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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 2%들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6. 12. 9. 00:44

[시선] 축구계 2%들

2016.12.08 오후 06:23


해외축구 박문성 중앙일보 2002FIFA월드컵 오피셜북 필진, KBS R스포츠하이라이트, EA FIFA 게임 한국판 해설위원 ITV와 MBC 스포츠플러스 중계를 거쳐 현재 SBS Sport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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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집중은 축구계라고 다르지 않다.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


소득이 크게 갈리는 양극화 문제는 현대 사회의 최대 문제다. 부의 편중으로 경제 순환이 막히는 것도 그렇지만 계층 간 갈등으로 인한 사회 불안과 분열 등의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전 세계에 걸친 문제다. 미국의 소득 최상위 그룹 1%가 전체 부의 40%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도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쥐고 있다. 반대로 소득 하위 50%가 가진 전체 부가 2%에 지나지 않을 만큼 한국의 양극화는 여느 나라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1000억 원이 넘는 이적료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축구계 역시 양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주급(일주일 단위로 받는 급여. 실제 수령은 월 단위로 받는다) 몇 억 원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질 만큼 천문학적인 돈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오가는 축구계이지만 그 안에서도 당장의 생계를 꾸려가거나 미래를 계획해 나가기 쉽지 않은 선수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열흘 전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협의체인 국제 축구 선수 협회(FIFPro)는 회원국들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구체적인 조사, 진행, 분석은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이 맡았으며 급여, 계약, 이적, 승부조작, 건강, 폭력과 차별 등 총 23개 분야에 달하는 다양한 사례를 수집했다. 대상은 모두 53개국 87개리그 1만3876명이었다. 이탈리아부터 브라질, 미국, 남아공 등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대륙이 망라됐다.


축구 선수들의 절반, 월급 116만 원 이하


FIFPro가 11월 말 발표한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현황 보고서 표지

 


관심은 아무래도 축구 시장을 움직이는 선수들의 계약과 급여 조건이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축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선수들이 다들 뭉칫돈을 받을 것 같았지만 조사 대상 절반에 가까운(45.3%) 선수들이 월 1000달러 이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돈으로 하면 116만원이다. 연봉으로 따지면 1392만 원이다. 1001달러에서 4000달러 사이(116만 원~464만 원)도 29.1%에 달했다. 이 하위 두 구간을 합치면 74.4%%로 전 세계 축구 선수 10명 중 7명 이상은 연봉 5000만 원 이하를 받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월 4001~8000달러(464만 원~927만 원) 선수가 11.5%, 월 8001달러(927만 원~) 이상이 14.2%였다.


가장 많은 선수들이 몰린 구간인 1000달러 이하를 최대치로 잡아 주급으로 환산하면 29만 원이다. 일주일 동안 버는 돈이다. 현재 공개된 축구 선수 중 최대 주급으로 알려진 호날두의 주급 36만5000만 파운드(5억3484만 원)와 비교하면 무려 1844배나 차이가 난다. 전 세계 축구 선수들 45.3%의 주급이 호날두와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재계약을 논의 중인 메시의 주급 계약에 따라서 이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질 수 있다.


조사 대상자 중 초고액 연봉자들로 분류된 연봉 72만 달러(8억3455만 원) 선수들이 차지한 비율은 2%다. 공교롭게도 사회에서 양극화를 표현할 때 최상위 그룹으로 자주 쓰이는 비율과 다르지 않다. 이번 조사 결과 하위 45.3% 선수들의 연봉과 상위 2% 선수들의 연봉 차이만도 60배다. 하위 45.3% 중 아프리카 선수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아프리카에서 뛰는 선수들 중 73%가 월 1000달러 이하를 받고 있다. 물가 등을 고려하면 그들에겐 적지 않은 돈(물론 통계는 1000달러 이하로 한참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도 있다)일 수 있다. 하지만 1000달러 이하가 꼭 아프리카 선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남미 선수들 중에서도 47%, 유럽 선수들 중에서도 32%의 선수들이 월 1000달러 이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 체불 등의 극과 극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구간 별 임금 비교

 


이마저도 제때 월급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조사 대상자들 중 41%의 선수들이 최근 2년간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의 급여 체불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구단 사정의, 저임금 선수들의 급여가 체불된 사례가 많았다. 아프리카 선수들 중 55%에 달하는 선수들이 임금 체불을 겪은 데서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또한 미대륙 선수들 중 40%, 유럽 선수들 중에서도 35%에 달하는 선수들이 임금 체불을 겪었을 정도로 특정 지역 선수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FIFPro는 지난해 매년 4000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임금 체불로 FIFA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금액 차이도 차이지만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극과 극의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오늘날 축구계의 현실이다.


양극화 현상은 K리그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공개된 K리그 클래식 선수들의 연봉 차도 컸다. 전북이 선수들의 연봉 총액으로 120억 원을 쓴 반면 대전은 19억 원에 그쳤다. 선수 개인 차도 컸다. 최고 연봉이 10억 원을 넘었지만 최저는 2000만 원에 불과했다. 2015년 K리그 클래식의 선수 평균 연봉은 1억4830만원이었는데 이를 사이에 두고 최고와 최저의 격차가 상당했던 것이다.


앞서 소개한 FIFPro의 조사 결과는 하지만 거대 시장인 잉글랜드와 스페인, 독일의 리그 선수들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온전하게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소득과 연봉 수준 등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돈에 있어서만큼은 유럽과 필적하는 시장이 된 중국도 이번 조사에는 빠졌다. FIFPro는 이후 이번에 빠진 리그와 선수들을 합쳐 보강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뜻을 보고서에 담았는데 이들 거대 시장들이 포함되더라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 하나 있다.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축구 선수와 시장 간의 격차다. 거대 시장이 보고서에 포함되면 격차가 더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들 일이 없다. 축구계 양극화의 현실이다.


공정한 시선


현 주급 최고액으로 알려진 호날두

 


일정한 격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스포츠처럼 플레이 하나하나에, 경기 하나하나에, 결과 하나하나에 차이와 희비가 분명하고도 즉각적으로 갈리는 영역에서는 더하는 일이다. 구단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투자를 늘려 높은 연봉을 지불하고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는 걸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양극화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에이스 선수와 신인 선수의 주급을 물리적으로 조정하는 일은 더더욱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대우는 오로지 실력과 능력이어야 한다.


하지만 제도와 환경 개선에 있어서는 생각할 문제가 있다.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심해지면 사회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듯 축구계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의 몇몇 리그가 팀 간의 극심해진 양극화로 시장의 혼란과 위기를 겪은 데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격차가 심해지다 못해 쓰러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구성원이 사라진 시장은 성립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선수들을 돕는 정책적, 제도적 장치는 따라서 고민해야 한다. 최저 연봉 인상과 일반적으로 30대 초반이면 은퇴하는 선수들의 삶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의 선수들의 은퇴 뒤 진로를 교육하고 지원해 주는 방법 등이다. K리그가 연 1200만원이던 최저 연봉을 2000만원으로 인상한 것 등이 한 예다.


이번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연봉을 포함한 다양한 현실을 조사 공개한 FIFPro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FIFPro는 “선수와 팀, 리그 간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축구 시장이 너무 스타 위주로만 돌아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경기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모든 제도가 너무 그들에게만 맞춰져 돌아가는 것 같다. 이번 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 대다수의 축구 선수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상습적인 급여 체불, 일방적인 계약 해지와 갱신 요구 등에도 시달리고 있다. 이를 막아달라고 하는 것이며 관심 가져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렇게 모든 선수들을 위한 공정한 제도와 시선 그 뿐이다.”

기사제공 축구전문가 박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