴

홀로 숲속에 앉아 모든 일 쉬었나니

세간의 어떤 물건이 확실한 진종 (眞宗) 인가

천만 가지 묘한 작용 다함 없어라

한가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예의는 비단옷 같고

문 앞에서 손님 맞이할 때에도 평상시 같으며

불전에서 향불 사르고 예불하는 데도 통하네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을 웃지 말라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며 또 끊어짐도 없어

소리를 뛰어넘고 빛깔도 뛰어넘어 스스로 한가하거니

세상에 만나는 사람들 비방이나 칭찬 없네

선지식 찾아 진실한 풍모를 이었으니

평산 (平山) 과 서천의 지공 (指空) 을 친히 뵈었네

원제 (元帝) 가 믿어 개당할 때에는 천하에 펼쳤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종풍을 떨치었네

헤진 옷 한 벌에

나물밥에 누더기로 의당 도를 향하여

홀로 앉았거나 홀로 다니거나 걸림 없었고

스스로 찾아 도를 물은 일 옛날부터 드물었네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주장자 거꾸로 잡고 두루 돌아다녔네

예나 지금이나 납자에게는 다른 일이 없나니

몸에는 헤진 옷이요 손으로는 용 (龍) 을 살리네

천하를 횡행해도 안 통할 것 없었네

원래 큰 도는 그 자체가 원만한 공 (空) 이며

시방의 모든 법계도 간격이 아니거니

납자의 돌아다님에 무엇이 안 통하랴

강호를 두루 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고

화엄경의 선재동자 선지식을 찾아서

법계를 쉬지 않고 두루 다녔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은 알 수 없네

원래 배운 것이라곤 빈궁뿐이라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공 (空) 을 배워야 하네

진공 (眞空) 을 배워 얻으면 그것이 참도학 〔眞道學〕 이니

분명히 배운 후에는 공이면서 공 아니리

이익도 구하지 않고

자리 (自利) 는 원래 자리가 아니어서

남을 위해야만 자리가 자라나나니

남을 해치는 자리는 전연 이익이 없네

이름도 구하지 않아

이름을 구하면 반드시 높은 지위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저절로 교만이 생기거니

무엇 때문에 남은 생에 이런 마음 가질 건가

누더기 납승,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생각도 마음도 없으매 성품에 생멸 없는데

이름이나 이익을 구하는 사람 어찌 이 맛을 알랴

이 맛의 영화는 세상 영화 아닌 것을

바루 하나의 생활은 어디 가나 족하니

바루 안의 나물밥으로 능히 만족 느끼며

선 (善) 도 닦으려 하지 않고 그저 무심뿐인데

무슨 일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언제나 한결같아 물러나지 않으리라

오래 힘써 공을 이루면 마음 거울 밝아지리니

어찌 수고로이 다시 무생 (無生) 을 깨치려 하겠는가

만족한 생활에

부자가 되었거니

온 세계가 보물창고인들 무엇에 쓰랴

누더기 한 벌 헤진 때에 이미 만족할 줄 알아

내 집의 재보 (財¿) 를 간직해 왔네

또 무엇을 구하랴

내 집에 보배가 가득한데

친구 집에서 취해 누웠다 일어나선 고향을 떠났네

옷 속에 매어 둔 보배구슬을 모른 채 떠나

멀리 타향에 가서 오랜 세월 보냈네

우습구나, 미련한 사람들 분수를 모르고 구하네

전생에 심은 복이 전연 없는 것 같고

금생에도 박복하여 복을 짓기 어렵나니

그리하여 세세생생에 시름만 거듭되네

전생에 지은 복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악인 (惡因) 의 악함이여, 업이 그 악을 따르고

선인 (善因) 의 선함이여, 선이 따라와

선이거나 악이거나 그 인 (因) 은 어긋남이 없느니라

하늘 땅을 원망하면서 부질없이 허덕인다

그것은 하늘이나 땅이 닦아 이룬 것 아니라

제가 그렇게 닦아 제가 얻는 것이거니

내 복을 밖에서 찾아도 찾을 길 없느니라

몇 달이 되었는지

스스로 산에 살아

한 해가 다 가도록 산을 싫어하지 않나니

고사리 캐고 땔나무 주워 밥 먹으면서

한 평생 헤진 누더기를 싫어하지 않노라

몇 해나 되었는지

해마다 해를 보내는데

늙거나 젊거나 죽는 데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이 몸 절로 늙어가는 것 생각하지 않으면서

누더기 속에서 해마다 해를 보내네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애써 마음 쓰지 않으며 자연에 맡겨두네

헤진 누더기 속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가

참지혜가 끝이 없어 겁 밖에 현묘하네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원래부터 공도 (公道) 는 막힘이 없어

노인의 머리와 얼굴에 재와 티끌을 끼얹나니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오직 이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내는구나

자연 그대로의 옷과 밥은 선정 (禪定) 이 제일이네

저절로 `나'가 없어 3독을 버린 뒤에야

무엇하러 승당에서 애써 좌선하랴

 

 

2. 고루가 (奇歌)

 

이 마른 해골이여

지금 이것이 마른 해골임을 모르면

어느 겁에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리

이 물건이 뜬 허공 같음을 알아야 하네

몇천 생 (生) 이나

생사에 윤회하면서 잠깐도 머물지 않고

사생육도 (四生六道) 쉼 없는 곳을

돌아왔다 다시 가면서 몇 번이나 몸을 받았나

축생이나 인천 (人天) 으로 허망하게 허덕였던가

먹이 구해 허덕이나 마음에 차지 않아

이기면 남을 해쳐 제 몸을 살찌우다가

엄연한 그 과보로 업을 따라 태어나네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내 뼈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가

이 세계나 다른 세계에 남김이 없이

오며 가며 흩으면서 그치지 않았으리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권하노니 그대는 머리 돌려 빨리 행을 닦아라

전생의 과보가 무슨 장애되리오

원명 (圓明) 한 본 바탕 성품바다는 맑으니라

 

한량없는 겁토록

3아승지를 지나

처음도 끝도 없는 공겁으로부터

이 자체는 원래 모자람이 없었건만

가엾어라, 떠도는 사람들 스스로 미혹하구나

성왕 (性王) 에 어두워

취해서 깨지 못했으니

어리석음과 애증이 인정 (人情) 과 더불어 있었네

지금까지 함께 살던 것 다른 물건 아니건만

탐욕과 어리석음에 취한 듯 자기 영혼 몰랐었네

6근 (六根) 은 이러저리 흩어져 치달리고

검고 희며 누렇고 푸름이 저마다 도량이네

모든 것이 분수대로 제 자리에 편안하거니

어찌하여 제 심왕 (心王) 을 깨치지 못하는가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할 줄 알았으니

먼 과거로부터 가까이해 온 것들을 떠나지 못해

어리석음과 애증이 공덕을 없애건만

지금도 또 그것들을 가까이하는 줄 모르네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할꼬

머리 돌려 생각생각에 무상 (無常) 을 생각하라

머리 돌려 생각하고 생각하여 생각이 다하면

갑자기 터지는 한 소리에 제 성품이 꽃다우리

 

이 마른 해골이여

스스로 고향을 잊어버려

오랫동안 고향으로 가는 길이 거칠어 있네

만일 누구나 탐욕과 분노로 벗을 삼으면

그 때문에 수행하는 이들 제 고향을 잃으리라

매우 미련하고 깜깜하여

자비 없나니

가여워라, 떠돌이 아들은 스스로 길을 잃었네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구업, 세 가지의 의업으로

끝없이 죄를 지어 다시 슬픔 더하네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네

끝없이 지은 죄 태산같이 무거워

세상마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 좋아하지 않나니

원래 그 과보는 무간지옥에 있네

하루 아침에 공하여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본다면

황학루 (黃鶴樓) 를 지을 때 누가 기둥 세웠던가

황학이 한 번 떠나 다시는 오지 않고

지금은 온 세상이 텅 비어 있네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늘히 몸을 벗으리

이 뜻을 어찌하면 자세히 볼꼬

어떤 물건이나 인연을 만나도 별것 아니요

봄꽃이나 가을달이 똑같이 싸늘하리

 

그 때를 놓쳤으니

어느덧 머리에는 눈 서리 올랐는데

세상의 탐욕은 늙는 줄 모르지만

늙거나 젊거나 죽는 일은 먼저와 나중이 없네

가장 좋은 시절이라

평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참으로 드물거니

종자 심고 도를 닦되 미진한 구석없게 하고

한가히 노닐면서 좋은 시절 잃지 말라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따라 나는구나

힘쓰고 애태우며 오욕에 미혹되네

빛깔과 소리를 탐해 벌이 술잔에 떨어지듯

몸과 목숨 잃는 것 부처님이 슬퍼하네

권하노니 그대는 지금 빨리 머리를 돌이키라

삼계는 편치 않거니 왜 그리 오래 머무는가

빨리 윤회의 화택 속에서 나와

열반의 참 즐거움에 언제까지나 살아라

진공 (眞空) 을 굳게 밟고 바른 길에 돌아가라

진공에 돌아가기는 진실로 어렵나니

고금의 납자들은 어떤 것을 의지했던가

지금부터는 조계 (曹溪) 의 한마디에 의지하여라

 

모였다 흩어지고

항상 모였다 흩어지는 뜬구름같이

감도 없고 옴도 없는 것에 서로 미혹되어

여기저기 모였다 다시 흩어진다

오르고 빠짐이여

둥우리에 올라 살고 구멍에 빠져도 살아

차별된 여러가지 중생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니

생사는 아득한데 업의 바다는 깊어라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 편치 않구나

아무데도 편치 않아 고해에 잠겼을 때

부처님은 세 수레*로 문 앞에 서서

화택에서 끌어내어 여여한 마음에 앉게 한다

그러나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다면

마지막 의지처인 자기 부처 찾으리

허공 같은 그 자체에 부처가 있나니

자연 그대로인 부처를 어디 가서 찾는가

단박에 뼛속 깊이 생사를 벗어나리라

본래 얕은 것도 아니요 깊은 것도 아니라

서로 만났어도 분간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분간하기 어려움은 본래 깊기 때문이네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무거운 남의 물건 진 것은 없느니만 못하나니

괴롭고 쓰라린 인연을 어떻게 하면 깨달을까

머리에 뿔이 없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머리에 뿔이 있거나

있고 없는 머리의 뿔은 그 바탕이 같나니

갖가지의 형상은 마음이 지은 것이라

3도를 기어다니며 어찌 깨닫겠는가

세세생생에 자꾸 씨앗을 그르치면

처음도 끝도 없는 괴로운 곳에 나리리

3도의 괴로운 과보를 어떻게 떠나리

갑자기 선각의 가르침 만나

육조는 경전 읽는 소리 듣고 도를 깨쳤으니

3장 (三藏) 의 부처님 말씀 왜 뒤에 남았는가

중생들 인도할 때에 입이 먼저 열렸네

여기서 비로소 잘못된 줄 분명히 알았나니

축생이나 귀신의 세계도 마음이 지은 것이요

천당도 지옥도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

옛 성인들은 본래 마음을 크게 깨달은 사람이다

 

혹은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익혀 삼독 (三毒) 이 일어났지만

삼독이 공 (空) 함을 익혀 안다면

보리의 제 성품은 저절로 삼매 (三昧) 이리

혹은 탐욕과 분노로

망령되이 허덕거려 번뇌가 새로운데

번뇌와 보리가 하나임을 알 때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공겁 (空劫) 의 몸이리라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뒤집어써서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자기 몸 괴롭히는 줄 알지 못하네

사람마다 물욕으로 사랑과 미움 생기거니

무슨 일로 지금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려 하는가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본래의 그 면목은 어디 있다 하겠는가

어찌하여 불조 (佛祖) 는 자취를 감췄는가

눈만 뜨면 모두가 본래 주인인 것을

어디서 참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청정 본연의 참 법신을 볼 수 있을까

모두 비어 한 물건도 없다고 말하지 말라

삼라만상이 다 본래 그 사람이네

 

나기 전에 잘못되었고

전생의 인 (因) 에서

엄연한 전생에 수행하지 않은 사람

잘못된 그 과보가 엄연히 이 생에 있나니

이 생에 닦지 않는 사람 후생에 괴로우리

죽은 뒤에 잘못 되어

금생에 지은 연 (緣) 에서

선업이나 악업의 인은 먼저와 나중이 없으니

부디 금생에 악업을 짓지 말라

금생에 지은 업으로 후생에 과보 받으리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되었으나

생사에 윤회하는 것 그 악법 때문이니

생사에 윤회하면서 그 괴로움 계속되리

원하건대 머리 돌이켜 정각 (正覺) 으로 돌아가라

한 생각에 무생 (無生) 을 깨달아내면

마음도 법도 무생 (無生) 이라 본래 나지 않으니

본래 나지 않는 것 어디 있는가

봄이 오니 온 누리에 풀이 청정하구나

잘못되고 잘못됨도 원래 잘못 아니리

당당히 깨친 뒤에는 끝내 잘못이 없고

고금의 성현들은 찾아도 그 자취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진실한 깨달음이네

 

거칠은 것에도 집착하고

애정에 떨어져

눈으로는 빛깔 탐하고 귀로는 소리 찾네

괴로움인 줄 알지 못하고 쾌락에 얽매여

물욕에 끌려다니면서 한 평생을 보낸다

미세한 데에도 집착하여

구하는 마음 있어

세상의 이름과 이익에 무심하지 못하나니

금과 은과 옥과 비단에 번뇌를 내어

물욕으로 탐내면서 괴로움 더욱 깊어진다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전연 깨닫지 못하다가

집착함이 어째서 잘못인 줄 알지 못하나니

마치 경솔한 부나비가 불을 탐하고

꽃술 찾는 벌이 향기와 맛에 집착하는 것 같네

갑작스런 외마디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지금까지의 허깨비는 바로 빈 몸이었네

본래의 면목은 어디 있는가

물건마다 일마다 새롭고 또 새롭네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리라

여여해서 흔들리지 않는 무위 (無爲) 의 즐거움

마음이나 법도 본래 그와 같아서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는구나

 

혹은 그르다 하여

좋지 않은 마음이 생겨 눈썹을 찌푸리고

갑자기 나쁜 말로 그를 나무라노니

그런 사람은 원래 선 (善) 이 아주 적었으리

혹은 옳다 하여

애정과 탐욕을 자주 일으켰다가

이별하는 고통 속에 빠져 있나니

삼현십성도 구제하기 어렵네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근심하다가

좋다 기뻐하고 싫다 근심하는 것이 어찌 다르랴

눈썹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셋도 아니요 하나도 아니며, 그렇다고 둘도 아니니라

어느 새 몸이 죽어 백골무더기뿐이니

마음도 비고 경계도 고요한데 이 무슨 무더기인고

세간의 어떤 물건이 죽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랴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백골무더기뿐이네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네

온갖 것으로 장엄된 보배는 고향에 있었나니

중생들은 탐애 (貪肯) 로 허덕거리지마는

오직 부처님은 6화 (六和) *로 자재를 행하셨네

 

이 마른 해골이

이것을 어찌할까

한 무더기 마른 뼈를 어떻게 보호할까

전생에 수행하지 않았거늘 지금 누가 보호하랴

혹은 진흙 구덩이에 있고 혹은 모래밭에 있네

한번 깨치면

큰 문이 열리고

깨친 사람의 뼈는 여섯 신통 트인다

예전에는 비싼 값으로 그 뼈를 사서

높은 누대 (樓臺) 위에 부도를 세웠다

광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서

원래 밝고 어두움과 번갯불 천둥은

큰 허공 속에서 숨었다 나타나지만

큰 법이야 원래 무슨 차별 있으랴

그로부터는 항하사 불조의

끝없는 지혜의 해가 허공에 가득 비치리니

삼라만상에 아무 의심 없어지고

큰 도는 여여하여 모자람이 없으리라

백천삼매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부러워하지도 않거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부처와 중생이 다 같은 무리니

여러분은 여기서 조금도 의심 말라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자세히 보아라

신령한 광명은 홀로 두루 비추어 빈틈없나니

본래의 참성품은 모든 반연 끊었고

참지혜는 끝없고도 무심하니라

무슨 허물 있는가

지극히 영롱하여

한 점의 티도 없이 모든 것에 통하나니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는 경계가 되고

지혜로운 사람 곁에서는 모두 다 순종하네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 되나니

물건마다 일마다 그 자리이며

티끌마다 세계마다 내 고향이라

라라리리 한마디에 태평하네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생사는 끊임없이 업의 바다로 흐르는데

떠돌이 아들은 고향떠난 지 얼마나 되었던가

생각하는 업의 바다 아직도 흐르는구나

겁석 (劫石) 도 그저 손가락 퉁길 사이에 지나가리

돌아올 겁석도 그 수가 항하사 같거니

고향 떠난 떠돌이 아들 오래됨을 어떻게 알리

앞뒤가 아득하고 한참 아득하구나

 

법도 없고

무엇으로 통할까

고요하고 아득하여 무지 (無智) 에 싸여 있네

적멸 (寂滅) 한 성품 안에서는 어떤 맛도 보기 어렵지만

어려운 중에도 이치와 일 두 가지는 공 (空) 하기 어렵네

부처도 없고

무엇으로 음미 (吟味) 할까

본래부터 성인도 없고 또 범부도 없고

원래 큰 바탕에는 더하고 덜함 없어

부처와 중생이 모두 똑같네

마음도 없고 물질도 없네

경계도 비고 마음도 고요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나니

경계와 마음, 마음과 경계를 어떻게 말할까

마음과 경계, 경계와 마음, 마음도 경계도 없네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이렇지 않은 것은 이런 것 가운데 이렇지 않은 것이요

이런 것은 이렇지 않은 것 가운데 이런 것이다

이런 것 가운데 이렇지 않은 것은 그대로가 이치인 것이요

이렇지 않은 가운데 이런 것은 이치 그대로가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치 그대로가 일이요, 일 그대로가 이치라 하지마는

거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나니

봄이 오면 여전히 온갖 꽃피고 오가는 새들은 갖가지로 지저귀며

풀이 푸른 언덕에는 소치는 아이 노래하네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운다

더울 때는 그늘로 가 음지에서 쉰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대로가 진실이라

일마다 물건마다 부처의 참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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