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神之香 Atheism/바이블의 진실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 편저 3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0. 3. 19. 14:46

[2부] Bible의 원전(原典) 문제

어떻게 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성서가 탄생하게 된 것일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의문을 가지는 순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기도 힘들 뿐 아니라 한글개역판의 경우 온통 한자 고어투로 쓰여 있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기도 힘들다. 정말 인내심이 대단하여 해설까지 곁들여진 더 두꺼운 성경을 몇 번씩 정독해야 이런 저런 의문이 생길텐데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10%를 넘기 힘들다. 그리고 의문이 생겨서 자꾸 질문을 하는 사람을 성직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혜보다도 믿음을 더 중요시한다. 그러니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경에 있는 예수의 말씀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어도 목회자들이 말하는 것은 마치 예수의 말씀인 양 순진하게 믿고 따르고 있다. 과연 예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목회자들이 말하는 대로 신앙해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살펴 보기로 한다.

 

먼저 바이블의 형성과정을 살펴 보자.

 

1. 구약성서의 형성사

 

구약성서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한 바 있고 현재 한일신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는 박창환 교수의 <성경의 형성사>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고자 한다.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 100A.D)는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며 일정한 계시의 기간에만 기록된 것이고 그 내용 자료의 거룩한 성격 때문에 세속적 문헌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그것을 다치기만 해도 손이 부정을 타고, 단어 하나도 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함락 후 30년이 되는 해에 에스라가 기도의 응답으로 구약성서를 40일간에 걸쳐서 다섯 명의 조수에게 불러 주어 받아쓰게 했다는 것이다. 즉, 에스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약 전체를 암송하여 불러 주었다는 것이다. 구약경전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2세기 그리스도인에게까지 번졌고, 에스라 때에 구약 정경이 단번에 다 완성됐다는 설은 계속 유대교와 기독교에 유행되고, 개신교에서도 채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이런 설을 부인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 돼서, 곧 느헤미야 시대에, 국가적 분열이 생겨서 사마리아인들이 따로 나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사마리안인들은 구약의 첫 다섯 권, 곧 5경만을 성서로 인정한다. 그것은 그들이 분열하던 시대에 경전으로 간주되던 것이 5경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에 다른 책들도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졌다면 사마리아인들이 5경만을 경전으로 가지고 나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성서(히브리어)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율법서 5권(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예언서 8권(전기예언서 - 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열왕기 후기예언서 -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12소선지), 성문서 11권(시편, 잠언, 욥기, 전도서, 솔로몬의 아가, 룻기, 예레미야의 애가, 에스더,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 다니엘)의 도합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개신교도들이 사용하는 성서(39권)의 구약 부분은, ‘70인역’(LXX,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서)과 거기에 근거한 라틴어역 불가타(Vulgata)의 배열순서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기원후 90년에 얌니아(Jamnia)회의에서 유대인학자들이 39권으로 된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결정하고 선포했을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구약성서에다가 외경까지 다 넣어 가지고 그것이 정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의 헬라어 번역 구약성서(70인역)는 배열을 다르게 했다. 첫 부분인 율법서를 제외하고는, 순서를 많이 바꾸어 버렸다.

 

유대인은 율법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성서라면 우선 율법을 생각하게끔 되었었다. 율법은 온통 그리고 완전하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것이고, 따라서 율법의 한 글자라도 모세 자신이 창안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죄를 받는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율법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합성문서이고 오랫동안 자라고 발전되어서 이루어진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증거는 율법서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신명기 34장는 모세가 죽은 후의 일을 말하고 있고, 5경에 여러 번 블레셋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지만(창21:34, 26:14-18, 출13:17) 실은 기원전 1200년 경(모세의 출애굽시대는 기원전 1300-1200년경)까지는 그들이 팔레스틴에 나타나지 않았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정설이다. 그러므로 모세 시대보다 훨씬 이후에 된 부분들을 5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뿐 아니라 5경에는 같은 사건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묘사하는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이야기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브엘세바가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 맺은 계약에서, 또하나는 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창 21:31 , 26:33). 또 벧엘이란 이름의 기원도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에 환상을 보는 이야기에, 또 하나는 야곱이 몇 해 후에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의 사건에 나타난다(창28:19, 35:15). 하갈이 추방되는 이야기도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녀가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 추방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마엘이 커서 소년이 되었을 때에 추방되는 이야기이다(창16:6이하, 21:9이하) 창조설화도 역시 뚜렷하게 다른 두 가지로 나타난다. 창세기 1장에는 세상 만물과 동물까지 창조된 후에 남자와 여자로 사람이 창조된다. 그러나 2장에는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다음에 동물,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가 창조된다. 홍수에 대한 기사도 두 가지다. 하나는 노아가 모든 짐승을 한 쌍씩 방주 속에 넣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창6:19), 또 하나는 정결한 동물은 일곱씩, 부정한 동물은 한 쌍씩 넣으라고 명령을 받는다(창 7:2).

이와 같이 이야기가 중복된 것은 5경을 오늘의 형태로 작성한 사람들(편집자들)이 그 사건들에 대한 두 가지 기사들을 앞에 놓고 그 자료들을 정직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취급하는 의미에서 그 두 가지를 다 나열한 것이라고 보인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5경은 유대인의 전통적 견해처럼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쓴 책이 아니라는 것과, 따라서 5경은 하나 이상의 문서의 편집으로 형성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러 문서들(J문서-야훼이스트 사료층, E문서-엘로히스트 사료층, D-신명기 사료층, H문서-Holiness Code, P문서-제사적 사료층 등) 중에서 P문서를 골격으로 하여 다른 부분들이 거기에 맞추어졌다고 본다. 이리하여 기원전 400년경에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렇게 다섯 권이 제일 먼저 성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둘째 부분인 예언서는 기원전 2세기 초에 성서로 채택되었으며 성문서가 공식적으로 유대인의 성서로 채택되기까지에는 역시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성문서는 우선 일반 백성이 널리 알고 읽던 인기 있는 책들이었다. 율법이나 예언서처럼 전체적으로 또는 공식적 결정에 의해서 성서 정경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 백성들의 일반 종교문학으로 간주되어 전해 오다가, 익명의 책들이어서 그 저작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어떤 위대한 인물(다윗, 솔로몬, 에스라 등)이 쓴 책으로 돌려 정경에 넣었다.

이렇게 전승된 성서들이 정경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주후 90년 경 얌니야에서 유대 랍비들과 학자들의 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에서 구약성서의 책들이 최종적으로 낙착되어 그 수가 오늘날 우리의 구약성서의 그것과 꼭 같은 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상이 개신교의 구약 39권의 형성사에 대해 박창환교수가 쓴 내용이며, 천주교의 구약은 이와 달리 46권으로 되어 있다

 

☞ 구약성서의 여러 가지 사료들

 

학자들은 구약성서의 5권(토라, 흔히 5경이라고 한다)이 다음의 여러 갈래의 구두전승으로 짜여져 있다고 본다.

 

1. 야훼(J)문서 : 기원전 950년경 편집. 창세기에서 신을 ‘야훼(Yahveh)'라 부르는 전승. 신인동형론적 표현(창세 3:8, 3:21, 4:15, 7:16)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 친교를 강력히 표현. 세계사를 신의 구원사로 생각하였고, 이스라엘을 세계사의 중심에 놓고 있다. 엘로힘문서와 사제문서와는 달리, 모세 이전부터 야훼 신앙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창세 4:26].

 

2. 엘로힘(E)문서 : 기원전 750년경 편집. 신을 ‘엘로힘(Elohim)'이라고 부르고 있는 전승. 신을 인격화하지 않음. 야훼계는 교리에 밝지 못하지만 엘로힘계는 교리에 밝은 사람들이 수집한 것임. 야훼 신 이외의 다른 신들에 대한 미움이 그 어느 자료보다 가장 강하고[민수 25:3-5] 범우주적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적인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출애굽 19:5-6].

 

3. 신명계(D)문서 : 주로 신명기에 수집된 법률과 관습을 담고 있음. 명령적 율법형에서 제2인칭 복수를 사용하기도 하고[신명 12:2-12], 제2인칭 단수를 쓰기도 하여[신명 12:13-28] 문체가 통일을 이루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것들로 보아 현재의 신명기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하여 쓰여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기원전 621년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 이전에 편집된 원신명기[신명 12-26장] 이후, 기원전 450년 이후까지 대략 5단계의 편집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본다.

 

4. 사제계(P)문서 : 기원전 7세기말부터 기록이 시작되어 바빌론 포로시대인 기원전 597-538년 사이에 수집되었고, 귀국 후에 에즈라에 의해서 기원전 444년에 공포된 것으로 추정. 제사장들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레위기의 나머지 제사법과 5경의 나머지 역사 부분들을 포함함.

 

2. 신약성서의 형성사

 

박창환 교수의 얘기를 계속 들어 보자.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도 여러 저자에 의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된 책들이 오래고 또 복잡한 역사를 통해서 집성되어 이루어졌다. 신약성서 역시 고스란히 하늘에서 기록되어 사람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고, 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불러 주어 기록하게 하신 것도 아니다.

교회는 신약성서의 어느 부분도 가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발전하여 나갔다. 신약 정경이 곧 나타나지 않은 것은 여러 원인이 있는데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사도 교회가 종말적 기대를 강하게 가졌다는 데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곧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새 세계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긴 앞날을 계획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가 요구될 뿐이었다. 문서로 된 정경이 있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들이 기대가 수정되고, 급박한 하나님 나라 실현의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그들이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은 영구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문서운동 같은 것은 생각할 여기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복음이 구두로 전달되던 시대가 적어도 30년 이상 흘렀다.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도 그 저술 연대를 기원후 60년 이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구전시대가 한 세대 이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크고 작은 많은 복음서들이 나돌아 다니고 교회에 혼잡을 조성하였었는데 어떻게 해서 4복음서만이 남아 승자의 관을 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우리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교회가 어째서 네 개의 복음을 그냥 가지고 있었을까? 그 수를 줄이거나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는가? 서로 약간씩 다른 네 개의 복음서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곤란을 가져다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족보가 각각 다르다. 요한복음서는 성전을 정화한 사건을 예수 생애의 초기에 두었고, 반면에 다른 세 복음서는 그 말기에 두었다. 첫 세 복음서는 예수가 유월절 후에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기술하였는데, 요한복음서에는 유월절 전에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 기록했다. 예수님의 부활설화도 복음서마다 차이점을 지닌다. 이런 것들을 아는 교회가 네 개의 복음서를 하나로 만들어 조화시켜 보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을까? 기원후 180년경에 타시안(Tatian)이라는 사람이 소위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4복음서를 종합한 것이었다. 얼마 동안 이것이 매우 영향이 매우 컸고, 4복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하고, 얼마 후에는 그 책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공동서신이 한 그룹으로 모인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었고 그 과정은 퍽 느렸다. 2세기말까지도 베드로 전서와 요한1서만이 보편적으로 수락되었을 정도이다. 계시록은 처음에 널리 알려졌고 인정되었다. 1세기 때에는 비단 요한 계시록만이 아니라 헤르마스의 목자와 베드로 계시록도 널리 사용되고, 상당히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2세기 후반경에 이르러서는 이 묵시서들이 인기를 많이 잃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마지막이 임박했다고 하는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요한 계시록만이 교회의 광범한 인정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일부의 반대를 받아왔다. 그리하여 이 책이 정경으로 채택되어 상당히 견고한 위치를 얻기까지는 200년 이상이나 싸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실상 그 싸움은 그 후까지 계속되었고, 현대 교회에서도 그 책을 정경에 완전히 넣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말이 떠돌고 있다.

교회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신약성서 목록인 무라토리 정경목록(AD170)에는 현재의 신약 27서 중에서 베드로 전,후서 , 야고보서, 요한3서, 히브리서가 빠져 있다. 베드로 전서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어려운 투쟁을 거쳐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다.

유세비우스(270~340)는 정경을 호모레고메나(Homolegomena)-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책,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일부의 반대가 있었던 책, 노타(Nota)-가짜책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2․3서를 안티레고메나에 분류했고, 요한 계시록은 호모레고메나에 분류했지만 노타에 넣어야 된다고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논란의 대상의 되었던 책들이 가졌던 문제점은 사도 저작성의 문제, 즉 그 책들의 저작자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정경에 넣기 위해서 히브리서는 바울의 저술로, 야고보서를 주의 동생에게, 유다서를 예수님의 또 다른 동생에게, 베드로 후서를 베드로에게, 요한2,3서를 요한에게 돌려 그 사도의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키릴(AD315~386)은 신약성서의 강의목록에서 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책을 소개하였고, AD367년에 와서야 아타나시우스가 지금의 신약성서와 똑같은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 신약성서 27권을 393년에 힙포 레기우스에서, 397년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각각 정식 채택하였고 어거스틴도 이 정경을 지지하였다. 그것이 마침내 제롬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신약 27권 중에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유다서, 계시록을 제외한 정경이 5세기 초에 수리아 말로 번역, 발표되어 표준성서의 구실을 하였는데 그 성서를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동방 수리아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 22권짜리 신약성서를 정경으로 가지고 있다.

 

3. 서로 다른 정경

 

구약성서는 몇 권일까? 천주교(46권)와 개신교(39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희랍)어가 더 익숙했다. 그래서 기원 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여 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를 ‘칠십인역’(셉튜어진트 희랍어판)이라 하며,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n Canon)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정경 39권(제1경전) 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 일곱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13~14장), 에스델서 일부(10,4~16,24)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제2경전 혹은, 외경이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얌니야 회의'에서 유대인 랍비들이 결정한 것은 결국 이들 제2경전들은 정경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이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서’전통의 입장에서는 제2경전들은 정경 밖의 책, 즉 외경이 되는 것이다.

'얌니야 회의' 이후부터 구약성경의 정경은 두 가지 전승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즉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서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외경들을 제외시키는 '히브리어 구약성서' 전승과 외경들을 포함시키는 '희랍어 구약성서' 전승이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희랍어로 번역된 '희랍어 구약성서'를 읽었다. 즉 기독교회는 구약성서에 있어서 '희랍어 구약성서' 전통을 채택한 것이고, 이것은 로마 카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에 의해 계속해서 유지되어 내려왔다. 즉 로마 카톨릭교회는 '희랍어 구약성서' 전승을 받아들여 온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정경전승은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루터는 정경문제에 관해서 히브리어 구약성서 전승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제2경전들을 외경으로서 정경의 범위에서 제외시켰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Protestant Church)에서는 외경을 제외한 39권의 책만을 구약의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트렌트 종교회의(Trent Council, 1545-1563)가 소집되었고, 정경문제에 대해 제2경전들 중에서 몇 권을 정경에서 제외한 외에는 종래의 '희랍어 구약성서'의 기본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구약성서는 개신교회보다 7권의 책이 더 많은 구약성경을 사용해 오고 있다.

개신교는 외경을 일체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데 반해 천주교는 구약외경들 중에서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의 성서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도합 66권이나 천주교의 성서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으로 도합 73권인 것이다. 외경을 넣느냐 빼느냐의 차이는 결국 교리의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지금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한글개역판 성경, 공동번역판 등의 신약성서에 인용된 거의 대부분의 인용문은 ‘70인역’이라고 주(注)가 달려 있어 70인역에서 인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70인역에는 외경이 포함되어 있으니 개신교에서 외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본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는 언제라도 외경을 빠뜨린 적도 없으며 더구나 집회서 같은 것은 교회의 전도에 아주 널리 쓰인 경전이라는 것이다. 개신교의 구약성경(39권)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서 정한 것일 뿐이고 기독교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희랍어)로 된 칠십인역[제1경전(정경 39권)과 제2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의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쿰란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에서 300구절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다음의 구절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태 6,14 / 집회 28,2 마르코 6,15 / 집회 48,9~10

루가 13,27 / 1마카 3,6 루가 24,4 / 2마카 3,26

요한 3,12 / 지혜 9,16  로마 1,20~32 / 지혜 13,10~19  1베드 1,6~7 / 지혜 3,5~7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체의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 외경의 어느 책도 스스로 영감 받았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2) 유다인들이 정경으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3) 외경의 많은 책들이 역사적, 지리적, 연대기적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4) 외경의 많은 책이 성경 말씀과 모순이 된다 등등이다.

이러한 외경들로 인해 개신교와 다른 교리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① 연옥: 마카베오하서 12장 39-45절

② 구제(즉 자선 행위)에 의한 구원: 집회서 3장 30절

이외에도 자살을 인정한다든지(마카베오하서 14장 43-46절), 비참한 노예제도를 인정한다든지 (집회서 33장 24-28절), 윤회(솔로몬의 지혜서 8장 19,20절)를 인정하는 구절들이 있으며,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몰래 죽이거나 마술을 통해 신비주의를 행하는 것 등을 인정하는 구절들이 있어, 우리 개신교인들이 믿는 성경과 상치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개신교 정경만 가지고도 그 안에서 서로 모순되는 말씀들, 비과학적인 내용들, 노예제도와 윤회를 인정하는 말씀구절 등은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언급해 나갈 것이다.

에라스무스(Erasmus)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 요한2,3서, 유다서, 계시록 등이 옛날부터 계속 의심을 받아왔다고 지적하였으나 그는 충성된 로마 카톨릭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주장을 고집하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며,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상기시킨 7권의 이의서(異議書) 중에서 넷만을 문제 삼았다. 히브리서에 대해서는 배교자(背敎者)들에게 두 번째 사죄를 허락지 않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야고보서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것보다 행위를 더 고조하는 것같이 보인다고 비난하였고, 유다서는 베드로 후서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으며, 계시록은 애매하여 그리스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들을 자기의 번역에서 신약성서의 맨 끝에 두었다. 먼저 그가 완전히 수락한 23권을 열거하고 그 번호를 적어 넣었으며, 다음에 약간 여백을 남겨 놓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 오는 책들은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것임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 열등함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번호도 붙여놓지 않았으니 결국 일군(一群)의 신약 외경과도 같은 취급을 한 셈이다.

정경과 외경의 구분은 여호와신이 한 것도, 예수가 한 것도 아니다.사람들,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주교는 구약에 7권의 정경을 추가한 데 반해 동방수리아 교회는 오히려 신약에서 5권을 줄여서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경을 다르게 사용하는 이들은 서로를 각각 이단시하고 있다. 정경은 과연 몇 권이 되야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