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과학적 종교 - 기독교
1) Bible은 과학적인가?
+ 7)북녘에 있는 당신의 거처를 공허 위에 세우시고 땅덩어리를 허공에 달아 놓으신 이, 8)뭉게구름으로 물을 싸 두셨는데 그 물의 무게에 구름이 터지는 일도 없네. 9)구름을 밑에 깔아 당신의 보좌를 가리우시고 10)물의 표면에 둥근 금을 그으시어 빛이 끝나고 어둠이 시작되는 곳을 표시하셨네. 11)하느님께서 꾸짖으시면 하늘을 받친 기둥들이 놀라 흔들거리니 [욥기 26:7~11]
기독교인들은 위 7절의 내용 “땅덩어리를 허공에 달아 놓으신 이”라는 표현을 들어 지구를 허공 중에 있다고 한 것은 Bible이 매우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한다.
그러면 이 구절의 뒤에 나오는 8절의 “ 뭉게구름으로 물을 싸 두셨는데 물의 무게에 구름이 터지는 일도 없네”라는 구절과 11절의 “하느님께서 꾸짖으시면 하늘을 받친 기둥들이 놀라 흔들거린다”는 구절도 과학적이라고 우길건가? 하늘을 기둥이 받치고 있다고 믿는 이 우주관은 바로 바빌로니아의 우주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욥기 38:1~6절에는 야훼조차도 직접 자신의 입으로 이 ‘기둥’ 얘기를 하고 있다.
+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어디에 땅을 받치는 기둥이 박혀 있느냐?
그 누가 세상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욥기에 있는 땅을 허공에 단다는 것이 과학적이면 나머지 구절도 역시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이 외에도 Bible에는 다음과 같은 비과학적인 얘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 창세기에는 별들과 태양, 달이 지구와 지구에 있는 풀이나 채소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말한다. 세째날에 채소와풀,땅을,바다를 만들었다고 하고 네째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구의 나이보다 태양이 1억년 정도 앞선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고, 태양없이 초목이 자라지도 못한다. 태양이 없다면 지구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정도이다. 그러나 이미 은하계에는 60억년~150억년이상의 늙은 세대의 별(은하계의 중심부와 헤일로에 있는 별)이 있으며, 여기에는 신성,거문고RP형 변광성,미라형,변광형,행성상 성운,구상성단의 별들이 속한다.
또한 이것은 우리 은하계에만 해당하는 것일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계나 셀수 없는 다른 은하계에대한 것은 헤아릴수도 없을 정도이다. 더욱이 별은 동시에 만들어진 것도 아닌 것이다.
지구보다 훨씬 오래 전에 만들어 진 것도 있는 반면에 젊은 것도 있다.
분명 창세기는 지구의 관점에서 땅과 초목을 만들고 태양과 별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남조류는 4억년전에 나타났고 최초의 바다동물은 6억년전에 나타났다. 최초의 육지 꽃을 피우는 식물은 1.2~1.5억년전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꽃이 있는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것이다.
▷ 노아의 홍수
노아의 방주의 크기는 성서에 의하면 길이 약100m 넓이 약 20m 높이 약10m 정도라고 합니다. 바닥면적만 약 606평 정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아방주의 적재량은 2m로 균일하게 쌓아 놓는다면 약 4,000톤급이 된다. 3m로 균일하게 쌓아 놓을 수 있다면 약 6,000톤급이 되는 것이다. 철근이나 철판을 사용하지 않고 4,000톤급 ~ 6,000톤급의 거대한 배를 전나무로 만들 수 있을까? 폭풍 속에서 약390~430일 동안 파손되지 않고 물위에 떠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바닥면적 606평에 이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암놈 숫놈 한 쌍씩을 태울 수 있을까? 수만 수십만 종류의 육지 동물과 절지동물들, 새들이 겨우 606평에 들어설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불가능하다. 바닥 면적이 606평의 100배인 60,060평이 된다고 하여도 그 동물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하여도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더구나 배에 실은 동물들이 약 390~430일 동안 먹을 음식과 물의 량은 그 동물의 무게와 부피의 10배 이상이 되어야 할 테니 모든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잘 알아 듣고 제자리에서 먹고 싸는 행동만 할 경우에도 배의 바닥면적이 600,000평(거의 여의도면적) 이상은 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동물들이 어디 제자리에서 먹고 쌀 수만 있나? 움직이지도 않고.....) 결론적으로 바닥면적 606평의 노아의 방주를 전나무로 만들어서 그 배가 기적적으로 파손되지 않는것이 사실이라고 하여도 그 노아의 방주에 타서 390~430일간 살아남을 있는 사람과 동물은 노아부부와 세 아들과 세 며느리 그리고 집에서 기르던 가축정도일 것이다.
노아의 홍수는 어차피 수메르 신화의 표절일 뿐이고 실제로 홍수가 있었다고 해도 코딱지만한 중동 땅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마치 전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처럼 침소봉대한 것에 다름 아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던 그 당시에는 동양에서도 큰 홍수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고조선 제1대 단군 왕검 말기이고 중국을 통치하던 은나라의 순(舜) 임금때이다. 은나라 순임금의 명을 받은 ‘우(禹)’라는 사람이 홍수를 막는 방법을 배우려고 지금의 양자강유역인 회대지방(지금의 산동반도 남쪽 에서 양자강 이북지방)을 순시하던 단군왕검의 태자인 부루태자(후에 2세황제에 오름)께 와서 무릅을 꿇고 간청을 합니다. 이에 부루태자께서 금간옥첩(홍수 막는 방법을 적은책)을 하사하시였습니다. 이 은나라의 우라는 사람은 후에 홍수를 극복한 공으로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노아의 홍수는 여호와의 전지전능한 힘을 보여 주려는 신화 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와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만들고 예수를 그 전지전능한 신이 아들로 만들기 위하여 과학이 발달하기 전 역사가 발달하기 전에 써먹던 설교나 강론은 그만 두라는 겁니다.
▷ Bible대로라면 지금 살고 있는 수백의 인종, 수십 억의 인구는 모두 BC 2500년에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 8명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물론 백인종이었을 노아의 자손들 가운데 일부가 그때부터 서서히 변해 흑인과 황인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진화론자들조차 이처럼 짧은 세월에 백인에서 황인이나 흑인으로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더 급격한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 인류의 역사를 아담과 이브로부터, 즉 6000년 전부터로 보고 있는 것 또한 비과학적이다. 이미 그보다 오래된 7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헨조다로와 하랍파 유적이 이를 증명한다.
▷ 레위기 11:19 과 신명기14:11-18에는 박쥐를 새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박쥐는 새가 아니다.
▷ 레위기 11:6 에는 “토끼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토끼(hare)가 cud(반추동물이 일단 음식을 먹은후 일부 소화시킨 후 나중에 위에서 입으로 다시 보내서 먹는데 이것을 말하는 것임)를 먹는다고 한다. 토끼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참고로 아래의 글을 읽어보라.
“Gerah라고 불리는 것은 cud 혹은 낱알이나 혹은 곡물이나 혹은 씨앗을 말한다. 이것은 똥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히브리어로 이것을 표현하는 완벽하게 적절한 말이 있다. 게다가 KJV의 ‘cud를 씹는다’는 말은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cud를 위(즉 입)로 올린다‘라는 의미이다. 토끼는 위에서 아무 것도 다시 입으로 올리지 않는다. 토끼는 음식을 먹은후 배설을 하고 다시 먹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레위기의 묘사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토끼는 그들의 똥을 먹는다. 즉 아무 것도 입으로 다시 토해내서 씹지 않는다.“[Robert Low]
▷ 레위기 11:21~23 에는 4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을 말하고 있다. 그 예로 메뚜기, 방아깨비, 각종 누리, 각종 귀뚜라미를 들었다. 그러나 곤충은 다리가 6개이다.
▷ 창세기 30:33~41 나무 껍질을 벗겨서 줄무늬가 생기도록 한 다음 양들을 그 앞에서 교미를 하도록 하여 태어난 양들의 새끼가 나무의 껍질의 모양을 따라서 줄무늬가 있거나 점이 박혔다고 하는데 나뭇가지는 새끼의 형질 변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창세기 3:14 뱀을 보고 먼지(혹은 흙)를 먹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뱀이 낮은 곳에서 기어다녀서 흙을 먹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 같으나 뱀은 흙을 먹지 않는다.
▷ 교회는 다음의 성경의 구절로 갈릴레오를 굴복시켰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성경이야말로 진리이므로 성경의 말씀을 부정하면 악마로 몰려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재판정에서 성경구절을 대자 갈릴레오는 반박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1. ... The world is firmly established; it cannot be moved. (Psalms 93:1) ......지구는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시편93:1]
2. ... The world is firmly established; it cannot be moved. (1 Chronicles 16:30)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하는도다 [역대상 16:30]
3. He set the earth on its foundations; it can never be moved. (Psalms 104:5)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시편 104:5]
4. .... Joshua said to the LORD in the presence of Israel: "O sun, stand still over Gibeon, O moon, over the Valley of Aijalon. (Joshua 10:12)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이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여호수아 10:12]
미국의 성서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구절을 근거로 아직도 ‘천동설’과 ‘평평한 지구’,‘창조론’ 등을 액면 그대로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근본주의자들은 ‘천동설’과 ‘평평한 지구’는 자신이 없었던지 오히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암시하는 성경구절을 열심히 찾아서 성경은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과학단체까지 만들어 ‘창조론’을 옹호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2) 기독교와 과학 발전과의 관계
백인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잘 살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과학 문명이 우리보다 먼저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의 그 과학문명이라는 것은 사실 기독교와 반비례해서 발달했다.
기독교가 있기 전 그리스에서 싹트기 시작한 과학의 맹아는 기독교에 밟혀서 죽어 버렸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그리스인들은 벌써 지구의 둘레를 큰 오차 없이 계산해 낼 정도였는데, 그 후 거의 2,000년이 지난 후 중세 서양 사람들은 지구의 둘레는커녕 지구가 둥글다는 것조차 잘 모를 정도로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이다. 성경과 기독교를 믿으면 믿을수록 합리적, 과학적인 사고에서 멀어졌다. 모든 병이 악마의 탓이니 전염병이 돌면 교회의 종을 열심히 치라거나 헌금을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식의 미신만 늘어갔다. 그래서 한마디로 기독교가 가장 번창한 중세를 소위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물론 중세의 서양은 아랍보다 과학이 더 발달하지도 못했고 중국보다 더 잘 살지도 못했다.
그렇게 미신의 암흑 속에 살던 그들이 과학 문명을 배우고 개화되기 시작한 것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아랍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로부터 천문학, 수학, 화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받아들이고, 또 아랍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인들의 철학, 과학책 등 - 그들은 모두 쓸 데 없는 것이라고 벌써 오래 전에 거의 잊어버렸던 것 - 을 접했을 때부터이다. 그리스 시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책을 보면서 ‘알고 보았더니 이렇게 다른 세상도 있구나.’하면서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그후 서서히 성경을 의심하고 버리기 시작하면서 마치 그동안 성경에 속은 것이 분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열심히 천문학, 지질학, 의학 등 과학에 몰두하다 보니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했던 것이다.
3) 기독교의 공헌 - 이원론의 종교, 철학, 과학
천동설이 지배하던 세계에 있어서는 우주의 중심은 지구며 지구의 중심은 이태리의 바티칸이며, 바티칸의 중심은 교황이다. 교황은 우주의 중심이며 우주의 모든 권위가 신의 대행자인 교황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우주가 지동설로 그 해석이 바뀌게 되면, 지구는 저 은하계의 먼지가 되며, 바티칸은 저 먼지의 먼지가 되며, 바티칸에 앉아 있는 교황은 저 먼지의 먼지의 먼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금은으로 휘둘르고 헛폼잡고 계시던 교황님께서 어찌 지동설이 마귀처럼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교황청은 그 당시 과학자들을 모두 “통닭”으로 만들어 버릴려고 했다. 즉 종교재판(Inquisition)이라는 명목하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그 위에 앉혀놓은 그 머리좋은 과학자들을 모두 바비큐로 만들어 먹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과학이라는 것을 무슨 자연의 객관적 탐구로 알고 있다. 참 한심한 개소리들이다. 그대들의 과학 선배님들에게 과학이란 목숨을 건 투쟁이었으며, 가치세계와 도저히 2원화될 수 없는 우주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최소한 칼 맑스의 『자본론』보다 더 강력한 정치질서의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양심있는 철학자, 도미니칸의 중이었던 지오르타노 부루노(Giordano Bruno, 1548~1600)가 그의 코페르니쿠스천문학과 범신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에 장작더미 위에서 “통닭”이 되어버린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통닭이 되어 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머리 좋은 놈들은 머리 좋은 놈들끼리 머리 나쁜 신부새끼들에 대항하여 연합세력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좋은 데카르트는 이러한 판에 물리학자들을 살려놓을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인의 양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의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그들의 친구들을 원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카르트의 전략은 이러한 것이었다. : 우주의 궁극적 본체로서 정신과 물질의 두 실체를 설정하자. 그리고 실체의 정의에 있어서 신부놈들의 “자기원인”이라는 논리를 빌리자. 그러면 정신은 자기원인이고 물질도 자기원인이 된다. 그러면 정신과 물질은 서로 교섭작용이 없다. 그렇게 해놓고 정신은 신부놈들에게 먹고 떨어지라고 주고 물질은 과학자들에게 먹고 떨어지라고 주자! 그러면 신부와 과학자는 서로 서로 자기원인적 독립적 법칙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서로 싸움을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기발한 작전은 기막히게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음모였다. 인간의 이해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서로 교섭하지 않는 이원적 실체로 갈라지게 되었다. 물질은 정신이 없는 물질이 되어 버렸고, 정신은 물질이 없는 정신이 되어 버렸다. 물질은 죽은 것이 되어 버렸고 정신은 공허한 것이 되어 버렸다. 과연 그런가? 이것은 데카르트철학의 최대의 빵꾸며, 인류근대사의 최대의 빵꾸다! 데카르트는 단순히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세운 전략이었으나 그것은 뒤에온 뉴토니안 패러다임과 함께 약 3세기 이상 인류사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한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의 가설 위에서 모든 과학적 탐구가 진행되게 된다.
이 얼마나 위대한 기독교의 업적인가? 기독교의 테러를 피하려고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산물이 오늘날 인류문명에 가장 큰 폐악을 끼치고 있는 이원론인 것이다.
4) 창조과학은 반과학
다음은 어느 지질학 교수가 “창조과학은 반과학”이란 제목으로 쓴 칼럼 중의 일부이다.
“도도한 물줄기 가장 자리에 역류가 생겨나듯이 과학 발달의 홍수 옆에 오히려 비과학, 사이비 과학, 사이비 종교가 극성이다. 자칭 ‘창조 과학회’라는 창조론자들은 일부 기독교회의 후원을 등에 업고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특징은 몹시 선동적이고 열정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지질학이나 진화과학에는 문외한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 관해 전문가보다 더 잘 아는 척하고 강단에 서서 대중에게 지질학의 기본 원리들이 오류라고 선동한다. 지질학을 타도함으로써 창조론을 성립시키려는 기이한 음모가 ‘창조 과학자’들의 전략이다. ‥‥‥ 자기 전공에도 바쁠텐데 왜 미국의 거짓 과학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가 하는 생각에 나는 그 젊은 강사(창조론을 강의하고 다니는 과학기술원 출신의 물리학 교수)가 불쌍해졌다. 아예 상대도 안되는 그들의 억지 주장에 대해서 지질학, 진화 과학의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체로 묵살과 미소로 대해왔다.”
다음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내용으로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창조와 진화지구환경과학1"에서 양승영 경북대교수님의 글입니다.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몇몇 내용들을 열거하여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 지구상의 생물이 모두 일시에 창조된 것이라는 주장
태초에 모든 생물이 완벽하게 창조되어, 지금까지 종의 진화 없이 유지, 존속되어 왔다는 창조론자들의 이야기는 지질학과 생물학에 관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온 것이다. 지질학은 스미스 이후 화석생물의 층서학적 분포에 의해 지질시대를 결정해 왔고, 지질계통을 수립해 왔다. 화석의 층서학적 분포는 직접관찰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추론이나 가설이 아니다. 즉, 고생대에는 고생대 특유의 생물군이 살았고, 중생대에는 중생대 특유의 생물군이 존재했다. 어느 생물군도 전 지질시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존해 온 생물은 없다. 다시말해, 지질시대를 통해 생물종의 전환이 수없이 있어 왔다.
▷ 지구의 나이가 6천 년 또는 1만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주장
이는 성서의 연대기를 합산해서 나온 것일 뿐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이 문제는 지질학의 태동기에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걸러진 것들이며, 이를 재론할 필요는 없다. 하천에 굴러 떨어진 조약돌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 수 있다. 수십 km 떨어진 상류의 어느 암석이 풍화되어 떨어져 나온 돌조각이 현재 위치까지 운반되어 오는 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우선, 바위가 풍화되어 돌조각으로 떨어져 나오는데도 수천 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그 돌조각이 현재의 위치로 운반되는 데 걸린 시간만도 수만 년 이상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과거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된 사실을 야외에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 화석은 노아 홍수 때 익사한 생물의 유해라는 주장
이는 오래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정확한 해석을 내린 일이 있다. 즉, 노아의 홍수로 죽은 생물의 시체라면 지표면에 던져져 있어야지 어떻게 암석 속에 그 구성 성분으로 들어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따라서 화석은 노아 홍수와 관계없이 지층이 퇴적되던 당시에 지구에 살던 생물의 유해이고 바다생물이 높은 산악지대의 지층 속에서 발견되는 현상은 그동안 있었던 지각변동을 가르키는 것이라는 매우 근대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 물고기도 물에 빠져 죽는가?
▷ 노아홍수는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주장
"깊은 계곡의 모든 샘이 터져 나왔고, 하늘의 창문들이 모두 열려 40일의 낮과 밤으로 비가 내려 땅을 뒤덮었으며... 모든 산들이 물에 잠겼다.(창 7;11-22)."는 내용은 비유나 시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를 역사적인 사실로 주장하기 위해서 증거를 모으는 것은 무리이다. 비가 아무리 내린다 해도 바닷물이 늘어 해수면을 상승시킬 수는 없다. 강수현상은 물의 순환현상이기 때문이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 다소 해수면의 상승이 일어날수 있으나, 이것도 수십만년 단위의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지구상의 모든 산이 물에 잠길 정도라면 현재 해수의 3배 이상의 물이 있어야하며, 이러한 물이 지구의 어디에 있었고, 홍수가 지난 뒤 지구의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문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창조론자들의 공통적인 잘못은 진화의 사실과 진화의 학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이란 실체가 존재로서 증명되든지 확실하게 추론되는 것'이다. 생물학자와 고생물학자는 수많은 증거들이 모아짐으로써 오래 전에 생물의 진화를 하나의 사실로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학설'은 '사실'과 다르며, 다만 과학적 정보나 지식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설은 새로운 증거를 찾고, 새로운 정보나 설명으로 계속 검토하고 연구되어 수정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진화에 관한 의견에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점은 '진화의 사실'이 아니고 '진화의 학설'에 있는 것이다.
▷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창조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창조론이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의 말이 과학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고수하는 때에 한해서이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창조론을 주장하는 일은,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종교 활동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의 기원이나 진화의 문제는 순수한 자연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는 과학에서 얻어지는 연구결과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성서의 문자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과학의 연구결과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종교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어느 종교가 과학이거나 과학적이기 때문에 존립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며, 종교와 과학은 서로 차원이 다를 뿐만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세속적인 과학의 발달에 방어적일 필요가 없으며, 이를 폭넓게 수용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성서의 기록을 현대과학의 시각에서 평가하는 일이 잘못인 것처럼, 성서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현대과학을 비판하는 일이 잘못이다. " 창세기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다. 하나의 신화이다. 신화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종교의 임무이다." 고 하는 어느 종교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5) 창조론과 근본주의
다음의 내용 역시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인데 창조론과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들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 제 목: 시작: 창조론의 배경
글쓴이 : 정은수 (readex3 ) 1998-05-13 16:57
<들어가는 글: 창조론의 배경>
창조론을 처음 접하는 비개신교인들은 그들의 비이성적이고도 허무맹랑한 이론에 분노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물리칠 과학적 반론을 연구하며 토론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깨닫게 되는 것은 창조론자들이 과학적 진실을 위한 노력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과학을 공격함으로서 그들이 잃어버렸던 성경에 대한 권위를 되찾는 것에만 유일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토론하면 할수록 허탈감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또한 진화론의 편에서서 창조론과 싸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창조론의 신학적,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알지 못한채 그들의 공격에 대한 과학적 반격에만 힘을 기울이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은 한가지 방향에서 보아서는 그 실체와 진실을 파악할 수 없읍니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으로 그 현상을 바라볼 때야 비로소 올바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단면적인 접근으로는 반이성적 괴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읍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창조론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 아니라 왜, 어째서 이런 사이비 이론이 과학의 탈을 쓰고 공공연한 포교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창조론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 내었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이 시대의 한 부분을 흔들고 있는 사이비 이론-"창조론"에 대한 진정한 모습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창조론의 기본 사상이 되는 근본주의의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읍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크리스트교의 역사와 기본교리에 관한 간단한 고찰이 언급될 것입니다.
비크리스트교인들은 이러한 신학적 언급에 대하여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포교되고 영향력있는 종교의 하나에 대한 공부로 생각하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부: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창조론의 기원은 물론 구약성서입니다.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삼는 종교는 많습니다. 구약성서의 집필자인 유태교, 이슬람교, 그리고 크리스트교인 카톨릭,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Protestant)입니다. 불교와 힌두교등을 제외하면 세계의 유명한 종교는 다 모아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만큼 창조론은 어떤 의미에서 오래된 이론입니다.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이 세계와 자신들의 기원에 관하여 궁금해했고 그것에 대한 당연한 한가지 해결책으로 창조주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창조론은 일단 카톨릭 교회에 의하여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카톨릭 교회가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근거하여 형성한 이론은 크게 (1)창조론과 (2)평평한 지구론(Flat Earth)입니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그 유명한 종교재판소에서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독백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과학의 진실에 도전하려 했던 종교의 명백한 패배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구절이 되었고 현대에 이르면서 과학은 그 어떤 권위도 능가하는 사회적인 믿음이 되었읍니다. 그런데 이 과학의 업적에 정면으로 도전한 개신교의 종파가 바로 "근본주의"(Fundamentalism)입니다. 근본주의란 과연 무엇 일까요?
근본주의의 기원은 종교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틴 루터는 처음에는 교회 내부의 개혁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지만, 후에 각국의 정치세력과 연합하여 기존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정면으로 반발하여 독자적인 신학이론을 구성합니다. 기존의 카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신학적으로는 베드로의 권위를 승계받은 것이며, 천국의 열쇠 (마태복음16장)를 그 승계자인 교황이 가지고 있읍니다. 따라서 이런 권위에 대항하기 위해 개신교는 3가지의 기본이념을 만들어냅니다.
1. Sola Scriptura(성경만의 권위), 2. Sola Fide(믿음만의 종교), 3. 모든 신자의 성직성(Priesthood of All believers) 이중에서 sola scriptura는 bible alone 혹은 bible only라는 뜻으로서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종교적 권위를 가지며, 성경을 연구하는 개개인의 개별적 해석(private interpretation)이 가능함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읍니다.
여기에 개신교의 기본적 모순성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성경을 유일무이한 권위로 인정하면서도 그 해석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인 수만 가지의 종파를 낳게 된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옥스포드에서 발간한 크리스트교 백과사전에는 1982년에 20,800여개의 개신교 교단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1985년에는 22,190여개로 해마다 270여개의 새로운 교단이 생겨나서 현재에는 약 28,000여개이상의 종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어쨋든 종교개혁은 보수적이던 크리스트교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어서 개신교는 그후로도 계속 자유주의적(liberal)인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미국에 개신교가 정착할 무렵인 19세기 말에는 성경의 신화적 측면보다는 도덕적, 이념적 측면을 보다 부각하여 적극적으로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는 사회복음주의(Social Gospel)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그 중 일부에서는 아예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도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처음부터 기독교의 박해를 딛고 포교를 시작하여, 교회의 부패와 종교개혁을 경험한 유럽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적 역량을 갖고 있었지만, 청교도의 신대륙인 미국은 그렇지 못했읍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교도인 인디언을 학살하거나 모조리 교화시켰으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흑인을 노예로 부리다가 남북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남부의 대부분과 북부의 일부 교인들은 보수적인 종교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자유주의로 진화해가는 종교에 반발하게 됩니다. 기본적 이념들은 B.B. Warfield나 Charls Hodge같은 사람들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한세기 전에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열린 장로교 신학 세미나에서 등장합니다. 물론 그 당시 열기가 달아오르던 사회 복음운동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이념들이 비로소 한곳에 집대성 된 것은 1909년에 석유산업으로 때돈을 번 Milton과 Lyman Stewart형제가 발간하여 무료로 배포한 "The Fundamentals"라는 12권의 책들입니다. 그들의 보조금은 당시 금액으로 30만불이었으며,1920년까지 광범위하게 미국내에 배포되었읍니다. 64명의 기고가가 있었으며 감독파 주교들, 장로교 목사들, 감리교 성경학자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이집트학 학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제리 팔웰(Jerry Falwell)이 세운 침례교회의 한 목사는 "그들은 분명히 반지성적이거나 사기꾼이거나 광신적이거나 반계몽주의자들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은 그들의 목적을 말해줍니다. <1909년에 하나님이 두 신도에게 큰 돈을 내게 하시어, 크리스트교 믿음의 근본을 확립하는 열두권의 저서를 발간하게 하시고, 영어권을 통털어 목사들과 선교사들, 주일교리 교사들과 적극적으로 교회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게 하셨다>
이 책들은 300만부가 발간되었으며 한 자유주의자가 기독교계 잡지에 기고한 글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들은 승리할 것인가>에서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규정하기 위해사용한 근본주의자란 말이 근본주의의 어원이 되었읍니다.
이 근본주의가 한국에서 소위 정통파 기독교로 불리우는 장로교,침례교,성결교회, 감리교, 순복음교회등의 일련의 교단을 가리키는 말이며, 미국에서 형성되어 미국에서 완성된 개신교의 한 종파인 것입니다. 이들의 성향은 지극히 보수적이며, 미국적이고, 완고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들의 기본이념은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읍니다. (1)성서의 영감성과 무오류성, (2)(처녀수태와) 그리스도의 신성, (3)그의 죽음에 의한 보상, (4)문자 그대로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5)재림의 날에 문자 그대로의 귀환.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창조론과 연관된 것만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와 달리 성경의 신화적 측면을 강조하여 성경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라는데 집착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성경에 대한 해석은 자유주의적(liberal)인 해석이 희석시키기 쉬운 그리스도의 신성과 처녀수태, 말 그대로의 부활과 재림에 강조점이 있읍니다.
또한 그렇기때문에 창세기도 사실이고 7일만의 천지창조나 노아의 방주나,바벨탑도 평평한 지구도 모두 사실일 수 밖에 없읍니다. 그들에게는 사회복음운동뿐 아니라 인간을 한낱 원숭이의 자손으로 생각하는 다윈주의 나아가서는 유물론까지도 모두가 배척의 대상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본주의는 그렇게 시작되었읍니다. 그리고 일차세계대전이 끝난 미국의 테네시주는 급기야 모든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중세기적, 반이성적 법률을 통과시키게 되고 이로 인해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굴복한 이래로 가장 유명한 소위 "원숭이 재판"이 1925년에 벌어지게 됩니다.
그럼 창조론과 진화론이 법정에서 대립했던 세기의 드라마인 원숭이 재판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2부: 원숭이 재판>
1차세계대전이 끝난 미국은 전쟁전의 정상적인 사회를 동경하는 분위기가 고조 되고 있었읍니다. 특히 남부나 중서부등의 시골에서는 보수주의의 경향이 강한 근본주의가 유행하고 있었읍니다. 근본주의는 개신교의 자유주의적인 성향에 반발하여 생겨났지만, 이제 그들의 가장 강력한 적은 인간이 원숭이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다윈주의(Darwinism)였읍니다. 1925년경에 남부의 주들은 진화론을 금지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었고 1925년초에 테네시주도 학교에서의 진화론교육을 금지하는 소위 버틀러법(Butler law)를 통과시키게 됩니다. 이것이 드라마의 발단이 됩니다.
이법에 도전하기 위해 라펠리아(George W. Rappelyea)를 비롯한 5명의 사람이 F.E.로빈슨의 잡화점(drug store)에 모여 계획을 세우고 재판정에 설 교사를 물색합니다. 여기에 뽑힌사람이 스콥스(John T. Scopes)라는 24살난 생물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였읍니다. 그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은 재판에 나설 것을 결심했으며 전세계의 이목을 끈 "스콥스 대 테네시주", 소위 "원숭이 재판"으로 불리우는 세기의 법정드라마의 무대가 꾸며집니다. 그 주연급 배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클라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 - 근본주의자들의 오만에 맞서기 위해 스콥스의 변호를 자원한 명망있고 유능한 변호사.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 Bryan) - 세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유명한 법률가. 독실한 근본주의자이자 테네시주의 검사측 변호를 맡음.
진화론을 가르친 죄로 기소된 스콥스를 재판하는 이 테네시주의 재판은 1925년 7월 10일부터 25일까지 열렸으며 홍콩에서까지 특파원이 취재오는 등의 전세계적인 주목을 집중시켰읍니다. 이런 반이성적인 법률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유럽은 경악하면서도 재판의 경과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꽉들어찬 재판정은 무더웠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읍니다. 밖에서는 "성경을 읽으라.(Read your bible)"이라는 표어가 나부끼고 수많은 기독교인들-모두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책을 들고 항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고측 변호사의 한사람인 스튜어트가 대로우를 공격하면서 그는 "자연의 목표로 부터 너무 많이 어긋나"있으며 자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그들을 물리치겠다고 선언하자 법정은 "아멘"의 외침으로 가득찼읍니다.
브라이언이 "진화론자들은 결국 우리를 미국 원숭이가 아닌 유럽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결론지을것이다"라고 조소하면 법정은 동조하는 고함소리로 가득해집니다. 재판정의 분위기는 이렇듯 압도적으로 원고측을지지하는, 마치 교회를 방불케하는 "아멘"의 합창이 계속된 것입니다.
대로우의 변론계획은 일련의 과학자들과 전문가를 증인으로 등장시카려는 것이었지만 원고측은 재판정과 국가기관을 진화 이단론자들의 포교무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려하고 있었읍니다. 결국 원고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과학자들이 배심원들 앞에서 진화론의 타당성을 설명하려던 원래의 피고측의 계획은 철저히 저지되고 말았읍니다. 여기에 항의해서 판사와 말싸움을 벌이던 대로우는 법정모독죄로 5000불을 선고 받기까지 합니다. 피고측은 위기에 몰렸고 보기좋게 창조론자-근본주의자들을 물리치려던 계획은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읍니다.
그 다음날, 판사는 재판정이 더위와 인파에 밀려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잔디밭으로 장소를 이동합니다. 잔다밭위에서 5000명의 관람객이 보는 앞에서 재판은 진행됩니다. 여기서 대로우는 그의 최후의 선택으로 원고측 변호사 브라이언을 증언대에 세울것을 요구합니다. 만일 피고측이 진화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빼앗긴다면, 대신 브라이언과 성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논리였읍니다. 브라이언은 피고측 변호사도 증언대에 설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재판과 여론의 분위기는 급변하게 됩니다.
드디어 원고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이 증언대에 섰읍니다.
대) 브라이언씨, 당신은 성경에 관한 상당한 공부를 하셨지요?
브) 네, 그러려고 노력했읍니다.
대)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문자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
브)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은 거기 있는 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 그러면 요나가 고래에 삼켜졌다는 것은 문자그대로 해석되야 하나요?
브) 내가 읽을 때는 큰 물고기였지 고래가 아니었읍니다.
대) 네 좋습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거기에 사흘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육지로 올라왔다. 그럼 그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습니까?
브) 난 그렇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이 그렇다고 하는 거죠.
대) 그러면 그 물고기가 보통의 물고기인지, 요나를 위해 만든 물고기인지 모른다는 말이죠.
브) 대로우씨는 추측할 수 있겠죠. 당신들 진화론자는...
대) 그 물고기가 특별히 사람을 삼키기 위해 만들어 졌는지 말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겁니까?
브)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도 말할 준비가 안된 겁니다.
대) 그렇지만 신이 만들었다는 것은 믿겠죠?
브) 네. 한가지 더 말하죠. 하나의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믿는 것과 똑같이 쉽죠.
대) 똑같이 어렵지 않구요?
브) 당신에게는 어렵겠지만, 나에겐 쉽습니다.
대) 요나가 고래를 삼켰다는 것을 믿는 만큼 쉽습니까?
브) 만일 성경이 그렇다면요. 성경은 진화론자들이 하는 그런 극단적인 주장은 하지 않...
대) 성경이 여호수아에게 태양이 서 있도록 명령했죠, 그렇죠? 그리고 그걸 믿구요.
브) 믿습니다.
대) 그 당시에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있다고 믿습니까?
브) 아니오,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믿습니다.
대) 그렇다면 태양을 서게 함으로써 낮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믿습니까?
브) 그들이 생각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대) 모른다구요?
다른 원고측 변호사들이 항의했지만, 브라이언은 증언을 계속하겠다고 스스로 자청합니다. 질문은 노아의 방주에 대한 것으로 넘어갑니다.
대) 홍수의 이야기를 문자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습니까?
브) 네.
대) 홍수가 언제였죠?
브) 날짜를 고정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대) 기원전 4004년경입니까?
브) 그것은 한 사람이 추정한 것으로 현재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난 그것이 정확하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 그 추정이 성경에 적혀있읍니까?
브) 모두가 알고 있읍니다. 최소한. 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추정된 것으로 알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대) 그렇지만 성경자체가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어떻게 나온 것인지 모르십니까?
브) 난 계산은 하지 않습니다.
대) 무엇부터의 계산이요?
브) 말할 수 없읍니다.
대) 인간의 세대로부터요?
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죠?
브) 난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 그럼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나요?
브) 글쎄, 가끔은요.
법정에 웃음이 번집니다. 그러나 대로우에 대한 일방적인 조소에서 이제는 브라이언에 대한 웃음으로 변해가고 있었읍니다. 원고측에서는 다시 한번 항의했지만 브라이언은 피고측은 별로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증언을 계속할 것을 고집했읍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 시대의 유명한 두 법률가의 정면 대결에서 물러서거나 양보할 의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판사는 결국 승인했고 법정에는 박수소리가 울렸읍니다.
대) 구경꾼들로부터의 큰 박수군요.
브) 당신들이 촌놈(Yokel)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지요.
대) 난 결코 촌놈이라고 한적 없읍니다.
브) 그건 테네시주에 대한 무지요, 고집쟁이양반.
대) 당신에게 박수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박수가 울림)
브) 그들은 당신이 모욕하고 있는 사람들이요.
대) 당신은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과 학생들을 당신의 바보같은 종교 때문에 모욕하고 있죠.
이때 판사가 두사람의 상호비난을 중단시킵니다. 대로우는 계속해서 대홍수의 연대와 이집트 문명, 중국문명의 연대가 보여주는 모순점을 부각시킵니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만들어 졌는지, 카인이 어디에서 부인을 얻었는지, 태양이 4일째 만들어졌는데, 그 전에는 어떻게 밤이 오고 아침이 올 수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브라이언의 대답은 시종일관 생각해 본 적 없다, 혹은 생각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는 식이었습니다.
대) "아침이오고 저녁이오니 첫째날이었다."와 "아침과 저녁이 지나고 둘째날 이었다" 는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지요?
브) 난 그것이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 그럴 필요가 없다구요?
브) 네.
대) 그렇다는 겁니까, 그렇지 않다는 겁니까?
브)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브) (24시간의 하루라는 것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 그것이 문자그대로의 날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브) 24시간의 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 그럼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브) 그건 내 의견입니다. 그것에 관한 내 의견이 그렇다는 의견보다 더 나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구요?
브) 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지구를 6일동안 만들었건, 6년동안 만들었건 6백만 년동안 만들었건, 6억 년동안 만들었건 간에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던 저것을 믿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브라이언은 대로우가 원했던 함정으로 빠지고 말았읍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한다는 원고의 입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언급을 이끌어 내었기 때문입니다. 브라이언도 이것을 깨달았고 여기서 조금 더 증언이 계속되지만,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브라이언이 마침내 흥분하고 맙니다.
브) 재판장님, 저는 이 증언을 짧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로우씨가 목적하는 바는 오직 성서를 손상시키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모두 한번에 대답할 것이며 이의가 없습니다. 저는 세상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저 사람이 테네시주의 법정을...
대) 이의있읍니다.
브) (계속하며)성서 모독에 이용하려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되는 만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대) 그 말에 반대합니다. 저는 세상의 똑똑한 기독교인은 누구도 믿지 않는 당신의 바보같은 발상으로부터 당신을 구제하려고 하는 겁니다.
판사는 여기서 격렬해진 싸움을 중지시키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정회를 선포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대로우는 더 이상의 진행을 원하지 않고 배심원들의 즉각적인 평결을 요구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브라이언은 수주일동안 준비했던 그 인생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마무리 연설을 하지 못한 채 판결을 맞게 됩니다. 배심원의 판결은 예상대로 피고의 유죄였고 판사에게 벌금액수를 요청했으며 판사는 법률이 정한 최저액인 100불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피고측은 각본대로 항소했으나, 상급법원은 피고측의 의도와는 달리 50불이 넘는 금액은 배심원이 결정하여야한다는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재판을 기각시키고 원숭이 재판은 법률적으로는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인의 관심을 주목시켰던 이 법정드라마의 승리자는 대로우라는 것이 신문과 여론의 반응이었습니다. 결국 근본주의는 이 재판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입고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그 모습을 감춘 것일 뿐, 미국에서의 근본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부터 약 20년 전에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면 현대판 창조과학은 무엇을 계기로 다시 시작되었는지 이제부터 그것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3부: 레이건, 전두환 그리고 창조론>
1925년 스콥스의 "원숭이 재판"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패퇴한 근본주의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수면 밑에서 살아남은 채로 호시탐탐 사회적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이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계기가 된 것은 70년대 말인 카터 정권때였읍니다. 그러나 카터가 독실한 신자이기는 했지만, 미국의 온건파 진보 정당인 민주당 정권과 근본주의는 서로 맞지 않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1979년 근본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제리 팔웰은 모랄 머조리티(Moral Majority)라는 단체를 창설하고 "미국 사랑하기(I love America)"의 구호를 앞세우며, 1980년의 레이건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를 돕게 됩니다. 주정뱅이 아버지와 근본주의자인 어머니를 두었고 B급영화의 카우보이배우 출신의 전형적인 비디오형 대통령 후보인 레이건은 결국 카터의 재선을 막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모랄 머조리티 운동은 그에게 약 3-4백만표를 가져다 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극단적인 보수주의,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TV 전도사의 활성화와 그들이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말미암아 부활에 성공한 근본주의가 급작스런 확장을 계속하게 됩니다.
제리 팔웰은 동성연애를 혐오하는 극우적 성향의 근본주의자로서 남아프리카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t)를 지지하고, 공산주의를 악마로 규정하여 전세계의 공산정권의 반대세력의 투쟁을 지지하게 됩니다. 미국이 하늘이 축복한 국가라는 신념아래, 죄악을 단죄하고 징벌하려는 근본주의의 성향은 레이건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게 됩니다.
레이건이 미국의 국가 의료 기관(Natioanl Institute of Health와 Center for Desease Control)의 에이즈 연구를 중단시키는 반인륜적 정책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것때문입니다. 에이즈는 동성연애자를 벌하기 위해 하느님이 내려준 형벌로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레이건은 3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그 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에이즈"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만일 전에 교회에서 에이즈는 천벌이라는 얘기를 목사로부터 들었다면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뿐아니라, 레이건은 영화 "람보"스타일의 공산주의에 대한 무력 진압을 꿈꾸었으며 미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SF영화에나 나오는 스타워즈계획, 스텔스기 개발에 착수하며, 소련과의 무제한 군비경쟁을 선언하였습니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극우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 미국의 대통령의 이러한 시도는 다행스럽게도 고르바초프라는 한 인물을 역사에 등장시키는 산파역을 맡음으로서 결론적으로는 극우주의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평화적인 역사적 혁명이 동구권을 강타하도록 만들게 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광적인 미국 패권주의, 극우 보수주의, TV 전도사를 앞세운 세확장 위주의 근본주의가 팽배한 미국사회 전체의 이성의 마비가 창조론을 부활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경책만을 이용한 단순하고 순진한 이론이 아니라 일반인의 눈을 현혹시키는 전문용어와 함께,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재등장한 것입니다. 비단 창조론 뿐이 아닙니다. 창조론에 관한 글들이 실리는 회지에는 갈릴레이 시대에 멸종한 줄 알았던 "평평한 지구론"까지도 버젓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기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성의 마비란 그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에게는 아폴로 호가 찍은 지구의 둥근모습도 결코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사람과 고래가 자궁으로부터 아이를 출산하고 젓을 먹여 키우는 것이 창조론자들에게는 결코 동일한 선조로부터 진화된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은 불교신자로서 장기간 한국의 정권을 쥐고 있다가 1979년에 저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한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공산주의와 결탁한 불순분자로 몰아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장군은 다름아닌 개신교 신자였읍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99% 미국의 근본주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미국은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는 모토만이 우리나라에는 없을 뿐입니다.
각 교단의 지도자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신도가 정권을 잡은 것이 기쁘기 그지없었으며, 너도나도 새로 탄생할 하느님의 정권을 찬양하기에 바빴습니다.
다음은 "장신원보"에 실린 <5.18과 한국교회>라는 기사의 발췌입니다.
(인용 시작) 1980년 8월 6일 이른 아침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이전까지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우리나라 개신교 지도자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가 진행되었다. 신학적인 많은 대화와 노력에도 쉽게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이들을 기꺼이 하나로 묶을수 있었던 이날 예배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 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물론 모임 기획자는 얼마전 대법원 공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 받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었다. 5월 광주의 한스러움이 이야기조차 되지 못하던 때다.
전두환 상임 워원장이 국보위에 들어선 이후 나라를 위한(?) 조찬 기도회는 실상 5월 1일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각 교회의 중진급 목사들이 돌아가며 이 기도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8월 조찬 에배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사전부터 준비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교파를 초월하여 인지도 있는 교계인사들이 총망라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조찬 예배는 당시 성결교 ??? 증경 총회장이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해 기도드리면서 그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주간지 ??신문에서는 짧게나마 이처럼 기도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수 있도록 해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전 위원장이 남북 통일 그리고 국가의 번영, 민주화 실현등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도와 주십시오.. "
이날 70분간 진행되었던 조찬 기도회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을 통해 현장중계되었고 점심과 저녁, 두차례에 걸쳐 녹화 중계되었다. 기도회이후 같은달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21일 전군지휘관회의 전두환 대통령 후보 추대, 27일 통일주체 국민회의 체육관 선거가 진행되는 등 국정 모든 일정이 급박하게 이루어 지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사는 9월1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으로 최종 마무리가 된다. 광주 항쟁을 진압하고 난후 열려진 이날 조찬 기도회는 실제적으로 신군부 집권의 서막을 연 셈이 되었다. 이들 신군부들에게는 하나님 이름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전두환 장군의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던 '80년 8월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참석한 개신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개별 교단의 총회장급으로 모두 23명. 이중에서도 그 인지도를 고려해서인지 앞에서 언급하였던 ???목사를 비롯한 기도, 설교, 축도를 맡은 6명의 교계 지도자들이 특히 눈에 띈다.
이들은 사회 ???보안사 군목,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에 ?기장 총회장, 한국 기독교를 위한 기도에 ???당시 감리교 감독 회장, 전두환 보안사 사령관을 위한 기도에 당시 장로교 총무였던 ???목사, 설교에 ???예장 통합 증경 총회장등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교계 지도자급들이다.
특히 ???목사의 경우에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열린 축하 조찬 기도회에서도 축도를 맡았으며 4,13 호언 조치가 발표되고 6월 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87년 5월에 마련된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도 참여해 설교를 하였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답게 중요한 행사때 마다 5,6공 무대에 종종 섰던 셈이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찬송으로 시작된 대통령 취임 축하 조찬기도회가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되자 전두환씨는 기도회가 끝나고 즉석 인사말을 통해 '오늘의 기도회는 당면한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주복지 국가를 건설하여 모든 사람이 명랑한 가운데 잘 살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 막중한 임무를 성원해 주기 위한 것으로 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였다.
취임 한달전에 이루어진 8월 조찬 기도회에는 그밖에도 당시 ???새문안 교회 담임목사, ???성결교 총무, ???성민교회 목사, ???충현교회 목사, ???한국 대학생 선교회 회장, ???감리교 증경 감독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 교회협에서는 작년 초, 과거 청산 정국과 관련하여 시국성명을 발표 하였다. 이 성명에서 교회협은 "한국교회의 한편에는 지난 시절 국보위라는 초법적 기구에 일조를 아끼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의 통치를 정당하게 만든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있었다."고 밝히면서 이들의 회개와 공식 입장을 촉구한바 있었다. 그러나 지난 80년 조찬 기도회의 주역 23명중 단지 2명만이 교회협에서 주도한 참회 성명에 동참했을 뿐이다.(인용 끝)
이렇게 군부독재 정권의 비호를 받은 한국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미국계 근본주의 개신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세확장을 거듭했고 창조론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직수입된 것입니다. 유독 창조론과 평평한 지구론중 창조론만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평평한 지구론은 미국의 근본주의자가아닌 한국의 근본주의자가 보기에는 명백한 사이비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사이비 이론은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조류가 극우 보수화 되고 종교적 으로는 근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이성이 숨쉴틈 없는 틈바구니를 타고 들어와 정착한 것이라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 같은 패턴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독 이런 사이비이론이 미국과 한국에서만 활개치는 것도 스타워즈 계획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금강산댐 수공 대응책이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레이건 정부와 전두환 정권이 동시대에 양국을 장악하고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읍니다. <제리 팔웰-레이건-전두환-근본주의-창조론-평평한 지구론>의 사슬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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