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神之香 Atheism/안티바이블

안티바이블 14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0. 3. 19. 15:37

▶ 영지주의를 내포한 신약성경

영지주의(Gnosticism)란 말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 단어를 아람어로는 만다(mand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종교적이고 복합적인 의미 때문에 보통 그노시스라고 흔히 부른다.

그노시스라는 말의 뜻은 이 세상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깨달아 얻을수 없는 초자연적인 지혜, 지식 또는 형이상학적 지식을 말하며 근본적 으로는, 하늘에 감추인 영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이 사상은 1~2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로마,그리스,소아시아,이집트 등지에 널리 퍼져 있던 사상으로 기독교의 탄생의 밑거름을 제공했으나, 나중에는 기독교의 이단으로 배척받아 소멸되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단이라고 함부로 규정짓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조로아스터와 동방의 밀교에서 유래되었으며, 기독교의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영지주의는 이미 조로아스터교, 바벨론 종교, 유대교, 헬레니즘 철학과 종교, 그리고 기독교 등과 관련되어 있는 나라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었다.[R.M.Grant / Gnosticism and Early Christianity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6]

20세기 초 신약학자 빌헬름 부셋(Wilhelm Bousset)은 영지주의의 시초를 고대 바벨론과 페르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했다.

 

"영지주의는 무엇보다도 그 자체에 뿌리를 둔 전(前) 기독교 운동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체 용어로 이해되어야지 기독교의 가지나 부산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W.Bousset/ Kyrios Christos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6]

 

부셋의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미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에 유대교의 영지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단순히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서 파생된 분파로 이해 되어서는 안된다.

부셋의 견해에 대하여 언어학자 리챠드 라이첸슈타인은 동의하였으며, 더 나아가, 영지주의가 고대 이란계 종교에서 비롯되었고 조로아스터교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1945년 낙 함마디(Nag Hammadi)에서 복음의 초기 형태를 포함한 여러 문서들의 발견으로 초대교회가 영지주의에서부터 비롯되었거나,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낙 함마디에서 발견된 52개의 본문들 가운데 일부가 기독교 복음의 초기 형태를 대표한다는 사실로보아, 초대교회가 낙 함마디 발견물들 이전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다양한 신앙 형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W.Bauer / Orthodoxy and Heresy in Earliest Chris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로빈슨(J.M.Robinson)은 '낙 함마디 문서와 사해 문서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에서, 영지주의란 기독교 이전에 이미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광범위한 종교 현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기독교 이전에 등장했던 유대 영지주의를 주목했다![J.M.Robinson / Trajectories Through Early Christianity / Philadelphia: Muhlenberg, 1971]

 

그렇다면 오늘날의 신역성경에는 영지주의의 흔적을 찾을수 있을까?

영지주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것은 바로 요한복음이다.

오늘날 예수의 행적을 나타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4복음서라 지칭하고 있다. 이중,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3복음서를 공관복음서로 지칭하고 요한복음서를 경외시 하고 있다. 4복음서 중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행적이 크게 차이가 나고,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영지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두산세계대백과는 요한복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4복음 중 가장 뒤늦게 성립되었다.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마태오 ?마르코 ?루가 등의 복음서)와는 내용적으로는 거의 공통된 데가 적으며 '요한신학(神學)'이라고 할 만큼 그노시스파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요한의 복음서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항목]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공관복음의 주제는 천국에 있다고 본다면 요한복음은 영생과 생명에 그 주제가 있다.

공관복음은 미래적인 종말을 강조한데 반해 요한복음은 현재적인 종말을 강조하고 있다.

또, 공관복음은 율법논쟁이나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데 반해서 요한복음은 상대적으로 율법논쟁, 윤리적인 삶의 교훈이 약하며 교회와 회당에 대한 확고하게 다른 입장에 서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선생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비밀을 알려주는 유일한 계시자로 제시된다.

특히, 공관복음에서는 이원론적인 개념을 쉽게찾아볼 수 없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빛과 어둠' '참과 거짓', '생명과 죽음','영과 육' ,'사랑과 미움','은혜와 율법','믿음과 불신', '구원과 심판' 등 이원론적인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기록된 '말씀'의 원래 헬라어는 로고스(logos)이다. 이 단어는 다분히 영지적인 사상, 또는 헬라적인 사상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BC 540?~BC 480?)는 "만물은 하나의 로고스에 의하여 지배되고, 이 로고스를 인식하는 것 안에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로고스 개념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어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영지주의분파에서 크게 퍼진 사상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Alexandros of Alexandreia.250 ?~328)는'로고스'의 영원성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사상을 계승하여 아리우스와 격한 논쟁을 하기도 했다.

숨겨진성서의 저자는 요한복음의 로고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4복음서의 말씀 또는 로고스는,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를 플라톤의 이데아세계와 연결,로고스를 초월적존재인 하느님을 아는 수단으로 만든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전 20년경~기원후 40년)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유명한 성서 구절에서도 그리스화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의 중개를 통하여 당시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의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1권 / 이동진역 ,P.13]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가 말한 천국의 이미지는 오늘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누가복음 20장,마가복음 12장,마태복음 22장에는 예수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져 함정에 걸리게 만드려는 사두개파들이 등장한다.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파 사람은 유대 율법에 관련되어 예수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유대율법에 따르면 자식을 낳지 못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어느 7형제가 차례로 죽음을 당하면서 형수는 동생들에게 차례로 되물림(?) 되었다. 그런데 부활의 때가 오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사두개파의 이 질문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술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질문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이혼과 재혼은 널리 행해지고 있고, 배우자를 정말로 사랑했어도 죽음으로 인한 사별(死別)로 인해 재혼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들이 천국에 간다면 누구의 아내와 남편이 된단 말인가?

예수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대답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누가복음 20장 34~36절]

 

목사들은 설교를 통해서 바리새파의 세금질문을 자주 언급하지만 사두개파의 질문은 애써 회피한다.

기껏해야 "사두개파들은 율법문제로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등의 간단한 언급만 할뿐, 깊이 파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내세관(來世觀)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흔히 천국에 가서 부모님과 가족들이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것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내세관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예수의 말에 따르자면 인간세상의 가족관계는 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관계의 가장 기본인것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인데 천국에서는 그런 관계가 없다. 부부관계가 없으니 자녀 관계,부모관계 같은 것도 있을턱이 없다. 다만 천사와 동등할 뿐이다. (예수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지만 천국에서는 남녀간의 성구분도 없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것 같다)

천국에 가서도 살아있을때와 마찬가지로 고추와 젖가슴을 달고, 니 마누라니 내 마누라니 하면서 아등바등 영생을 누릴것이라고 생각하는 유치찬란한 기독교인들의 내세관과 예수의 내세관은 맥을 달리한다.

 

누가복음 21장 5절에서 예수는 화려하게 장식된 성전을 가르켜 전부 무너질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리고 예수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장 5~6절]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주여,주여...", "아멘!!!"을 부르짖는 한국의 기독교인이야 말로 예수의 경멸 대상이다.

예수는 당시 유대교의 성전중심 종교행위를 경멸했다.

그리고 바울은 "내안의 그리스도" [골로새서 1장 29절], "그리스도가 내 속에 나타냈다." [갈라디아서 1장 16절],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로새서 1장 27절]를 가르킨다.

바울 자신과 그를 따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장 18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 구절이 뜻 전달이 잘 안되기에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옮기면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 6장 3~6절]

 

십자가에 못박힌것은 예수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옛사람(옛날 자아)도 함께 못박혔고 무덤속에 장사 지내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6장 1~6절]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바울의 말이다.

회개, 하나님에 대한 신앙, 세례, 부활, 심판... 이 모든것을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버려야 할 초보적 교리이다!

성숙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초보적 교리에서 맴도는 사람들은 예수를 두번 십자가에 매다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남긴 말중에는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과 유사한 말도 등장한다. 앞부분에 소개했듯이 도마복음은 초창기에 등장한 Q문서중의 하나로 추측되는 문서이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장 9절]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손으로 만져 본적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을 주겠노라." [도마복음 17절]

 

바울은 구약의 율법을 가르켜 저주라고 폄하하고 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장 10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갈라디아서 3장 19~20절]

 

바울은 율법을 저주라고 말하며, 그것은 중보(중재자)가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중보가 모세라고 생각할 기독교인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보는 한쪽에만 속한 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중보를 모세라고 해석한다면 모세는 선과 악의 편 모두에 서게 되는것이다. 모순일수 밖에 없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지주의 교리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약 자체를 부정하며, 모세의 율법을 가르켜 저주라고 폄하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여호와는 '데미우르고스'(Demiurgus)이며 불완전한 하급신이다.

그런데, 바울은 반영지주의자이며, 그의 서신중에는 영지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고 반론을 제기 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을것이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디모데전서 6장 20절]

 

위의 구절에 등장하는 '지식'의 헬라어 원문은 '그노시스'(Gnosis)이다.

여기서 바울은 그노시스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을 살펴보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서 1장 9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장 3절]

 

여기서도 '지식'의 헬라어 원문은 '그노시스'(Gnosis)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노시스를 얻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 [골로새서 2장 2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 성경구절은 잘못된 오역(誤譯)이다.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에는 "하나님 비밀의 지식 그리스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위의 '지식'도 '그노시스'이다. 바울은 예수가 그노시스라고 말하고 있다!

그노시스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예수가 그노시스라는 말을 남긴 바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앞서 필자는 '신화를 벗겨낸 예수'라는 글에서 두얼굴의 예수를 언급한바 있다. 예수는 자기가 남긴 말도 지키지 않고, 심지어 예수의 말이 또 다른 예수의 말과 대치된다. 복음서의 경우에는 전해 내려오는 예수의 전승들이 문서화 되는 과정에서 그 문제가 발생했겠지만, 바울 서신의 경우에는 후대의 반영지적인 성향을 가진 교인들의 손을 거쳐서 그 문제가 발생했으리라고 본다. 사도행전 같은 경우에는 사도들에 대해 내려오는 여러 전승이 문서화 된것이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행전 9장 7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장 9절]

 

둘 다 같은 장면에 대한 설명인데,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9장에서는 소리만 듣고 아무것도 보지못했다고 했지만, 22장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사도행전 안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것이다.

 

어쨋든, 바울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이어지는 글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고, 이번에는 세례요한과 엘리야에 얽힌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최후의 심판전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기독교인들은 생각하지만, 예수가 직접 자신이 재림한다는 말은 한적이 없고 단지 자신의 부활만을 예언했을 뿐이다. 더욱이 구약속에서 종말의 시기에 재림할 사람은 엘리야라고 말한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4장 5절]

 

그런데 신약에 엘리야가 등장한다. 예수는 세례요한을 가르켜 엘리야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내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줄 깨달으니라" [마태복음 17장 12~1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하는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1장 11~15절]

 

즉, 예수는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부활이라고 말한 것이다.(반면에 요한복음 1장21절에는 세례요한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다.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진술을 하고있다.)

그러나 예수의 말은 우리를 정말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세례요한이 정녕 엘리야라면 그것은 재림이라기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누가복음 9장 18~19절]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군중들은 예수를 가르켜 엘리야나 옛 선지자중에 하나가 살아났다는 식으로 평가한다고 제자들은 대답한다.

예수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 민중들도 이미 윤회(輪廻)를 믿고 있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대목이 아닐까?

기독교 성경속에서 윤회(輪廻)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아마도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윤회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불교인데, 불교는 기독교와 동떨어진 종교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는 인도의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다.

이슬람 세계가 중세유럽과 원한관계로 돌아서기전에는, 인도와 페르시아의 사상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간에게 영향을 미쳤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이미 인도에도 퍼져 나가서 불경에도 배화교를 믿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미트라는 인도의 오래된 경전에도 등장한다.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는 짜라투스트라,붓다,예수의 가르침을 혼합하여 로마와 인도에까지 영향력을 뻗어갔다. 카톨릭의 성자중에는 붓다를 흉내낸 가짜인물이 끼워져 있다.

두산세계대백과는 윤회를 설명하면서 그리스 등지에서도 윤회사상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부분적이기는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말한 이가 상당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윤회 輪廻 항목]

 

사실, 인도,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가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고대사회의 사상가들은 영혼의 존재와 윤회를 믿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 아시리아, 페르시아, 고대 영국에 살던 켈트족의 드루이드교도, 프랑스, 스칸디나비아의 부족들도 이 개념을 믿었다.

특히 주목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바로 서양철학의 한 뿌리인 그리스의 플라톤(BC 427~347)도 자신의 여러 저서에서 인간영혼의 존재와 윤회전생(輪廻轉生)에 대해 가르침을 남겼다는 점이다.

두산세계대백과는 그의 저서 파이드로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들 주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철학자의 정의(定義), 방법의 문제, 로고스(言語)의 문제, 영혼의 윤회와 불사(不死)의 설명 등도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파이드로스 Phaidros항목]

 

그리스의 플라톤, 피타고라스, 플루타크 등을 비롯하여, 서양의 대표적 지성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윤회론을 믿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혔던 인물들이 의외로 많다.

로마의 시인이었던 에니우스는 카르마와 환생의 개념을 로마사람들에게 소개했고, 로마의 대시인 버질(BC 70~19)도 자신의 작품 속에서 환생을 설명했다.

AD 2세기경 로마에 최초의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던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는 환생을 가르쳤고, 그리스의 신학자 오리겐(Origenes)과 성히에로니무스(St. Hieronimus), 성 아우구스티누스(St.Augustinu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도 환생설을 가르쳤다.

당시 서로마제국에서는 오리겐의 윤회설이 널리 퍼져 있었고, 여러 기독교 영지주의파들과 마니교도들도 윤회설을 가르쳤다.

 

그러나 개인적인 노력과 발전으로 영혼의 구원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를 가리키던 당시의 용어인 선재론(先在論)의 개념이 교회신학에서 삭제되었다.

AD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280?~337)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약에 실려 있던 윤회에 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하여, 서기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복음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해버렸다.

6세기경 동로마제국의 폭군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는 독단적으로 윤회설을 이단이라고 결정하고, 553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소집하여 환생사상을 가르쳤던 오리게네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황제와 그의 아내는 윤회사상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을 신격화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김영우/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 정신 세계사]

 

현재의 기독교에서는 영혼 유전설(Traucianism .카톨릭과 루터교)과 영혼창조설(Creationism. 칼빈 장로교)로 나뉜다.

전자에 따르면 영혼은 부모로부터 유전한다고 하고, 후자는 잉태시 신이 영혼을 별도로 창조한다는 주장이다.

두가지 모두 선재성(先在性)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구약속에서도 영혼의 선재성이 내포되어 있는 구절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 1장 4절~5절]

또, 욥기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거친 터를 수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못 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이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기 3장 11절~19절]

 

시험받은 욥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몹시 후회하는 대목이다.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보면 더 뜻이 확실해 진다.

 

"나 지금 누워서 안식을 누릴 터인데. 잠들어 쉬고 있을 터인데. 저 허물어진 성터에 궁궐을 세웠던 지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나란히! 황금을 자랑하고 은으로 집을 채웠던 성주들과 나란히! 나는 어찌하여 낙태되어 묻힌 핏덩이가 되지 못하였는가? 빛도 보지 못한 벌거숭이가 되지 못하였는가? 그 곳은 악당들이 설치지 못하고 삶에 지친 자들도 쉴 수 있는 곳, 포로들도 함께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노예를 부리는 자들의 욕설도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이 없고 종들이 주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곳." [욥기 3장 13~19절-공동번역판]

 

욥이 말하고 있는 태어나기전의 세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彼岸)의 세계같이 느껴진다.

외경속에서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영혼의 선재성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또 하나의 창세기인 하가다서의 인간의 영혼에 관한 대목을 보자.

 

"천사가 지적받은 영혼을 데리고 온다. 영혼은 하나님의 현존앞에 나타나자 허리를 굽혀절하고 바닥에 엎드린다. 그 순간 하나님이 이 정자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영혼이 입을 열어 '오오, 온 세상의 주님. 당신이 나를 창조한 이래 나의 거처로 지정한 세상에 대해서 만족합니다. 나는 거룩하고 순수하며 당신 영혼의 일부인데, 왜 불경한 정자속에 들어가라고 하는 겁니까?'라고 탄원한다......(중략).......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때가 되면, 그 천사가 나타나서 '나를 알아 보겠는가?' 라고 묻는다. 사람이 '그래요, 그렇지만 왜 다른날 오지않고 오늘 오는 겁니까?'라고 대답한다. 천사가 네가 이 세상을 떠날때가 되어서 데리러 온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이 통곡을 시작하고 그 울음 소리가 세상 끝까지 들리지만, 수탉을 제외하고 그 어떠한 피조물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1권, 하가다中 / 문학수첩]

 

신은 인간의 영혼을 불러 정자속에 들어가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명령하고 있고, 인간은 태어나기 싫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후 죽음이 다가오면 다시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이 외경에서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신과 함께 피안, 또는 천국과 같은 곳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영지주의의 사상이 어떤것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영지주의는 단일한 사상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가지로 요약할수는 없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二元論)은 두 가지의 상반되는 원리, 즉' 빛과 어두움'의 신화적 이원론이 '정신과 물질'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물질의 세계는 악의 원리에 지배되기 때문에, 신(神)에 의하여 지배되는 정신의 세계와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우주관을 물려받은 영지주의자들 역시, 물질과 육신은 근본적으로 악한것이며, 처음부터 악하게 창조 되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과 육체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원이란 바로 물질의 세계, 즉 육체의 속박으로 부터 해방과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상 영지주의자들이 극단적인 이원론자라는 점만 빼면, 기독교 자체도 이원론에서 태생되었다는것을 부정할수 없다.

즉, 종말론 이라는것 자체가 이 세상에 대한 강한 부정(否定)이자 비관적(悲觀的)인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급한 신(Demiurgus: 제작자라는 뜻)에 의해 창조된 물질세계는 무질서에 의한 싸움과 타락 등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모세에게 율법을 내려준 여호와는 중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시온과 같은 상당수의 영지주의자들은 신약의 신과 구약의 신을 구별하여 동일하지 않은 신으로 보았다.

즉, 구약의 신은 분노하고(노아의 방주) 추방하고(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저주하는(이방인 살해)신인데 반해, 신약의 신은 스스로를 낮추어 세상으로 온 고급신, 완전신으로 보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그들은 구약의 신은 저급한 신(데미우르고스)라 하여 신인동형적(신과 인간이 비슷하다는 식)인 사관과 신관에서 바라보았다.

따라서 상당수의 영지주의자들이 구약성경을 부정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부정했다.

모세의 율법을 거부한것은 자칭(自稱) 정통파 기독교도 마찬가지 였으나, 자칭 정통파는 구약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영(靈)과 육체(肉體)를 이원적(二元的)으로 대립시켜 놓았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취한 육체는 진짜 육체가 아니라 환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현설(Docetism)인데, 즉 예수는 육체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환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른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예수의 몸은 보통 육신이었는데 침례 시에 그리스도의 영이 내려와 메시야의 직분을 수행하다가 십자가에서 떠났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파에서는 그리스도가 공적인 사역을 하는 동안 잠정적으로 사람 육체를 빌려 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이 바로 예수신화를 창조해낸 장본인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 이야기는 단지 그들의 종교적 교리를 담기위해 만든 신화일뿐인데, 나중에 등장한 '자칭 정통파'들이 이들을 적대시 하고 성경의 내용을 날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당시 영지주의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에게만 전해졌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에게도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육체적 인간, 정신적 인간, 영적 인간이 그것이다.

육체적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영적 인간만이 구원될 수 있다. 정신적 인간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노시스와 예수를 본받는 실천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라는 요한복음의 말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테오필루스 등이 말한것 처럼 "참된 그리스도교인은 그노시스를 지닌 사람들이다"라는 설명이 단적인 예이다.

영지주의자 마르시온이 교회를 세운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학파에 지나지 않았다.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만 그노시스가 전수 되었던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여러 단계의 그노시스가 존재했는데, 각 차원에는 모두 중개자가 있어 이 중개자를 통하여 상급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칭 정통파'들은 교리의 초보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그노시스를 전수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시온의 교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 때문에, 대가리 숫자가 많은 '자칭 정통파'에 밀릴수 밖에 없었다. 자칭 정통파 기독교로부터 배척된 영지주의는 3세기경에는 쇠퇴의 조짐을 보였으나, 중세시대에도 카타리파와, 보고밀파와 같이 그 명맥을 계속 이어가며 등장했고 자칭 정통파 기독교의 골칫거리가 되어갔다.

 

 

▶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의 기원

오늘날 기독교인들에 알려진 예수의 존재가 얼마나 허구적이라는 점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로도 알수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하필이면 고대 중근동의 동지축제와 춘분축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예수는 기가막히게 동지 축제에 태어나고, 춘분 축제때 부활했는가?

 

(1) 크리스마스의 기원

독일의 종교개혁가였던 파울 어니스트 야블론스키(Paul Ernst Jablonski)에 따르면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출생일을 축하하는 일은 4세기 교회가 채택했던 기독교가 이교도화 된 많은 일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베네딕트 수도사인 돔 쟌 하도용(Dom Jean Hardouin)도 카톨릭 교회가 이교도 축제 들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은 종교개혁과 더불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 혁명을 이끌었던 비국교도들(dissenters)은 1664년 법령(Act of Parliament)에 따라 크리스마스때 가게들을 열도록 했다. 165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금지했고, 1870년에 이르러 크리스마스에 학교를 닫지 않고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초창기의 개신교는 크리스마스를 거부했으나 1836년 미국 앨라바마 주에서부터 공휴일로 지정한 이후 크리스마스 반대의 물결도 점차 수그러 들었다.

그렇다면 초기의 청교도들이 크리스마스를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25일(크리스마스)은 예수가 태어난 날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정확한 예수의 탄생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12월25일은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 로마인들의 태양신을 맞이하는 축제였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미사,축제일)의 두 단어가 합하여 이루어진 말로, '메시아 제전'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 의해 크게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그날은 엄연하게 예수탄생 이전에도 동지날 축제와 수많은 메시아와 신들의 축제 였기 때문이다.

12월25일은 일년 중 낮의 길이가 짧아지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속한다. 농경 생활을 하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태양은 곧 절대자의 상징이었고 태양이 다시 그 힘을 회복하여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이날은 춘일의 도래와 함께 생명의 소생을 예고하는 날로서 고대인들이 메시아 신앙으로 미래를 소망하던 날이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12월 25일의 기원은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 하늘의 여왕인 이쉬타르의 아들 탐무스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종교적 축일이었으며,이집트의 하늘의 여왕인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가 태어난 날이다.[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 /도서출판 안티오크]

그런 종교적 관습은 후에 등장한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교에도 이어지게 된다.

12월 25일은 다시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의 생일이 되었으며, 다시 미트라 숭배자들에게 태양신(미트라)의 탄생을 숭배하는 날로 이어졌다.

BC 336년경 부터 로마에서는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농신제(Saturnalia)를 지키면서, 축제를 베풀고 거리에서 가면을 쓴 채 술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기독교가 헬레니즘문화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그들의 풍습을 하나둘씩 흡수하면서 손쉽게 이방인들을 교화시킬 수가 있었다. 이것을 기독교의 토착화라고 한다.

 

예수가 태어난 날은 복음서에 기록이 없는데, 다만 2세기 때 이집트의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기념했다고 한다.

그러나 353∼354년경 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 6일을 신현절 혹은 세례절로,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고 공식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BC 45년 경 시작된 로마의 율리안 달력에 따르면 12월 25일이 동지(冬至)였기 때문이다.

매클린톡과 스트롱의 교회문헌 백과사전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해 놓았다.

 

"크리스마스 기념은 하나님이 명령하신것도 아니며, 신약에서 기원한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신약이나 여타자료에서도 확인 할수없다. " [ J. 매클린톡과 J. 스트롱 공편 , 교회 문헌 백과사전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뉴욕1871년판 2권 P.276]

 

헨리 대니얼 롭스의 예수당시의 일상생활에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 양은 .... 겨울에는 우리안에 넣는다. 이 사실하나만 보더라도 겨울에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날짜가 옳을 수 없음을 알수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는 그때 목자들이 들에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헨리 대니얼 롭스. 예수당시의 일상생활. 뉴욕 1962년판, P.228]

 

이스라엘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북부와 남부의 기온 차가 커서 12월에 남부 해안에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가 하면 북부 지방에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하다.

북반부는 지중해성 기후이고, 요르단지구대는 여름에 찌는 듯이 더우며, 남반부는 전체가 네게브 사막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겨울철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데, 10월 말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 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양떼를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다. 에스라 10장 9~13절을 보면, 에스라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대달력-현재달력으로 11월 중순경 이후임)에 비로 인해 추위에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가 탄생할 때 목자들이 밤을 세워 들판에서 양을 몰았다고 한다.

(참고삼아 말하면, 팔레스타인은 여름철에도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40도나 될 때가 있고, 밤은 떨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채권자에게 담보로 잡은 외투를 저녁에는 채무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하고 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이유는 좀 모호한 면이 있지만,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느 동지 즈음에 ' 태양의 재탄생'을 위해 지켜졌던 이교축제 기간과 일치하게끔 그 날짜(12월 25일)가 선택되었다는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로마의 농신제(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와 신생되는 태양신에게 바쳐진 절기)는 또한 이시기에 지켜졌으며, 일부 크리스마스관습들은 그 고대 이교 축제에서 유래된것으로 생각된다. " [아메리카나백과사전.1977년판,6권,P.666]

 

신 카톨릭백과사전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알려져 있지않다. 복음서에서는 그 달과 그 날짜를 알려주지 않는다....H.유시너가 제기하였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가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이 동짓날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 애굽인에게는 1월 6일)로 지정된 이유는 그 날, 태양이 북쪽하늘로 되돌아 오기 시작할때 이교도인 미트라 신봉자들은 무적 태양의 탄생일을 축하하였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아누스는 274년, 12월 25일에 태양신을 제국의 으뜸가는 수호신으로 선포하였으며 한 신전을 마르티우스 광장에 있는 그 신에게 바쳤다. 그 후 크리스마스는 태양숭배가 로마에서 특히 성행할 때에 시작하였다. " [신 카톨릭백과사전.1967년판,3권 P.656]

 

두산세계대백과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농경사회의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31일(혹은 17~24일까지, 또는 1월 1일)까지 계속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신은 본래 그리스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탈리아의 신으로서, 크로노스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그리스에서 와서 더 오래된 야누스의 도움으로 '황금시대'의 즐거운 날을 보내다가 문명화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새턴은 특히 사람들에게 대지의 경작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새턴은 재배와 포도의 채집과 관련되어 있다. 이 크로노스 신(로마에서는 사투르누스신)을 제사하는 '사투르날리아' 기간에는 노예도 자유롭게 주인의 연회에 참석할 수가 있으며, 혹은 주인이 거꾸로 노예에게 봉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연령 ?성별 ?계급의 구별 없이 연회 ?경기 ?행렬 따위가 벌어졌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도 서로 선물을 교환하였다. 이 기간 중에서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으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특히 기념되었다. 또 '미트라의 축일'도 이 날이었다. 미트라는 본래 페르시아인의 신으로서 태양과 동일시된 인도 ?유럽 민족의 옛 신성(神性)이었다. 이것이 로마 사람들, 특히 군인 ?병사 사이에서 숭배되어 유럽 각지에 전파되었다. 이것은 태양신, 불패의 태양으로서 숭경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켈트 민족의 제사(祭司)계급이었던 드뤼도들도 그들의 높은 성소(聖所)에서 이 기쁜 날을 축하하고, 또한 게르만인도 이 날을 유쾌하게 축하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농경력(農耕曆)상의 성대한 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을 결합시킨 것이 크리스마스이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크리스마스 Christmas 항목]

 

로버트 J. 마이어의 '축전-미국인의 축일 전집'이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축하되기 이전, 로마 세게에서의 12월 25일은 나탈리스 솔리스 인비크티,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었다. 줄리우스력의 동지 직후에 벌어졌던 이 축제는 태양신 미트라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미트라 숭배의 영향외에도, 이교의 힘이 작용하였다"

 

즉, 크리스마스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이교도적인 관습들을 흡수한 것이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같은 개혁자들과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은 이같은 크리스마스의 비성경적인 배경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톨릭의 미사는 물론이고 크리스마스를 교회의 절기인 양 받아들이는 것을 엄격히 금하기도 했지만, 이미 오랜기간동안에 지켜져왔던 축제일이기에 사라질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고대 이집트에서의 동지제(冬至祭) 때의 나뭇가지를 장식하고, 로마의 동지제 행렬에서는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을 들고 행렬을 했던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있다.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데는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에 대한 전설이 있지만, 그것은 전설일 따름이고 신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교도들이었던 유럽인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던 나무숭배는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존속하였는데, 마귀를 ?'아내기 위해 신년에 집과 헛간을 전나무로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들을 위해 나무를 세우는 스칸디나비아의 관습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 [The New Encyclopedia Britannica / Christmas Tree 항목]

 

고대 로마인들은 농사의 신 새턴을 위해 농신제 기간인 12월25일에 감탕나무 가지로 신전들을 장식했다고 한다.

또, 고대 켈틱 영국의 드루이드(Druids) 교도들은 겨우살이 나무가지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가지는 악귀와 마법과 그 밖의 재액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호신부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겨우살이 가지 밑에서 입맞춤을 하면 결혼하게 된다는 미신도 생겨나기도 했다.

 

또, 크리스마스 트리와 더불어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산타클로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바에 의하면 미라(Myra)의 주교 성 니콜라스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성 니콜라스에 대한 상당부분은 거의 전설에 지나지 않고, 알렉산더 히슬롭의 설명에 따르면 산타클로스의 실체는 다름아닌 로마의 농신 새턴(Saturn)의 분신이라는 것이다. 가령 농신제의 풍습 중에 작은 인형을 선물로 교환하는 풍습도 변형된 것 이라고 주장한다. [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도서출판 안티오크]

 

그렇다면 이런 이교도축제일이 어떻게 예수의 탄생일이 되었는가?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짜를 무적 태양의 탄신일을 알리는 표가 되는 이교 로마 축제일과 일치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The New Encyclopedia Britannica / Christmas 항목]

 

(2) 부활절의 기원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부활절 역시 이방종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부활절은 영어로 이스터(Easter)라고 하는데 그 단어는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 기독교, 혹은 유대교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이교 여신 즉, 낮과 봄의 떠오르는 빛의 여신 이름으로부터 온 말로, 지중해에서 지냈던 춘분축제(봄의 여신축제)가 기독교식으로 토착화 된 것을 의미한다. 튜튼족 여신 에아스트레(Eastre)의 날이 토착화 되어 영어 이스터(Easter)가 된 것이다.

부활절을 뜻하는 명칭인 이스터(Easter)에서 알수 있듯이, 그 기원은 춘분(春分)때 봄의 여신 축제의 변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부활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해마다 바뀌는 것도 그것이 춘분의 영향이다.

이스터(Easter)는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타르테(Astarte), 이쉬타르(Ishtar)의 현대적 표현이며, 히스롭(Hislop)에 따르면 이 중 마지막 것인 아쉬타르(Ishtar)가 오늘날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Easter(부활절)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미국인의 연례 기념일 편람'은 여신 오스테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스테라는 발할라 신전의 문을 열어 발데르를 맞이하는 여신이다. 발데르는 그의 순수함때문에 백색의 신이라 불리며, 그의 이마로 인류에게 빛을 비춰주기 때문에 태양신이라 불린다." [Stephen G. Christianson, Jane M. Hatch / The American Book of Days]

웹스터의 신 국제 사전에서는 이스터(부활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고대 이교도들의 봄 축제,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서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뒤에 오는 만월을 기준으로 해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거행된다. 부활절은 춘분과 음력이 연결된 일자이기 때문에, 그 날짜는 매해 달라진다. [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 Easter 항목]

 

'성서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스터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드(Bede)에 의하면, 이 명칭은 고대 튜우튼 족이 4월에 희생제물을 바쳤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천 의식은 아마도 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정인찬 / 성서대백과 /기독지혜사 ]

 

중세의 성일과 축일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성일의 명칭이 새벽과 봄의 여신인 오스테르라는 이교의 신에게서 따온 것이다."[Medieval Holidays and Festivals / Piatkus]

 

이 부활절(Easter)이란 말에서와 같이, 이 부활절 기간에 행하는 많은 관습들 역시 이방종교의 풍습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

3세기경, 교회에서 지킨 부활 축일은 오늘날 '파스카' 즉 '유월절'로 불렸고, 이 날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파스카'를 '이스터'라 불러 '춘분 뒤에 오는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에 축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AD 325년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 공회에서 춘분축에에 맞춰 부활절을 정한 것이다. [카톨릭 백과사전, P.505]

 

부활절에 나누어 주는 달걀의 유래는 십자군 전쟁에서 어느 군인의 아내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 있으나, 그것보다 훨씬 전에 이집트와 중근동의 춘분축제때 달걀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달걀은 생명이 싹트는 봄의 생명의 부활과 다산을 상징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늘로에서 유프라데스강으로 떨어진 거대한 달걀로부터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Easter)가 부화되었다고한다.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종교의식에서 알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목적을 위해 사원에 알의 형상을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영국의 고대 드루이드교도(Druids)들은 자기들 단체의 거룩한 상징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로마의 풍작의 여신 케레스(Ceres) 행렬에서는 달걀이 앞서 갔다. 아테네에서는 박카스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달걀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금빛을 띤 창조의 알을 숭배했다.

고대인들에게 달걀이 상징하는 의미는 두 가지 였다. 즉,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달걀과 티폰(Typhon)의 달걀이 그것이다.이집트인들에게는 달걀이 태양, 즉 황금달걀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염색한 달걀을 거룩한 제물들로 사용하였다.

 

카톨릭 백과사전의 다음 인용구는 의미심장하다.

 

"사순절 동안 달걀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부활절 즐거움을 상징키 위해 붉게 물들인 달걀들을 부활(절)날 상위에다 갔다 둔다. 이 관습은 그 기원을 이교주의에 둘 수도 있다. 이는 봄이 다시 오는 것을 경축하는 대단히 많은 이교 관습들이 부활절에 끌리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유럽에서 인기 있는 관습들의 사례였다. 부활절 불은 산꼭대기에서 마찰을 일으켜 붙인 새 불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이것은 이교도에서 기원한 관습으로 겨울에 대해 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교들은 이 신성 모독적인 부활절 불들을 금하는 엄한 칙령을 발하였으나 각지에서 이 관습을 폐지시키지 못하였다." [카톨릭백과사전 /제5권/ P.227]

 

대중 관습의 진기한 특징의 윌리엄 역시 카톨릭백과사전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초기 교회들이 확고 부동한 방침은, 근절하기가 불가능하였던 이 이교 의식들에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부활절의 경우에는, 변환시키기가 특히 쉬웠다. 자연의 태양이 떠오르고 자연이 겨울의 죽음으로부터 깨어날 때의 기쁨은, 의의 태양이 떠오를 때, 즉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또한 5월 1일 경에 있었던 일부 이교 의식들은 부활절 축하에 대응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WALSH, WILLIAM S. / CURIOSITIES OF POPULAR CUSTOMS / Illus Lippincott Phila]

 

달걀과 더불어 부활절 토끼에 관하여 한가지 더 인용키로 한다.

토끼는 이교도의 상징이고 항상 다산의 상징이 되어 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은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의 관습으로부터 기독교에 흡수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 이교로부터 기독교화 된 것이다. 토끼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에 해당되는 이집트 말 'um'이 '열린'(open)이란 의미와 '기간'(period)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이 토끼는 어떤 주기성 사상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달과 인간에게,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토끼는 부활절...달걀과 관련되어 있다." [Encyclopaedia Britanica]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부활절 달걀 혹은 토끼는 춘분에 즈음하여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갱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다. 야생토끼나 집토끼는 게르만의 여신 오스타라(중세 영국의 에오스트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여신의 이름이 이스터의 어원일 것이다." [진쿠퍼 /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 이윤기 옮김 / 까치]

 

고대 이집트인과 다른 백성들이 지닌 전설들에는 이 토끼가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라는 이집트인들의 말 um이 역시 열려 있는(open)것과 기간(period)을 뜻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이 토끼는 달과 사람 쌍방에는 주기성 사상으로 또 청년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관계되어 있어 다산의 상징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것과 같이 토끼는 부활절의 달걀들과 관련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부활절 토끼와 부활절 달걀을 둘 다 성적(性的) 의미의 상징들이 되고 다산의 상징들이 되었다.

 

부활절 시즌에 그리스도인 들은 보통 일출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해가 막 떠오르는 부활절 일요일 아침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그런 종교행사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서속의 예수의 부활은 사실상 해 돋을 때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 무덤이 이미 비어있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직도 어두웠을 때였다.

정확히 따진다면, 이 일출 예배 모형은 고대 태양 숭배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에스겔서 8장 16절에서 볼수 있듯이 에스겔 시대에도 유대교의 추종자들조차도 태양경배에 빠졌고 이것을 자기들의 예배의 부분으로 삼았음을 알수 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에스겔 8장16절]

 

엘리야 시대에 바알 선지자들이 바라 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다.

바알은 태양신도 되고 번개와 천둥, 불의 신도 되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며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했을 때, 그는 바알 경배의 바탕과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가 하루 중 어느 때였는가? 그것은 바알 즉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였다. 그 시간은 아침[왕상18:26] 즉, 동틀 때 였다.

한가지 형태로나 혹은 다른 형태로 통틀 때의 태양과 연관된 의식들은 많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서 알려져 왔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그 위치가 정해졌다. 로마의 미트라 교도들도 태양신을 숭배키 위해 동틀 때 함께 만났다고 한다.

이스터(Easter)란 말이 나온 이름인 봄의 여신은 East-er(동쪽-자) 말에서조차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동쪽(east)에서 태양이 솟아 오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동쪽에서 태양이 돋는 것과, 이스터(Easter)라는 부활절 이름과, 봄 계절과는 모두 관련이 되는 것이다.

 

부활절과 함께 사순절역시 이교도의 것이다.

옛 전설들에 따르면 탐무즈(Tammuz)는 죽임을 당한 후 이승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이쉬타르(Ishtar)가 애곡함으로 인하여 그는 봄에 신비하게 소생하였다. 농작물의 성공과 사람들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하여 이쉬타르의 슬픔을 통한 탐무즈의 부활을 매해 극적으로 나타났었다.

매년 바빌론의 사람들은 이쉬타르와 함께 탐무스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고 그녀의 은총과 은전(恩典)을 새롭게 얻기 위해 신의 이 귀환을 축하하여야 했다. 새로운 식물이 싹트고 나올 때 고대인들은 자기들의 구세주가 이승에서 나와 겨울을 끝 마치게 하고 봄을 시작하였다고 믿었다. [우르딘/축제와 성일과 성인의 날들]

이스라엘인들 조차도 이교도의 축제의 가르침과 의식들을 받아 들였다. 에스겔서에서도 여인들이 앉아 탐무즈를 위하여 애곡했다는 일화도 있다.[에스겔 8장14절]

 

전승에 의하면 탐무즈가 40세 때에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고 한다.

바빌론의 풍습에 따르면 탐무즈가 부활하기전 40일간의 금식기간이 있었다. 고대에는 이 40일 동안 신의 은총을 새로이 얻고자 즉, 신이 지하 세계에서 나와 봄을 시작하도록 자기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지켰던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바벨론인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이집트인,이스라엘인, 그리고, 미트라교에도 흡수되어졌다. 미트라교에도 미트라가 부활하기전 40일간의 고난주간이 있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이교도들 가운데서 이 사순절이 탐무즈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알렉산더 히슬롭 / 두 개의 바빌론 / 도서출판 안티오크]

이집트에서도 오시리스를 위해 40일간의 금식을 행했는데, 이집트학으로 정평이 나있는 윌킨슨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봄축제와 관련된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관습이 이미 카톨릭 교회 안에 유입된 고로, 이 축제에 앞서 행해지던 이교도의 "금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일 뿐이었다.「카톨릭백과사전」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한다. 4세기의 저술가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길만한 주장이 없는 이 사도적 제도에 관하여 많은 관행들(예를 들면 사순절의 40일간의 금식)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Richard Wilkinson / The Complete Temples of Ancient Egypt]

 

"사람들이 고기와 다른 몇 가지 음식들을 삼가는 동안을 거룩한 금식이라고 부르면서 교황이 사순절 준수를 공식적으로 명령한 것은 6세기에 가서였다. 카톨릭 학자들은 교회 안에 이교주의에서 빌려온 관습들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카톨릭 백과사전, 제11권, '이교주의' 항목 P.390]

 

그리고 많은 카톨릭 교인들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념키 위하여 매 금요일마다 고기를(물고기로 대체하였지만)먹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인들에게 사순절 기간 외에는 금요일 날 고기를 먹지 말라고 이전과 같이 요청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금요일 날 물고기 관습을 따르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금요일과 물고기가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금요일(Friday)이란 말은 프레야(freya)란 이름으로부터 왔다는 설도 있는데, 이 프레야는 평화, 기쁨 및 다산의 여신 즉, 다산의 상징인 물고기로 알려졌다.

옛날부터 물고기는 중국인, 앗시리아인, 페니키아인, 바벨론인 및 그 밖의 사람들에게 다산의 상징이었다. '물고기'(fish)란 말은 번식 혹은 다산을 암시하는 다그(dag)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한 마리의 대구가 매년 9,000,000개 이상, 넙치류는 1,000,000개 이상, 철갑상어는 700,000개 이상, 농어류는 400,000개 이상, 고등어는 500,000개 이상, 청어는 10,000개 이상... 등등의 산란을 하고 있다.

 

비너스(Venus)는 로마인들 중 성적 다산의 여신으로 불리워졌다.

성병(veneral disease)이란 이 말에서와 같이 veneral이란 말은 이 비너스(Venus)여신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성 (planet venus)이 금요일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신봉하여 비너스의 날(dies Veneris)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금요일을 비너스의 거룩한 날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의미를 완전하게 말한다면, 비너스에게는 물고기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교도와 현대 그리스도인 상징주의(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란 책에서 볼 수 있는 삽화는 여신 비너스가 자기의 상징인 물고기와 같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교 여신으로 경배하였던 아스다롯(Ashtoreth)에게 이 물고기는 거룩한 것으로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시스(Isis)는 때때로 머리에 물고기가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금요일이 성적 다산의 여신을 따라 이름이 지어졌고, 금요일이 이시스의 거룩한 날인 것과, 물고기가 그녀의 상징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카톨릭 교인들에게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고 물고기를 먹게 하는 날로 가르치는 것이 우연한 일치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학자들이 수긍하고 있듯이 이스터(Easter)라고 번역된 말은 유월절 이란 헬라어 말인 파스카(pasch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태양신의 기호(symbol), 십자가

십자가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crux)는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의 번역이다. 그러나 '막대기'가 '목발'을 의미하지 않는것처럼, 희랍어 스타우로스는 크룩스를 의미하지않는다.

다시말해, 희랍어 스타우로스(Stauros)는 주로 곧은 말뚝 혹은 기둥을 의미 하며, 가로 질러놓은 두토막의 재목을 의미하지않는다.

예를들면, '울타리의 막대'(호메로스의 Odyssey 14:11), '성채의 버팀대'(크세노폰 Xenophon, Anababsis V. 2.21), '토대(土臺)의 버팀대'(헤로도토스Herodotus, Hist. V. 6)등을 들수 있다.

이와같이 스타우로스는 고전 희랍어 전체에서 말뚝이나 기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독교가 널리퍼진 뒤에야 희랍어 Stauros는 십자가를 뜻하게 되었다)

헬라어로 씌여진 신약에서도 예수가 매달린 형벌의 도구를 '스타우로스'로 표기하고 있다.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말뚝이나 나무에 매다는 처형은 페르시아,앗수르, 페니키아, 이집트인 등의 관습이었고, 후에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사형수들에게는 말뚝에 묶어놓고 손과 발에 못을 박거나, 아니면 말뚝에 묶어놓고 창으로 찔러서 사형을 집행했다.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십자가와 가장 유사한것은 T자 형 말뚝일 것이다.

예수는 十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다. 나무기둥에 매달려 죽었다!

 

'이중유산: 성경과 대영박물관'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약의 희랍어에 십자가에 해당하는것 같은 단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아는것은 충격적인 일일지 모른다. '십자가'로 번역된 단어는 언제나 '기둥' 혹은 '곧은 말뚝'을 뜻하는 희랍어 단어 '스타우로스'다.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집트와 콘스탄티누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Norman S Prescott / Dual Heritage:The Bible and the British Museum / Odhams Books]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카타콤(지하묘지)의 벽에는 공작, 비둘기, 물고기가 그려졌을 뿐이었고 그 외의 유적에서도 十자모양의 십자가 유적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십자가를 널리 퍼트린 장본인은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는 점이다.

그는 꿈에서 본 십자가를 군대의 방패에 표시한뒤 승리했다. 그런데 이미 로마의 군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미트라교에서도 군인들의 이마에 X를 표시하면 전투에서 죽지않는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초대교회신자들은 십자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형벌의 도구로 쓰인 말뚝에 관심을 가질리가 없었던 것이다.

4세기 무렵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갑자기 태양신의 기호(symbol)를 들고 나타나서 십자가 경배를 조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십자가가 기독교 예술 전면에 등장했으며 공경화 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뒤에는 태양신과 태양신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십자가에 대해서 '두산세계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고대민족 사이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쓰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바빌로니아인(人)이나 칼데아인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의 상징으로서 등변십자가(그리스식 십자가)를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은 영생의 상징으로서 바퀴가 달린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또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폴론신(神)이 십자형의 홀(笏)을 가지고 있고, 게르만신화에서는 토르신(神)이 십자 모양의 해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만자(卍字:범어로 Zrivatsa:갈고리형 십자가)'가 사용되었고, 힌두교에서는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가 가네사(ganesa)라 불리는 남성적 원리를 상징하였으며, 그 변형인 왼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인 사우바스티카(sauvastika)는 칼리(kali)라 불리는 여성적 원리를 상징하였다.

그밖에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인?페니키아인?에트루리아인?로마인, 갈리아 지방이나 브리타니아의 켈트족, 멕시코?중앙아메리카?페루 등지의 주민 사이에 널리 종교적 의의를 가지고 사용되어 왔다. 그 때문에 일부 학자는 십자가를 남근(男根)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십자가 cross항목]

 

십자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지방에서부터 시작된 태양 숭배의 표시로서 그것이 앗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이스를 거쳐 로마로 전래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Horus)의 사제들이 입는 사제복에는 장미 모양의 말타 십자가(Maltese cross)들이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사제복도 동일하다.

장미(the Rose)는 오로라(Aurora : 세미라미스의 다른 이름)와 태양신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 빛의 부활과 생명의 갱신을 가져다 주는 동녘(Dawn)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장미가 십자가와 결합한 말타 십자가는 영원한 새벽의 동녘(the Dawn of Eternal Life)을 의미하면서 모든 민족들이 소망하는 구원자를 상징하고 있다. 이 말타 십자가는 오늘날 로마 카톨릭의 주교단(Bishop's committee)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인쇄물에 찍히는 출판허가(Imprimatur)의 상징이기도 하다.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모든 성경들에는 이 출판허가표시가 붙게 되어 있는데, 개신교 용으로 나올 때는 변형된 도안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빌론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기 위하여 십자가의 네 끝에 세 개의 잎사귀 모양을 첨가한 십자가도 있었는데 그것을 세 잎(trefoil)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로마 카톨릭의 십자가는 네 끝에 세 개의 원을 첨가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태양신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Albert Pike/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또, 이집트의 토쓰(Thoth) 신의 손에 들고 있는 앵크(Ankh) 혹은 안사타 십자가(Crux Ansata)는 생명(life)과 성(sex)을 상징하며, 십자가 위의 둥근 원은 태양신을 상징한다.[Funk & Wagnall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286, P.1168]

특히 신좌(Master's Seat)위의 안사타 십자가 위에 새겨진 'INRI'라는 글자는 고대 현인들이 자연의 위대한 비밀과 연관지어 "Igne Natura Renovatur Integra" (모든 자연이 불에 의해 새롭게 된다)로 설명하였다. [Albert Pike/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P.291]

여기서 불은 태양신 숭배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조로아스터교에도 불은 태양과 관련이 있음), 스토아 철학자들은 '불'을 우주의 근본 원리라 하여 '로고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중세시대의 성화속의 십자가 상 위에서도 INRI라고 기록된 그림이 많다.

카톨릭측에서는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나자렛 예수는 유대인들의 왕이다)의 약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혹을 불러일으킬뿐이다. (참고삼아 또 다른 주장을 설명하자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이 INRI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다. 즉 Iustum Necare Reges Impios/ 경건치 않은 이교도 통치자들을 멸절시켜라. 이것은 로마 카톨릭을 비꼬는 내용인 듯하다)

 

T(타우)에다 P(로우)를 결합한 모노그램은 이집트의 태양신 오시리스(Osiris)의 모노그램이며, 오시리스의 지팡이(the Staff of Osiris)라고도 부른다.

고대 갈대아어와 이집트어의 T는 십자가와 병행되었는데, 이집트인들은 그들의신 카노부스(Canobus)의 상징으로 T자 모양의 십자가와 十자 모양의 십자가를 구분없이 사용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파라오의 사진을 보면 모두가 도리깨와 꼬부라진 지팡이를 X자로 가슴에 얹고 있다. 이는 하늘의 위대한 힘을 나타내는 파라오의 상징이며, 오시리스신의 은덕의 표징이다.

인도의 바쉬나바스 (Vashnavas)는 T자 모양의 십자가를 신성시 할 뿐 아니라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겹쳐진 모양과 갈고리 십자가등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Albert Pike/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바알종교의 비밀입교식 때에 세례를 받는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하였고 [Tertullian/ De praescript. Haeret. cap. 40, vol. ii. P.54], 심지어는 어린이를 제물로 바칠 때에도 가슴을 십자 모양으로 도려내어 심장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십자가는 이같은 인신제물의 상징으로도 사용된 것이었다.

또한 바빌론의 십자가는 '생명과 지식의 나무'(the tree of life and knowledge)로도 불려졌다.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와도 연관성이 있는 듯하며, 십자가를 나무와 잎사귀에 연관시킴으로써 십자가를 치유와 주술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저의도 있었다 [Alexander Hislop / 두 개의 바빌론 / P.200~201]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교에서는 오크 나무를 잘라 십자 모양을 한 다음 그것을 신성시했고 자기들의 사원도 십자 모양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인도의 크리슈나(Chrishna)가 화살에 맞아 죽은 곳도 십자형의 나무 위에서였다. [Albert Pike/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P.290]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창조적 지혜 혹은 로고스(Logos)를 상징하는데, 플라톤은 최고의 신 다음가는 힘(the next Power to the Supreme God)을 우주 안에서 X로 상징한다고 말했다. [Albert Pike/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P.291~292]

기독교의 상징으로 쓰이는 XP 모노그램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부터 유래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 앞두고 꿈속에서 "이 표시에 의하여 너는 정복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십자가를 보게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병사들의 투구와 방패에 그 상징을 새겨 넣도록 명령한뒤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로마의 군인들에게 밀의종교로써 널리 퍼져있던 미트라(Mithras)교에서는 신자에 해당되는 군인들의 이마 위에 X자 모양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십자가는 BC 100~44년에 살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시저)의 주화에 처음 나오고, 다음에는 시저의 후계자(아우구스투스)가 BC 20년에 만든 주화에도 나온다.

콘스탄티누스가 발행한 주화에도 동전 앞면에는 태양신, 동전 뒤에는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십자가의 가장 흔한 모양은 두 나뭇조각이 종목(縱木)의 한 중간에서 교차한 것이다.

횡목(橫木)과 종목이 같은 길이인 경우를 그리스식 십자가(Greek Cross)라고 부르고, 횡목이 짧고 종목의 아래쪽이 긴 것을 라틴식 십자가(Latin Cross)라고 부른다.

또 변형된 모습으로는 종목이 횡목 위로 돌출하지 않은 안토니우스 십자가(crux commissa)나, 두 나무가 비스듬히 교차하고 있는 안드레아 십자가(crux decussata), 죄표(罪標)와 발판을 나타내는 이중십자가(crux gemina) 등이 있다.

 

'부활절과 그 관습'이라는 책에서는 부활절을 언급하면서 십자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자가는 첫 성금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 영원한 의미를 얻기 오래 전부터 이교도들의 상징물이었으며,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에서도 빵과 과자에 때때로 십자 무늬를 새겼다." [Christina Hole /Easter and Its Customs / M. Barrows and Co.]

 

카톨릭이 X와 P를 결합한 모양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교황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 등은 이교도의 영향아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AD 4세기를 전후로 해서, 초대교회는 이방종교의 풍습을 하나둘씩 흡수해 나기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에 끼친 영향력으로 볼때, 바울이 기독교의 제1 창건자라면,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제2 창건자라고 평가할수 있다.

그의 영향력 아래 크리스마스, 십자가, 일요일, 삼위일체등의 온갖 교리와 풍습들이 기독교와 뒤섞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 경배를 조장할 그 무렵, 황제의 모후(母后) 헬레나는 주교(主敎) 마카리우스와 함께 나선 성지순례에서 예수가 태어난 동굴과 예수의 무덤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매달린 진품(眞品) 십자가도 발견했다!

모세의 언약궤를 발견했다는 영화속의 인디애나존스 박사를 뺨치고도 남을만한 업적이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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