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속의 예수
우리는 흔히 예수가 먼저 세상에 오고 바울이 그의 가르침을 전파 한 줄 알고 있지만, 예수 신화파에서는 그 거꾸로를 주장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속의 예수는 영지주의적인 사도들이 메시아를 전파하고 난후에 등장한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큰것이다. 신약의 예수는 바울(Paul)과 후대 교부들의 필요에 의해 상징적인 인물로 재구성과 재포장을 통해 만들졌을 가능성이 높다.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예수의 12 제자는 어떻게 된것일까?
신약성경은 이들의 행적을 완전 무시 하고 있다. 자칭 정통파 기독교측에서 정경으로 채택 하기를 거부한 외경들에 간간이 그 들의 행적과 말로가 기록 되어있다.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배척된 문서들이다. 오늘날의 정경에서도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적이 없는 바울이 기독교를 널리 전파했으며,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은 바울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약 속의 바울 사상은 철학자 칸트(Kant),피히테(Fichte), 셸링(Schelling)등에 의해 구별되어 지기 시작했고, 에른스트 카제만(Ernest Kasemann)같은 신학자들이 나타나, 기존 기독교 교단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의심을 품기에 이른다.
빌헬름 네슬(Wilhelm Nestle)은 "기독교는 바울에 관한 종교다. 기독교는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대치해 놓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신약은 바울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원시 기독교 교리에 떠돌아 다니는 예수설화를 종합 했거나 아니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기독교를 창조한 장본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이나 헬뭇 쾨스터(Helmut Koester)가 신학적으로 정립했다.
우선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계기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다마스커스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러 가는길에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하는 예수의 말과 환상을 경험하고 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바울이 예수를 알지 못했음은 그의 서신속에서도 잘 알수가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에도 그가 예수의 생가나 그의 무덤, 또는 골고다 언덕을 순례 했다는 기록이 없다. 게다가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는 서로 엇갈린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의 환상을 접한후 예루살렘에 가서 바나바의 소개로 제자들을 만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개종후에 삼년동안 예루살렘에 방문한적이 없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외에는 만난 제자가 없다고 한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갈라디아서 1장 17~20절]
바울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어느쪽이 진실일까?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1장18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 전서 15장 20절]
여기서 바울은 예수는 죽은자 가운데 처음으로 부활한 자로 언급했는데, 예수가 부활시킨 나사로와, 마태 복음27장 52절에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했을때 무덤들이 열리며 한 떼의 성자들이 살아 나왔다는것을 모르는 것일까?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12장 16절]
바울은 변절자들을 경고 하면서 구약성경에서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판 에서를 예로 든다.
변절자에 대한 비유로는 은 30냥에 예수를 판 가롯 유다가 훨씬 더 적격이 아닐까?
왜 십 수년전의 배반자 가롯유다는 무시한 채 비유로써 적절하지 않은 구약 시대로 올라 가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공동번역판]
바울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킨 주기도문도 몰랐을까? (개역한글판에는 어떻게 빌어야 할지로 번역되어서 뜻이 퇴색해져 있다. 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은 "기도"라고 번역되어져 있다.)
또한, 예수는 즐겨 자기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했는데, 바울서신에서는 그 단어가 나타나질 않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권력자에게 굴복할 것을 명령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장 1~2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서 13장 4절]
또한 바울은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로새서 3장 22절]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디모데전서 6장 1~2절]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장 9~10절]
위에서 언급된 권력자에 대한 굴종과 노예제도에 대한 인정 구절은 공동번역판과 영어성경을 보면 더욱더 노골적이다.(개역한글판은 애매모호한 번역으로 부끄러운 성경구절을 감춰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권력은 하늘에서 나는 것이니 권력자에게 굴복하라"는 로마서 13장 1~5절의 바울의 말은 중세시대 왕권신수설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시절 목사들이 악용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데 오용했던 문제의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빌레몬서 1장 13~19절에 따르면 기독교인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가 도망쳐 나와 바울을 찾아갔다고 한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던터라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제가 대신 갚아 드리겠읍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노예제도에 순응하고 권력자에게 순응하라고 한 바울의 말은 예수의 가르침과 같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누가복음 22장 25~26절]
위의 개역한글판의 내용이 하도 엉망으로 번역이 되어있으므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 [루가복음 22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리고 1 세기 당시 미신과 분파가 횡행 하고 많은 이적들이 주장되고 있던 풍토에서도, 서신 문헌들에는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 한 곳이 전혀 없다.
그토록 유행 했고, 4 복음서에도 숱 하게 기록된 병 고침의 기적, 귀신 쫓아 내기 등에 일체 침묵 한다.
또한 바울과 대립했던 예수의 직접적 제자인 베드로 역시 의문점이 있다.
베드로의 이름이 유래된 것은 예수가 시몬에게 "너의 이름을 베드로라 하라.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한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복음서는 기록 하고 있다.
이후로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 기초로 여겨지고 카톨릭의 초대 교황으로 추대 되었다.
이것은 베드로 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반석을 의미 하는데서 유래 되었는데, 조금 이상한 이야기 이다.
당시의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람어(바빌론 유배 후 사용된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했는데, 예수가 실존했다면 당연히 아람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예수는 어째서 일자 무식인 제자에게 지식층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이름을 지어 주었는가?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단어는 게바이다)
어쨋던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는 예수의 위임 선포가 정말 있었다면, 왜 1 세기의 문서들에서 그 인용이 발견되지 않는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사도 간의 치열한 교권다툼 때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구절이야 말로, 사도로써 베드로의 권위와 정통성 확립에 결정적 증거가 아닌가?
베드로 전서와 후서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100 여년 넘도록 마태 복음이 쓰여 질 때까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고 쓰여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의 12 제자가 아니고,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chist)는 구원의 비밀을 보여 주는 영지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도 12 제자 얘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후에 만들어져 낸 것 이라고 서술 했다. 도마 복음의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예수는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린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유대 사회는 몹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요구 하고 있었다.
구세주 사상이 유행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사회의 혼란상이었다. 거듭되는 전쟁과, 유대사회에 끊임없이 유입되는 이교도 사상속에서 이교도의 신이 히브리 구약 성경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예수이다. 여기 저기에서 자칭 메시아들이 나타나고, 구약에 능통한 여러 사도들이 독립적으로 종파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세를 키우기 위해 경쟁 했다. 바울도 그런 사도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구약 성경을 연구 통달한 영지주의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구원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 했을것이다. 즉, 예수의 12 제자와 무관한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광범위한 곳에서 그리스도를 이미 증거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과 경쟁관계에 있던 아볼로라는 사도가 가장 좋은 예라고 할수 있겠다.
그는 요한의 세례 까지 밖에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로 인정 받았으며, 경전(=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해가며, 예수를 정확히 증거 한다고 서술 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사도행전 18장 24~28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은 애매모호하고 문맥상 아볼로를 약간 깍는듯한 이상한 번역을 했다. 공동번역판을 보면 아볼로에 대해 칭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다시 인용하겠다.
"한편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와 있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들은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에페소의 교우들은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그를 격려하며 아카이아의 신도들에게 그를 환영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아카이아에 도착하여 이미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도가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가 성서를 근거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떳떳하게 증명하여 유다인들을 여지없이 논박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8장 24~28절 / 공동번역판]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도로 인정받고 예수를 정확히 가르친단 말인가?
또한 아폴로는 유대인에게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한다.
아볼로에 대한 사도행전의 기록은 기독교 탄생 배경의 의문을 말끔히 씻어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4절에서 '바울파','아볼로파','베드로파'라며 교단분열에 대해 한탄할 만큼, 아볼로는 베드로와 바울에 맞먹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사도중의 하나이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나는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라고 말할정도다. 도데체 요한의 세례밖에 모른다면 사도로써 자격미달이 아닌가?
사도행전 18장 24절에 따르면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학문연구소와 그 부속 대(大)도서관을 설립하여 문헌학(文獻學)과 자연과학이 융성한 학문의 도시이다. 70인역의 구약성경이 만들어진 곳도 이곳이다.
특히,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시대에 이르러서 신플라톤 철학이 융성하고 그노시스 사상이 형성되고 발전된 곳이기도 하다.
바울의 출신이라는 다소(Tarsus)는 BC 1세기에 미트라 종교 의식이 행해졌다는 실리시아(Cilicia)의 인접도시이다.
사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시의 이런 문화적인 배경을 놓쳐서는 않될것이다.
알란 시걸(Alan Segal)은 바울의 서신들이 일반적으로 야기하는 당혹감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바울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견해들, 유대 신비주의와 묵시문학, 그리고 신생 랍비주의뿐만 아니라 그리스적 수사학에도 익숙하다." [Alan F. Segal / Paul the Convert : The Apostolate and Apostasy of Saul the Pharisee/ Yale University Press]
앞서 필자가 구약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예수의 일대기에 끼워맞춘 것을 지적한바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유대교 영지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교인중 상당수는 그리스도의 물리적 존재의 실재를 부인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딘밀만(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노시스 파는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것, 혹은 그가 죽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했다." 그리고 독일의 유명한 교회사가인 모세임(Mosheim)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라 형상, 환상, 기적 속의 인물, 실재가 아닌 신화였다."
모든것을 종합해 볼때 당시 사도들이 설파하고 다닌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속의 예수이다!
보수적인 신학계에서는 공관복음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빠르다는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를 AD 70년경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신학자들의 주장대로 4복음서들이 AD 100년 이내로 모두 형성 되었다면, 왜 90년과 130년 사이의 초기의 기독교 교부의 글들 중 그 어떤 문서도, 공관복음서들 중 하나라도 언급하거나 인용하지 않았을까?
AD 90 년경 로마교회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는 다른 사람이다)의 이름으로 저작된 많은 글들이 있다. 그의 첫째 서신을 제외한 다른 것 들은 보수주의 신학자들 조차도 위작이라 인정하는데,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도 예수의 흔적을 찾을수 없다.
그리고 클레멘트 1서 25장에 따르면, 부활에 대해 논하는데 예수는 간데없고, 난데없이 전설의 불사조(phoenix) 이야기를 꺼내며 부활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불사조 신화는 부활의 정당성을 설명 하는데 후기의 터툴리안 및 다른 교부들도 사용 하고 있다.
AD 150년대에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 파이어스(Antonius Pius)에게 변증서(Apology)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미트라교(Mithraism)와 기독교 의식이 유사하다고 여기는 로마인에게, 저스틴은 68장으로 되어 있는 이책에서 61장에서 67장까지를 예배와 관련된 부분으로 할애하며 기독교를 위해 진땀을 빼고 변론 하고 있다.
예배의식에 대해 설명하는 변증론 67장에서 '사도들의 기억들'(memoirs of the Apostles)을 읽고 예배의식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수도 없는데, 이들이 예배에 사용했다는 것은 단편적인 구전 전승들로 추측된다.
AD 4세기경의 유세비우스(Eusebius)교부는 현재 분실된 125년 무렵에 파피아스(Papias)교부가 기록했다는 문서를 재인용 했다. 그의 인용에 따르자면, 파피아스(Papias)교부가 마태와 마가에 의해 쓰여진 두 편의 문서를 언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파피아스 교부는 두 문서가 이야기 형식이 아닌것 처럼(도마복음서 처럼) 말하며, 그나마 "장로(연장자, 원로)에게 전해 들은 것"이라며 자신은 그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세비우스가 옛날편지에서 재인용한 '마가'와 '누가'의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으로 보아, 후대의 주석가들은 그 문서가 오늘날의 공관복음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게다가 교단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직책에 있었던 교부(敎父)라는 사람이, 그 유명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소장하고 있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전해 들었다는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따라서 오늘날의 복음서들은 사도들과 초대교부들이 활동하던 시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만, 예수와 사도들에 대한 구전 전승과, 복음서의 초기형태에 해당되는 단편적인 문서들이 초대교인들에게 떠돌아 다녔을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교정, 편집,흡수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進化) 했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헬뭇(Helmut Koester) 같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복음서처럼 보이는 재료들에 대한 초기의 '암시들'은 마치 복음서들이 문서화된 공관 복음서라는 항구로 자신들의 항로를 발견하기위해 표류하고 있는 표현의 선박 같다." [Helmut Koester / Ancient Christian Gospels: Their History and Development]
즉, 헬뭇 쾨스터같은 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Q문서나 도마복음 같이 구약의 잠언과 같은 형태의 '지혜의 말씀'(예수어록 모음집)과, 초대교회에서 떠돌던 예수에 대한 구전 전승과, 복음서가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진 다른형태의 여러문서들이 존재했고, 이것들이 나중에 4복음서로 진화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이교도들의 신화도 한몫했다고 확신한다)
이제 여태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예수가 어떻게 가공되고 만들어졌는지 필자가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겠다.
① 짜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고,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메시아,종말론,구원론,묵시문학등이 주변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됨. 바빌론 유수이후 유대인들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게됨.
② 점성학에 의거해서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할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함.
③ 시리아,그리스,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은 유대인들은 급속하게 헬라화가 진행됨.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부터 메시아 사상을 내포한 수많은 유대 묵시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함. 이때, 에세네파와 같은 유대교 영지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함.
④ 미트라교가 조로아스터교를 흡수하고 중근동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기시작. 이 종교는 고대부터 내려왔던 동지축제,춘분축제 등을 흡수하고, 그리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디오니소스 의식과 헬라철학도 흡수해버린 괴물종교가 됨.
⑤ 정치적 혼돈속에서 디아스포라화 된 유대사회에,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 이스라엘에 구세주가 왔었다고 선포하고 다님. 예수에 대해 거의 아는것이 없는 사람들이(ex: 아볼로,바울) 구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예수를 증거함. (이들이 증거한 예수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속의 예수일 가능성이 큼)
⑥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사망한 이후, 바울서신과 사도들의 편지들이 기록되고 정리되기 시작함. 또, 그동안 짧은 경구로서만 전해지던 예수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문서화 되기 시작함.(Q문서)
⑦ 시간이 흐르면서 토요일 안식일 같은 유대습성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한 초대교회는, 서서히 헬레니즘 문화권의 태양신 신화를 차용하기 시작함. 이때쯤 전승으로 내려온 단편적인 예수이야기와 Q문서등을 통합한 복음서들이 하나둘씩 등장함. 헬라 철학자 첼수스를 비롯한 여러사람들이 기독교가 헬레니즘 문화의 신들을 표절했다고 비난하기도 함.
⑧ 예수신화의 창조자이며 그 신화의 의미를 알고있는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배척받음. 광신적인 자칭 정통파들은 숫자가 많았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에 밀려나기 시작함.
⑨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 태양신 숭배자였던 그의 영향력 아래 기독교는 일요일,삼위일체설,크리스마스,부활절,십자가등을 마구잡이로 흡수함. 결국, 예수는 미트라를 흡수한 또 하나의 괴물이 되버림. 영지주의자들은 반체제적인 자유사상가들 이었기 때문에, 정치와 손을 잡은 자칭 정통파 기독교에게 완전히 밀려나 버림.
이것이 우리가 얻어낸 예수 신화론의 결론이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바울이 기독교의 제1창립자 라면 콘스탄티누스 기독교의 제2창립자라고 평가할만한 인물이다.
AD 33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유세비우스에게 소실되어 없어진 성경들을 수집하도록 명령한다.
그때, 성경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상당부분의 성경이 첨가,삭제 또는 개정되었다. 현존하는 5천개의 초기 신약성경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의 예수상(相)은 이때 쯤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수 있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대해 언급하는 이교도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 고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궁에 취임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허구속의 가공의 인물일 따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수 있는 것이 부처가 기독교의 성자로 둔갑한 일이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이 붓다를 중세 시대의 성 여호사밧의 성격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다. 중세기독교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이 유명한 사례는 카톨릭 성자인 발라암과 여호사밧(라틴명은 요아삽 또는 요사팟)의 이야기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한 왕자가 어떤 인도 왕국의 승계자로 태어났다. 왕자가 탄생하자 나라안의 예언자들이 왕위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데 문득 한 현자가 나타나서, 그왕자는 위대해지긴 하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개종자로서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자를 보호하고, 또 왕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위해 그의 부친은 그를 왕궁안에 가뒀다. 어느날 잠시 왕궁밖을 나갔다가 왕자는 절름발이와 장님을 목격하고는 인생의 어두운면을 알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있었다. 어느날 이 수도자가 변장을 한 채 왕자 여호사밧을 찾아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부친은 귀신쫓는 마술이나 미녀들을 이용해 왕자를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 였다. 성장한 여호사밧은 왕궁을 떠나 수도자 발라암과 함께 광야에서 수행을 했으며,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각색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일이다.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붓다의 탄생,유년지, 그리고 출가에 맞춰 이야기의 뼈대를 맞추었다. 또 네장면의 목격,여러가지 유혹들, 광야에서의 고행 기간 등 모두가 붓다의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파드마삼바바/ 티벳 死者의 書 / 류시화 편역 / 정신세계사 /P.52]
당시에 동서양으로 뻗어나간 마니교(Manichaeism)에 의해 부처의 이야기가 서양에도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다.
시중에 떠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기독교의 성자(聖者)로 둔갑시킨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카톨릭 성자중에 전설속의 허구인물이거나, 실존인물에 허구의 일대기를 갖다 붙였거나, 심지어 이교도의 성자를 기독교 성자로 둔갑시킨 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빌라도 총독 까지 성자(聖者)로 둔갑시키고 날조문서를 만들어 내던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교인과 교부들이었다. 바로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창조해낸 사람들의 손아귀에 있던 성경이, 시간이 흘러 현재 여러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것이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실존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있는 복음서속의 예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것이다.
복음서속의 예수는 환상속의 예수이다!
그가 실존했던지 아니면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의 존재이던 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속의 예수는 로마 제국 당시 중근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구세주 전설과 헬라철학에 의해 덧붙여지고 가공된 인물이라는 점은 피할수 없다! (신화를 걷어내면 유대 혁명가같은 예수가 감지된다)
제9장/ 삼위일체설의 허구성
삼위일체라는 것은 기독교의 신이 여호화인 성부(聖父), 예수 그리스도인 성자(聖子) ,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의하면, 신성한 세위(성부,성자, 성령)는 각기 영원하며, 각기 전능하며, 아무도 다른 자보다 크거나 작지 않으며, 각기 신(神)이지만 모두가 하나의 신을 이룰 뿐이라고 한다.
이 교리에 대한 다른 설명들은 세위는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신의 본성이 내재하는 세 가지 형태라고 강조한다.
삼위일체는 오늘날 기독교의 기본교리로써 신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기독교의 종파는 초대기독교부터, 중세시대의 영지주의,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등장했다. 기성의 교단들이 이런 종파를 이단으로 몰아붙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교리라는 것이 사실상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성교단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근거가 없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미트라의 숭배자 였던 콘스탄티누스가 개최한 종교회의에서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써, 신약속에서는 삼위일체를 찾아 볼수가 없다. 그리고 정작 신약의 곳곳에서 예수와 신이 동일한 위격이 아님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수와 신(여호와)과의 관계정리는 AD 325년 니케아공의회(公議會)에서 결정되었으며, AD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에 대한 관계정리가 이뤄졌다.
삼위일체설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우선 그 역사적 실체부터 알아야 하지만, 그 역사적 부분에 대해서는 10장의 콘스탄티누스와 종교회의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 삼위일체의 배경
각종 백과사전, 심지어 삼위일체를 신봉하는 카톨릭의 사전에도 삼위일체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조작임을 순순히 시인하고 있다.
권위있는 각종 사전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내린 한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그에 해당하는 명백한 교리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도 구약에 나오는 쉬마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신명기 6:4)는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중략)... 그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된 것이다....(중략)....4세기 말에 이르러....(중략).... 삼위일체 교리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 후 그대로 유지되었다." [NEW Encyclopaedia Britannica - Macropaedia /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신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위 속의 한 하느님이란 교리는 제 4세기 말 이전에는 완전히 체계화되지 않았으며, 확실히 온전하게 그리스도인 생활과 신앙 고백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계화된 바로 이 교리가 처음으로 삼위일체 교리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사도 교부들 간에는 그러한 경향이나 사조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는 노력같은 것 조차 전혀 없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Mc Graw Hill]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성경에서 세 신성한 위를 합쳐서 표시한 단일 용어는 이제까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트리아스] (라틴어 역어는 트리니타스)라는 단어는 주후 180년경의 안티오크(안디옥)의 테오필루스에게서 처음으로 볼 수 있다....(중략).... 그후 얼마 안되어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태인 트리니타스가 나타난다." [The Catholic Encyclopedia]
하지만, 그 말 자체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삼위일체를 가르쳤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카톨릭 저작물인 '트리니타스:성 삼위일체 신학' 백과사전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사용한 몇몇 단어를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지적한다.그러고 나서 그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용례로부터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는 그 단어들을 삼위일체 신학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Michael O'Carroll / Trinitas:A Theological Encyclopedia of the Holy Trinity]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유대교에서 나온 기독교와 유대교는 엄격히 (하나님은 한분의 인격체라고 믿는) 유일신파였다. 예루살렘에서 니케아에 이른 길은 거의 곧은 길이 아니었다. 제 4세기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The Encyclopedia Americana]
프랑스의 신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좀 더 고대 사람들의 시대에 속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 사상들을 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합리적인 철학적 삼위일체로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 희랍 철학자(플라톤, 기원전 4세기)의 개념을....(중략).... 고대의 모든 이교 종교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M. 라샤트르 편/ 신 백과사전/ 파리]
예수회의 죤 L.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경사전'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위격들의 본성이 하나인 삼위일체는 헬라 철학 용어인 위와 본성이란 용어로 정의된다. 사실상 그 용어들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정의는 일부 신학자들이 그러한 용어들과 본질 및 품성과 같은 다른 용어들을 하나님께 그릇되게 적용한 오랜 논쟁의 결과로 생겨났다." [John L. McKenzie / dictionary of the Bible]
성경도해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중략).... 그러한 말은 제 4세기까지 교회의 신학에서 공식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J. D. Douglas /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 IVP]
베른하르트 로제는 간추린 크리스트교 교리사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에 관한 한 실제의 삼위일체 교리를 찾아 볼 수 없다."[Bernhard Lohse / A Short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 Augsburg Fortress Publishers, Publishing House of 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약에는 발전된 삼위일체 교리가 들어 있지 않다. '성서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동등한 본질에 속한다는 명확한 단언이 없다'라고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하였다....(중략)....원시 기독교에는 나중에 신경에 상술된 것과 같은 명백한 삼위일체 교리가 없었다." [Colin Brown, Ph.D.(Edt) /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 Zondervan Pub House]
포트만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식적 혹은 공식화된 삼위일체 교리, 한 하나님 안에 동등하고 신성한 세 위가 있다는 명백한 가르침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중략).... 우리는 동일한 지고의 신안에, 신성한 생명과 활동의 주체인 별개의 세 존재가 있다는 식의 삼위일체 교리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Portman / The Triune God]
예일 대학교 교수 워시번 흡킨스는 종교의 기원과 발전에서 이렇게 확언하였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와 바울이 알지 못한 것이 었음이 분명하다....(중략).... 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 Washburne Hopkins / Origin and Evolution of Religion / Yale U.P]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를 믿지도 않았으며 그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AD 165년경에 순교자 유스티아누스는 예수를 가리켜 만물을 만드신 신과는 다른 창조된 천사라고 불렀다.
예수는 여호와 보다 낮은 위격이며, "창조주께서.....그에게 행하고 말하도록 뜻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유스티누스는 말했다.
200년경에 사망한 이레나에우스는, 인간 이전의 예수는 신과는 별개의 존재이며 신보다 낮다고 말했다.
200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전의 예수를 피조물이라고 불렀지만 신은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유일하신 참 신(神)"이라고 불렀다.
그는 홀로 아들이 "홀로 전능하신 아버지의 바로 다음이지만, 그분과 동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230년경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아버지는 아들(또 다른 존재)과 다르다. 그분이 더 크시기 때문이고, 낳은 이는 태어난 이와 다르기 때문이며 보낸 이는 보냄을 받은 이와 다르기 때문이다....(중략)....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중략).... 만물이 있기 전에, 신(神)께서 홀로 계셨다."라고 말했다.
AD 230년경에 히폴리투스는 "한 분이신 신, 처음이자 유일하신 분, 조물주, 만물의 주"라고 말하면서, 그분과 동년배(연령이 같은 자)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분은 스스로 홀로 계셨던 분이며,자신의 뜻대로, 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200년경의 오리겐은 "성부와 성자는 두 실체....(중략).... 즉 그 본질에 있어서 두 개체"이며 "성부와 비교할 때 성자는 매우 작은 빛이다."라고 말했다.
두산세계대백과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아버지이신 신의 아래 위치한다.고 하는 등, 몇 가지 점에서 교회의 전통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유설(謬說)이라고 공의회의 배척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교 최초의 체계적 사색가(思索家)로서 이후의 신학사상 발전에 공헌한 점은 매우 크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오리게네스 Origenes항목]
역사상의 증거를 요약하면서, 앨번 램슨은 초기 3 세기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에 널리 보급된 삼위일체 교리는....(중략)....유스티누스의 용어로부터 아무런 뒷받침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 말은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모든 교부들에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탄생 후 3세기 동안의 모든 기독교 필자들 에게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과....(중략).... 성령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하다거나, 단 하나의 본질이라거나, 하나 속의 셋이라거나, 현재 삼위일체론 자들의 어떤 의미로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오히려 정 반대이다." [Alban Lampson /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따라서 삼위일체는 초대교회 이후 여러 세기 전체에 걸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삼위일체의 교리는 AD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는 예수와 여호와가 동등하다는 것이 공인된 회의였지, 성령에 대한 언급은 아예 제기 되지도 않았다. 태양신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가 니케아 공의회에서 강제적으로 예수를 여호와와 동일시켜 버린것이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중에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아타나시우스 조차도 삼위일체를 주창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서는 성령따위는 아예 언급이 되지도 않았고, 예수의 본성에 대해서만 결론을 내렸을 뿐 이었다. 물론,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인되었다는 아타나시우스 신경에는 삼위일체가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을 숭배한다....(중략).... 성부도 신이시며, 성자도 신이시며, 성신도 신이시다. 그러나 세신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신이 계시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경은 12세기까지도 동방의 교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17세기 이래로, 학자들은 아타나시우스 신경이 아타나시우스(373년 사망)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필시 5세기 중에 프랑스 남부에서 쓰여졌을 것이라는 점에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중략)....신경은 일차적으로 6세기와 7세기 중에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9세기 독일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사용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로마에서 사용되었다." [NEW Encyclopaedia Britannica]
두산세계대백과 역시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최근의 연구로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와 아를의 대주교 성 카에사리우스의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 저작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5세기경까지 갈리아 남부지방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아타나시우스신조 Symbolum Athanasianum항목]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본질에 대해서 결정이 난후에도, 예수가 신(神)과 동등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한동안 우위를 되찾았으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 회의 신조를 자신의 통치 영역 안에 서 표준으로 확립했으며, 그 공식 문을 분명히 하기 위해 AD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 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공의 회에서, 성령을 신과 예수와 똑같은 수준에 놓기로 합의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처음으로 등장한 삼위일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후에도, 삼위일체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신조가 되지 못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반대했으며 그로 인해 로마로부터 폭력적인 박해를 받기까지 했다. 삼위일체가 규정된 신조로 받아들여진 것은 여러 세기가 지난 다음의 일 이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위일체론이 온전히 발전한 것은 서방에서,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의 용어들로 설명을 시도했을 때의 일이었다." [The Encyclopedia Americana]
그렇다면 도데체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어디에서 온것인가?
눈치채신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동방의 삼신사상이 그대로 기독교에 유입된것이었다.
이집트의 호루스, 오리시스, 이시스의 삼신사상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삼신, 힌두교의 삼신등 고대 중근동에서는 삼신사상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힌두교 신과 의식의 상징에서는 힌두교의 삼위일체에 관해서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시바는 삼위일체 신들 중 하나다. 그는 파괴의 신이라고 한다. 다른 두 신은 창조의 신 브라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다....(중략)....이 세 가지 작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 신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A. Partasarati / The Symbolism of Hindu Gods and Rituals / Bombay]
고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는 삼신 혹은 삼위일체의 신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라루스 신화 백과사전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그와 같은 신들 중 하나를 이렇게 지적한다.
"우주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졌는데, 각 구역이 한 신의 영역이 되었다. 아누의 몫은 하늘이었다. 땅은 엔릴에게 주어졌다. 에아는 물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들이 합쳐서 위대한 신들의 삼신을 이루었다." [Robert Graves / Larousse Encyclopedia of Myth / Prometheus Press]
지크프리트 모렌츠의 이집트의 종교에서는 이집트의 삼신사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삼위일체는 이집트 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중략).... 세 신을 결합하여 단일 체로 취급하면서, 단수로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집트 종교의 영적 힘은 기독교 신학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Morenz, Siegfried / Egyptian Religion / Cornell University Press]
이집트 알랙산드리아출신의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3세기말과 4세기초 교직자들이 동방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지크프리트 모렌츠는 "알렉산드리아 신학이 이집트 종교 유산과 기독교 사이의 중재자 일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기본의 기독교의 역사의 머리말에서는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해서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교 사상이 기독교에 의해 정복당했다고 한다면, 기독교가 이교 사상에 의해 부패되었다는 것도 동일한 사실이다....(중략).... 초기 기독교이 신에 대한 순수한 개념은 로마 교회에 의해 삼위일체라는 불가해한 교의로 변질되었다. 이집트인들이 만들어 냈고 플라톤이 이념화한 다수의 이교 신조들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Edward Gibbon / History of Christianity]
종교 지식 사전은, 삼위일체가 "이교에서 빌려 온 타락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 믿음에 접목"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교의 이교 사상'(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책에서도 삼위일체가 전적으로 이교에서 기원한 것 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제임스 헤이스팅스는 종교 및 윤리 백과사전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인도의 종교에서 브라마, 시바, 비슈누의 삼위일체군(群)을 접하게 되며 이집트 종교에서는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의 삼위일체군을 접하게 된다....(중략)....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생각한 것은 역사상의 종교들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최고의 실체 혹은 궁극적 실체에 대한 신 플라톤 주의의 견해이다." [Hastings, James (Editor) /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 Charles Scribner's Sons]
그렇다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삼위일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플라톤은 BC 428년부터 347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플라톤이 삼위일체를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삼신 신앙을 포함하는 철학 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신 백과사전은, 플라톤의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이전 시대 민족들에게로 소급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들을 재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세 위격 혹은 신성한 세 위를 산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합리적 철학적 삼위일체인 것으로 보인다....(중략)....신성한 삼위일체에 대한 이 그리스 철학 개념은... 고대의 모든 이교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Nouveau Dictionnaire Universel]
초기 3세기의 교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후기에 형성되었으며....(중략)....그것이 점차 자라서 플라톤을 신봉하는 교부들의 손을 거쳐 기독교에 접목되었다." [Alban Lampson /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AD 3세기 말엽에는, 초대교회와 신 플라톤 주의 철학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연합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대중화된 플라토니즘이라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돌프 하르낙의 저서 '교의 역사 대계'에서 교회의 교리는 헬레니즘 사상의 토양에 확고하게 뿌리기 위해 이교적 사상을 흡수했다고 한다.
"사실상 교회는 자체 내에 헬레니즘식 추론, 미신적 견해 및 이교의 신비적 숭배 관습을 합법화 했다." [Harnack, Adolf / Outlines of the Sitory of Dogma / Little Brown & Co, Boston]
삼위 일체설의 교의를 믿지 않는 성명(聲明)에서 앤드루스 노턴은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교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근원이 그리스도의 계시가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임을 발견할 수가있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리가 아니라, 후기 플라톤 학파가 꾸며낸 것이다." [Norton, Andrews / A STATEMENT OF REASONS FOR NOT BELIEVING THE DOCTRINES OF TRINITARIANS / Brown, Shattuck, And Company / Hilliard, Gray, And Co.]
삼위일체론은 복음서나 서신들이 등장하던 시기에도 그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다 로마에서 박해받은 아리우스파의 주장처럼 성경에는 삼위일체를 무색케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등장한다.
1세기 신자들은 예수는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알고 있었지, 예수를 창조신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 역시 자신이 여호와라고 말한적이 없다. 이제부터 그러한 성경구절을 파헤쳐보자.
▶ 성부와 성자는 동등하지 않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0장 30절]
이 구절은 어찌보면 삼위일체를 증거하기에 합당한 구절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오히려 이것은 삼위일체를 증거할만한 자료가 아니라,부정하는 구절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위와같이 스스로를 신격화 시키는 예수에게 유대인들이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라고 화를내며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다. 그러자 예수는 그 유대인들에게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요한복음 10장 34~38절]
놀랍게도 예수는 자신을 구약의 선지자들과 대조시키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냐고 항변했다.
예수는 결국 자기 스스로를 구약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처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구약은 물론, 신약의 곳곳에 등장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세기 6장 2∼4절]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기 1장 6절]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욥기 2장 1절]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기 38장 7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라디아서 3장 26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장 14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장 1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9절]
또한, 하나님의 아들(=인간)을 가르켜 신(=엘로힘)이라고 한 구절도 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편 82장 6절]
결국 예수가 말한 것은 문맥상으로 보아도 예수는 삼위일체를 말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역시 신의 뜻을 전하는 자 정도의 뜻일뿐이다. 그럼 삼위일체에 어긋나는 다른 구절을 계속 살펴보자.
길 떠나는 예수에게 어떤 사람이 "선하신 선생님....."하면서 예수를 붙잡았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장 18절]
벌써 이 한구절 만으로도 예수와 여호와가 동일한 위격이 아님을 여실히 나타내지 않은가?
그래도 믿지 못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다른 구절도 계속해서 끄집어 내겠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장 32절]
종말의 시기는 예수조차도 모르고 오로지 여호와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즉, 예수와 여호와는 동등한 위격이 아닌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한복음 8장 42절]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한복음 12장 49절]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한복음 14장 28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린도 전서 11장 3절]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15장 28절]
위의 구절에서 예수도 여호와에게 복종하는 존재로 언급되어져 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한복음 5장 1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한복음 5장 19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5장 20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39절]
여기서 예수는 강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지만, 피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이 별개의 개체가 아니라면, 그러한 기도는 의미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에게 기도하였을 것이며, 자기의 뜻이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로새서 1장 15절]
위 구절에서 예수는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위일체론자들은 먼저 나신이란 말은 으뜸가는, 가장 뛰어난, 가장 탁월한 이란 뜻이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창조물의 일부가 아니라 창조물과 관련하여 가장 탁월한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또한 삼위일체 교리가 사실이라면, 아버지와 성령 역시 모든 창조물 중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들에게만 이 표현을 사용한다.
먼저 나신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가족 중에서 장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골로새서 이전에, '...의 먼저(처음) 난 자(것)' 혹은 '장자'란 표현이 약 30회 이상 나오며, 그 말이 생물에게 적용된 경우에는 매번 같은 의미가 적용된다. 즉 '먼저 난 자(것)'는 그 집단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 중 한사람이며, 바로의 장자는 바로의 가족 중 한 사람이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그 짐승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골로새서 1장 15절에 나오는 그 말에 특별한 다른 의미를 적용하는가?
그것은 성경의 용법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이미 고수하고 있고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신앙에 기인한 것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장 58절]
위 구절도 앞에서 지적한 골로새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할 것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3절]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들에게 큰 자리를 달라고 부탁했을 때, 예수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개역한글판'의 뜻이 모호한 것을 고려해서 '공동번역판'을 다시 올린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마태복음 20장 23절 / 공동번역판]
예수는 그들에게 자리를 약속할 권한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장 3절]
예수가 승천한 후에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일컫는다.
이들이 삼위일체를 믿었다면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다윗)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행전 13장 23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린 것은 여호와라고 언급해 놓았다.
이상은 예수와 여호와가 동등한 위격이 아님을 증거하는 구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