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아의 홍수
+ 혈육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창세 6:19]
+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창세 7:02]
창세기 6장에서는 “한 쌍씩” 배에 실으라 하고 7장에서는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실으라 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된 바 있지만 노아의 홍수도 두 가지의 기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더 있다. 자신이 만든 짐승인데 부정한 것은 무엇이며 정결한 것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부정한 것은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기는 사탄도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만 사탄으로 인해서 생기는 어떤 인간들의 죄악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신이니까, 오직 그런 인간들을 몰살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
그런데 또 한 가지 웃기는 것은 창세기 7장에서 당세에 완전한 자요,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의 명(“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어기고 모두 암수 둘씩 넣고 있다.
+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창세 7:8~9]
아마 성경 기자가 적는 과정에서 실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 그런 실수를 해선 안되지 않을까?
▣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세 8:21]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고 노아의 홍수와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한다고 해 놓고서는 요한계시록 등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종말 Project는 하나님이 세운 계획이 아닌가? 앞으로도 계속 언급이 되겠지만 여호와신의 언약은 대부분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공동번역판에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게 마련“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게 태어난다는 얘기인가? 아담의 원죄 때문이라면 노아의 홍수로 이미 끝난 일이 아닌가? 노아의 홍수로 다 쓸어 버리고 의인이라는 노아의 가족만 살려줘 놓고서는 한다는 말이 어려서부터 악하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에서나 소돔과 고모라 심판에서처럼 죄도 짓지 않은 갓난 아이들까지도 가리지 않고 다 죽이는 것인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면 그것은 창조자의 책임이 아닌가? 전지전능한 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단 말인가? 노아의 홍수로 그렇게 많은 사람과 동식물들을 몰살시킨 후에도 세상에 악이 넘치는 것을 보면 역시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오는 종말심판 때에 정말로 많은 생명을 죽일 것이고 그 가운데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다 살려준다는데 이번에는 그 세상이 악으로 가득차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는 걸까? 완전한 의인 노아 가족 몇 명만 살리고도 세상은 악으로 가득차게 되었으며,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에는 성내(城內)의 사람들이 음난하다고 불로 태워 죽이고 의롭다는 롯과 두 딸을 구하여 주었지만, 롯을 두 딸과 교합하게 하여 자손을 낳는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부녀(父女)상간의 패륜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마지막 심판이라면서 수 억의 기독교인들을 다 살려주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오직 결과에 대한 땜질 처방이 있을 뿐이다. 죄인들이 생기면 죽이고 또 생기면 또 죽이고 ‥‥ 그에겐 근본 처방이 없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저질렀다면 차라리 그들을 죽이고 새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더 나은 처방이 아니었나? 그렇게 홍수를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나?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 아기는 물론이고 아무 죄 없는 다른 동식물까지 덤으로 얹어서‥‥ 단 두 명만 죽여서 새로 만들면 되었을 것을, 두 명을 살리는 바람에 수 십만, 수 백만의 생명을 빼앗는다? 우리 나라에는 이러한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좋은 속담이 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 내지는 “호미로 막을 걸 서까래로 막는다”라고나 할까?
이런 하나님이니, 다음의 김종성씨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겠는가?
“ 만약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불완전한 곳, 고통스러운 곳으로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를 불완전하게 창조했다면 하나님은 곧 마귀이거나 전지전능치 못한 불완전한 하나님이 되는 까닭에 기독교인들은 에덴동산이나 아담과 하와를 불완전하게 창조했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에덴동산이 불완전하고 타락하게 된 책임은 무조건 사탄에게 전가하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살던 시대, 완전한 에덴동산에서 완전한 사람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지 몇 일만에 타락하여 죄를 짓는다면, 타락한 아담의 핏줄을 이어받은 현재의 불완전한 인간들이 최후의 심판일에 용서받아 천국에 가 본들, 완전한 인간도 몇 일 안가 죄를 짓는 판국에 불완전한 현재의 인류가 천국에 간 지 몇 분 몇 초도 안되어 마귀, 사탄의 꾐에 빠져 타락하고 추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경에 있는 천국은 구원이 없는 곳이며 영원하지 못하고 언제나 마귀의 꾐에 빠질 수 있는 불안한 곳이다.“
▣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인심이 후해야 할까? 박해야 할까?
+ 인심이 후하면 더욱 부자가 되지만 인색하게 굴면 오히려 궁해진다.[잠언11:24]
+ 어려운 사람을 학대하면 그가 부자가 되고 부자에게 자꾸 갖다 주면 그가 가난해진다.[잠언22:16]
▷ 부지런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것일까? 즉 야훼로부터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 게으른 사람은 떡그릇 옆에서 굶어 죽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부자 되게 마련이다. [잠언11:16]
+ 야훼께 복을 받아야 부자가 된다.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잠언10:22]
+ 늘 상종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이들은 모두 야훼께서 지으셨다.[잠언22:2]
▣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인가?
+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세 6:2~4]
+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기 1:6]
+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욥기 2:1]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기 38:7]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라디아서 3:26]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
+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로마 8:19]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 5:9]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나는 걸로 보아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이 표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구절들은 사실 예수의 “내가 너희를 신이라고 하지 않았더냐?”[요한 10:30~36]라는 말씀을 잘 이해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신의 아들은 역시 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을 모두 신이라고 말했던 예수의 선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라고 믿는 기독교 교리에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구절들은 분명 모순인 것이다. 예수가 인간을 신이라고 한,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술하겠다.
▣ 여호와라는 이름을 최초로 밝힌 것은?
여호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분명히 밝힌다. [창세 15;6~8, 26~27, 28;13] .... (이브가).. 가인을 임신하고 여호와로부터 자식을 얻었노라 하더라 [창세 4:1] 등등....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신이 모세에게 나타나 말할 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출애굽6;2~3]
기독교인들이 Bible의 오류가 아니라고 우긴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한 결과가 된다. 학자들은 J문서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E문서에서는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기 전까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모세5경은 모세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문서들(J, E, D, H, P문서)의 혼합이며, P문서를 골격으로 다른 부분들이 거기에 맞추어졌다고 보고 있다.(2부에서 자세히 설명)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모순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머문 기간
+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똑똑히 알아두어라. 네 자손이 남의 나라에 가서 그들의 종이 되어 얹혀 살며 사백 년 동안 압제를 받을 것이다.[창세 15:13]
+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 머무른 것은 사백 삼십 년 동안이었다.[출애굽12:40]
삼십 년의 차이가 나는데 하나님은 언약을 정확하게 안 지킨 것일까? 아니면 Bible에 잘못 기록된 것일까?
▣ 원수를 갚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레위19;18]
언뜻 보면 자비로운 하나님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곧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 너희에게 복수의 칼을 보내어 계약을 어긴 것을 보복하리라. [레위26;25]
+ 이스라엘의 강하신 이, 주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 내가 원수들을 속시원히 물리치고, 적에게 보복하리라.“ [이사 1:24]
+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더운 것은 더움으로 상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찌니라 [출애굽 21;23~25]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해놓고선 여호와 자신은 원수를 갚는다? 자신의 했던 말도 기억 못하면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우길 건가?
▣ 모세의 장인은 누구일까? 겐사람일까?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일까?
+ 모세의 장인은 겐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올라가서 아랏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중에 거하니라[사사1;16]
+ 모세의 장인 호셉의 자손중 겐 사람 헤벨이....[사사4;11]
+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출애굽 3;01]
▣ 여호와신의 약속
+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리라.[신명 24;16]
그러나 사무엘하12장 15절에는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신이 쳐서 심히 앓게 하고 결국에는 다윗이 행한 악함에 화가 난 여호와신은 그 아이를 죽이는 벌(12;18)을 다윗에게 보낸다.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고 해 놓고선 다윗 대신 그 아들을 죽인다. 자기가 한 말을 쉽게 뒤집어 엎는다. 여호와신에게 있어 약속은 헛된 것이다.
▣ 불륜과 벌
+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가 정해 주는 규정을 지켜 그대로 해야 한다. ‥‥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 누가 자기 아비의 부인과 한 자리에 들고 그 부끄러운 곳을 벗겼으면, 그 두 사람은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자기 며느리와 한 자리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추잡한 짓을 했으니 제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 제 아비의 딸이든지, 어미의 딸이든지, 제 누이를 데리고 살면서 누이의 부끄러운 곳을 벗기고 여자는 오라비의 부끄러운 곳을 벗겼으면 그들은 겨레가 보는 앞에서 없애야 한다. 이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제 누이의 부끄러운 곳을 벗겼으므로 죄벌을 면할 길이 없다. ‥‥ 네 이모의 부끄러운 곳이나, 네 고모의 부끄러운 곳을 벗기면 안된다. 제 핏줄의 몸을 벗긴 것이므로 죄벌을 면할 길이 없다. 숙모와 한 자리에 든 사람은 삼촌의 부끄러운 곳을 벗긴 것이므로 그들은 죄벌을 받아 후손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 [레위 20:7~20]
참으로 자상하신(?) 하나님이다. 이렇게 일일이 열거해주고 있으니.... 모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뜨끔했을까? 그의 부모가 처형당했더라면 그는 못 태어날 뻔하지 않았는가?
모세의 어머니와 고모할머니가 동일 인물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왜 모세의 부모는 물론이고 롯과 두 딸(근친상간), 아브라함과 이복동생겸 아내인 사라(근친상간+외간 남자와 간통), 이삭과 리브가(5촌조카와 근친상간), 야곱과 레아, 라헬(외삼촌의 두 딸과 근친상간), 유다와 다말(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근친상간), 보아스(조카며느리인 룻과 근친상간) 다윗과 밧세바(유부남과 유부녀의 간통) 등은 죽이지 않았을까? 하긴 이 중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보아스, 다윗은 예수의 직계조상들이니 이들을 죽였다간 예수가 탄생할 수가 없는 것인가?
아직 모세가 율법을 받기 전이라서 용납이 될 수 있다고 우길 것인가? 그래도 여호와의 말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기 위해서는 모세 이후의 인물들은 살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윗을 죽였다면 솔로몬도 못 태어나고 예수도 못 태어나는가? 아니다. 예수는 어차피 아버지 요셉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이어받지 않고 태어나지 않았는가?
▣ 예수의 탄생 :
+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마태2:1~25]
+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다. 이 첫번째 호구 조사를 하던 때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등록을 하러 저마다 본고장을 찾아 길을 떠나게되었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동네를 떠나 유다 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왕이 난 고을이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 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누가 2:1~7]
▷ 탄생 장소의 불일치 : 갈릴리[요한]일까? 베들레헴[마태,누가]일까?
+ "저분은 그리스도이시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갈릴레아(갈릴리)에서 나올 리가 있겠는가? 성서에도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이 살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했다.[요한7:41~42]
위 이야기는 예수가 그리스도냐 아니냐의 문제로 군중들 사이에 분분한 가운데 예수가 그리스도라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어떻게 갈릴리에서 태어났느냐고 따지는 장면이다. 여기에 대해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그 뒤 50~52절에는 니고데모가 예수를 감싸는 발언을 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당신도 갈릴레아 사람이란 말이오? 성서를 샅샅이 뒤져 보시오. 갈릴레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없소" 하고 핀잔을 주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를 통해 볼 때,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고 갈릴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한복음이 사실이라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를 다윗의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날조를 한 것일 것이다. 어느 한 쪽도 날조가 아니라면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 탄생시기의 불일치
* "헤롯"왕 통치시. ("헤롯"은 BC 4 년에 죽음) [마태 2:1]
*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린 시기(AD 6년 경) [누가 2:1~7]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 시기에 있어서 최소한 10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2절의 말씀처럼 헤롯의 치세기간 동안에 퀴리니우스(구레뇨)는 시리아의 총독이 된 적이 없다. 이 시기의 로마사는 매우 정확하게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발뺌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누가의 기록은 엉터리이거나 날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자는 유태민족의 영웅인 다윗왕이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이므로 예수가 유태민족의 영웅인 다윗왕의 적통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갈릴리의 나자렛에서 태어난 예수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출생지를 날조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러다가 그만 예수의 탄생시기를 서로 틀리게 기록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 탄생시의 마리아와 요셉의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틀리는 기록을 하고 있다.
*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 후 예수를 낳았다.[마태 1:24~25]
* 약혼한 상태에서 낳았다.[누가 2:5]
▣ 예수의 할아버지는 누구? 야곱[마태 1:16] , 헬리[누가 3:23]
예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몇 대째일까? 42대[마태 1:17] , 56대[누가 3: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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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
누가복음 3장 |
아브라함 ~ 다윗 |
14대 | |
다윗 ~ 여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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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솔로몬 2.르호보암 3.아비아 4.아사 5.여호삿바 6.요람 7.웃시아 8.요담 9.아하스 10.히스기아 11.므낫세 12.아론 13.요시아 14.여고냐 |
1.나담 2.맛다다 3.맨나 4.멜레아 5.엘리아김 6.요남 7.요셉 8.요다 9.시므온 10.레위 11.맛닷 12.요림 13.엘리레서 14.예수 15.에르 16.엘바담 17.고삼 18.맛디 19.넬리 20.네리 |
여고냐 ~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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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알디엘 2.스룹바벨 3.아비훗 4.엘리아김 5.아소르 6.사독 7.아김 8.앨리웃 9.엘르아살 10.맛단 11.야곱 12.요셉 13.예수 |
1.스알디엘 2.스룹바벨 3.레사 4.요아난 5.요다 6.요섹 7.서머인 8.맛다디아 9.마앗 10.낙개 11.에슬리 12.나훔 13.아모스 14.맛다디아 15.요셉 16.안나 17.멜기 18.레위 19.맛닷 20.헬리 21.요셉 22.예수 |
+ 야곱(39대)은 요셉(40대)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41대)가 태어나셨느니라. [마태 1: 16]
이 구절 중 마리아(예수의 모친)를 예수의 조상으로 더 친다면 예수는 정확하게 아브라함으로부터 42대째가 되는 셈인데 세상에 이렇게 치는 족보는 없는 것이니 이 차이를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마태복음에서는 실수로 한 세대를 빠뜨렸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오류는 누가복음에서는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56대로 마태복음과는 전혀 다르다. 아버지인 ‘요셉’만 같고 다른 조상들은 서로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오류를 절대로 인정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는 요셉의 족보요 하나는 마리아의 족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한다. 본서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는 유대민족의 멘탈리티를 안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여자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두 복음서는 서로 틀리는 족보인 것이다. 족보상의 이름을 보면 마태복음은 중복이 없는데 누가복음은 다윗시대의 14대에 “예수”라는 이름이 나오고 여고냐시대에는 맛다디아가 8대와 14대에 중복되고 요셉이 15대와 21대에 중복되어 있음을 볼 때 마태복음의 내용이 누가복음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나 마태복음 역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세대의 족보명을 누락하고 있다.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것을 유대인에게 증명하고 싶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그 족보를 써놓은 것까지는 좋은데 족보의 내용도 서로 틀리고, 마리아는 요셉과 결혼도 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했으므로 예수의 몸에는 요셉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예수를 진정 다윗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가?
▣ 예수와 두 명의 강도
예수는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다. 여기서 누가복음에는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회개해 구원받았다고 되어 있고 마태복음(27:44)과 마가복음(15:32)에는 두 강도 모두 다 예수를 모욕했다고 되어 있다.
▣ 율법은 폐할 수 있는 것인가?
+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너희가 지켜 영원히 행하고[열왕하17:37]
+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시편 19:7~9]
자, 그럼 완전한 여호와의 율법, 영원히 행해야 할 율법이 과연 어떠한가를 한 번 살펴보자.
* 소나 양, 염소의 비계를 먹어서는 안되고 토끼고기, 돼지고기도 먹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모든 짐승과 새의 피도 먹어선 안된다.[레위 7장,11장]
* 남자아기는 생후 8일 후에 할례(포경수술)를 해야만 한다.[레위12:3]
*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면 7일 동안, 딸을 낳으면 14일 동안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하다. 그러니 거룩한 물건을 만져도 안 되고 성소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레12:2~5] 여자는 남자를 가르쳐서는 안되고 [디모데전2:12], 금이나 진주를 착용해서도 안되고[디모데전2:9] 부인은 남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에베소5:22]
* 동물이나 작물의 잡종을 금함[레 19:19]
그러나 이 잡종때문에 지금까지 인류가 굶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 종류가 다른 실로 짠 옷도 입지 마라.[레19:19]
그대가 입고 있는 옷은 혹시 두 종류의 재료로 되어있지는 않은가?
*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방탕하고 술만 마시는 아들은 돌로 쳐 죽여라. [신명 21:20] 요즘 같으면 돌에 맞아 죽을 자식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 전쟁시에 항복한 도시의 시민들은 노예로 만든다.[신명20:11]
* 만약 어떤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 여자가 처녀가 아니라면 그녀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신명 22:21]
* 약혼도 안한 처녀와 같이 잔 총각은 그녀와 결혼해야 한다.[신명 22:28]
* 남종이나 여종을 두려면 다른 민족에게서 구해야 하고 이 종들을 자손에게 대대로 물려주어 언제까지나 소유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끼리는 아무도 심하게 부릴 수 없다[레위25:44~46]
+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에게 천대받는 종이 되어라[창세9:25]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이러한 구절들은 이외에 신약에도 많이 있다.
+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때려 당장 숨지게 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한다. 다만 그 종이 하루나 이틀만 더 살아있으면 벌을 면한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출애굽;21:20ㅡ21]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라는 것이다
+ 불알이 터진 사람이나 자지가 잘린 사람은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사생아는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 후손은 십 대에 이르기까지도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신명 23:2~3]
성 불구자나 사생아와 고아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은 교회에 갈 수 없는 것일까?
+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신명 22:5]
여자들은 바지를 입어서는 안될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다고 한다. 영원히 지켜 행하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겠다라고도 하고 폐하겠다라고도 한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그 자신이 완전하다고 말해놓고선 다시 율법은 완전하게 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말을 자신이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 예수는 율법을 폐지하였는가? 아니면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라고 했는가?
▷ 율법은 폐지되었다
+ 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리셨습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문제나 명절 지키는 일이나 초생달 축제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아무에게도 비난을 사지 마십시오.[골로 2:14~16]
+ 성서에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꾸준히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은 언제나 저주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율법을 통해서는 아무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갈라 3:10~11]
+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 6:14]
+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에베2:15]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 10:4]
+ 전에 있던 율법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했기 때문에 폐기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히브 7:18~19]
▷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
+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로마 3:31]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마태 5:17~19]
+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율법은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 16: 17]
+ 누구든지 계명을 다 지키다가도 한 조목을 어기면 계명 전체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야고 2:10]
+ 너희에게 율법을 제정해 준 이는 모세가 아니냐?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그 법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도대체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요한 7:19]
율법을 지켜야 할까? 안 지켜도 되는 것일까? 지킬 필요가 없다는 쪽은 앞의 말씀들만을 인용하고 지켜야 된다는 쪽은 뒤의 말씀들만 인용한다. 자신들의 교리에 유리한 말씀들만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공관 복음서에서 - 바리사이파와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 대체로 유대주의의 모든 교의를 고수하는 독실한 유대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율법을 반대하는 발언은 주로 바울이 하고 있고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비롯하여 주로 지키라는 쪽의 말씀이 많으니 지키는 것이 옳을 것같은데 ‥‥‥.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에 해당하는 안식일(토요일), 여호와신이 영원히 지키라고 하고, 안 지킨 사람을 죽이라고까지 명령한 안식일은 안 지키면서, 십계명에도 들지 않는 “십일조”는 안 지켰다간 교회에서 고개를 들기도 힘들다. 성경말씀보다도 교회가 우선인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사실과 천주교가 이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안식일”에 대한 내용은 뒤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 이혼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모세의 말씀
+ 누가 아내를 맞아 부부가 되었다가 그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런 일이 있어 남편의 눈밖에 나면 이혼 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지만 ‥‥‥ [신명 24:1]
예수의 말씀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마태 5:32]
바울의 말씀
+이것은 주님의 말씀은 아니고 내가하는 말입니다. 어떤 교우에게 교인이 아닌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가 계속해서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여자 교우에게 교인이 아닌 남편이 있는데 그가 계속해서함께 살기를 원하면 역시 그 남편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남편은 믿는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또 믿지 않는 아내도 믿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자녀도 깨끗하지 못했을 터인데, 실상은 다 거룩하지 않습니까? 만일 믿지 않는 쪽에서 헤어지려고 한다면 헤어져도 좋습니다. 이런 경우에 남녀 교우들은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습니다. [고린전 7:12~15]
이 구절들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모세의 구약은 예수의 말씀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것이고 또 바울은 순전히 자기 생각이라고 하면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는 일점일획도 신의 감동이 아닌 것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들을 자기에게 유리한 구절만을 이용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이 세 가지의 말 모두가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니, 아무 말이든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아내에게 들려주면 될 것이다.”라는 하원씨의 뼈있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기독교인들은 성서에서 구약, 신약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교리를 옹호하는 데 유리한 구절들만 인용해서 쓰는데 참으로 웃기는 것은, 그렇게 인용한 성서의 구절들과 정반대되는 구절들을 가지고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다른 교파의 기독교인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서의 포용력은 정말 대단하다.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모두 품고 있으니까 이 주장도 맞고 저 주장도 맞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주장도 틀리고 저 주장도 틀리다는 사실을 아는가?
▣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날 : 유월절 전날[요한], 유월절 다음날 [마태, 누가, 마가]
▣ 유다의 죽음 :
* 자기가 저지른 일을 뉘우치고 은30냥을 성전에 내동댕이치고 목매달아 죽었다. 그러자 사제들은 ...그 돈으로 옹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마태 27:3-8]
* 유다가 예수를 판 돈으로 밭을 샀는데, 그후 땅에 거꾸러져서 배가 갈라져 내장이 온통 터져 나왔다... [사도 1:18]
▣ 12사도 파견에 관한 기록:
+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시오 [마태 10:9-10]
+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마가 6:8]
▣ 주기도문(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의 불일치 :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 6:9]
+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누가 11:1]
우리나라 신학자가 주기도문에서 문법이 틀리거나 뜻이 이상한 것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 신학자가 교회 다니는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나라에 임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나라가 임하라’라는 뜻, 곧 하늘나라가 오라는 뜻이다. 따라서 ‘나라이’가 아닌 ‘나라가’로 번역을 해야 옳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가 ‘아버지가 오셨다’를 아버지이 오셨다‘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에서 ‘오늘날’은 ‘오늘’을 잘못 번역한 것으로서, 그리스 원문 성경이나 지금의 영어, 독어 등 다른 성경에서는 모두 ‘오늘’로 되어 있으며, ‘주옵시고’라는 말은, 우리말에 ‘주시옵소서’라는 말은 있지만 ‘주옵시소서’라는 말은 없듯이 문법상으로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구절을 바로 잡으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해야 되는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줄 되지도 않는 주기도문조차 이렇게 번역해 놓고 있으며, 예수가 기도문이라고 가르쳐준 것조차 복음서끼리 서로 틀리니 말이다. 그리고 일반신자들은 그 뜻조차 모르고 외우고 있으니 더욱 가관이다.
▣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은 몇 명? 3명(마르코 16:1), 2명(마태 27:1-3), 1명(요한 20:1)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서 본 사람은 몇 명? 1명(마태, 마가) 2명(누가, 요한)
|
마태 |
마가 |
누가 |
요한 |
예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 |
막달라 마리아 다른 마리아 |
막달라마리아, 살로메, 야고보의 마리아 |
여자들 |
막달라 마리아 |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서 본 사람 |
주의 천사1명 |
흰 옷 입은 청년 1명 |
빛나는 옷을 입은 두사람 |
흰옷 입은 두 천사 |
예수의 무덤에서 일어난 일들을 각 복음서별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태: 두 마리아가 무덤에 가봄 / 지진 나며 동굴 문 열림 / 천사강림 / 문지기 무서워 떨음 / 천사가 말함 / 예수와 상면함 / 발 붙잡고 경배함 / 갈릴리로 가라하심
마가: 두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봄 / 무덤에 들어감 / 흰옷의 청년 서있음 / 이 청년이 갈릴리로 가라 지시함 / 이 청년이 제자에게 전하라 지시함
누가: 여자들이 가봄 / 무덤 안에 들어감 / 찬란한 옷의 두 사람 있음 / 베드로도 달려가서 조사함 / 베드로는 세마포만 발견함
요한: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가봄 / 빈 무덤 발견함 / 베드로와 한 제자 달려감 / 세마포와 머리수건만 목도함 / 베드로와 한 제자 집으로 돌아감 / 마리아 울고 서있음 / 흰옷의 두 천사 나타남/ 예수 나타나 서 계심 / 나를 만지지 말라 명하심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는 세 복음서에서 공통되게 나타나고 따라서 이 복음서들이 서로 틀리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최소한 세 번은 가 보았어야 하고, 매번 다른 사람과 매번 다른 사건을 경험해야 할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가 여러 번 무덤에 간 것일까요? 아니면 몇 개의 복음서 내용이 잘못된 기록일까요?
또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부활하여 제자들을 제일 먼저 만났던 곳은 갈릴리에 있는 산이라고 하고, 누가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만났다고 되어 있고, 부활 후 나타내 몸을 보이신 횟수, 보인 무리, 장소, 승천하기까지의 시간 등등에서 4 복음서는 모두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 복음 전파
▷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전파하라
+ 열 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마태 10:5-6]
+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마태 1:20-21]
+ (또 한 번은 이방인 여자가 자기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자 예수 왈 )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래도 그 여자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도와 달라고 애원하자 예수 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태15:21-28]
▷ 천하 만민에게 전파하라
+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16:15]
마가 복음서 16:9~20까지의 내용은 후대에 가필된 것이다(2부 ‘복음서 변조’편 참조). 가필로 인해 성서의 구절들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자녀(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일 빵을 개(이방인)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비유의 말씀은 성인의 품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물론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했다는 식으로 기독교인들은 변명하겠지만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 먿는다”는 비굴한 믿음을 강요해야만 했었는가?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다른 이방민족으로서 구원을 얻는 자는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떨거지들이란 말인가? 그리고 사실 테스트라고 보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예수는 분명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예수는 물론 이방인에 대한 차별은 하지 않은 것 같다(예수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견해도 있음). 그러나 그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구원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유대인에게만 전도하려 했으며, 그러한 이유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전도한 건 예수의 12제자가 아니라 예수가 살았을 때는 한 번도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인 것이다.
▣ 예수는 평화적 메시아일까? 전투적 메시아일까?
복음서의 어느 구절에서는 예수가 아주 평화로운 메시아로 표현되나, 또 다른 구절에서는 전혀 모순되는 진술을 한다. 복음서의 모순성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예수의 진면목은 어느 쪽일까?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의 저서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전투적 메시아가 예수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평화적 메시아 |
전투적 메시아 |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마5:9] +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쪽뺨을 돌려 대라[마5:39] +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마26:52] + 네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미워하는 자를 선하게 대하라[누가6:27] |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오 검을 주러 왔다.[마 10:34]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아느냐? 아니다, 도리어 분쟁케 하러 왔노라[누가12:51] +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살지니라.[누가22:36] + 노끈 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 환전상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요한2:15] |
▣ 기타 :
▷ 브엘세바가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 맺은 계약에서, 또하나는 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창세 21:31 / 26:33].
▷ 벧엘이란 이름의 기원도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에 환상을 보는 이야기에, 또 하나는 야곱이 몇 해 후에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의 사건에 나타난다[창세 28:19 / 35:15].
▷ 하갈이 추방되는 이야기도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녀가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 추방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이 커서 소년이 되었을 때에 추방되는 이야기이다[창세 16:6이하 / 21:9이하]
이외에도 모순되는 곳은 많다. 필자가 6부에서 기독교의 현행 교리를 비판하기 위해 성서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현행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직자들이 인용하는 구절들과 분명히 모순된다. 가령 삼위일체, 이신칭의, 전생과 윤회 등 아주 중요한 부분들에서 서로 모순이 발생한다.
성서에는 왜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많은 걸까? 가장 먼저는 성서의 모든 말씀을 신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우김으로써 예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씀이 모순되는 경우에 교리에 맞는 쪽의 말씀만 인용하고 주장함으로써 모순이 발생한다. 예컨데 예수는 자기자신을 하나님이 절대 아니며, 같은 수준도 아니라고 누누이 말하고 있음[뒤의 ‘예수는 하나님인가?’ 참조]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도들의 말 중에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우길 수 있는, 비슷한 말을 끌어다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성서에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서들(J, E, D, P사료층 등)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교파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후대에 가필[예: 복음 전파]했다거나, 없는 사실을 날조[예: 예수 탄생 장소]했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가 아람어로 발한 메시지가 구전으로 전해지다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고, 그 구전되던 것을 헬라어로 번역 기록한 원전조차도 없고 수많은 사본들만이 존재하고 누가 지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서에서 모순과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여러 단계에 걸친 성서의 왜곡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2부에서는 이러한 여러 단계의 왜곡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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