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신지화窮神知化/명상 요가

도인술 1

윤지환 철학연구소 2013. 9. 9. 14:00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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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대학시절 한의과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이나 선, 마인드컨트롤에 대한 아련한 동경과 신비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도()를 얻을 수 있다는 신기루를 믿기도 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한의과 대학생도 그러한 면에서는 아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을 것이라고 사려된다. 그러한 환경에서의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선배가 가르쳐주고 혼자서 구한 서적을 통하여 독학을 하며 책속의 내용을 흉내내기를 열심으로 하였으며 단편적인 지식을 쌓기를 틈틈히 하였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의원을 경영하면서 아침으로 등산을 겸한 산행을 1시간 가량 시행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때 이러한 운동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시험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어렴풋하게 인식이 되는 것은 기공(氣功)이라는 요소는 치료의학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아침운동을 하고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심하게 운동을 한 경우 피로감을 느끼는데, 이상하게도 태극권(太極拳)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그 피로감이 덜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외기(外氣)를 이용한 치료술을 쓰는 인재가 잡지나 소문을 통하여 귀에 전달이 될 때에는 점차로 필자의 가슴은 무언가 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사명감의 이유는 이렇다.

기공이나 도인술(導引術)이라는 것은 모두 동양의 문명이 낳은 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행하여서 손해보는 것보다는 이익을 보는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의 정신적인 해이, 특히 필자의 정신적인 해이와 타성에 젖는 일상생활에 자신을 구원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의사의 대부분의 생활은 그대로 틀에 박힌듯이 타성에 젖으며 진취적인 연구의 태도와 치병에 있어서의 무사안일에 끊임없이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새로운 치료방법과 치료철학을 연구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이 점이 필자로 하여금 감히 도인술을 다루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필자가 여러 한의사들과의 대화에서 도인술에 대한 인식을 들어보면 비관적이다. 대체로 기공술(氣功術)중에서도 외기(外氣)를 동원하는 치료술이나 연상하고, 지압이나 안마를 생각하기도 하며, 체조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개념을 선입관념으로 가득 채우고 있으며, 도인술의 치료의학적인 역할에 대하여 아주 회의적이었다는 감을 받았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선입관념으로 도인술이라는 거대한 철학을 다루려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고전에 나오는 도인술을 몸소 시행하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인술은 한의학적(韓醫學的)인 이론을 자신의 몸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과학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정신과 육체를 합일하고, 기혈을 운행시키며, 경락(經絡)을 소통 시키고, 울체된 결절을 풀고, 와해된 기운을 다시 응집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이 기공이라는 행법의 이론을 통하여 수많은 의가(醫家)의 손때가 묻어 치료의학(治療醫學)이라는 대전재를 가지고 성립된 것이 도인술이다. 이 점이 기공과 도인술의 차이점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도인술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세가지 면에서 미비점을 발견하였다.

첫째는 도인술을 시행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하여 너무도 소홀히 여긴다는 점이다. 손을 들고 내리는 행위는 그대로 체조를 하는 의미 이상으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조차도 인간을 소우주로 인식을 하면서 정작 인간의 행위나 활동에 대하여 한번쯤은 우주적인 차원에서 궁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도인술을 시행하는 원리에 대한 철학적인 가치를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결론에 봉착한다. 도인술은 인간의 행위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다시한번 정리하고자 하는 인간의 과학이다. 마치 인간이 화를 내면 기가 머리로 솟구치듯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기가 머리위로 솟구치는 것을 인간은 행위를 통하여 인식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벼가 익어서 고개를 숙이듯이 인간도 나이가 들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관조하는 내적인 성숙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삶의 여정이다. 그러한 면에서 도인술을 보다 철저히 기본원리 면으로 파고 들어야 할 매력이 있다. 정신과 육체사이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추적하는 안목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도인술을 시행하면 건강에 어떠 어떠한 면에 좋다는 식의 기술만이 있을 뿐이지, 오장육부(五臟六腑)와 경락(經絡)의 소통을 위하여 어떠한 행위를 하며, 사지(四肢) 근혈육피골(筋血肉皮骨)에 대한 도인술의 작용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다루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로의 도인술의 언급은 요통에 어떠한 행법을 쓰고 당뇨병에는 어떠한 면의 행법을 쓰면 된다는 식의 언급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정말로 치료의학적인 면을 가지게 할려면 한의학의 생리와 병리적인 인식을 도인술의 기본적인 이론(理論)과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속에서 요즈음의 난치병에 속하는 질환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순서가 될 수 있다.

세째는 한국인 들에게 제시되어진 건강을 위한 도인술이 없다는 점이다. 요즈음 처용무를 응용한 행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역시 확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도인술을 다룬 서적은 대체로 중국에서 사용하는 도인술을 그대로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는 상당히 발전한 태극권(太極拳)이나 팔단금(八段錦), 역근경(易筋經)의 행법이 있으며 요즈음에는 신기공요법(新氣功療法)이나 학상장같은 행법이 조금씩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오금희(五禽戱)도 일부 서적에서 다루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수많은 인걸(人傑)을 통하여 다듬어지고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보면 상당히 편리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질병을 가진 제한적인 활동의 영역을 가진 허약자나 노약자 병자의 경우에는 상당히 접근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이며 간편한 도인술을 고안하거나 정리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도인술에 입문하기 전에 누구나 쉽게 접하여 시행하여 도인술의 묘미를 느끼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면에서 보완하면 보다 나은 도인술의 문화를 우리나라에서도 싹틔울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느끼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교육정책상 생활철학과 교육과 현실이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과 사회생활에서와 개인적인 정서에서 상반된다. 그것을 쉽게 말하여 언행이 분리된다는 이야기이며 속마음과 겉으로의 표현이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결국 옳바른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며 옳바른 행위를 배우는 것도 아니며 옳바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닌 사회적인 분리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도인술은 정기신(精氣神)이 삼합(三合)을 이루게 하여 인체내의 이상적인 변화를 유발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도인술을 시행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욕심을 버리고 구하려는 것을 반드시 구한다는 불굴의 의지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속마음과 행위의 표현을 일치시키고 그 과정에서 솔직한 진리를 절실하게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상당히 이상적인 하나의 사회인이며, 건전한 삶을 사는 하나의 인간이며, 어떠한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교육시켜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필자는 감히 수많은 고인(高人)앞에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서투른 문체를 가지고 도인술이라는 분야를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경지가 높은 고인(高人)에게는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이 된다. 자신을 좀더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시간적으로 우리나라의 도인술은 보다 발전하여야 한다는 점이 촉박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보다나은 도인술의 창출을 위하여 숨기지 말고 다른 지식인에게 제시해야 할 사명감이 작용하였다. 또 보다 나은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높은 경지의 고인(高人)의 편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고자 하는 알량한 시도도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인술이 한의학에서 치료의학의 한 분야로 정립하게 되기를 위하는 염원이 성취되게 하기위한 하나의 진보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에 의하여 필자가 취할 수 있는 연구의 방법은 지금까지 출판되고 여러가지 의서에 수재되고 있는 내용을 섭렵하는 것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도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고인과의 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배님을 찾았으나 역시 깊은 내용을 토론하지 못하였으며 주변의 학문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데에 만족할 뿐이었다. 다행히 김홍경선생의 지혜(智慧)를 얻어들어 도인술을 경락학적(經絡學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도인술을 정리하는 데 좌표가 된 것은 태극권(太極拳)의 이론에 관한 서적을 숙독하면서 부터이다. 여기서 필자는 동양(東洋)의 무술이나 기공의 지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를 가장 기본적으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는 흔적을 발견하였다. 특히 그 도구로 주역(周易)의 이론을 동원하였으며 팔괘(八卦)의 괘상을 통하여 보다 이론적이며 실용적으로 현상을 관조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여 자연의 현상을 그대로 팔괘라는 문자로 바꾸고 그러면서 어떠한 도리(道理)를 형성하였듯이, 인간의 삶의 행위를 그렇게 관찰하였다는 점이 경이롭다. 그리고 이러한 안목을 통하여 보다 합리적인 한의학적인 병리(病理)와 생리(生理)의 이론적인 접근로를 동양철학의 지혜속에서 찾았다. 이 장을 빌어 수많은 선대 의가와 교수님, 선배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기본적인 도인술의 이론은 이상의 해석과정을 통하여 전개하였다. 그리고 인체의 외형적인 부위에 대한 개개의 도인술과 내과적인 치병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도인술을 고전에 출전하는 도인술의 예를 들어가며 분류하여 방법론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일상에서 시행할 수 있으며 치병(治病) 및 건강을 위한 도인술의 포괄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도인술의 응용을 다루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억측이나 과장이 있으며 난해함이 있고 산만한 점도 있다는 점을 자인한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에서 도인술을 연구하였던 의가들이 그들의 지혜를 기록하였던 내용보다는 보다 체계적이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을까 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잘못된 점을 발견하시거나 보다 좋은 의안(醫眼)이 있으신 독자제현의 편달을 바랍니다.

 

1992, 9,

신 광 호

1. 한의학과 생활과 도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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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II. 마음이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

III.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나.

IV. 도인술이란?

V. 도인술의 시행과 건강.

 

 

 

I.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필자가 내원하는 환자에게 던지는 첫번 째의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의 유형은 대체로 진솔하게 대답하는 경우보다는 동문서답하는 식이다. 그 유형을 정리하면 대체로 네 가지 유형의 대답으로 분류된다.

그것은 진맥하러 왔습니다.” 내지는 진찰을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답회피형 내지는 의심형이 많다. “머리가 많이 아파서...”, “팔다리가 저리고 쑤셔서...”, “소화가 잘 안돼서...”식의 순수한 이실직고형이 있다. “무릎이 아픈데 침좀 놔주고 부항좀 붙혀줘.”라고 하는 명령형이 있다. 그리고 어디 편찮은게 아니고 몸이 피곤하여 보약을 먹으러 왔어요.”,“몸이 말라서 살좀 찌려고...”, “몸이 뚱뚱하여서 살좀 빼려고...”, 내지는 몸이 허약하여서 몸보신좀...”하는 식의 허약형 내지는 자기 컴프렉스형이 있다. 이러한 대답의 유형에서 의사는 환자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흘려 버릴 수 없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대답회피형 내지는 의심형의 경우 한방진료를 원하는 대다수의 환자가 상투적으로 하는 대답이다. 그리고 손목만 내밀고 한번 알아 맞춰주기를 기대한다. 이들의 심리는 병이 나서 치료는 해야 하겠는데 믿을 사람도 없고 내 병을 잘알아 맞추는 실력을 가진 정도는 돼야 몸을 맏기겠다는 의도가 내포 되어 있으며 모르면 적당히 얼버무려 다른 의사를 찾으려는 의도가 있다. 이 경우는 그래도 다행인데 어떤 경우는 자신의 질병을 이 의사 저 의사 거치면서 파악하여 보려는 얄팍하고 어리석은 의도도 숨어 있다.

이실직고형인 경우 환자의 심리 상태는 질병에 대한 고통을 빨리 해결하려는 욕망이 큰 환자이거나 외향적이거나 진실한 사람이며 질병의 초기의 환자의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자의 경우 매우 우호적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으며 자신의 질병을 의사에게 고하여 보다 나은 치료를 얻으려는 현명한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간혹 결정적인 증상을 숨기는 경우가 있어서, 일부의 병만을 고하여 이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미리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임질 환자인데 그것을 말하기 싫으니까 방광염을 진단받았다고 한다든가 아니면 대충 자신의 질환중 가장 고통되는 사항만을 말하여 그 수치감을 먼저 벗어나 보고자하는 심리가 내재된 경우도 많다. 농촌의 연로하신 할머니들은 치료비는 모자르고, 자신의 질환을 치료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겠고, 그러니 대충 침이나 한번 맞아보려고 오시는 측은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질환을 전부 말하지 않고 치료를 받으려 하기도 한다.

명령형은 대체로 의사를 믿지 않으며, 자신의 아집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얻은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가진단하여 치료방법까지 내놓고 치료를 요하는 아주 무례한 경우로서 매우 어리석은 부류에 속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학적인 지식이 아주 풍부한 환자이거나 의사 또는 한의사가 집안에 있거나 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의사는 환자에 대하여 아주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않된다.

허약형 내지는 자기 컴프렉스형은 대체로 이실직고형과 비슷하나 어떤 경우 의심형과 비슷한 유형을 띠는 심리상태일 경우도 있다. 이야기하기는 싫고 진맥을 하여 자신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여 알아서 이해시키고 처방하여 주기를 바라는 경우를 경험있는 의사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이러한 환자의 대답에 대한 유형을 분석하는 이유는 필자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갖는 건강한 점과 건강하지 않은 점을 분석하여 보고자 함이다.

사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이 많다. 그리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힘쓰는 사람은 더욱 많다. 개중에는 술 먹고 싸우고 아무데서나 자고 욕하는 식의 무분별한 생활로 건강을 해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불치의 병에 걸렸어도 건강을 찾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는 사람도 많다. 어쨋든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의사를 찾는 사람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고, 필자가 이들을 건강한 사람보다 많이 접하니까 대다수의 사람이 병자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진료실을 떠나 아침운동을 하기 위하여 등산을 하였을 때 만나는 사람은 모두 건강한 사람들이다. 길을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다. 하다못해 길바닥을 뒹굴다가 뛰어가는 강아지 한마리도 건강해 보인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모든 사람은 식욕이 왕성한 것으로 보이고 장마당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장삿꾼들도 그런 대로 건강해 보인다. 이렇게 모두가 건강해 보인다. 그런데 유독 진찰실을 찾는 사람은 건강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개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는 자신의 아픈곳을 표현하고 살지 않으며 오직 치료하는 사람의 앞에서만 표현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일로 치료하는 사람을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역시 몸이 아픈 사람이 대다수일 경우다.

그러나 좀더 건강과 병의 차이를 다른 측면에서 관찰하면 좀 다르게 느껴진다. 건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건강한 눈은 좀 어려운 말이고, 쉽게 말하면 긍정적인 눈이나 사랑을 가진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건강하다. 그러면 필자는 건강하지 않은 눈이고 긍정적이지도 않으며 사랑이 깃들지 않은 눈이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많이 보는 것일까. 실제는 그런 것이 아니고 건강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건강과 질병의 경계를 관찰하는 데에서 건강을 부정하는 눈으로 그 경계를 찾으려 하였으며 병에 대한 제거욕이 작용하였으니 결국 병자가 많이 보인다. 이 점은 건강하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판단을 내리는 방법이, 건강하지 않은 점은 없는지를 살펴보아 그러한 점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보는 것은 무엇인가. 환자의 심리적인 상황, 사회적인 상황, 시기및 환경이 미치는 상황, 년령, 성격, 체질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환자의 심리 상태가 치료를 하는데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또는 질병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아야 한다. 환자의 사회적인 위치가 질병을 유발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점은 없는가도 살펴야 한다. 또는 치료하는데 방해되는 경제적 사회적인 스트레스는 없는가도 보아야 한다. 시기적으로 질병이 유발된 것이 아니가, 유행성 질환이 아닌가도 보아야 한다. 치료하는데 시기적인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들도 보아야 한다. 연령별로 병에 대한 적응도는 어떠하며, 성격적인 결함은 없는가, 체질에 취약성이 없는가 등에 대한 판단도 내려져야 한다. 그런데 이상의 판단에서 모두 좋다는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두 좋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건강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기준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설사 완벽한 판단을 내렸다고 하여도 그 사람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공의 자극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하느냐 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깊이 판단하려고 하면 건강에 대한 기준을 밝히는데 한도 끝도 없다. 더우기 이것이 복잡화될수록 현실성이 없어진다. 그래서 쉽게 판단을 내리고 쉽게 치료하는 방법을 선택하여야 하며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척도를 마련해야 한다.

치료의 결과에는 간단하게 치료가 되었느냐, 별 효과가 없느냐, 치료하지 못하였느냐의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의사를 괴롭히는 것은 치료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의학의 옛 성의(聖醫)들은 치료가 되지 않는 질환에 대하여 매우 합리적인 판단의 기준을 설정하였다. 필자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 내용은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다. 불치병에 대한 판단은 병이 정말로 위중하여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의 불치병 또는 죽을 병, 치료가 되는 병인데도 환자가 병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하지 않는 불치병,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환자가 포기하는 경우의 불치병, 환자가 의사를 믿지 않고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의 마음대로 치료하려는 경우의 불치병이 있다. 대체로 성의(聖醫)는 이들에 대한 단호한 치료 거부의사를 밝히는데 요즘의 세태에는 여기에 하나 더 늘어났다. 그것은 질병이 낳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환자의 불치병이 하나 더 있다. 이상의 판단점을 미루어 볼 때 정말로 죽을 병에 시달리는 불치병의 빈도보다는 환자의 마음에 딸린 불치병의 경우가 더욱 많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그래서 필자는 처음 내원하는 환자에게 서두에서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하여 질병의 치료 가능성이 있는 환자이냐 가능성이 없거나 어려운 환자이냐를 한번 가늠해 본다. 이렇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환자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가장 쉽게 건강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의 흐름의 판단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쉽게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이것이 되었을 때 어려운 병도 쉽게 낳을 수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밝혔듯이 허심합도(虛心合道)는 모든 질병을 몰아내고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진리의 표현이다. 마음을 비워서 모든 우주의 도리에 부합하는 경지는 인체에 무한한 혜택을 준다. 따라서 건강과 건강하지 않음의 경계는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에도 있다. 마음은 몸을 움직이고 몸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니 몸을 보기 위하여 마음을 보는 것은 당연한 방법이며, 몸을 치료하기 위하여 마음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면 두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마음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은 어떻게 보며, 또 하나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가이다.

 

 

II. 마음이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

 

가끔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심적인 갈등을 느낀다.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냐?” 내지는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너는 참견하지 말아라.”하는 말을 가끔 들을 수 있으며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하는 유행가 가사도 있다. 그런데 눈은 마음의 창이다.”고 하는 말도 있다. “마음을 다하여 조국에 충성하자.”는 애국지사도 있다. “오장육부(五臟六腑)중 심장(心臟)은 군주지관(君主之官)이다.”라는 구절도 있다. 이것들은 모두 다른 것들을 지칭하고 있는데도 같은 언어로 표현된다. 마음이 뭐길래.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심() 또는 마음의 의미를 찾으면 소이임물자(所以臨物者)를 심()이라 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모든 사물에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마음이 그렇다. 마음이 모든 사물에 임하는 것을 우리는 모든 의식활동 중에 가장 기초적인 생명현상이라고 한다. 결국 마음은 인간의 의식활동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를 지칭한다. 멋있는 설명이라 생각한다. 그놈의 마음 때문에 인간은 제명에 못살고, 인간의 역사가 추잡하여지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있느가 하면, 배를 굶주리는 인생도 있으며, 부처는 보리수 나무 밑에서 고행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관상가는 심상(心像)을 우선으로 여긴다. 어쨋거나 마음은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필수적으로 붙어 다니며 결코 마음을 떠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음은 사람의 주인이냐? 뭐 꼭 그렇지는 않다. 자아(自我)라는 것은 분명히 마음과 다르다. 흔히들 마음대로 않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본능이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초자아(超自我)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이냐? 쉽게 마음을 지칭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적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마음을 본능에 가깝게 볼 수도 있으며,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을 자아(自我)로 삼아 주인으로 여기며, 진정으로 진인(眞人)의 경지에 들어서면 마음은 초자아(超自我)에 가깝게 할 수도 있다. 또는 진인(眞人)은 마음이 그대로 자아(自我)이고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란 이렇게 꼭 집어 말해도 어느 때에는 틀릴 수도 있다. 그야말로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마음이 곱다.”, “마음이 밉다.”, “마음씨가 나쁘다.”, “마음이 바르다.”, “마음이 삐뚤어 졌다.”고 하는 표현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마음을 쓰는 것은 비가 온다든가, 눈이 온다든가, 비바람이 분다든가, 노래를 부른다든가, 말을 한다든가,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행위 내지는 감각속에서 인식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거리를 가다가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어서 건너게 되었다고 하자. 건너편에서 친구가 이쪽을 바라보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커다란 차가 교통위반을 하고 무단으로 건널목을 지나가는 바람에 먼지가 날려 눈으로 들어 갔다. 그러면 이 사람은 눈물을 흘릴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신호등이 바뀌어 차들이 앞뒤로 지나 가기 시작하고 가까운 곳에서 교통경찰이 호각을 부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바심이 나는 마음으로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삐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떠한 기분이었을까?

여기서 마음이란 그 사람이 멀리서 친구가 손짓을 하는 것을 보는 것과 커다란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 눈에 먼지가 들어온 것을 느끼는 것, 눈물을 흘리는 것, 그리고 이때의 심적인 분노감, 급한 마음, 발걸음이 불안해지는 것, 발목에서 전해지는 통증, 교통 경찰의 호각소리 이 모두는 마음의 발현이다. 이때 처하는 마음의 모습은 어떠할까?

쉽게 추측되는 것이 분노이다. 그리고 고통이며 조급해지는 마음이며 공포이다. 그런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쉽게 분노를 억누른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뛸 것이다. 마음의 모습의 표현은 이때 이루어 질 수 있다. 마음이 바른 이는 관용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자신의 경솔을 후회하고 사소한 일이니 잃어 버린다. 마음이 삐뚤어 진 사람은 차의 번호를 빨리 보고 기억하여 복수를 생각하며 빨리 오라는 친구에게 원망을 던지는 등의 태도를 취한다. 엉뚱한 곳에 마음을 쓰니 삐뚤어지게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만약에 진인(眞人) 같은 사람은 결코 그러한 위치에 가지도 않을 것이고 간다고 하여도 결코 경거망동하지는 않았으리라. 만약 그랬다면 그는 이미 진인(眞人)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음이 바르다.”,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것이 어떻게 건강과 연관이 되길래 자꾸 연결시키려고 하는지 아직도 의문이 가는 사람에게 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여 보자.

고교 3학년생을 고삼(高三)이라고 하는데 고삼병(高三病)은 이미 2학기 전후에서 꽤나 매스컴을 타는 시기가 되는 사회 문제화된 병이다. 이들에게는 매우 신경질적이고 공포 불안 초조 긴장의 연속인 시기이다. 대학입시를 제대로 치뤄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다. 이유는 이렇다. 짧은 실력으로, 모자라는 체력으로, 모자라는 참을성으로, 해야할 일은 많고, 시간은 자꾸 가고, 성적은 안 오르고, 대학입시는 다가오는데, 부모님은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를 기대하고, 떨어지면 낙오자라는 부담감은 계속되고, 낙오자는 되기 싫고, 몸은 무거워지며 피곤하고 쉬고는 싶은데 그럴 수는 없다. 이 지경이니 마음은 고달프고, 육체는 고단하고, 결국은 그 사람의 본능은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평화롭게 되기를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억제력의 발동으로 마냥 갈등한다. 그러니 마음이 바르게 형성될 수 없다. 그러니 어머니에게나 동생들에게 짜증을 내고,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가슴 답답하고, 한숨만 나오고, 소화도 안되고 변비가 유발되고... 등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여기서 마음이 바르게 작용하면 인내하고, 승화시키고, 잊어 버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포기하지 않아 좋은 결과를 본다. 그러나 바르지 않으면 포기하고, 핑겟 거리를 찾고, 도망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도망하는 길이 자신의 몸에 병을 유발시키거나 자해 행위를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건강을 해치는 결과에 도달한다.

그러나 마음을 바르게 쓴다고 하여도 건강을 해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몸에 쌓인 정기(精氣)가 고갈되면 결국 병이 유발되는데 그렇다면 마음이 바르다고 건강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없지 않는가?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르다는 판단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욕심이 게제되면 틀리게 되어있다. 가령 진인(眞人)이라면 고삼(高三)과 같은 환경에 처하면 어떻게 할것인가. 결코 불안 초조 공포 긴장같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미 허심합도(虛心合道)의 경지에 있으니 궂이 잡다한 마음의 동요를 부추겨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그렇다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마음을 단순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높은 빌딩 위에서 동아줄에 매달려 청소를 하는 사람을 생각하여 보자. 내려다 보면 까마득하고 어지러우며 실수하면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는 지경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일을 무리없이 해낸다. 그 이유는 동아줄을 잡고 하는 일에 충실하고 마음을 쏟기 때문이다. 마음을 현실에 일어나지도 않는 비극적인 결과에 두며, 공포와 불안과 초조에 두면 결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더욱 소모하여 피곤하게 된다.

결국 마음이 복잡하게 되면 여러가지 마음이 일어나 고통스럽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단순하게 되면 하고자 하는 일이 쉽게 된다. 따라서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마음을 하고자 하는 일에만 단순하게 집중적으로 쏟아 넣는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으면 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진실로 하고자 하는 일에 단순하고 집중적으로 쏟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그는 바로 진인(眞人)이다. 따라서 마음이 바르면 건강하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다.

 

 

III.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 많은 종류의 문명과 문화가 꽃 피우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소수의 인원에 의하여 은밀하게 진행된다. 실로 그들의 노력과 고통은 눈물겹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예는 이미 각종 종교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고, 유교의 가르침속에서, 도가의 가르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도의 요기들은 지금도 설산에서 눈물겨운 고행을 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나 시도할 수 있으나 누구나가 완벽하게 다스릴 수 없다. 필자도 물론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스리게 되면서 받을 수 있는 이익은 너무나도 막대하다.

일찌기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하였다.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간절한 것이 도였던 것이다. 그 시대에 공자가 갈망하였던 도는 어떠한 것인가? 사실 도를 무어라고 표현하였던 사람은 없다. 도는 너무나도 방대하고 산만하여 파악하기 어렵고 파악할 수도 없는 대자연의 섭리이다. 그러니 어디든지 그 도가 적용되어 틀림이 없어야 하는 도를 누가 감히 언급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마음은 바로 도를 행하는 것이며 도는 마음의 흐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인간에게서 아주 하찮은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의 도를 깨우칠 수 있는 관문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대답을 얻기 위하여 세상의 현자들은 요가, , TM, 단학 등을 통하여 수행하며 괴로움을 즐겨 참는다. 어두운 경지를 밝히려고 무진 애를 쓴다. 아무리 그래도 어두운 면은 있는 것을 .... 그래도 밝히려고 든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마음은 어디에서나 어떠한 형태로든 일어난다. 거리를 거닐면서도, 높은 산에 올라도, 비행기 첨탑에 올라도, 고층빌딩의 난간위에 매달려도, 칼을 든 강도의 품에 머리를 잡혀도, 호랑이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디밀어도 마음을 떠날 수가 없다. 수많은 모양을 한 마음이 자리하여 사실의 허상을 뇌리에 새겨 넣는다. 때론 진실하게, 때론 과장되게, 때론 축소된 모양으로 인식을 한다. 하나의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아니면 송장이다. 마음을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그렇다고 마음을 가둬두고 구속할 수는 없다. 어차피 마음은 그러한 것이니까 거역하여서도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하나. 우선 마음이 우리의 인식활동(認識活動)에서 어떠한 자리를 점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소이임물자위지심(所以臨物者謂之心) 심유소억자위지의(心有所憶者謂之意) 의지소존자위지지(意之所存者謂之志)라고 하였다. 만물에 임하는 모든 인식작용(認識作用)을 심()이라고 하며, 그마음을 통하여 얻은 기억을 의()라 하며, 그 의()가 존재하는 것을 지()라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눈, , , , 표피등을 통하여 감지되는 체내외의 유물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심()이라 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정보의 학습을 통하여 형성된 요소를 의()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잊혀지지 않고 언제나 변하지 않고 존재하게 되는 것을 지()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하늘을 보고 그 색이 파랗다고 하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하늘을 보고 그 색을 보는 것을 심()의 작용에 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파랗다는 언어로 대비시키는 것을 의()의 작용이다. 왜냐하면 다른 파란색을 띤 어떠한 물질에 대하여 인식하였던 것과 공통된 색을 인식하고 확인 하였으니 그렇다. 그런데 밤에 본 하늘은 검고, 흐린날의 하늘은 회색이고, 저녁놀에 물든 하늘은 붉었다고 사람은 때에 따라 인식을 달리 할 수 있다. 이것도 또한 의()의 작용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밤에는 빛이 없어서 모든 것이 검게 보이고, 흐린날에는 구름의 색을 보았으니 회색이며, 저녁놀이 붉은 것은 햇볕의 붉은 빛에 의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맑은 날의 아무 것도 없는 하늘은 파랗다. 그래서 하늘의 색을 파랗다고 인식하며 이것이 변함이 없는 인식으로 자리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지()의 작용이다. 기초적인 인식의 선은 이렇다.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는 심()과 그것을 적당한 언어내지 영상으로 매치시키는 것을 의(), 그리고 그것에서 어떠한 일관성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지()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쉽게 인식된다.

그런데 여기에 변수가 작용한다. 언제나 이렇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유물적인 정보는 유심적인 정보로 바뀌는 데는 미묘한 인식의 변동이 있다. 그 미묘한 것이 진실한 인식을 왜곡시키고, 증폭시키고, 축소시키기도 한다. 이것을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사() () ()라 하였다. 인지이존변위지사(因志而存變謂之思) 인사이원모위지려(因思而願慕謂之慮) 인려이처물위지지(因慮而處物謂之智)라고 하였다. 이것은 실로 유심적인 정보를 정리, 증폭, 축소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의() ()의 요소들이 생성되어 기존의 순수하고 잘 정리된 의()와 지()를 혼동시킨다.

가령 모월 모일 모시에 어디서 애인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고 치자. 그런데 여러가지 일에 의하여 그 날짜를 일어 버릴 수가 있다. 모월 모일 모시에 다른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면 두가지 정보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혼동이 될 수도 있다. ()로 인하여 존재하고 변화하는 것이 사()이다. 애인과 만나기로 한날이 82512시라고 기억을 하였고 친구와 약속한 시간이 82412시라고 하자. 그런데 이러한 유사한 정보가 그외에도 몇가지 더 있다고 가정한다면 필히 하나 둘은 혼동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사()이다. ()는 현실에 형성되지 않은 유심적인 영상이며 논리이다.

옛말에 밤잠을 설치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하룻밤에 기와집을 열두 채나 짓는다고 비유한다. 이 사람이 현실에서 기와집을 하룻밤에 열두 채를 지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 현실에서 기와집을 짓는 것을 보고 만들어낸 정보가 의()와 지()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어느날 밤 잠도 안오고 할일은 없고 하니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공상을 한다. 어디가서는 나무를 다듬고, 어느 기와공장에서 기와를 사오고, 기둥을 어디에다 세우고, 목수는 누구를 쓰며, 방의 구조는 어떻게 하고, 상량은 언제하고, 집들이는 뒤로 미루고... 하는 상상을 하면 집이 열두 채만 완성될까? 이런 식으로는 수백 채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쓸데 없는 사념은 기존의 지()를 변화시킨다.

가령 집을 짓는데 10사람이 필요하다고 현실에서 확인이 된 정보가 있다고 하자. 상상을 통하여 집을 지어보니까 꼭 10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진다. 여러 번 지어보면 더욱 그렇다는 것을 느끼고 이것이 사념속에서 의()와 지()로 자리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는 정보의 왜곡을 초래한다.

또 생각속에서 이러 이러하게 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가령 내가 애인과 언제쯤은 꼭 결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반복된 생각이 되어지는 것을 려()라는 현상이라 한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느끼게 하며 반복된 생각이 되어지는 려()라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사실이 아닌것을 사실처럼 느끼게 하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 의()와 지()의 변동을 초래한다.

가령 바람을 피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어느날 자신의 아내보다 더욱 예쁜 여자를 보고 반했다면 그 사람은 쉽게 자신의 사념에서 그 여자의 영상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그리고 어느날 급기야 의지를 저버리고 그 여자와 한바탕 놀아 날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려()가 의지(意志)를 뒤집게 하는 경우이다.

()는 궁리이다. 사려(思慮)가 실제 생활에 응용되어지게 할 때 필요한 것이 지()이다. 가령 바람을 피우는데 아내 몰래 피우려니까 여러가지 안배를 하게된다. 아내가 보지 않는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날 궁리를 하고 그 시간을 회사의 업무상 출장시간으로 핑게를 댄다. 그리고 회사동료에게 출장을 떠났다고 입을 맞추어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궁리 내지는 계략을 지()라고 한다. 그렇다고 의지에 대하여 사려지(思慮智)는 변화만을 초래하지 않는다. 현실생활에서 경험되어질 수 없는 것을 의지(意志)라는 요소로 만들 수 있다. 가령 도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수도하는 수도승이 결코 도라는 것을 현실에서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도라는 것을 의지(意志)라는 요소속에 집어 넣지 못한다. 최소한의 도라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사려지(思慮智)의 과정이다. ()는 그러니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이렇게 볼 때 얼마나 그 역할이 하찮고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 역할은 아주 지대한 것을.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제어할 수가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의()와 지()는 있다. 그 형성된 의()와 지()를 응용하여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어쩌면 쉬울 수도 있다. 마음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사이 없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의지(意志)로 그 마음이 있어야 할 곳을 제시 하여 준다면 이미 마음은 제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교의 교리나 기공서적, 마인드 컨트롤, 단학 등에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인군자를 만들고, 진인(眞人)을 만드는 지혜로만 쓰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어떠한 특정한 목적보다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도출하는데 쓰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지혜를 밝혀주기도 한다. 그것의 시작은 역시 마음의 다스림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지혜중 필자는 특별히 도인술(導引術)이라는 어렵지도 까다롭지도 지루하지도 않는 학문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마음을 다스리는데 아주 초보적인 경지의 지식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란 이야기다.

 

 

IV. 도인술(導引術)이란?

 

도인술은 어느 사람이나 시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도인술을 배우지 않아도 은연중에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도인(導引)과 아주 유사한 행동을 통하여 생활의 활력을 주고 있음을 종종 찾아낼 수 있다. 가령 허리를 굽혀 일을 하던 농부가 아이고 허리야.”하며 농기구를 잡았던 손을 잠시 놓고 허리를 펴며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혹은 양손으로 허리를 잡고 홰홰 돌려보며 숨을 가다듬는다. 또 책상 머리에 앉아 독서를 하던 학생이 하품을 크게 하며 양손을 위로 크게 펴들며 기지개를 켠다. 목덜미가 아프면 고개를 이리 저리 휙휙 돌려 보기도 한다. 재봉틀에 앉아 일하던 어머니께서 일손을 잠시 멈추시고 한손으로 어깨에서 팔을 투닥거리면서 팔을 주무르신다. 잠자리에 일어나 허리와 몸통을 있는 대로 비틀면서 하품을 하고 얼굴과 눈을 비빈다. 이러한 제반의 행위는 그대로 그 사람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경결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 인간은 이러한 현상을 십분 이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점차로 하나의 전문적인 학문으로의 발달을 이루며 고대의 기공의 전반적인 유형을 이루었다. 도인술의 역사를 더듬으며 도인술은 어떠한 것인지를 밝혀보자.

도인술의 최초의 시행자는 신농(神農)시대의 적송자(赤松子)이다. 그는 건욕법(乾浴法), 좌인법(坐引法), 마이(摩耳), 마면법(摩面法), 탁치(啄齒), 악고(握固), 수인타법(漱咽唾法) 등을 시행하였다고 전한다. 이중 주로 마찰법(摩擦法)을 위주로 시행하였다. 이 행법은 양손을 마찰하고 손으로 얼굴 및 귀 전신을 마찰하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좌인법은 앉아서 행할 수 있는 전신 관절운동이 간단하게 묘사되었다. 이 방법은 그대로 팽조(彭祖)가 시행하였는데 역시 주로 전신마찰이나 눈의 마찰법을 응용하였다. 그러나 수인타법(漱咽唾法)대신에 혀로 입술과 잇몸을 핥아 타액이 입안에 고이면 마시는 방법인 지순인타법(舐脣咽唾法)을 응용하였다. 전자는 구강을 형성하는 모든 근육의 운동요법이 될 수 있으며 후자는 혀와 입술의 중점적인 운동을 유발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노자(老子)의 노군수일법(老君守一法)에 지순인타법(舐脣咽唾法)을 응용하였다. 항창자(亢蒼子)는 웅경조신(熊經鳥伸)의 방법을 논하였으나 정작 노군도인술(老君導引術)은 동공(動功)이 아닌 정공(靜功)을 묘사하였다. 이것은 의상(意想)을 통하여 오장사지(五臟四肢)로 태화원기(太和元氣)를 흘려 보내는 인기(引氣)의 의미까지 도인법(導引法)으로 인정하려고 한 것 같다. 어쨋든 이후 도인법에는 의념(意念)을 통한 도인법이 응용된 자료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연자(涓子)의 수조하택(垂釣荷澤)이란 도인법이 전한다.(그림1 참조) 이 행법은 안법(按法)과 마찰법(摩擦法)과 전심(專心)으로 환부를 운기(運氣)하는 방법을 복합적으로 응용하는 좋은 예이다. 이후 왕자진(王子晉)의 취생(吹笙)이란 법이 전하는데 날나법(捏拿法)을 흉부경혈(胸部經穴)에 시행하는 방법과 운기법(運氣法)을 함께 응용하는 방법이 소개되었다.(그림2 참조)

 

 

그림 1. 연자(涓子)의 수조하택(垂釣河澤)

 

그림 2. 왕자진(王子晉)의 취생(吹笙)

 

 

전한시대(前漢時代)의 모삼군(茅三君)의 모산현자복기법(茅山賢者服氣法)에는 수슬좌(竪膝坐)하고 양손으로 양무릎을 끌어안고 폐기(閉氣)하며 고복(鼓腹)하는 법을 응용하여 폐기법(閉氣法)과 포(), 고법(鼓法)을 응용하는 법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 시대로 추정되는 구체적인 도인술에 대한 자세의 그림 소개가 마왕퇴의 벽화에서 발견되었다.(그림 3 참조)

후한대(後漢代)의 왕자교(王子喬)는 아주 다양한 도인법을 소개하였다. 그 내용은 토납법(吐納法)에 의념도인(意念導引)및 머리와 팔 다리의 행위로 지(), (), (), (), (), (), (), (), (), (), (), ( ), () 등 법을 소개하였다. 특기할 점은 병소를 내시(內視)하는 외에 외시(外視)하는 방법으로 인기(引氣)하는 방법을 응용하였다는 점이다. 또 기혈을 병소로 집중시키는 방법으로 병이 상체에 있으면 베개높이를 높게 하고 병이 하체에 있으면 베개높이를 낮게하며, 두부로 인기(引氣)하려면 머리를 들고, 허리의 병에는 족십지(足十指)를 앙()하게 하며 인기(引氣)하고, 흉중병(胸中病)에는 발가락을 잡아당겨서 인기(引氣)하며, 비병(臂病)에 인기(引氣)하면 복중한열(腹中寒熱)을 제거하는 등의 원리들을 설명하였다.

 

 

그림 3. 마왕퇴 벽화의 도인도의 일부

 

또 항창자(亢蒼子)가 언급한 웅경조신(熊經鳥伸)의 실천 예는 화타(華陀)의 오금희(五禽戱)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림 4 참조) 내용은 대체로 호(), (), (), (), ()의 동작을 응용하여 수, , , 신체(흉복)의 복합적인 운동을 유발할수 있는 방법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진대(晋代)에 와서 갈홍(葛洪)은 그의 저서(著書) 포박자(抱朴子)에서 도인을 혹 굴신(屈伸)하고 혹 부앙(俯仰)하고 혹 행와(行臥)하고 혹 기립(起立)하고 혹 차고 내지르고 혹 천천히 걷고 혹 금()하고 혹 숨쉬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골절에서 소리가 나는데 크게 도인하면 소리가 크고 적게 도인하면 소리가 작으며 그러한즉 근()은 부드러워지고 기()는 소통한다.”고 설명하여 점차 도인술의 방법과 효과에 대한 언급을 시작하였다. 허손(許遜)은 계절과 오장(五臟)의 보사(補瀉)를 위한 도인법을 고안하였다. 여기서 허손은 도인의 효과를 오장(五臟)을 보()하고 사()하는 차원에 까지 응용하려고 하였다. 양대(梁代)의 도홍경(陶弘景)은 정공(靜功)을 위주로 한 단순한 행위를 도인법으로 응용하였다.

 

 

그림 4. 五禽戱

 

이후 수당대(隋唐代)에 와서 소원방(巢元方)과 손사막(孫思邈)에 의하여 도인법이 정리되며 매우 다양한 행위와 기법들이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에는 새로운 방법의 고안보다는 이전의 지혜를 답습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소원방(巢元方)과 손사막(孫思邈)에 의하여 도인술의 치병에 대한 언급은 되었지만 도인술의 효과에 대한 확실하고 구체적인 원리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2) 도인술의 동작의 기법은 매우 다양화 되었으며 기법에 따른 효과의 차이를 밝히지 않았다.

(3) 정공(靜功)의 요소가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의 해석 및 수용에 의하여 강화된 반면에 동공(動功)의 이론적인 한계가 너무 컷다.

(4) 도인술의 동적요소(動的要素)는 무술적인 요소의 발달에 의하여 행하는 의미가 퇴색되어졌다.

 

이러한 제반 이유중에 이론적인 한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도인술은 형이상학적인 요소인 정적인 요소와 형이하학적인 요소인 동적인 요소가 있으며 필요에 의하여 복합적인 기법을 응용하도록 구성되어졌다. 동적인 요소는 웅경조신(熊經鳥伸)과 지(), (), (), () 등의 행법이 있는데 대체로 자극방법과 피부및 내장기의 요동법들이다. 정적인 요소는 의념도인법(意念導引法)과 호흡법으로 이루어졌다. 의념도인법(意念導引法)은 내관(內觀)과 외관(外觀), 운기(運氣), 인기(引氣) 그리고 수를 세는 방법과, 주문(呪文)을 외우는 방법들이 있다. 이들은 응신(凝神)하여 병소로 기()를 끌어들이는 작용을 한다. 호흡은 토고납신(吐故納新), 육자토납기결(六字吐納氣訣), 태식(胎息), 폐기법(閉氣法)으로 오장(五臟)의 기()를 보()하기도 하며 사()하기도 하는 방법을 수행한다.(圖表I-1 參照)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쓰기에 따라 여러가지 효과를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동적인 요소의 시행으로 인기(引氣)를 돕고, 호흡으로 의념을 집중시켜 준다든가, 동작에 따라 호흡을 겸한다든가 하는 행위로 인하여 각개의 특성에 따른 효과는 혼돈이 되었다. 그리고 점차 다양한 방법을 응용하되 왜 이 방법이 응용되어야 하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여 주지를 못하였다. 실제로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 보면 각개의 병후에 따라 도인법을 소개하였으나, 이 방법이 왜 채택되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이론적인 한계가 있다는 증거이다.

이후 도인법은 기공학내에서 입지를 잃어 갔다. 그런데 유일하게 청대(淸代)에 와서 조자산에 의하여 노노항언(老老恒言)이란 서적(書籍)에 도인법이 수록되었다. 이 도인법은 노인을 위하여 간단한 방법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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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鼓齒, 砥漱呑 ? ?, , ? ? 六字吐納氣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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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節開暢 病所引氣 五臟補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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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而下學 形而上學

 

圖表I-1 導引術構成要所

이상으로 볼 때 도인술은 건강의 유지를 위하여 발전되었다. 그리고 점차 의가(醫家)에 의하여 치료방법으로 응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행법을 단순하고 간단하게 시행하면서 쉽게 익히고 효과도 높은 쪽으로 연구가 되어진 것 같다. 이러한 점은 현대인들의 구미에 딱 맞는 면이며 타 기법보다도 쉽게 현대인의 생활속에 파고들 수 있는 지혜가 들어있다고 사료된다. 또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은 병자에게 응용될 수 있는 여지가 가장 높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도인법의 형이상학적인 요소보다는 형이하학적인 요소가 보다 더 유리한 응용법이 될 수 있다.(圖表I-1 參照) 그러기 위하여 도인술의 동적요소가 갖는 합리적이고 정확한 치료효과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응용하는 방법들을 이론화 하여야 한다.

 

 

V. 도인술의 시행과 건강.

 

현대인은 폭주하는 정보를 처리하며 복잡화된 생활 패턴에서 자신에 대한 알맞은 생활양식을 찾을 새도 없이 숨가쁘게 진행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산책을 하며 새벽의 맑은 공기를 쐬며 모닝커피 한잔으로 아침의 정취를 만끽하며 해야할 일을 생각하며 천천히 출근준비를 하는 쌜러리맨은 아주 드믈다. 점식 식사후에 식곤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차 한잔을 하며 오수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드믈다. 퇴근 시간이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하며 아이들과 저녁을 같이하며 가벼운 놀이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가정도 역시 줄어들고 있다. 모든게 바빠진다.

늦잠을 잘 정도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상을 하면 조급한 마음으로 쌘드위치 하나에 우유를 곁들이는 것으로 아침을 때운다. 그리고 허겁지겁 출근을 하며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직장의 상사에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불편한 점심식사를 끝내고 숨돌릴 겨를이 없이 업무에 임하고 퇴근시간을 훨씬 넘도록 야근을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일잔 이잔을 걸치고는 귀가하는 대열에 들어서며 집에 들어와 미처 세수도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도 많아진다. 이러한 생활속에서 과연 자신의 마음을 돌볼 여유가 있을까? 자신의 몸속의 기의 흐름에 대하여 예민하게 추적하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사막의 오아시스도 물이 있어야 형성이 되는 법이다. 그러나 바쁘게 생활하는 스케줄을 뒤로 하고 교외에 나가 숨을 돌릴 수 있는 뱃장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그 사람의 마음이다. 보다 의연하고 자신의 현상황을 쉽게 파악하고 대처하는 여유있는 마음이다. 그래야만 황량한 생활을 해소할 수 있는 오아시스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만해가 출산하는 자기의 아내를 위하여 약을 지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속세를 피하여 출가하는 뱃장을 갖는 것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만해는 그러한 용기가 있기에 출가를 감행하였으나, 현실의 바쁜 샐러리맨은 과연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용기가 있다면 그는 이미 샐러리맨이 될 수 없다. 비단 샐러리맨만 그럴까? 사업가, 교수, 학생, 가정주부, 의사, 노동자... 등등 수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과연 사회가 만들어 논 스케줄을 거역하고 살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용기를 가질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많은 사람이 사는 사회라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용기를 키워주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혼란의 사회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그들의 생활속에서 과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살 필요가 있는가를 심사숙고하여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잠 자면서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 어떻게 상사에게 잘 보일 수 있을까 궁리한다. 만원버스를 타고가면서 어떻게 하면 자가용을 하나 살까를 궁리하고, 회사에서 어떻게 쉽게 진급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매사가 현재에 처해있지 않은 공상적인 영상에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긴다. 그러니 마음이 복잡하며 복잡화된 정신상태에서 혼미해지는 자아(自我)를 봍잡기 위한 주인의 몸부림이 더욱 어지럽게 한다.

그러면 매사에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업무중에는 업무에 힘쓰고, 잠자리에 들면 잠이 들어야 하며, 식사시간에는 밥먹는데 열중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잠은 눈을 감고 자며 일은 손발과 머리로 하며 밥은 입으로 먹는다. 그러나 나머지 감각기관이나 생명활동기관은 여전히 작동하며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나?

가령 밥상 앞의 파리떼가 왱왱 거리는 데도 어떻게 나머지 감각기관을 놔두고 마음을 밥 먹는 데로 집중할 수 있는가. 밥 먹을 때 입으로 먹지 마음으로 먹을 수 없다. 밥먹는 것은 입으로 먹지 귀로 먹을 수 없으며 눈으로 먹을 수 없다. 생각으로도 먹을 수 없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 파리는 입으로 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 동시에 다각적으로 해야할 일이 많다. 이러한 상황이니 생명에너지인 기를 효율적으로 방산시킬 수 없으니 낭비가 심하며 업무량보다 더욱 많은 일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로를 체내에 차곡차곡 저장하여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건강은 매우 위협을 받게 된다.

이것의 대안은 간단하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폭주하는 쓸데없는 마음의 소산은 산만한 의지를 양산하며 기를 소모한다. 그러니 목덜미가 땡기고 아프며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며 허리가 아프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충실하라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대로 체내의 기를 덜 소모하게 한다. 장삼봉은 복광원 금열마(伏狂猿 擒劣馬)하라고 멋진 비유를 하였다. 해석하면 미친 원숭이를 엎어 뜨리고 조련되지 않은 나쁜 말을 잡으라는 이야기다. 미친 원숭이는 오만잡가지 생각이며 나쁜 말은 오만잡가지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다. 이것을 제어하라는 이야기가 바로 기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인을 하는 마음가짐 이며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바르게 하는 방법이다.

한번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시행하여 볼 일이다. 흔들리는 찻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에서, 잠을 자는 잠자리에서, 집으로 귀가하는 노상에서 마음을 자신의 몸안에 두어보자. 머릿속에, 뱃속에, 다리끝으로, 손끝을 살펴볼 일이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만약 버리기 싫거나 버리고 싶지 않으면 그대로 내버려 두고 집중을 시켜보자. 손끝으로 감지되는 가방의 감촉도 한번 느껴보고 발가락으로 전해지는 구두 밑창의 감각도 느껴보자. 얼굴로 전해지는 열기 내지는 찬공기의 감각을 느껴보자. 간절한 마음으로 미친 원숭이를 엎어뜨리듯이 정신 바짝차리고 나쁜 말을 잡을 때의 긴장된 마음으로 집중시켜 보자.

이것이 체내의 기를 다른 쓸데 없는 곳으로 소모되지 않게 하며 마음을 준 곳을 집중시켜 보호할 수가 있다. 그것만으로 이미 딴 생각으로 허비할 기를 절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거기다가 목고개가 뻐근하고 아픈 사람이라면 발끝으로 마음을 둔다. 두부로 충혈되었던 사람의 경우 하지로의 기의 집중으로 인하여 머리쪽의 증상이 조금씩 완화될 수 있다. 결국 마음을 쓰는 곳에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몸속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면으로의 시도도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이렇게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도인이다. 도인은 의념을 통하여서나 행동을 통하여 기를 끌어 당기는 것이다. 이러한 도인술을 시행하려면 필수적으로 마음을 바로하여 집중하고 정성을 다하여 운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도인술이 기혈의 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밝혔듯이 도인술은 중국인들의 생활속에서 발생되었다. 특히 사방에서 모여드는 물자의 풍요속에서 육체적인 편안을 희구하였다. 그래서 근력은 약해지고 사무적인 업무가 폭주 하였을 때 가져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것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운동을 필요로 하고 정신적인 수양이 필요시 되었다. 이때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되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기에 중국의 기공전문서적에 끊임없이 출현하게 되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현재의 생활이 또한 고대 중국의 중부지방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니 육체적인 운동을 하여서라도 필요한 운동량을 보충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또 이완되기 쉬운 정신적인 자세(姿勢)의 무장이 지금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것이 도인술과 건강과의 연계성이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현대인들은 이제 자신의 걱정거리나 고민거리를 가지고 쓸데없이 고심하는 시간에 한번쯤 마음을 자신의 몸안으로 돌리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혼신을 다하여 움직여 줄 필요성이 있다.

 

2장 도인술의 기본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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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인술의 기법

II. 도인술의 기본 자세(姿勢)

III.도인술의 기본 행법

IV. 의수(意守)의 방법

V. 호흡법(呼吸法)

VI. 힘을 응용하는 방법

VII.도인술을 하는 시간적인 의미

 

 

 

I. 도인술의 기법

 

인류 최초로 도인술을 사용한 인물의 기록은 신농(神農)시대의 적송자(赤松子)란 인물에 의하여 시행되어진 도인법이다. 그 내용중 마이법(摩耳法)이란 도인법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맑은날 해뜨는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양귀에 밀착시키고 아래 위로 14회 마찰하여 귀가 멍멍하게 하지 않게 하고 다시 코를 눌러 폐식하고 오른손을 머리위에서 왼쪽 귀까지 14회 쓰다듬고 자세(姿勢)를 바꿔서 같은 방법으로 14회 시행하고 양구렛나루 부위를 잡아당겨 혈기를 원활히 유통되게 한다.”

 

이 방법을 살펴보면 몇가지 요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맑은날 해뜨는 시간에 자리에서 ...”와 같이 언급한 점으로 보아 시행할 시간의 선택, 아래위로 귀를 마찰하는 행법, 14회 마찰을 시행한다는 수식법 내지는 마음을 두는 의수(意守), 폐식한다는 호흡법, 좌우측의 방향과 움직이는 기본적인 자세(姿勢)의 언급, 양구렛나루를 잡아당기는 등으로 그 요건이 집약될 수 있다. 정리하면 자세, 호흡, 의수, 행법, , 시간이다. 이것의 명시하에 고대의 도인법은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빠짐없이 집약된 도인술일수록 잘 발달되고 능률적인 공법이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의수(意守)이다. 의수(意守)는 도인의 가장 기본이며 이것은 필수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잡념이 엄습하고 쉽게 기를 목적하는 부위로 끌어 올 수가 없다. 그리고 제대로 시행하면 마음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며, 자세(姿勢)를 정확하게 취할 수 있으며, 호흡을 정확하게 행하며, 옳바른 행법을 발휘하고, 힘을 가하는 경지를 열 수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도인술을 하는 자세, 호흡법, 행법, 의수의 방법, 힘을 주는 방법, 도인술을 시행하는 시간적인 관점을 도인술을 시행하는 기법의 대강으로 삼았다. 그리고 보다 자세하고 이론적으로 다루기 쉽게 다듬고 한방의 생리나 병리적인 이론에 부합되는 이론적인 연결을 시도하여 보고자 하였다.

 

 

II. 도인술의 기본 자세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가 바로 도인술의 자세이다. 눕고, 앉고, 서고, 걷고자 하는 경우에 마다 여러가지 자세가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원시시대에서부터 잠자고 먹고 쉬고 일하고 하는 모든 일상생활에는 다양하지만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도구를 발견하면서부터 다양한 자세가 표출되었으나 역시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수많은 직업이 생겨 전문화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도 일정한 업무만 수행하면 생활에 별반 어려움이 없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리고 간편한 생활을 위하여 기계화된 생활도구의 덕분으로 잡다하고 어려우며 힘드는 일은 기계를 시키면 된다.

그런데 그럴수록 인간의 고유한 능력은 점차 퇴화되어 가고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이 저하되었다. 예를 든다면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들은 가정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자가 부족하고 생활이 궁핍하고 발전이 덜 된 덕분으로 장담그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들에 나가 김매고, 불 때서 밥짓고, 땔나무 부엌으로 끌어 들이고, 김장하고 물 긷고.... 등등의 수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하면서 수많은 자세를 취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몸의 요소 요소가 그리 약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전기및 각종 연료가 땔나무를 대신하고, 청소는 청소기를 사용하고, 밥은 전기 밥솥이 하고, 설겆이는 설겆이 전용 기계가 하고, 장과 간장은 사다가 먹고, 김장도 주문을 하고, 명절 때 떡을 주문하고.... 하는 등등의 일들을 보자. 간단하고 쉬운 일은 손수하고 나머지는 기계의 작동이나 전문인에게 대신하게 하였다. 남자들도 그렇다. 힘든 작업은 차와 기계가 하여주고 간단하고 아주 복잡한 일은 손수 한다. 심지어 별로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자가용 내지는 택시를 이용하는 나태함이 항상 도사린다.

이러니 다양한 업무를 통하여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다양한 재능을 다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간단화되고 어렵지 않으며 힘들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며 재능을 퇴화시킨다. 그러니까 이제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능을 개발시키고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함께 유지하는 지혜를 창출하여야 한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누운 자세, 앉는 자세, 서있는 자세, 걷는 자세이다. 이것들도 인간의 체위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경계가 모호하다. 가령 이불을 개놓고 거기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아 있으면 이것이 누운 자세이냐 아니면 앉은 자세이냐의 판단이 모호하다. 또 엉덩이를 땅에 대지 않고 무릎을 반쯤 굽히고 서있는 자세는 앉아 있는 것이냐 아니면 서있는 것이냐의 엄밀한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다.

그래서 일단은 자세에 대한 한계를 그어 놓아야 한다. 아무렇게나 자세를 취하면서 이것을 모두 자세라고 인정하면 옳바른 자세를 찾는데 아주 어렵다. 자세는 일정한 행위를 하는데 필요한 가장 편안하고 능율적이며 오랬동안 시행할 수 있는 체형을 이루는 것이다. 가령 비스듬히 45도 각도로 누웠거나 앉아 있다면 이것은 일정한 행위를 하는데 결코 안정된 자세가 아니다. 차라리 각도를 좀더 낮추어서 누워있는 자세를 취한다든가 각도를 아주 높혀서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자세로 인정한다면 이론의 전개에서나 실제의 행위에서도 상당히 무리가 간다. 이것은 자세는 자세이되 비능율적인 자세이다. 일단은 이러한 자세는 언급을 피한다.

그러면 일정한 행위를 하는데 필요한 자세는 어떠한 기준에서 설정해야 하는가. 가령 두다리가 피곤하다면 이 사람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이 사람이 서있는 자세를 취한다면 다리를 더욱 피곤하게 할 것이다.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면 좋다고 하니까 결가부좌를 취한다면 피곤한 다리에 혈액순환이 되지않아 더욱 피곤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양다리를 펴고 앉은 자세를 취한다든가 누운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좀더 알아야 할 것은 각개의 자세를 취하는 데에 대한 이유있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자세가 의미하는 생리적 병리적 정신적인 영향을 검토하여볼 필요성이 있다. 또한 이러한 지혜를 모아 상황에 따라 효과적인 도인술의 기본적인 자세를 찾아 보고자 한다.

 

 

1. 기본적인 자세가 갖는 의미

 

가장 안정되고 정적인 자세는 누운 자세이다.(이제 부터는 와세(臥勢)라고 함) 그리고 그 다음으로 안정된 자세는 앉은 자세이다.(좌세(坐勢)라고 함) 그 다음으로 안정된 자세는 서있는 자세이다.(입세(立勢)라고 함) 가장 동적인 자세는 걷는 자세이다.(행보세(行步勢)라고 명명(命名)) 이상의 네가지 자세는 누구나 취할 수 있는 자세이나 그 각각의 자세가 어떠한 때에 이루어 지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생활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리 중요한 지식도 아니다. 그러나 도인술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능율적인 도인법을 찾아내어 응용할 수 있으려면 자세가 의미하는 당위성을 적절하게 대변할 수 있는 논리를 구사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고전의 어떠한 책을 들춰도 자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분석에서 조차도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이 문제다. 요즈음 출판되는 서적들에도 대체적인 자세를 밝혔지만 확실하게 자세가 도인술에 미치는 가치에 대하여서는 논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짧은 지식이지만 음양론적인 사고와 의학적인 논리를 가지고 대체적인 파악을 하여 보고자 한다.

각개의 자세를 취할 때의 행위의 진행은 대체로 네 가지가 개개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圖表II-1 참조) 행보세(行步勢)의 경우 보법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보법의 기본적인 자세가 바로 행보세이다. 행보세의 자세는 대체로 서있는 자세에서 걸음을 떼어 놓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여러가지 형식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을 어찌보면 행법의 하나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행법의 대부분은 팔의 움직임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이 팔을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다리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입세(立勢)와 와세(臥勢)의 경우에 한하여 다리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행법이 소수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리와 허리의 움직임을 편의상 자세에 집어넣는 것이 논리를 편하게 하기 때문에 행보세를 자세의 하나로 배속시켰다.

圖表II-1. 각 자세의 의학적인 의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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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 陰陽 動靜 行功部位 修練目的 意守部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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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보세 陽中之陽 動功爲注 下肢 肉體的鍛鍊 四肢

입 세 陽中之陰 動功>靜功 下肢>上肢 肉體>精神 四肢>丹田

좌 세 陰中之陽 靜功>動功 上肢>下肢 精神>肉體 丹田>四肢

와 세 陰中之陰 靜功爲注 上肢,下肢 精神的鍛鍊 丹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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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보세(行步勢)는 입세(立勢)와 마찬가지로 원인류와 영장류만이 완벽하게 시행할 수 있는 직립보행의 능력이 만들어 낸 인간의 특권이다. 두다리로 완벽하게 뛸 수 있으며 보행을 할 수 있는 동물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다리와 팔의 운동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행동이 되어진다. 그리고 특히 하지의 운동을 위주로한다. 이 점은 입세(立勢)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그런지 행보세(行步勢)와 입세(立勢)는 하지의 단련을 위한 행법이 예로부터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방법은 대체로 정신적인 집중도 일부 언급하고 있지만 중요시하는 것은 호흡과 육체적인 행법이 위주가 된다. 그리고 의념도 몸의 가운데인 단전에 두는 경우보다 사지에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만 보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인간 능력의 반영이다. 특히 요즈음에는 신기공 요법이란 것이 많이 운용되는데 이것이 바로 행보공의 하나로서 그 진가가 많은 불치병에 적용되어 발휘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가장 쉬운 행법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그 효과는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행하기가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쉽게 행법의 대강을 잃어버릴 정도로 정신이 산만한 가운데에서 시행되기 쉬운 행법의 자세이다. 그러나 부작용은 그리 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입세(立勢)는 행보세(行步勢)와 비슷한 점이 많으나 행보세(行步勢)보다는 덜 움직임을 유발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적인 집중이 필요한 행법이 소개된다. 역시 하지를 중점적으로 운동시키는 행법이 많으며 육체적인 단련을 위주로 하는 행법이 많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행보세(行步勢)와 마찬가지로 서서 시행하는 행법이기 때문에 주로 집 안에서 시행하는 것보다 집 밖에서 시행하기가 용이한 행법이다. 입세(立勢)가 가지는 잇점은 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으면서도 압박을 받는 부위가 발바닥 이외에는 없으므로 전신적인 도인행위를 하는데 가장 용이한 자세이며 그 효과도 상당히 강하다. 특히 도인술의 시행에 있어서 신체의 어느 부위에도 쉽게 인기(引氣)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신체적인 결함이 나타나는 사람의 경우에는 시행하기 어려운 점이 많으며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좌세(坐勢)는 도인술에 있어서 가장 많이 운용되는 자세이다. 그리고 자세의 종류도 가장 많이 소개되었다. 이것은 좌세(坐勢)가 정공과 동공(動功)을 시행하는데 가장 용이하며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경우에도 운용이 될 수 있는 자세이다. 특히 하지를 사용하는데 불편한 사람의 경우에 상지와 몸통을 위주로 한 도인술을 구사할 수 있는 행법이다. 행법을 하면서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하며 하지가 땅에 붙어 있는 자세이므로 하지의 도인에는 상대적으로 제한을 받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하지를 제외한 부위에는 정신적인 집중을 통하여 의념만으로도 인기(引氣)가 가능한 자세이다. 그리고 정신을 수양하는 목적으로 도인술을 시행하는 경우에 주로 응용하기 때문에 불교의 좌선법(坐禪法)이 선학(禪學)의 가장 대표적인 자세임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주천법(周天法)을 운용할 경우에 가장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자세로 평가된다.

와세(臥勢)는 거의 정공법(靜功法)을 위한 행법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편안하게 도인술을 할 수 있는 자세로서 약간의 동공법(動功法)도 소개되고 있다. 이 점은 와세(臥勢)가 가장 넓은 부분에서 압박이 있기 때문에 자세에 따라 선택적인 도인술을 전개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측와세일 경우에는 바닥에 밀착되는 부위로의 도인을 하기가 어려우며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또한 같은 자세로 장시간 동안 있으면 자세가 편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이완과 해이에 의하여 지속적인 도인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장시간의 도인을 위하여서는 필히 정신적인 집중이 필요하다. 도인의 부위는 그래도 넓은 부위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눌리지 않은 부위로의 인기(引氣)가 용이하다. 또 사지 말단보다 단전부위를 중심으로 한 부위에 인기(引氣)하기가 용이하다. 또 정신적인 집중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 자세이므로 정신적인 수양에 많은 필요성이 있는 자세이다. 그리고 자세가 가장 편안한 점을 들어 중풍이나 보행이 불가능한 사람, 척추가 손상된 사람에게도 응용이 용이한 자세이다. 도인법은 대체로 동공(動功)보다는 정공법(靜功法)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도인하는 행위는 하지보다는 상지를 주도로 하지를 움직여 주거나 몸통의 움직임을 유발하는 행법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2. 행보세(行步勢)의 종류

 

기본 자세중에서 가장 소홀히 하는 부분이 행보세(行步勢)이다. 그 이유는 역시 행동을 하는 동안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정적인 상태에서의 자세가 아니라 걷고 있는 동안에서 발을 내딛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그 자세를 나누는 것이 행보세(行步勢)를 분류하는 방법이다. 그 분류는 진행하는 방향에 따라 옆걸음, 뒷걸음, 앞걸음하는 방법이며 여기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질수 있다. 또한 발의 위치에 따라 팔자걸음, 역팔자걸음, 양발의 방향을 평행하게 하여 걷는 걸음(지금부터 평행보(平行步)라 명명함)이 있을 수 있다. 몸의 무게중심을 뒤로하는 허보(虛步) 내지는 태극보(太極步), 중간에 두는 중정보(中庭步), 앞으로 두는 궁보(宮步)가 있으며 평상시 걷는 방법인 평보가 있다.

이러한 행보의 방법은 예로부터 막연하게 걷는다는 의미로 수재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걷는 자세를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식후에 100보 에서 200보를 걷는 것이 소화에 좋다고 기술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공학 서적의 언급보다는 무술 내지는 권법(拳法)에 관한 서적에 의하면 대체적인 방법에 대한 용어가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분류도 자세한 것으로 보아 권법에서의 보법은 상당한 의미가 있으며 이것을 필자는 따오고자 하였다. 그런데 좀더 현실적인 분류를 하다 보니까 용어가 모자르게 되었으며 나름대로의 한글식의 용어도 붙이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는 신기공요법이라는 방법을 대두시켜 철저히 호흡과 발걸음을 연결하여 기공적인 의미로 응용하려는 경향이 깊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필자는 걷는 방법을 철저히 도인 또는 기공의 의미를 첨가하여 간단한 행법으로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건들을 찾아 보고자 한다.

 

 

1. 진행하는 방향에서의 의학적인 의미

 

인간이 걸어가는 방향은 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가는 방법과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 앞으로 전진하고 뒤로 후진하고 옆으로 옆걸음질 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올라가고 내려가는 방법은 경사지고 계단이 준비된 곳에서 이루어지는 진행 방향이나 전진하거나 후진하는 의미를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생략하였다. 그리고 앞걸음, 뒷걸음, 옆걸음을 방향에 따른 자세의 분류에 넣었다.

걸음을 걸을 때 이 세 가지 걷는 방향에 따라 다리의 운동의 결과는 구별되어질 수 있다. 앞걸음과 뒷걸음의 경우 12경근(經筋)중에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과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의 운동이 위주이며 옆걸음의 경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의 운동과 관계가 깊다. 뒷걸음질을 치며 뛸 때 뱃살을 효과적으로 뺄 수 있다는 운동의 효과에 대한 보고는 쉽게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반증이 된다.

전진할 때의 발의 모양은 발목의 관절이 굽혀지며 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면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은 수축하고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은 신전된다. 수축도 운동이며 신전도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앞으로 전진하려니까 내딛는 발의 발뒷꿈치가 먼저 땅에 닿으니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에 힘을 많이 주게 된다. 결국 전진하는 것은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단련시킬 수 있다.(그림 6 참조)

그리고 뒷걸음질 치는 경우에는 발목관절을 펴며 발가락쪽이 땅에 먼저 닿으며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에 더 많은 힘을 주니까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을 단련시킬 수 있다.(그림 7 참조)

옆걸음의 경우 진행되는 쪽의 다리는 다리를 땅에서 떼어 옆으로 벌리는 순간에는 다리의 외과와 연결된 근육과 대퇴부의 바깥쪽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까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에 힘을 주게된다. 다리를 옆으로 딛고 몸의 무게중심을 옮길 때에는 대퇴부의 안쪽 근육과 발목의 내과에 연결된 근육에 힘을 주게 된다. 이 부위는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이 있으므로 이들 경근(經筋)에 공동으로 힘을 주게된다. 그러므로 옆걸음의 경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중의 하나를 선택적으로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함께 단련시키게 된다.(그림 5,8,9,10 참조)

 

 

그림 5. 足少陽膽經

 

그림 6. 足太陽膀胱經

 

그림 7. 足陽明胃經

 

그림 8. 足太陰脾經

 

그림 9. 足厥陰肝經

 

그림 10. 足少陰腎經

 

이렇게 경락학적인 면에서 그 의미를 찾을 경우 쉽게 각 개개인에 따라 필요한 자세를 찾을 수 있는 변증(辨證)의 장이 열리게 된다. 가령 위기능이 약한 사람의 경우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을 단련시켜 위기능을 강화시키는 목적이 있다고 치자. 이 경우 식후에 뒷걸음을 치게 하여주는 것이 앞걸음을 걷는 것보다는 이론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 가령 몸에 열이 많고 등뒤로 열이 후끈 달아 오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목덜미가 뻗뻗하게 되었다고 치자. 이 경우 태양(太陽)한수(寒水)의 부족으로 보아 수기(水氣)를 보충하여 줄 필요성이 있다. 그러므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자극하여 증상을 호전시키거나 완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경우 산책을 나가는 것도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볼 때 이해가 가는 일이다.

정력이 부족하여 양사타구니가 축축하고, 심하면 마찰에 의하여 피부에 궤양이 생기거나 임파선이 부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러한 사람의 경우 성기능도 저하되는데 설상가상으로 아랫배가 차고 의욕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의 걷는 방법은 될 수 있으면 양다리를 벌리고 사타구니가 서로 비벼지지 않게 벌려 주며 엉거주춤하게 걷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결국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을 단련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신기(腎氣)를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주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보다 확실한 효과는 사타구니쪽의 공기유통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 같다. 증상이 족삼음경(足三陰經)중 신경(腎經)과 간경(肝經)을 보강시킬 필요성이 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동통으로 인하여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을 많이 움직이게 하는 일치성이 내재하고 있음이 바로 그 이유이다.

 

 

2. 양발의 위치에 따른 자세의 의학적인 의미

 

우리나라의 양반들의 걸음을 팔자걸음이라고 한다. 양팔을 활짝벌리고 휘휘 내저으며 다리를 양쪽으로 내 디디며 기세좋게 자기 앞에 펼쳐진 길이 모두 자신의 소유인 양 걷는 모습을 사극에서 볼 수 있다. 대체로 양발끝의 방향이 전방의 바깥쪽을 향하고 있으며, 이 다리를 따라서 양다리의 내딛는 방향은 전방의 바깥쪽을 향한다. 이러한 걸음은 다리에 긴장을 풀고, 쉽고 안정된 걸음걸이를 할 수 있으며, 걸음의 속도도 아주 느려 유유자적하는 풍모를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발모양의 반대가 역팔자형의 걸음인데 발끝이 전방 내측을 향하는 걸음걸이로써 쉽게 그 걸음걸이를 하는 경우를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없다. 여자들에게 이러한 걸음걸이를 하게 하여 성기능을 강화시키려고 하였다는 경우가 그 예일 것이다. 그리고 발끝의 방향을 전방을 향하게 하여 걷는 평행보(平行步)라는 방법이 있다. 이 보법은 모든 권법의 다리의 기본적인 보행자세와 같다. 여기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며, 하지의 운동에 대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태훈옹이 주장하는 속보법의 경우가 있어 양발의 방향과 위치가 일직선상에 위치하도록 발을 떼어놓는 경우도 하나의 보법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평행보(平行步)의 의미와 비슷하거나 보다 강한 기능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11. 속보법

 

팔자걸음은 양반걸음이라고도 하는데 종종걸음을 치거나 헐레벌떡 걷는 것을 천시하는 유교적인 사고가 깊이 내재하고 있는 걸음걸이다. 이 팔자걸음을 경락학적인 사고로 들여다 보면 이해가 된다. 팔자걸음은 다리에 큰힘을 들이지 않고도 편히 걸을 수 있는 보법이다. 양발의 안쪽 복사뼈와 연결된 근육이 안쪽 전방을 향하게 하여 걷는 것이 구체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걸을 경우 안쪽에 위치한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 근육들이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들로 모두 음경근(陰經筋)들이다.

결국 음경(陰經)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하니 몸이 굼떠지고 마음이 느긋하여지며 여유가 생긴다. 이것은 음경(陰經)이 특성상 양경에 비하여 음적인 성질을 많이 내포하고 있으며 음이라는 것은 무겁고 차분하고 둔하고 차고 어둡다. 결국 이러한 음적인 성질의 표현이 음경(陰經)이며 음경근(陰經筋)의 운동에 따라 역으로 음적인 성질의 표현이 일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양반들이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하고 맑게 하며 유교적인 교리에 몰두할 수 있는 경지로의 접근을 위하여 행하여진 걸음으로 사려된다. 더우기 해부학적으로도 결코 이러한 걸음걸이로는 빠른 행보를 할 수가 없으며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 경우 더 피곤해진다. 더욱 신기한 것은 살이 찐 사람에게서 팔자걸음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으며, 깡마른 사람의 경우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또는 깡마르며 팔자 걸음을 걷는 사람의 경우 마음이 아주 부드럽고 넓으며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일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음기(陰氣)만을 이용하여 걸음을 떼어 놓는 것이 팔자걸음이다.

 

 

그림 12. 팔자걸음 그림 13. 역팔자걸음

 

역팔자걸음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행하기 어려우며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보행이 되어지지 않는다. 이 경우 발등의 바깥쪽에 위치한 근육에 힘이 많이 들어가며 사타구니의 근육들에 긴장이 간다. 이러한 근육들은 발등의 경우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이 많이 긴장되고 사타구니의 경우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의 긴장이 많이 된다. 그밖에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도 긴장이 되는데 주된 것은 전자이다.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의 소양(少陽)은 상화(相火)이며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의 소음(少陰)은 군화(君火)이다. 상화(相火)와 군화(君火)는 모두 생명의 보이지 않는 불이다. 이러한 경근(經筋)들이 긴장되고 강화될 때 성적인 능력과 생식능력의 강화 또는 스테미너의 강화를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소모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령 성적으로 흥분하는 경우 다리를 비트는데 바깥쪽으로 보다는 안쪽으로 비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의 경우 발기가 되었을 경우 장소가 공공의 장소일 경우 양다리를 벌리는 사람보다는 양다리를 움추려서 발기를 억제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음대로 잘 않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볼 때 역팔자걸음은 몸이 차고 양기(陽氣)가 쇠하고 냉이 심한 사람들에게 응용되어질 수 있는 도인법이라고 할 수 있다.

평행보(平行步)는 행진을 하는 군인이나 의기양양한 사람의 걸음걸이에서 볼 수 있는 걸음이라서 걸음이 경쾌하고 힘이 있다. 아마 애인에게 버림받고, 시험에 떨어져서 상심하고, 친구에게 배반당하여 실망하고, 사형을 언도 받아 절망하고, 손을 쓸 수 없는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을 때의 걸음걸이는 결코 이러한 걸음걸이를 하지 못한다. 평행보(平行步)는 시험에 합격하고, 기분이 좋고, 일에 성취도가 있을 경우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걸음 걸이다. 가령 열병과 분열을 하는 군인 장병들이 평행보를 걷지 않고 팔자걸음 내지는 역팔자걸음을 걷는다면 결코 열병분열이 되지 않을 것이며 패잔병의 무거운 걸음걸이로 보아질 것이다.

여기에도 의학적인 이유가 있다. 평행보를 걷는 경우 앞으로 내딛는 발의 뒷꿈치가 먼저 땅에 닿을 것이고, 뒷발의 경우 발의 앞부분이 땅에 닿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발의 발바닥이 땅에 닿으면 뒷발은 땅에서 떨어져서 전방으로 향하게 된다. 이 경우 뒷꿈치가 땅에 닿을 경우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자극을 받을 것이다. 발끝이 땅에 닿을 경우 엄지와 둘째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엄지의 경우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이 시작하는 부위이고, 둘째 발가락의 경우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끝나는 부위이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경우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이 자극을 받는다. 이중에서 특히 관여하는 경근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과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다.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양명(陽明)은 조금(燥金)이며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의 태양(太陽)은 한수(寒水)이다. 조금(燥金)은 가볍고 건조하며 경쾌함을 뜻하고 한수(寒水)는 딱딱하고 차며 제동을 뜻한다. 앞발이 움직임의 제동을 걸게 된 것은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자극하였기 때문이며, 뒷발이 움직이게 되는 것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걸음걸이는 절도가 있어 보이고 경쾌하며 확실한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딛게 된다. 그래서 병사의 걸음에서나 전투에 임하는 승부사의 걸음에서 쉽게 발견되는 걸음걸이다.

 

 

그림 14. 평행보(平行步)

 

이러한 보행의 비슷한 유형이 권태훈옹의 속보법인데 평행보보다 효과적인 보법인 것 같다. 평행보는 발의 방향이 같은 방향인데 발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지 않으나, 속보법은 발이 일직선상에 있게 되어 한걸음 걸을 때의 이동거리는 평행보보다 멀며 운동하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모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발을 이동시키며 발의 이동선이 타원을 그리는데 뒷발을 뗄 때 발은 약간 옆으로 향하게 되고, 앞발을 지나게 되면 다시 발의 이동방향이 안쪽으로 향하게 된다. 발이 옆을 향하게 될 경우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이 약간 긴장하고 발이 안쪽을 향할 때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과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이 긴장하게 된다. 특히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시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그 요점이다. 이것은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제동력이 발휘되지 않도록 하기위한 조처이다. 결국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가 많이 발출되도록 하기 위한 보행법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이상의 발의 방향에 따른 보법의 분류는 다른 분류보다 의학적인 의미의 차이가 확실하다. 그래서 내포하고 있는 의미도 쉽게 일상생활에서 체험되어 질 수 있는 점이 아주 많다. 선택적으로 그 의미를 응용할 수 있는 행법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면 당장에 족삼음경(足三陰經)과 족삼양경(足三陽經)의 보사(補瀉)에 응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3. 발의 모양에 따른 의학적인 의미

 

발의 모양은 걸을 때 땅에 닿는 부위에 따라 다르다. 그 분류는 대체로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다섯 가지는 발끝이 땅에 닿을 경우(족첨보(足尖步)), 발뒷꿈치가 땅에 닿을 경우(족근보(足 步)), 발바닥이 땅에 닿는 경우(족장보(足掌步)), 발의 안쪽변이 땅에 닿는 경우, 그리고 발의 바깥쪽변이 땅에 닿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대체로 족첨보(足尖步), 족장보(足掌步)만이 일상생활에 쉽게 이루어 지는 걸음이다. 나머지는 의도적으로 취해야 할 걸음걸이이다. 물론 복합적인 경우의 걸음은 쉽게 발견될수 있다. 여기서 땅에 닿는 부위가 갖는 의미는 그 부위가 연결된 경근(經筋)이 다른 경근(經筋)에 비하여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데 있다. 개개의 의미를 음미하여 보자.

족첨보(足尖步)는 단거리 육상선수 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보법은 걷는다기 보다는 뛰는 것이다. 100미터 내지 400미터 달리기의 경우 발뒷꿈치가 닿지 않고 뛰는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자극을 극대화 시키는 경우이다. 그러니 급해지고 경쾌하고 빨라진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이렇게 달릴 수가 없는데 조급한 경우 기의 소모는 아주 맹열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거리나 마라톤같은 장거리의 경우에는 결코 발끝으로만 땅을 디디지 않을 것이다. 족양명(陽明)의 양명(陽明) 조금(燥金)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조금(燥金)의 기운을 발출하는 역할을 하는 걸음 걸이가 족첨보(足尖步)이다. 그래서 멀리뛰기 선수가 도움닫기를 할 때 족첨으로 달려 속도를 내고, 멀리뛰는 순간 발바닥이 땅에 닿도록 구름판을 구르는 방법을 관찰할 수 있다. 높이뛰기 선수의 경우도 그렇다. 속도를 빨리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데 이 경우 수기(水氣)의 소모가 많아진다. 그래서 수기(水氣)가 마르니까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이 강하여지는 이론과의 일치를 볼 수가 있다.

족장보(足掌步)는 앞에서 설명하였지만 멀리뛰기 선수나 높이뛰기 선수의 경우에서 구름판을 힘껏 내딛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외에 제자리 걷기의 경우 발바닥이 모두 땅에 닿는다. 이것은 두가지 상반되는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운동에너지를 발바닥에 모아 한가지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운동에너지를 상쇄시켜 주는 효과를 낼수가 있다. 족장보(足掌步)로 걷는 모습을 보고 성큼성큼이라는 의태어를 쓰는데 이것은 장사의 걸음걸이요 힘의 과시를 의미한다. 또한 힘을 쓰는데 자신 있음을 표현한다. 이것은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의 힘과 족삼양경근의 모든 힘과 탄력을 집중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자리 걸음의 경우 힘이 필요없다. 앞으로 전진하고 뒤로 후진하는 행위가 아니니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의 힘이 들어 있지 않다. 단지 무릎부위에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작용이 있을 뿐이다.

족근보(足 步)는 발뒷꿈치만을 땅에 닿도록하여 걷는 방법으로서 의식적으로 행하려 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는 걸음걸이이다. 이곳은 정확하게 뒷꿈치에 힘을 주게되고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의 신전을 유발하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이러한 자세로 걸을 수는 없다. 발뒷꿈치는 쉽게 말하면 발의 마찰력을 극대화 시키는데 용이한 부분이다. 예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발뒷꿈치에 힘을 많이 주는 경우나, 야구선수가 슬라이딩을 할 때 다리를 앞세울 경우 발뒤꿈치에 힘을 주며 슬라이딩을 한다. 그 이유는 수비수의 터치 면적을 좁히면서 달려오는 속도를 죽이지 않으면 베이스를 놓치게 되어 아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락학적으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의 경기(經氣)를 발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확실한 예이다. 그러니 뒷꿈치로만 땅을 디디면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에 자극을 가하여 거기에 상응하는 한수(寒水)의 기를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관찰할 수도 있다.

발바닥의 외측변만이 땅에 닿을 경우의 걸음 걸이는 발의 외측을 지나는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발의 외측을 지나는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에 긴장이 된다. 발바닥의 내측변만이 땅에 닿을 경우는 발의 내측을 지나는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과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그리고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이 긴장이 된다. 이러한 경우의 걸음걸이는 보행을 하는데 아주 불편하며 어렵다. 행보공의 경우 비교적 장시간을 시행하여야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쉽게 근육에 피로가 오는 자세는 삼가하는 것이 좋다.

이상으로 땅에 닿는 부위에 따른 발의 모양에 따라서 분류를 하여 보았다. 현실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잘 이용하면 하나의 도인술을 창안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사려된다.

 

 

4. 몸의 무게중심을 두는 위치에 따른 의학적인 의미

 

보행을 하는데에서 중요한 점의 하나는 진행을 하는 방향에 따라 몸통이 이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학생이 걸어서 학교에 등교를 한다면 그 사람은 다리가 몸통을 옮기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머리와 몸통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리는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몸통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다리의 전반적인 부분에 몸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을 부여하게 된다. 결국 걷는 자세가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었는가에 따라 그 의학적인 의미가 달라질 수가 있다. 몸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둘 경우 전방에 있는 다리에 많은 부하가 걸린다. 몸의 무게중심을 뒤로 둘 경우에는 뒷쪽의 다리에 많은 부하가 걸린다. 몸의 무게중심을 가운데에 둘 경우 양다리에 공평한 부하가 걸린다. 권법에서는 이것을 용어로 명명하여 중요시 하였는데 무게중심이 전방에 있을 경우의 궁보(宮步)라고 하며, 무게중심이 중간에 있을 경우는 중정보(中庭步)라고 하며, 무게중심을 뒤로 줄 경우 허보(虛步)라고 하며 태극보(太極步)라고도 한다. 각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추론하여 본다.

 

그림 15. 궁보(宮步)

 

궁보(宮步)는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무릎을 굽히고 뒤쪽의 다리는 후방으로 쭉편다. 그리고 앞의 무릎을 앞으로 좀더 굽히며 뒷다리를 들어 무릎을 굽히며 앞으로 내디디고 뒷쪽의 다리는 무릎을 펴며 지탱한다. 이러한 동작의 연속이 바로 궁보라고 하며 몸의 무게 중심은 항상 앞으로 쏠려 있다. 이 경우 앞다리의 경우와 뒷다리의 경우 모두 발의 전방의 근육들에 긴장이 많이 걸린다. 그 근육이 바로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다. 단지 앞다리의 경우 발뒷꿈치에 힘이 들어 갈 수는 있으나 그 정도가 강하지 않다.

그래서 궁보(宮步)는 공격적이고 힘이 있고 경쾌하며 빨라야 한다. 그것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을 강화시키는 작용으로 인하여 단단하고 날카로우며 강력한 금()의 기운을 표현하게 된다. 결국 궁보(宮步)는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을 내포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중정보(中庭步)는 앞뒤 다리의 무릎을 약간 굽힌 자세로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서있는 자세로서, 앞다리는 뒷꿈치에 힘을 주고 뒷다리는 발끝에 힘을 준다. 그리고 이동할 경우 앞과 뒤로 그리고 옆으로 방향을 바꾸는 행위로 전환할 수 있는 자세이다. 후진할 경우에는 앞발의 발끝에 힘을 주고 발을 들어 뒤로 이동시켜 적당한 위치에 발을 디디며 발끝을 먼저 땅에 닿게 하고 서서히 몸통을 뒤로 이동하며 발뒤꿈치를 땅에 밀착시킨다. 전방으로 이동할 경우 뒷발을 들어 앞으로 이동하며 발뒷꿈치를 먼저 땅에 닿게 하고 서서히 발바닥이 모두 닿도록 몸통을 앞으로 이동시킨다. 이럴 때 몸의 무게 중심을 양다리의 중간에 두는 것이 중정보(中庭步)이다.

 

 

그림 16. 중정보(中庭步) 그림 17. 허보(虛步)

 

결국 전진할 경우 발뒷꿈치가 먼저 닿게 되므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자극을 받을 것이다. 후진할 경우 발끝이 땅에 닿으므로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을 자극하게 된다. 이동하지 않을 경우 앞발은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자극을 받고 뒷발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자극을 받게 된다. 이 경우 앞발은 강하고 양적이며 뒷발을 음적이고 약한데, 중정보(中庭步)의 경우 전방의 다리는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정체된 음적(陰的)인 기를 내포한다. 뒷다리는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양적(陽的)인 기를 내포하는 반대 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것은 중정보(中庭步)가 음양에 편중됨이 없이 안정된 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자세라고 평가하기에 좋은 이론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비슷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평보인데 평상시의 걸음걸이를 지칭한다. 이 경우도 음양의 편중된 기를 내포하지 않고 조화로운 기를 내포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그 내포하는 기의 강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허보(虛步)는 몸의 중심을 뒤에 두는 경우이다. 다리의 모양은 앞뒤의 다리를 모두 무릎을 굽히고 뒷다리보다 무게 중심이 뒷쪽에 위치한 자세인데 전방의 다리의 무릎이 약간 덜 굽혀진 상태이다. 뒷다리에 발뒷꿈치에 힘을 주어야 이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이동하는 경우 전방으로의 이동보다는 뒤로 이동하는 경우에 더많이 이러한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권법에서는 방어를 의미하거나 후퇴를 의미한다.

뒷꿈치에 힘을 주는 것은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의 자극을 의미하고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를 내포하고 있다. 한수(寒水)의 기는 정체되고 움추리며 강하지 않다. 이러한 보법과 유사한 경우가 태극보(太極步) 또는 안종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동하는 경우 전방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보법을 현실 생활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린시절 숨바꼭질 할 때 술래 몰래 숨을 죽이며 걸을 때 살금살금 걷는 경우의 걸음걸이가 있고, 도둑놈이 발소리를 죽이기 위하여 살금살금 걷는 경우도 해당되며, 고추잠자리나 매미를 잡기 위하여 살금살금 소리를 죽이며 걷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걸음걸이는 마치 물이 고여있는 땅위를 물이 튀지 않도록 발뒷꿈치부터 서서히 땅에 대어 발끝을 땅에 대고 발을 뗄 경우에는 발뒷꿈치 부터 떼며 발끝을 맨 나중에 뗀다. 그러나 힘을 주는 위치는 발뒷꿈치에 있다. 이러한 걸음걸이는 가장 소음(騷音)이 적고 정신적인 집중도 가장 강하며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가장 긴장시키는 보법이다. 이것 또한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상의 걸음걸이는 대체로 강한 기의 발생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와 부드럽게 조화로운 기를 발설하는 자세로 나눌 수가 있다. 궁보(宮步)의 경우는 강력한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허보(虛步)의 경우는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강력한 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중정보(中庭步)는 음양의 기가 대체로 조화로운 상태의 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평보는 중정보(中庭步) 보다 더 약한 기를 내포하고 있다.

 

 

5. 행보세(行步勢)의 운용

 

이상으로 다양한 행보의 자세를 분류하여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를 정리하지 않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복잡하며 불필요한 경우의 자세도 많이 있다. 보다 효과적이고 능율적인 행보세(行步勢)를 정리하여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가령 상관에게 꾸중을 들은 샐러리 맨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받아 들이는 감정의 상태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반감을 가질수 있다. 또 하나는 침울하게 위축될 수도 있다. 다혈질인 사람은 화를 낼수도 있다. 억울하여 못참아서 울음을 터트리는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대체로 바람을 쐬려고 하든 분풀이를 하려고 하든 간에 사무실을 나오는 경우가 있다. 다혈질인 사람은 후닥닥거리며 뛰어 나갈 것이고 닥치는 대로 몸에 걸치는 것을 차낼 것이다. 이때 유발되는 기는 궐음(厥陰) 풍목(風木)과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이다. 이 경우 실사(實邪)가 체내에 생기게 되며 이것을 배설하는 것이 순간의 건강에 좋다. 그래서 후닥닥거리고 뛰는 것은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의 발산인 갑작스러운 근육의 긴장과, 양명(陽明)조금(燥金)의 기운의 발산에 의한 차분하지 못한 발걸음은 결코 발의 뒷꿈치가 땅에 닿을 사이 없이 뛰어 나가게 한다.

이러한 경우는 비록 화가 났을 경우에만 일어 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복바쳐서 참을 수 없을 경우에도 일어 난다. 영화의 한 장면에도 보았을 것이지만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할 경우 후닥닥 뛰쳐나가 전봇대를 붙잡고 닭똥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통사정을 하는 광경을 볼 수가 있다. 어느 텔레비젼의 광고에서 무스로 머리를 손질하니까 잘생긴 총각이 아는 체를 할 때의 기쁨을 못 이겨서 길길이 날뛰며 괴성을 지르는 여자의 행태를 보았다.

이들의 발걸음은 발뒷꿈치가 땅에 닿을 사이도 없이 맹렬하게 뛴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데 어떠한 기운의 발상일 것인가. 양명(陽明) 조금(燥金), 태음(太陰) 습토(濕土),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이 매우 충만하게 되고,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운을 억제하려는 기운이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행태일 것이다. 조금(燥金)이란 조급해지는 마음이나 정서적으로 건조한 마음이다. 습토(濕土)라는 것은 축축하고 넉넉하며 흐믓한 마음이다. 풍목(風木)은 화나고 난폭한 변화를 초래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기운이 충만하면 이것을 밖으로 발산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적으로 심기(心氣)와 근기(根氣) 내지는 원기(元氣)를 손상하게 된다. 이것을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과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을 통하여 내적으로 너무 많아진 기운을 발산시킨다. 그것이 보행의 양상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침울하게 위축이 되거나, 참을 수 없어서 벌벌 떨면서도 밖으로 내색을 할 수 없는 상태일 경우는 걷는 모습이 어떨까? 침울하게 위축이 될 경우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떼어 놓을 것이다. 이때 발뒷꿈치가 땅에 닿을 것이고 팔자걸음을 걸을 것이다. 침울하고 슬픈 경우가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의 충만을 의미한다. 이것이 충만하면 다리가 무거워지며 힘이 없어지고 걷기조차 싫어지고 주저않고 싶을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러한 기운이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따라 발산이 되는 현상이다.

내색을 하지 못하고 참을 경우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치를 떨 것이면서도, 급해지는 마음을 억제하기 위하여 이리 걸었다 저리 걸었다하며 발걸음이 갈팡질팡하며 방향을 자주 바꿀 것이다. 이 경우 발끝이 안쪽으로 향하게 되며 방향이 바꾸어지는 것이니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과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긴장한 때문이다. 소양(少陽) 상화(相火)는 치를 떠는 증오의 불이며 때에 따라서는 사랑의 불일 수도 있다. 결국 상화(相火)가 망동하는 현상이 발생하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의 발걸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운이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을 통하여 발산하는 걸음걸이의 현상이다.

이상이 내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가 발산되면서 일어나는 걸음걸이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대체로 그 표현이 격하고 빠르며 격렬한 것이 특징이다. 결국 이러한 걸음걸이는 체내의 기를 소모시키는 사법(瀉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실()한 것은 사()하는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새삼 인간의 자연 치유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미묘한 생명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체내에 부족한 기운이 있어서 이러한 요소를 행위를 통하여 체내에 축적하는 현상을 또한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어떠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여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하는 일 없이 소일하고 빈둥거리며 술이나 먹고 주정이나 할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무슨 일을 하려는 열의가 없다. 이것은 소양(少陽) 상화(相火)의 기운과 소음(少陰) 군화(君火)의 기운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게을러지고 빨리 하려는 마음이 없는데 이것은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즐거운 마음이 없으니 태음(太陰) 습토(濕土)의 기운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생활의 리듬을 바꾸어 보려고 하지 않으니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이 없다. 이 사람은 항상 자신을 제어 할 수가 없어서 음주를 하고 절도를 지키지 못하고 주정을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의 걸음걸이는 결코 활발하지 않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길 것이고 팔자 걸음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갈 곳이 없어 갈팡질팡 할 것이고 언제나 자신이 없는 걸음을 옮길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데 아마도 도보로 하는 여행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자가용을 이용한 여행을 할 경우 대부분 자신의 잃어 버린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먼 길은 물론 이러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이지만, 목적하는 곳에서는 두발로 걷는 것이 아마도 효과적일 것이다.

가끔 소설이나 수기 같은 곳에서 주인공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설악산이나 동해안을 따라 일주를 하고 돌아오며 마음을 잡는 내용을 읽을 수가 있다. 수영 스타 최모양의 부군이 된 가수는 한 때의 실의에 찬 나날을 여행으로 풀었다고 모 일간지에서 읽었다. 어쨋든 이들은 설악산에서 산을 올려다 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해변가를 차창으로만 감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래 사장에 차를 끌고 들어가면 어떤 고생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악산의 좁은 등산로를 자가용을 타고 넘을 수는 없을 것이고 비행기를 타고 관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두다리를 사용하여 이동하였을 것이다.

설악산을 오르며 양명(陽明) 조금(燥金)과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을 충전시켰을 것이다. 정상에 올라가서 태음(太陰) 습토(濕土)의 기운을 충만 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해변가를 걸으며 깊이 빠지는 모래 사장을 디디며 소양(少陽) 상화(相火)와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운을 충전하였을 것이다. 지나가는 예쁜 아가씨를 만나서 소음(少陰) 군화(君火)와 소양(少陽) 상화(相火)의 기운을 충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니 새로운 원동력을 얻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체내에 부족한 기운을 충전시키는 보법이다.

이상의 능동적인 자세로 임하는 보법(補法), 심적인 사기(邪氣)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임하는 사법(瀉法)을 통하여 체내의 기운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의 예를 들어 보았다. 여기서 막연히 걸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흔한 걸음걸이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보다 나은 건강을 유지하는 지혜를 창출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여러가지 걸음걸이를 효과적으로 응용하여 보다 나은 효과를 창출할 수가 있다.

 

 

3. 입세(立勢)의 종류

 

인간이 보행을 통하여 이동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설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갓나은 아이가 제자리에 서기까지에는 수많은 시간을 기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며, 제자리에 앉기도 하고, 걸음마를 하려고 힘을 쓰기도 하다가 어느날 능력이 되었을 때 걸을 수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가 제자리에 설 수 있을 때 대단히 대견스러워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를 할 때 기뻐하고 아무 탈없이 자라기를 바란다.

결국 인간이 제자리에 선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양손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어려운 업무를 시행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저세상으로 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할머니께서 자신의 손자가 걸음마를 하며 세상살이의 시작을 위한 하나의 발걸음을 떼어 놓았음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세상을 살아오신 지난날의 여정을 둘러 볼 수 있는 여지를 얻는 것이니, 손자의 앞날을 축복하는 마음은 남과 다를 것이다. 그러한 감회는 어머니 아버지가 받는 감회 보다는 절실할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의 마음은 그러한 생명의 감격에 대한 인식이 절실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제자리에 선다는 것은 여러가지 세상살이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독립을 한다. 홀로 선다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자신의 세계를 설립하며 생활을 영위하면 자립을 하였다고 한다. 스스로 선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다는 의미를 아주 잘 인용한 단어이다.

그래서 도인술과 기공 그리고 권법에서는 자리에 서는 자세를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서는 자세가 안정되어 있어야 다음 동작이 안정되고 효과적인 동작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인술과 기공 그리고 권법 같은 데서 언급한 자세를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서는 자세는 국민학교에서 처음으로 구령이 붙여지는 차려, 열중쉬어 자세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걸음마를 하면서 배운 기대어 서는 자세(고립이라 명명함)이다. 점차 발육이 되며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데 이것도 선다는 자세이다. 다만 발로 서는 것이 아니라 양손으로 서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서는 자세는 태권도를 배우면서 주춤서기 자세를 배우면서 또 하나의 종류의 자세를 더하였다. 이 주춤서기 자세가 기마세(騎馬勢)이다. 그리고 중국의 권법을 보았더니 참식(站式)이라는 서는 자세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입세(立勢)의 종류의 대강이다. 그리고 이들 자세에서 발뒷꿈치를 들었는가 아니면 발뒷꿈치를 들지 않았는가에 따라 자세의 분류를 할 수 있다. 이들의 자세에 대한 정확한 내용과 자세가 내포하는 가치를 알아 본다.

 

 

1. 바르게 서는 자세

 

열중쉬어 자세와 차려 자세가 바르게 서는 자세의 대강이다. 양무릎을 곧게 펴고 발뒷꿈치를 땅에 붙히고 약간 발끝을 밖으로 벌리고 서며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들어 시야가 15도 정도 상방으로 향하도록 한다. 열중쉬어는 양발을 양어깨 넓이 만큼 벌리고 차려는 양발 뒷꿈치를 붙힌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가 어떠한 의미가 내포되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막연하게 그렇게 서면 질서 정연하고 보기가 좋아서 그런다는 것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생각하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가령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오랫동안 서있을 경우 어떠한 자세가 가장 편안하고 피로가 덜 오는 자세인가를 생각하여 보자. 양손을 축 내리고 양발중 어느 한쪽으로 무게 중심을 주고 비스듬히 서서 어깨에 힘을 빼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면, 이 사람이 이 자세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틸지는 한번쯤 시행해볼 필요성이 있다. 아마 손발이나 머리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다리와 허리 내지는 목이 꽤나 아플 것이다. 그래서 무게 중심을 반대쪽 다리로 움직이고 고개는 들었다가 내리고 휘휘 돌려 보기도 해야만 다시 그러한 자세로 오랫동안 서있을 수 있다. 허리를 굽히고 서있을 수도 있으나 역시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지는 못한다.

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해부학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근육과 관절이 굽혀지거나 왜곡되면 쉽게 혈액순환의 장애를 느낄 것이다. 무게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치우친 쪽의 다리가 쉽게 피곤해 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관절을 펴고 고개도 펴들고 양팔은 어깨에 힘을 빼고 뒷짐을 짚어 고정을 시키는 것이 편하다. 이러한 자세의 대강이 열중쉬어 자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에서 교장선생님은 조회를 치룬다. 그리고 차려자세를 취하게 하고 경례를 한다. 차려 자세를 취하는 시간은 결코 많이 주지 않는다.

차려자세는 단정한 면은 있으나 역시 긴장이 많이 가는 자세이다. 양발이 모아 졌으니 무게의 분산이 일어 나지 않을 것이고 양팔은 아래로 쭉뻗어 몸에 붙히니 긴장이 될 것이다. 팔의 경우 아래로 쭉뻗게 되면 자연스럽게 굽힌 것보다 훨씬 긴장이 많이 된다. 그러나 팔을 뒤로 돌리는 열중쉬어의 자세는 조금 힘이 드는 자세이나 오랬동안 자세를 취하면 점차 두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리고 열중쉬어나 차려 자세를 취하면 양무릎의 굴신이 용이하지 않으며 관절이 윤활하지 않는 감이 느껴진다. 정적인 자세가 갖는 일부 근골격상의 장애는 장시간을 취하였을 때 일어난다.

다리의 모양을 의학적인 눈으로 관찰할 때 대체로 다음과 같다. 양발끝이 자연스럽게 외측을 향하고 있으며 발바닥이 단정하게 땅에 밀착되고 있어서, 족삼음 삼양경맥(足三陰 三陽經脈)과 근육이 평이하게 골고루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여 준다. 특히 발바닥중 발뒷꿈치의 역할과 발바닥의 용천혈(涌泉穴) 부위의 역할이 아주 커서 안정되게 제자리에 오랫동안 서있게 한다. 이것은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증인데 태양(太陽) 한수(寒水)와 소음(少陰) 군화(君火)의 기운이 내포되어 있다. 한수(寒水)의 기운과 군화(君火)의 기운이 서로 조화되어 안정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발끝이 외측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과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과 균형을 이룬다. 무릎을 펴고 있기 때문에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긴장하고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신전되며 긴장된다. 그래서 오랬동안 서있을 경우 족삼리혈(足三里穴)의 아랫부분의 근육이 뻐근하고 종아리와 양슬와(兩膝窩)의 부분이 뻗뻗하여 진다. 한수(寒水)의 기가 응어리진 때문이라고 사려된다. 결국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자세가 바르게 서는 자세일 것이다. 바르게 서는 자세가 의미하는 것은 그밖에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취하는 행동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을 윗사람에게 보이는 자세이다. 이럴 때의 마음은 경건하고 침착하며 망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이러한 마음 자세는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를 품은 마음 자세와 통한다. 몸과 마음의 일치는 이러한 곳에서 또 발견된다는 점이 경이로울 뿐이다.

 

 

2. 참식(站式)

 

참식(站式)은 권법에서 가장 기초적인 자세이며 가장먼저 취하는 기본자세이다. 태극권(太極拳)은 이러한 자세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행법에 임하는데 정립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우며 오랬동안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자세이다. 참식(站式)의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삼원식(三圓式)과 하안식(下按式)이다. 이 두가지 방법을 대략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삼원식(三圓式)은 족원(足圓), 비원(臂圓), 수원(手圓)을 뜻하는데 다리를 둥글게 하고 팔을 둥글게 하고 손을 둥글게 한다는 뜻이다. 양발을 좌우로 어깨 넓이로 벌리거나 약간 더 벌리고 발끝은 안쪽으로 오므려서 내팔자 형태를 취하거나 발끝의 방향이 평행하게 한다.양무릎은 약간 굽히고 사타구니를 약간 조이고 허리는 곧게 편다. 가슴은 약간 오므려서 등을 둥글게 한다. 양팔은 들어서 양손의 높이가 가슴 정도에 위치하게 하고 커다란 공을 안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양손바닥은 자연스럽게 펴서 손바닥이 마주하도록 하여 축구공을 잡고 있는 듯하게 하여 원을 이루도록 한다. 머리는 곧게 세우고 시선은 전방의 한 목표를 응시하거나 양손의 사이를 응시한다. 이러한 자세를 취하면 전방 1 - 2미터의 지면을 바라보게 된다. 입을 가볍게 다물고 혀는 윗니의 안쪽에 붙혀 타액이 입안에 고이게 한다.

하안식(下按式)은 양발을 좌우로 어깨 넓이 보다 약간 넓게 벌린다. 양팔은 몸의 옆으로 내린다. 이때 양손의 손가락을 펴서 전방으로 향하는데 장심으로 지면을 누르는 듯한 형태를 취한다. 그밖의 자세는 삼원식(三圓式)과 동일하다.

그러나 삼원식(三圓式)과 하안식(下按式)과는 다르게 태극권(太極拳)에서는 양손을 계란하나를 든것 같이 가볍게 쥐고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내려서 호주머니 옆의 재봉선에 댄다. 그밖의 자세는 같이 하는 형태를 취한다. 한가지 동일한 점은 상체는 긴장을 풀고 마음은 단전(丹田)에 두고 하체는 다소 긴장을 두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림 18. 삼원식(三圓式) 그림 19. 하안식(下按式)

 

이상의 자세는 정립의 방법과는 비슷하기도 하나 다른 점이 많다. 정립은 발끝의 방향이 전방 외측을 향하는데 삼원식과 하안식은 발끝이 전방의 안쪽 내지는 전방을 곧바르게 향하는 점이 다르고, 무릎을 펴지 않고 약간 굽히는 것이 다르며, 팔을 펴는 것이 아니라 약간 굽혀서 자연스럽게 내려 뜨리는 것이 다르고, 시선이 전방 위쪽을 향하지 않고 아랫쪽을 향하는 것이 또한 다르며, 가슴을 펴지 않고 약간 오므리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가 의미하는 의학적인 의미가 다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리의 자세 형태만을 거론한다면 양발끝이 약간 안쪽이나 전방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하는 것은 정립과는 다르게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과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을 긴장시키며 무릎의 경우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을 무릎위의 경우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과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을 긴장시킨다. 결국 참식(站式)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을 중점적으로 자극하는 자세이며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을 자극하는 자세이다.

이렇게 하며 의지(意志)를 단전(丹田)에 두고 하지를 긴장시키니 기가 하지로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다.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주로 전투(戰鬪)와 관계가 있다. 가령 권투선수의 자세를 본다면 쉽게 그러한 면을 볼 수가 있다. 무릎을 약간 굽힌 자세를 취하며 보행을 옮길 때 발끝에 힘을 주어 전방을 향한다. 만약 이 선수의 다리가 풀렸을 경우 다리는 팔자걸음 식으로 걸음을 떼어 놓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 태권도 대련을 임하는 사람의 무릎은 결코 뻗뻗하게 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다리를 굽힌 자세를 취한다. 역시 다리는 발끝 쪽으로 힘을 주며 민첩하게 옮겨 놓는다. 이것이 참식(站式)과 비슷한 형태를 취하는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때의 마음은 불굴의 의지 내지는 악착같은 마음 예민하여진 반사 기능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기운이 생기는 것은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과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에 의한 소치라 사려된다.

 

 

3. 기마세(騎馬勢)

 

기마세(騎馬勢)는 말을 타고 있듯이 서있는 자세이다. 양다리는 어깨넓이보다 넓게 벌리고 서서 양발끝의 방향이 전방을 향하게 하거나 약간 안쪽으로 향하게 한다. 양무릎은 굽혀서 굽힌 각도가 90도 가까이 되게 하며 무릎을 안쪽으로 약간 움츠린다. 허리는 바르게 펴고 몸은 약간 앞쪽으로 향하는 듯하며 바르게 세운다. 양손은 아래를 향하여 참식의 하안식과 같이 하거나 전방을 향하여 삼원식과 같은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자세는 역근경(易筋經)의 삼반락지세(三盤落地勢)에서 전형적인 기법으로 설명되었다.

 

 

그림 20. 역근경의 삼반락지세

 

그러나 조금 다른 자세를 취하였는데도 기마세(騎馬勢)라고 이름하는 경우가 있다. 팔단금(八段錦)에서 양다리를 벌리고 양무릎을 굽히며 발의 방향이 좌우 양측을 향하며 약간 앞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자세를 이름하는데 팔단금(八段錦)중에서 좌우개궁사사조(左右開弓射), 요두파미거심화(搖頭擺尾去心火), 찬권노목증기력(拳怒目增氣力)등 세가지 행법에서 기마세(騎馬勢)를 취하는데 전자와는 다른 방법을 자세로 설정하고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자세를 기마세(騎馬勢)라고 하는데 대체로 하지의 긴장을 가장 많이 유발시킬 수 있는 자세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왜냐하면 다리의 모습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공효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별을 할 수 있는 기마식의 명명이 필요하여 편의상 삼반락지 기마세(騎馬勢)와 팔단금(八段錦) 기마세(騎馬勢)라 구별하고자 한다. 이들의 자세가 갖는 의학적인 의미를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21. 좌우개궁사조 그림 22. 요두파미거심화

 

삼반락지 기마세(騎馬勢)의 경우 양발의 모습이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과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자극을 많이 받을 것이고, 무릎의 경우 안쪽으로 오므려야 하니까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이 긴장할 것이다. 그 밖에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머지 경근의 역할도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삼반락지 기마세(騎馬勢)는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삼양경근(足三陽經筋)을 골고루 비교적 강력한 긴장을 유발하게 하는데 특히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이 중점적으로 자극을 많이 받는다.

 

 

그림 23. 찬권노목증기력

 

이것은 태음(太陰) 습토(濕土)의 기운과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을 발산하는 자세이다. 습토(濕土)는 이태택(二兌澤)을 의미하는데 인체에서는 음정(陰精)이 고이는 연못을 뜻하니 만족하고 느긋하며 풍족한 마음을 이룬다. 풍목(風木)은 음정(陰精)이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니 풍목(風木)이 있는 곳은 변화가 있고 인체에서는 감정의 변화가 맹렬하여진다. 화내고 긴장하는 등의 표현이 이루어진다. 결국 습토(濕土)와 풍목(風木)의 기운이 함께 하니 기의 집중도 대단하며 근골과 경맥에 음정(陰精)이 소통되며 충만하여진다. 실제로 이 자세를 취할 경우 단전(丹田)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쉽게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오랬동안 견디지도 못한다. 단전(丹田)에 마음을 둘 경우 하지와 단전(丹田)을 연결하는 경맥이 통창함을 느낀다.

팔단금(八段錦) 기마세(騎馬勢)는 양발의 모습을 볼 때 발 뒷꿈치에 힘을 주어야 하니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에 긴장이 가고 엄지 발가락과 중족골 말단부의 관절에 힘이 주어지니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이 긴장을 하고, 무릎은 외측으로 한없이 벌려야 하니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이 긴장을 하고 서계부가 좌우로 벌려지니 족소음신경이 긴장한다. 그리고 족태음비경근(足太陰脾經筋)과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이 신전하니 하지의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삼양경근(足三陽經筋)이 모두 긴장하는 자세이다. 그러므로 이 자세는 입세중에서 가장 긴장이 많이 가는 자세이며 여섯 개의 경근을 모두 자극하여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자세이다. 그래서 팔단금(八段錦)에서 이러한 자세를 기본으로 하는 행법을 반이나 배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4. 고립(靠立)

 

사람이 서는 자세를 취할 때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는 방법이 기대어 서는 자세이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하기 전에 벽이나 밥상을 집고 일어서는 연습을 무던히도 하게 된다. 특히 중풍환자가 다리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먼저 하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집고 일어서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병원후론에서는 풍병을 치료하는 도인술의 하나로 기둥이나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의념(意念)으로 마비된 쪽을 도인하는 방법을 들었다. 이것이 고립이라는 자세를 취하는 하나의 예이다. 그런데 고립은 일정한 자세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인체의 다리를 문지방에 걸치고 서도 기대어 선다는 의미일 것이고 팔로 벽을 짚고 서있는 것도 기대어 선다는 의미일 것이고 머리를 벽에 기대고 서도 기대어 선다는 것이다. 허리를 기대어 서도 기대는 것이고 배를 기대고 서도 기대어 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정한 자세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기대어 서는 방법에 따라 여러가지 의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니 다리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응용될 수 있음직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선 기대는 부위가 하지이냐, 상지이냐, 몸통이냐, 머리이냐에 따라 분류 설명하여 보자.

하지를 무릎 높이의 구조물에 걸치고 선다는 경우는 일상에서 많이 접할 것이다. 체육시간이나 운동을 하기 전에 하지의 근육을 풀기 위하여 행하는 운동을 상기하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걸치는 경우와 무릎을 쭉펴고 다리를 걸치는 경우가 있으며 걸치는 부위가 발바닥일 경우와 발뒷꿈치일 경우와 발의 내측일 경우가 있다. 무릎을 굽히는 것은 발이 걸치는 부위가 너무 높지 않은 경우에서 발을 전방으로 걸칠 때에 한하여 시행의 의미가 있다. 이 경우 발바닥이 걸치게 되는데 주로 발끝 쪽이 많이 걸쳐진다.

그러므로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긴장이 된다. 무릎을 펴고 걸치는 경우는 전방의 경우와 옆으로 걸치게 되는데 앞으로 걸칠 때에는 발바닥으로 걸치는 경우와 발뒷꿈치를 걸치는 경우가 있으며 옆으로 걸치는 경우 발의 안쪽이 걸쳐지게 된다. 발바닥이 걸치는 경우 발을 쭉 뻗어야 하며 이때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신전하게 되며, 발뒷꿈치로 걸치는 경우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긴장을 하고, 발의 내측이 걸치는 경우에는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과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이 긴장을 한다. 결국 걸치는 부위에 따라 자극을 받는 경근이 서로 다르다.

상지로 기댈 경우와 몸통으로 기댈 경우 그 자체가 행법이 될 수 있으므로 행법의 장에서 다시 거론하고자 한다.

 

 

5. 뒷꿈치가 땅에 닿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입세에서 중요한 점은 전체적인 자세를 취하며 뒤꿈치가 땅에 닿을 경우와 발끝으로만 설 경우를 분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입세를 취하는 경우 뒷꿈치가 땅에 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자세의 난이도가 차이가 나고 도인술을 하였을 경우 그 효과도 큰 차이가 난다. 고전적인 도인술의 경우 대체로 분류가 되어 주지 않고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디디지만, 보다 발전된 자세에서 은연중에 언급된 것이 발견된다. 그 예로 역근경(易筋經)의 위타헌저 이 삼의 행법에서 족첨으로 서는 방법을 응용하였다. 팔단금(八段錦)의 배후칠전백병소란 행법에서 족첨으로 서는 방법을 응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외에도 기마세(騎馬勢)에서 족첨으로 서는 방법과, 정립에서 족첨으로 서는 방법과, 참식에서 족첨으로 서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족첨으로 서는 방법과 발바닥이 땅에 닿게 하여 서는 방법은 어떠한 의학적인 차이가 있는지를 검토하여 보자.

대체로 발끝에 있는 경락은 족삼양경(足三陽經)과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과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이 있다. 그리고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은 발바닥의 용천혈(涌泉穴)에서 시작된다. 대체로 발끝으로 서는 것은 발가락중 엄지발가락과 두번째 발가락의 힘과 용천혈 앞쪽의 두터운 피부층이다. 그래서 발끝으로 설 경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긴장을 많이 하며 특히 족소음신경근(足少陰腎經筋)이 가장 많은 자극을 받고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도 발목 위로는 많은 긴장을 한다.

일상에서 이렇게 서있는 경우는 드믈지만 여성의 경우 하이힐을 신고 있을 때의 다리의 모습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보행의 자세를 논하는 편에서 이미 발끝으로 걷는 경우를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여성의 구두와 여성의 성격을 연관지어 발끝으로 선다는 것의 의학적인 내지는 심리적인 상태를 추론하여 본다.

 

여성의 경우 결혼하지 않은 연령이거나, 하지가 아주 강한 체질이거나 활동성이 많은 성격일 경우, 독립심이 많은 여성일 경우 하이힐을 신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비만형보다는 세장형 내지 근육형에게서 많이 하이힐을 신는다. 여기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은 양명(陽明)조금(燥金)의 기운과 상통하는 조급하고 신경질적이며 부지런한 마음을 내포한 경우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또 음기(陰氣)를 많이 내포한 남성에 상대되는 여성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비만형 체질의 경우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이 부족하여 이루어지며 음기가 충만하니 족삼음경(足三陰經)을 굳이 자극하여 음기(陰氣)를 축적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이론적으로 합리성을 보장한다.

만약 비만형의 사람이 하이힐을 신을 경우 발목을 다치기 쉽고 허리가 많이 아파질 수 있으며 다리가 저릴 수도 있다. 몸이 마르고 신경이 예민하며 성격이 급한 사람의 경우 발걸음은 날렵하여질 것이고 걸음걸이도 뒷꿈치가 땅에 닿을 사이 없이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이것은 발끝으로 걷는다는 것이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을 강화시키며 소음(少陰) 군화(君火)의 기운을 소모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비만형의 사람이 발끝으로 오랫동안 서있을 경우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발동으로 기혈의 순환이 원활하여진다. 따라서 음기(陰氣)의 소모가 활발해져서 체중의 감소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깡마르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발바닥을 땅에 붙히고 서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자극하여 한수의 기운을 축적시켜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을 상쇄시킨다. 그러면 마음이 느긋하여지고 만족스러워지며 침착하여지고 살이 찔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논리를 전개할 수도 있다. 한번쯤 도모하여 볼 일이다.

 

 

4. 좌세(坐勢)의 종류와 의미

 

도인의 자세중에서 그런대로 다양한 기법을 논하는 것이 앉아서 행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쉽게 취할 수 있는 자세이면서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이 많으며 자세의 이름도 명명하지 않은 자세가 많다. 그리고 각가(各家)가 나름대로의 언어로 자세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개개의 이론에 따라 지시하는 언어의 차이가 아주 다양한 점이 좌세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우선 좌세라고 이름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여 보아야 할 점은 앉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밝혀야 할 것 같다. 앉는다는 것은 엉덩이가 땅이나 평평한 자리 내지는 다리의 일부에 밀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단 엉덩이가 땅이나 자리에 닿지 않을 경우 양무릎 이하의 어느 부위이든 양쪽이 땅에 닿아야 한다. 몸통은 대체로 바르게 세우거나 평평한 자리에 붙히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엉덩이를 땅에 붙히고 양무릎을 굽혀 옆으로 눞혀 무릎 아랫부위를 교차시키는 정좌법(正坐法)이 앉는 자세의 가장 기본이다. 양다리를 쭉펴고 앉는 준좌법, 무릎을 꿇고 앉는 궤좌법(跪坐法), 의자에 앉는 평좌법, 무릎을 굽혀 세워서 가슴으로 안듯이 앉는 수슬좌법(竪膝坐法), 무릎을 굽혀 양종아리에 엉덩이를 붙히고 앉는 방법이 있다. 이것이 대체적인 앉는 방법에 대한 정리인데 각각의 변형 자세가 많으며 이것은 여러가지 해석을 낳는다.

 

 

1. 정좌법(正坐法)

 

정좌법(正坐法)은 글자 그대로 바르게 앉는 방법이다. 바르게 앉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도인술에서 말하는 방법은 대체로 부처님이 앉는 방법인 결가부좌(혹은 쌍반좌) 내지는 반가부좌(혹은 단반좌), 그리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자연반좌(自然盤坐), 다리를 교차하지 않고 그대로 포개고 앉는 과학좌 등의 종류가 있다. 이 방법은 대체로 하지의 도인을 위한 자세가 아니라 복부 이상의 부위에 도인하는 목적으로 취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기를 축적하고 보호하는 방법으로 주로 응용되는 자세이다. 그래서 좌선법의 자세는 결가부좌(結跏趺坐) 내지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취하고 유교에서는 양반이 앉는 자세로 자연반좌(自然盤坐)를 선택하고 여성에게는 취하기 쉬운 과학좌를 권하고 있다. 이들 자세에 대한 자세한 방법과 의학적으로 주는 의미를 음미하여 보자.

 

(1) 결가부좌(結跏趺坐)

결가부좌(結跏趺坐)는 정좌법(正坐法)중에서 가장 어려우며 오랜시간을 지속하여 취하기 어려운 자세로서 불교의 선가에서 많이 이러한 좌세를 주된 자세로 선택하고 있다. 다른 명칭으로는 쌍반좌(雙盤坐)라 하는데 그 방법은 먼저 왼발을 오른다리 위에 올리고, 오른발은 왼다리 위에 올린다. 이렇게 하면 양발바닥이 위로 향하고 양다리의 대퇴부가 모두 자리에 밀착된다. 머리를 곧게 하고 어깨는 자연스럽게 내리고 등을 약간 둥글게 한다. 입과 눈을 가볍게 붙히고 양손은 대퇴부 위에 올린다. 허리는 자연스럽게 펴며 복부는 힘을 주지 않는다. 이 자세가 유독 선가에서 응용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한의학적인 사고로 최대한 접근하여 보자.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는 양다리에는 아주 불편한 자세이다. 필자의 경우 살이 쪄서 그런지 20분을 참지 못하고 다리를 바꾸어야 한다. 다리의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저려지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기혈이 순환되기 위하여 근골은 굽히지 않고 펴고 있으며 압박이 되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양다리가 서로 압박하고 양다리가 뒤틀리면서 서로 꼬여 있으므로 순환이 잘 될래야 잘 될 수가 없다. 이러한 자세를 취하고 시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화두에 가 있거나 단전(丹田)에 의념(意念)을 두고 있게 된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마음의 상태는 두 곳이 있게 됨을 숨길 수가 없다. 하나는 저려오는 다리에 마음이 가있게 되어 중지하고픈 충동을 제어 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화두에 있게 된다. 이러니 쉽게 화두를 음미하여 그 의미를 깨우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점을 느끼며 한 가지 단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결가부좌(結跏趺坐)는 하지의 도인을 위한 자세가 아니다. 다만 정좌를 통하여 심신을 다스리는데와 단전(丹田)과 상체의 어떠한 목적하는 부위에 의념(意念)을 집중하는데 필요한 자세라는 점이다. 또한 기가 충만하여지면 이러한 자세에서도 하지로 기혈이 원활하게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것은 내공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쉽게 경험되어지는 사실이다. 반면에 비대한 체질의 경우 접히는 부위의 혈액순환의 장애는 심한 편이다. 압박되는 부위의 면적도 넓으므로 효과적인 자세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2) 반가부좌(半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는 단반좌(單盤坐)라고도 한다. 이 자세는 쌍반좌(雙盤坐)보다 훨씬 쉬우며 다리에 무리를 덜준다. 쌍반좌와 자세의 차이는 없으며 단지 왼발을 오른다리 위로 올리거나 오른발을 왼다리 위로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쌍반좌보다 훨씬 행위의 여지가 많아질 수 있다. 그리고 다리에 가해지는 부담과 왜곡은 경미하다. 이러한 자세는 조금(燥金) 비대하며 공이 짧은 초보자가 취하는데 부담이 없는 자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24. 결가부좌(結跏趺坐) 그림 25. 반가부좌(半跏趺坐)

 

 

(3) 자연반좌(自然盤坐)

 

자연반좌(自然盤坐)는 자연반슬좌(自然盤膝坐)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 쉽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자세이다. 이 자세는 반가부좌(半跏趺坐)나 결가부좌(結跏趺坐)에 비하여 아주 취하기 쉬운 자세인데 대체로 점잖은 양반들이 하는 자세라고도 하여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다고 한다. 이 자세는 하지로 기혈의 순환이 그런대로 원활하게 흐르는 이유로 인하여 상당히 오랜시간을 지속하여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세이다.

 

 

그림 26. 자연반좌(自然盤坐)

 

 

(4) 과학좌

 

과학좌는 자연반좌(自然盤坐)보다도 훨씬 하지에 왜곡이 없는 자세인데 대체로 다리를 포개어 앉는 것이 아니라 양다리를 안으로 굽혀서 좌측다리가 앞에 있게하고 우측다리를 안에 있게하거나 그 반대의 자세로 앉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까 양다리는 교차하지 않으며 서로 압박을 가하지도 않으며 단지 굽힌 무릎이나 자리에 앉느라고 압박을 받는 엉덩이와 대퇴부에 순환장애가 조금 있을 뿐이다. 이 자세는 하지에 가장 부담이 적어서 월경에 의하여 하지가 쉽게 약하여 지기 쉬운 여성에게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 평가되는데 이러한 자세는 고전에는 언급이 없다.

 

 

그림 27. 과학좌

 

대체로 자연반좌(自然盤坐)와 가부좌(跏趺坐)는 고전의 도인술에 대한 행법의 언급이 있을 때 지적이 되지 않았으며 단지 정좌라는 단어로 자세를 피력하였다. 그래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정좌인가를 매우 궁금하게 여겼는데 과노추첨화결(果老抽添火訣)의 내용을 보며 그림을 보면 자연반좌(自然盤坐)를 하고 앉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이 되는 경우는 단좌(端坐)라는 용어로 표현된 자세가 정좌와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을 볼 수가 있다. 그 예로는 위백양파풍법(魏伯陽破風法) 장진노신주도(張眞奴神注圖) 한종리명천고법(漢種離鳴天鼓法)등이 있다.

그러나 단좌(端坐)는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서 궤좌의 자세의 하나로서 양다리의 발목을 교차하거나 합하여 무릎을 꿇는 방법을 지칭한다. 이러한 용어의 혼동은 여러가지 면에서 보여진다. 이것은 대체로 각가(各家)의 자의에 의하여 통일되지 않은 자세를 언급하였던 것으로 사려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다리의 자세중에서 자연반좌(自然盤坐)를 하든 가부좌(跏趺坐)를 하든 과학좌를 하든 바르고 단정하게 앉는 사실에 중점을 둔 것으로 사려된다.

 

 

그림 28. 과노추첨화결 그림 29. 한종리명천고법

 

한가지 이러한 정좌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며 힘의 과시를 뜻하며 윗사람이 취하는 자세이며 점잖은 사람이 취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남자가 취하는 자세이며 여성의 경우 며느리를 들이거나 상할머니가 되었을 경우에 남의 앞에 이러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여성의 경우 이때가 되면 무서운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자세는 태음(太陰) 습토(濕土)의 기와 소음(少陰) 군화(君火)의 기를 내포하고 있다.

 

 

2. 궤좌법(跪坐法)

 

궤좌는 무릎을 꿇고 않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는 위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대할 때 아랫사람이 취하여 앉는 자세를 의미하는데 여자가 취하는 방법과 남자가 취하는 방법이 달랐다. 대체로 집안에서 취하는 자세는 양다리를 굽혀 앉아 엉덩이가 양다리의 발뒤꿈치나 발바닥을 깔고 앉는 방법으로서 절을하고 그대로 그자리에 앉는 방법이다. 여자의 경우는 반절을 하고 앉을 때 한쪽다리는 무릎을 세우고 안쪽다리의 무릎을 굽혀서 다리를 깔고 앉는 자세를 취한다. 특히 양다리를 깔고 앉는 자세는 양다리를 모아 발뒷꿈치를 엉덩이에 밀착시키는 경우와 양다리를 서로 벌려서 앉는 자세로 나눈다. 전자의 경우를 단좌(端坐)라고 하며 후자의 경우를 거좌(距坐)라고 한다.

그런데 거좌(距坐)는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서도 많이 언급하였던 자세인데 양다리를 펴고 앉는 자세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의 대체적인 용어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사려된다. 그래서 거좌(距坐)는 용어를 정리하기 위하여 궤좌법(跪坐法)의 한 방법으로 양다리의 발을 포개고 앉지 않는 방법을 지칭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여성의 앉는 자세인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다리를 깔고 앉는 방법에 대하여 용어의 언급이 없다. 이 점을 들어 새로운 명명이 필요하여 수슬궤좌(垂膝跪坐)라는 명칭을 붙히고자 한다. 각각의 자세에 대한 의미를 검토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단좌(端坐)

 

 

그림 30 거좌 그림 31. 단좌

 

단좌(端坐)를 무릎을 굻고 앉는 방법이라고 언급한 것은 일본사람 소야전대가 소장한 서적을 번역한 선단이라는 책에서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단좌는 대개 단정하게 앉는 것을 지칭하는 의미로 정좌의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용어의 혼선을 막기위하여 정확한 자세의 언급이 없는 궤좌중 양무릎을 꿇고 앉으며 양발을 포개거나 모아 앉는 자세를 지칭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고 사려된다. 이 자세는 두 발을 모아 서서 절을 하고 앉는 자세일 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자세로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존경을 표시하는 자세이다. 이때 양다리에 주는 피로는 다른 궤좌식보다 더 주며 정신적으로 겸허하고 맑으며 마음을 비우기 쉽게 하여준다. 그래서 불가의 절하는 법이나 유교의 절하는 법은 철저히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양다리를 펴고 무릎을 꿇는 것보다는 더 몸가짐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러한 자세를 취할 때 마음가짐이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기에 의하여 발동됨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단좌(端坐)의 자세는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을 철저히 포개어 하지로 한수(寒水)의 기운을 내려 보내지 않고 그대로 단전(丹田)으로 향하여 준다. 그래서 한수(寒水)가 고이게 하여 마음이 차분해 지고 겸허해지며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2) 거좌(距坐)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의 거좌(距坐)라는 용어는 엄밀하게 말하면 두다리를 뻗고 걸터 앉는 방법이다. 그러나 정화(鄭和)라는 사람이 편집한 선도내공술(仙道內功術)이란 서적에 의하면 금강좌(金剛坐)라는 자세와 동일한 의미이다. 양발이 포개어 지지 않도록 무릎을 꿇고 앉는 방법을 거좌라고 하여 역시 용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이러한 정의를 따르고자 한다. 대체로 단좌(端坐)보다는 편한 자세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단좌와 같다고 본다.

 

 

(3) 수슬궤좌

수슬궤좌라는 용어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필자의 의견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한쪽 무릎을 굽히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를 명명한 기공서는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릎을 세운다는 수슬이란 용어와 무릎을 꿇어 앉는다는 궤좌라는 용어를 합하여 수슬궤좌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 자세는 단좌(端坐)와 거좌(距坐)보다는 훨씬 덜 피곤하게 하는데 옛날의 여성들이 이 자세를 취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치마를 입고 지내는 여성들은 양쪽 무릎을 꿇는다면 대체적으로 치마를 활짝 들어 올리면서 신속하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치마를 깔아 뭉개게 된다. 그것은 미관상 보기 좋지 않으며 공손한 멋이 없어진다. 그래서 치마를 한쪽무릎을 세우면서 세운 무릎을 가리고 꿇은 무릎을 또한 보이지 않게 가린다. 이럴 경우 치마를 덜 구기게 되며 보기도 좋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하지의 혈액순환은 대단히 중요하며 허리와 자궁의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자세를 오랬동안 취하면 되지 않는다. 최소한 자세의 신전이라든가 약간의 움직임을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밖에서 보아서 잘모르게 치마속에서 움직여 주어도 무방하도록 하는 자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잘 꿇엇던 다리를 슬쩍 안쪽으로 빼어 무릎을 세운 다리의 뒤에다 대며 물러 앉을 수도 있다.

 

 

그림 32. 수슬궤좌(垂膝跪坐)

 

의학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을 한쪽을 풀어놓아 다리로 흐르게 하여 여성의 경우 냉이나 한성복통같은 질환을 예방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아무래도 양다리 사이가 벌어져 있으니 혈액순환도 잘될 것이니 최소한 몸이 차지는 것을 방지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반면에 정신적으로 긴장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기 쉬워 자세를 흐트러 뜨리기 쉬운 자세이다. 그 이유는 태양(太陽) 한수(寒水)의 축적이 없음이며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운의 발동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체로 이상의 세가지 자세를 필자는 궤좌식의 부류로 분류하였으며 이들의 공통적인 의학적인 의미를 추론하여 본다. 이들 자세는 모두 항문과 성기에 압박이 가하여 지지않는 자세이다. 이것은 회음부위를 통과하는 기의 흐름을 훨씬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항문과 성기주위의 도인술을 펴기 용이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하게 다리로 내려가는 삼음경맥(三陰經脈)을 방해하는 자세이며 삼양경맥(三陽經脈)도 상당히 그 흐름을 장해하는 자세이다. 그래서 이들의 삼음(三陰) 삼양(三陽)의 경기(經氣)를 성기나 항문으로 또는 회음으로 모아줄 수 있는 자세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주천공시에 정좌법(正坐法)을 하고 시행할 때 압박을 받고 있는 항문의 근육에 긴장을 하여 경기의 기의 흐름을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궤좌식에서는 이러한 배려가 필요없을 정도로 압박을 받지 않는 자세인 것으로 사려된다.

 

 

3. 평좌(平坐)와 고좌(靠坐)

 

평좌(平坐)와 고좌(靠坐)는 의자에 앉는 자세이다. 그 자세의 차이는 평좌의 경우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앉는 자세이며 고좌는 기대어 앉는 자세이다. 이때 의자의 높이는 의자의 3분의 2 가량을 앉았을 때 자연스럽게 발바닥이 땅에 다 닿을 수 있는 높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을 경우 발디딜 거리를 찾아다 발바닥에 고여야 한다. 고좌는 등이 굽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 앉아 등이 자연스럽게 등받이에 닿도록 한다.

이러한 자세는 엉덩이와 대퇴부를 제외하고는 압박을 받는 부위가 없어서 그런대로 오랜시간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쿠션이 있는 자리일 경우 더욱 편하게 앉을 수 있으나 상체의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서는 쿠션이 없는 자리가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취할 경우에는 정신적인 무장을 상당히 하지 않으면 자세를 흐트러 뜨리기 쉽다. 평좌를 할 경우 고좌에 비하여 정신 집중을 하기 쉬운 자세이다. 그러나 고좌에 비하여 평좌는 오랜시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가 주는 의학적인 의미를 찾아 보자.

대체로 평좌와 고좌는 현대의 월급쟁이들이 주로 취할 수 있는 자세이다. 그밖에도 수많은 사람이 좌식 생활양식에서 입식 생활양식으로 전환되며 의자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아 졌다. 이 경우 역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중 대퇴부의 경근(經筋)만을 압박하는 관계로 족태양방광경기(足太陽膀胱經氣)는 쉽게 발끝으로 흐르기는 힘들다. 결국 마음을 침착하게 하기가 쉽다.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나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나 소양(少陽) 상화(相火)의 기나 태음(太陰) 습토(濕土)의 기가 흐르기 쉽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민하여 지고, 감각적이게 되며, 충동적인 사고를 잘하게 되며, 나쁘게는 거만하게도 되며, 안주하기 쉽게도 된다. 어쨋든 이들 자세는 현대인이 취하기에 가장 친밀한 자세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림 33. 평좌 그림 34. 고좌

 

 

4. 수슬좌(竪膝坐)

 

수슬좌(竪膝坐)는 양무릎을 구부려 앉는 자세로서 땅에 닿는 부위는 발바닥만이 닿는다. 엉덩이는 양종아리에 밀착시켜 앉으며 발끝만으로 땅을 짚고 앉는 자세도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자세는 역시 명명이 되어있지 않은데 유독 모삼군(茅三君)의 복기법(服氣法)중에 수록된 하나의 자세의 이름에서 떼어 왔다. 사실 수슬좌(竪膝坐)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앉아 양무릎을 굽혀 가슴으로 끌어 앉는 자세도 지칭한다. 이 경우는 양다리를 펴고 앉아서 취해지는 포법(抱法)이라는 행법으로 지칭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세에다 포함시키지 않았다.

수슬좌(竪膝坐)는 오랜 시간을 앉아 있을 경우 다리가 저려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역시 하지의 혈액 순환을 장해하는 자세이다. 그런데 이 자세를 구체적으로 취하는 도인술은 화타(華陀) 오금희(五禽戱)중의 웅희(熊戱)의 자세가 여기에 속한다. 오금희(五禽戱)에서도 정확한 자세의 명명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兩手抱膝下라는 문구에서 쉽게 연상될 수 있는 자세이다.

이 자세는 궤좌의 자세의 내포하는 의학적인 의미와 상통한다. 그리고 궤좌보다는 다리의 운신이 훨씬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이다. 특히 발끝으로만 땅을 디디고 앉는 자세는 양명(陽明) 조금(燥金)의 기를 발산시키는 자세이다. 그래서 토끼뜀을 뛰게 하여 하지의 각근을 단련시키고 운신을 민첩하게 하며 탄력성을 가지게 하는가 보다. 또 오리걸음을 걷게 하여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을 단련시키고 지구력을 키우게 하였는가 보다. 이러한 두가지 행법은 현재도 많은 체육인들이 즐겨 훈련의 방법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볼 때 궤좌는 정공(靜功)을 하는데 필요하며 수슬좌(竪膝坐)는 동공(動功)을 하는데 응용하는 것이 능율적이다.

 

 

5. 준좌(蹲坐)

 

준좌(蹲坐)는 거좌(距坐) 준좌(踆坐)와 통하는 용어로서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서는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거좌(距坐)라는 용어는 궤좌식의 하나로 지칭되니 사용을 금하며 준좌(蹲坐) 내지 존거좌 준좌라 이름한다. 대체로 이들 용어는 걸터앉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이 취하는 앉는 자세 중에서 가장 편한 자세이기도 하다. 양다리를 펴고 앉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도인술에서는 준좌(蹲坐)를 아주 많이 응용하는데 행법의 선택의 폭도 아주 넓다. 그 이유는 손과 발을 모두 행법의 범주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의 정확한 언급도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의 종류도 다양하나 발을 모으느냐 벌리느냐 벌린다면 어느 정도를 벌리는가에 분류를 의미하므로 결국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다리를 모은 자세와 다리를 벌린 자세라고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다. 또 발끝을 세우느냐 외측으로 젖히느냐, 안쪽으로 오므리느냐에 따른 분류가 있을 수 있다. 또 무릎을 굽히는가 굽히지 않는가에 따른 분류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의 자세가 가질 수 있는 의학적인 의미를 비교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림 35. 존좌의 좌세

 

 

(1) 다리를 벌리는 경우와 모으는 것의 차이

다리를 벌리는 경우는 다리를 모으는 것보다는 훨씬 편한 자세이며 다리의 긴장도 경미하다. 다리를 벌린다는 것은 양다리의 사타구니의 경근들에 압박을 가하지 않는 자세이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들이 긴장을 풀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이 긴장을 하고 있게 된다. 반면에 다리를 오므리는 경우 족삼양경근(足三陽經筋)들이 긴장을 하고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은 긴장이 덜 된다. 긴장이 됨은 경기(經氣)가 많이 흐르고 있다고 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경기(經氣)가 덜 흐른다고 본다.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들 중에서 보다 더 긴장에 관여하는 근은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과 상대가 되는 족궐음간경근(足厥陰肝經筋)이다.

 

 

그림 36. 다리를 벌리는 존좌

 

이것은 인간이 성교시 내보이는 자세를 통하여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성교의 전희시간이나 덜 흥분이 되었으며 또는 성교를 하는데 거부하는 감정을 느낄 경우 양다리를 모아서 성기를 감춘다. 반면에 흥분이 되거나 오르가즘에 도달 하였을 경우 양다리를 벌려준다. 이것은 양다리를 벌리면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이 긴장을 하여 소양(少陽) 상화(相火)의 기운이 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양다리를 오므려서 궐음(厥陰) 풍목(風木)의 기운이 발동되게 하여 삼차적인 욕구인 자존심(自尊心) 내지 명예욕(名譽慾)을 지키는 역할을 하게 한다.

 

(2) 발끝이 향하는 방향에 따른 차이

발끝이 향하는 방향에따라 다리의 경근에 가하여 지는 자극과 긴장의 차이는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아주 명확하다. 발끝을 세울 경우 발에 분포하고 있는 경근들의 긴장은 대체로 균형이 잡힌 긴장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발끝을 안쪽으로 오므릴 경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이 긴장을 하고 족소양담경근(足少陽膽經筋)이 긴장을 한다. 발끝을 밖으로 눕힐 경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삼양경근(足三陽經筋)이 모두 이완한다. 발끝을 쭉 펴거나 발끝을 잡아당기거나 할 경우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긴장을 한다. 이것은 걸음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좌세의 경우 체중이 실리지 않기 때문에 그 긴장도의 차이는 명확하게 나타난다.

 

(3) 무릎을 굽힐 경우와 펼 경우의 차이

무릎을 굽히는 경우 다리의 긴장이 대체로 약하고 무릎을 펴는 경우 족삼음경근(足三陰經筋)과 족삼양경근(足三陽經筋)이 모두 긴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무릎을 굽히는 방향은 일정하므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관계이다. 무릎을 펴는 것은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긴장이 있어 수축을 할 경우이며, 무릎을 굽히는 경우는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의 긴장이 있어 수축을 할 경우이다. 그러나 한쪽 근육은 이완하고 한쪽은 수축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결국 두 근육 모두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정확한 다리의 경근에 기를 흐르게 하기 위하여서는 무릎을 펴고 도인술을 시행하는 것이 능율적이고 다리의 긴장을 풀어 방송공을 하고자 할 경우 무릎을 약간 굽히고 시행하는 것이 능율적이다.

 

 

5. 와세(臥勢)의 종류와 의미

 

도인술의 자세중에서 가장 편한 자세가 와세(臥勢)이다. 그래서 그런지 편안히 놀고 먹는 모습을 빈둥빈둥 거린다고 하며, 할일없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린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누워있는 자세에서 표현되는 언어이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누워서 생활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자세이며 인간의 자세의 시작이다. 그리고 사람이 죽을 때도 누워서 임종을 맞는다. 총에 맞아 죽든지 사고로 죽든지 온몸이 산산히 흩어지지 않는 한, 물리적으로 세워지게 하지 않는 한, 누워서 죽거나 엎어져 죽는다. 그리고 인간은 생활의 많은 비율을 수면시간으로 할애하는데 역시 와세(臥勢)를 취하고 잔다.

그래서 인간의 자세중에서 가장 편하고 시행하기 쉬우며 적용할 조건이 필요없는 자세이다. 아무리 죽을 병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와세(臥勢)만은 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행에 지장이 있거나 아주 기력이 쇠잔한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인술을 시행할 수 있는 자세로 인정된다.

그리고 그 자세의 종류도 아주 간단하여 정언와(正偃臥) 또는 앙와(仰臥), 측와(側臥), 복와(覆臥) 세가지 자세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머리를 높이는 경우, 상체를 높히는 경우, 하지를 높히는 경우의 자세를 생각할 수 있다. 각각의 자세에 대한 의학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음미하여 본다.

 

 

1. 앙와(仰臥)

 

앙와식(仰臥式)은 전신을 바르게 뉘어서 시선이 위로 향하게 하고 머리를 바르게 한다. 베개의 높이를 편안한 정도로 하며 입을 다물고 눈을 가볍게 감는다. 손발은 자연스럽게 펴는데 약간 무릎을 굽히거나 손을 가볍게 쥔다. 양손은 몸의 옆에 두거나 가슴위에 얹어 놓는다. 이러한 방법은 체력이 약한 사람의 연공이나 잠자기 직전의 수련에 채택하면 좋다. 단점은 연공중에 쉽게 잠들 수 있다는 점과 의식이 산만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상이 앙와(仰臥)의 전형적인 설명인데 도인술에서는 목적하는 도인의 행위에 따라 자세의 변화가 약간씩 인정된다. 그 변화는 머리의 높이나 몸의 기울기의 정도 그리고 발끝의 방향에 따른 자세의 변형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머리의 높이나 몸의 기울기는 다음의 분류에서 설명을 하기로 하며 발끝의 방향은 준좌(蹲坐)의 항목에서 이미 설명하며 다루었다.

 

 

그림 37. 앙와식 와세

 

 

2. 측와(側臥)

 

측와식(側臥式)은 옆으로 눕는 방법인데 자세의 형식이 다양해질 수 있다. 대체로 측와식(側臥式)의 전형적인 형태는 몸을 옆으로 뉘어 허리를 약간 굽히고 몸은 조금 구부린 형태가 된다. 고개는 약간 가슴쪽으로 당긴다. 입은 다물고 눈은 가볍게 감는다. 위쪽에 있는 손의 손바닥은 엉덩이 위에 두고 아랫쪽의 손은 베개위로 두며 손을 자연스럽게 편다. 양다리는 가지런히 포개어 붙히고 무릎을 약간 굽히는데 아랫쪽의 무릎을 더 굽힌다. 그런데 대체로 눞는 자세는 이러한 형태뿐이 아니라 삼접식(三接式)이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하는 자세가 있는데 몸을 옆으로 눕히는 것은 같다. 그런데 아래에 있는 손은 굽혀서 위쪽의 팔의 곡지혈(曲池穴)부위에 가볍게 대고 위쪽의 팔은 몸에 붙혀서 대퇴부의 외측에 가벼이 놓는다. 위쪽의 다리는 무릎을 굽혀서 앞으로 내밀어 바닥에 대어 밀착시키고 아랫쪽의 다리는 약간 구부린 자세로 가볍게 편다. 위쪽 발바닥은 아랫쪽의 무릎부위에 대는데 정확하게 용천혈(涌泉穴)이 닿도록 하는 것이 좋다. 대체로 이러한 자세는 각각의 특징이 있으며 고대의 기공가에 따라서 전자와 후자중 한가지를 응용한 기공법을 기술하고 있다. 대체로 이러한 점을 들어 의학적인 합당한 분류의 원인을 찾아 당위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림 38. 장주호접몽

 

 

(1) 측와식(側臥式)

측와식(側臥式)의 예를 고전에서 찾아보면 도가(道家)에서는 장자(莊子)의 장주호접몽(莊周蝴蝶夢)이라는 자세가 있다. 전형적인 자세와 차이점은 우측으로 누워 우측의 무릎을 구부리는 점과 좌수는 좌측의 대퇴부 아래에 놓는다는 점이다. 유가(儒家)에서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팔을 굽혀 머리를 베고 눕는 자세를 설명하였는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으나 측와식(側臥式)을 설명하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진희이좌측수공(陳希夷左側睡功)이나 진희이우측수공(陳希夷右側睡功)이라는 공법도 측와식(側臥式)의 전형적인 자세를 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도인술의 관점에서 볼 때 아래로 눌린 부분은 위의 눌리지 않는 부위보다는 훨씬 순환이 되지 않으며 오랫동안 자세를 취할 경우 저리게 된다. 반면 위로 올라간 부위는 기혈의 순환이 원활하여 도인술을 할 때 용이한 점이 많다. 그리고 위로 올라간 쪽의 팔과 다리는 자연스럽게 펴져 있어서 기의 순환이 아주 용이하여 편측으로 기를 도인하고자 할 때 응용될 수 있는 자세이다.

 

 

그림 39. 진희이 수공법

 

 

(2) 삼접식(三接式)

삼접식(三接式)은 고전에서 진희이강우망월형이란 기공법의 자세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자세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측와식(側臥式)과 비슷하면서도 목적이 다르다. 측와(側臥)라는 것은 편측(偏側)으로 기를 도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취하는 자세인데 윗쪽의 다리를 굽혀서 하지(下肢)로 경기(經氣)의 흐름을 저해하여 기의 흐름을 복부에로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된 자세이다. 그리고 상체의 기의 흐름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도록 한 자세임을 볼 때 측와식(側臥式)과는 다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자세로 생각된다.

 

 

그림 40. 진희이강우망월형

 

이상의 삼접식(三接式)과 측와식(側臥式)의 차이로 볼 때 복부의 편측에 중점을 둔 도인술을 하고자 할 경우 삼접식(三接式)을 응용한다. 그리고 편측의 상하지에 중점을 둘 경우 측와식(側臥式)을 응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능율적이라고 추측된다.

 

 

그림 41. 삼접식 와세

 

 

3. 복와식(覆臥式)

 

기공에서는 드물게 취하는 자세이다. 그 이유는 인체의 전면을 음()으로 보고 등을 양()이라 보았을 때 음()을 아래로 위치하게 하고 양()을 위로 위치하게 하는 것은 주역에서도 비괘()라 하여 수승화강(水升火降)이 일어나지 않는 꽉막힌 괘로 취급하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도 도인술에서는 다른 잇점이 있기 때문에 응용될수 있다. 고전의 예로는 백옥섬호박식형(白玉蟾虎撲食形)이란 기공법의 자세에서 드믄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업드린 자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영아를 키우는 데에서 발견된다. 대체로 영아를 업드려 재우면 심장에 적당한 압박을 가하여 심장을 강화시킬 수가 있다고 하며, 엉덩이가 둥글고 예쁘게 발육된다고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거의 앙와식(仰臥式)이나 좌세(坐勢)나 입세(立勢)를 취하면서 살아가면서 유독 엉덩이나 허리 등을 많이 압박하나, 가슴과 배를 압박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생활상의 헛점을 커버하기 위하여 더욱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복와세(覆臥勢)는 심장과 내장기에 압박을 가하니까 기가 약하거나, 노약자일 경우나, 병자일 경우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내적인 기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거나 복강내 장기나 심장과 성기의 강화를 요할 경우 응용될 만한 자세이다.

 

 

그림 42. 백옥섬호박식형

 

그림 43. 복와식 와세

 

 

4 몸통의 기울기에 따른 자세의 변화와 의미

 

사람은 누울 때 반드시 베개를 베고 잠을 자며 개개인마다 베개의 높이가 다르다. 그 이유는 각각의 취향에 따라 습관하기 나름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베개의 높이를 높이 하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고 어떤 사람은 베개를 높이 하면 잠이 전연 오지 않는다고 한다. 또 일사병으로 졸도한 사람을 뉘일 경우에는 다리를 높게 하고 머리를 낮추는 자세를 취하게 한다. 가래가 많이 나오는 사람의 경우 업드려 놓고 상체를 하체보다 낮게 경사를 주어 가래가 흘러 나오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혈압이 높아 머리가 아픈 사람은 머리와 상체를 높혀주어 두통과 중풍증상을 경감시키려고 한다. 목에 가래가 많아서 기도가 막힐 염려가 있을 경우 베개를 치우고 머리를 낮춘다. 이렇게 와세(臥勢)를 취할 때 필요에 따라 몸의 기울기를 정하는 지혜는 병자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래서 도인술에서 도인하고자 하는 부위에 따라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다르다.

 

 

그림 442. 반와식 와세

 

후한대의 왕자교(王子喬)는 환부로 기를 인기(引氣)하고자 할 경우 베개의 높이를 조절하는 지혜를 기술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병이 상체에 있을 경우 베개의 높이를 높게 하고, 병이 하체에 있을 경우 베개의 높이를 낮게한다. 두부로 인기하려면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며 허릿병에는 발가락을 위로 잡아당겨 발바닥이 위로 향하게 한다.

 

이러한 언급은 몸의 기울기를 높이하고 낮게 하는것에 따라서 기의 흐름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와세(臥勢)를 취하고 기공을 하는 경우의 시간은 다른 행법에 비하여 아주 길 수도 있으며 이럴 경우 기혈의 운행은 몸의 기울기에 따라서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그 의학적인 의미를 찾아 본다.

대체로 머리는 수족의 육양경(六陽經)이 모이는 곳으로서 인체중에서 가장 양기가 많이 모이는 관계로 인하여, 머리의 질환들은 양기가 많이 취집되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두통이 유발되거나 발열이 유발된다. 머리가 차고 가벼우면 거의 대부분 그 사람의 정신은 맑고 몸도 가볍다. 그래서 사람은 유독 머리만은 잠 잘 때도 덮지 않고 밖으로 내놓고 잔다. 그리고 방바닥의 더운 기운이 머리에 닿지 않도록 베개를 베고 너무 많은 양기가 흘러 들지 않도록 머리를 들어 준다. 대체로 베개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은 성질이 상대적으로 양적이어서 급하고 변덕이 심하고 화를 잘내고 난폭하여지기 쉬운 사람이며 비대하지 않은 체질의 사람이다. 침착하고 서두르지 않으며 사려가 깊으며 몸이 둔하며 뚱뚱한 사람은 음적인 성질이어서 베개의 높이가 높지 않다.

예로부터 고침단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베개의 높이를 높이하면 오래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베개를 높이 베는 사람은 양이 성한 사람을 뜻하는데 정신생리상 침착하고 화내지 않고 기를 밖으로 많이 배출하지 않는 성질의 사람은 어쨋든 화를 내고 난폭하며 성질이 급하며 변덕이 심한 사람보다 맑은 기를 많이 보존하고 있으니 오래 살 수 있다는 설명이 된다. 그러므로 머리를 높이면 흘러드는 양기의 양을 줄일 수 있으며 머리를 낮추면 양기의 양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흘러 들 수 있게함일 것이다.

상체를 높이기 위하여 이불이나 침대를 경사지게 하여 등에 받치고 눞는 방법은 다리에 이불을 받치고 몸을 다리보다 아래로 하고 눞는 방법과 의학적인 차이가 많다고 본다. 대체로 숨이 찬 흉막염 환자나 심장병이 있는 환자의 경우 바로 누울 경우 숨이 더 차고 호흡에 곤란이 생긴다. 그래서 이들 환자는 앉아서 잠을 자거나 몸을 반쯤 뒤로 기대어 잠을 이루며 이러한 체위로 병의 호전을 기다리게 된다. 반면 일사병이나 중기증(中氣證)의 경우에 다리를 높이고 베개를 베지않게 하여 호흡을 돕고 하지에 몰린 혈기를 머리로 신속히 공급하게 하고자 하는 배려를 한다.

이것은 탁음(濁陰)이 상체로 몰려 있을 경우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찰 것이다. 이때 상체를 높이 함은 탁음(濁陰)이 중력에 의하여 좀더 하강하게 하기위한 배려일 것이다. 청양(淸陽)이 상체로 상승하지 못할 정도로 하체의 원양(元陽)이 약하여 지면 음양(陰陽)의 기운은 모두 하체로 쏠리게 되며 정신이 혼미하여 지고 심하면 졸도하게 된다. 이 경우 빨리 하지를 높이고 상체를 낮추어 줌은 청양(淸陽)이 머리로 흐르게 하기위한 배려이다. 이러한 배려는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별 필요가 없으나 음양이 편양(偏揚) 편쇠(偏衰)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요긴한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외에도 수험생이 오랜시간 책상에 앉아서 학업에 열중하다 보면 청양(淸陽)이 상승하지 않으며 다리로 중탁한 혈기가 모이게 되면 하체가 약하여 지고 몸이 무거워진다. 이 경우 물구나무를 서게 하여 머리에 혈기의 공급을 늘리고 묵었던 노폐물을 배설시키게 하여 머리를 맑게 하여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허열이 상승하여 머리가 아픈 경우 머리를 낮게하면 좋지 않을 것이다. 몸이 차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면서 심장에 별 이상이 없는 사람에게 응용됨직한 지혜이다.

 

 

III. 도인술의 기본 행법

 

도인술을 행하는 방법을 행법이라 하는데 기본자세와 다르게 하체의 모양 보다는 상체의 행위 특히 손의 행위에 주안점을 둔 방법을 다룬다. 예로 부터 중국의 기공가들은 이러한 방법을 정리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으나 임상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어떠한 질환에 좋았다는 정리에 치중하면서 행법이 다양하여지고 이러한 다양한 행법중에서 자중지란을 일으켰는지 성제총록(聖濟總錄) 이후의 의서에서는 별반의 도인술에 대한 집중적인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방유취나 동의보감에도 중국의 의서를 본따서 정리하고 있으나 독창적인 행법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현대의 생활 속에서도 행법이 가질 수 있는 몇몇의 요소를 통하여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행법을 통털어서 정리할 수 있다는 확증을 갖고 있다. 이들의 요소를 정리하여 인간의 행법을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중에 우주재호수 만화생호신(宇宙在乎手 萬化生乎身)”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인간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지배하는데 손으로 하며 만상의 조화는 몸에서 생겨난다.”는 뜻으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되는 문구이며, 천기(天機)는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좌지우지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뜻의 조화는 차치하고 인간의 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신의 축복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다른 동물에 비하여 탁월하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인간의 행동의 양식을 응용하여 건강과 호신의 목적을 위하여 권법(拳法)이라는 것들을 만들어 냈는데 왜 하필이면 권법이라고 하였는지는 잘 알 수 있다. 권법이 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사용하는 것도 내포하고 있는데 권법이란 용어를 굳이 사용하고자 한 것은 손의 사용에 중요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태극권(太極拳)이나 팔괘장은 그 행법을 역학(易學)에 연결하여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보다 높은 경지의 행법을 착안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경지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필자는 그들의 혜지를 응용하여 행법을 정리하고 이해하며 인간이 행하는 행동의 양식을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도록 이론화 시키는 것을 방법론으로 삼고자 한다.

인간의 손의 행위는 대체로 손을 위로 들어 올리고, 손을 내리며, 손으로 밀며, 당기기도 하고, 손을 굽히고 모으며, 손을 펴며 기대고, 손을 비틀기도 하며, 손을 이용하여 반복된 행위를 한다.

반복된 행위란 손을 앞으로 내밀면 손을 끌어 들이는 행동이 있어야 하며, 손을 위로 들면 내리는 행동도 있어야 하며, 손을 밀었다가 당기는 행동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고 받는 행위의 반복을 의미한다.

손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은 물건을 들어 올리기 위함이며, 자신을 남에게 표시하기 위함이며, 위에 있는 물건을 잡기 위함이며, 매달리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는 행위는 결국 손에 기를 집중시켜 정확하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자 함이다.

손을 아래로 내림은 아래에 있는 물건을 들어 올리기 위함이며, 물건을 누르기 위함이기도 하며, 땅을 가리키기 위함이며, 아래에 있는 물건을 잡기 위함이다.

손을 앞으로 미는 것은 앞에 있는 물건을 앞으로 밀기 위함이며, 앞에 있는 물건을 잡아 당기기 위함이며, 앞에 있는 물건을 잡기 위함이며, 앞에 있는 물건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손을 당기는 것은 앞에 있는 물건을 당기기 위함이며, 날아 오는 물건을 잡기 위함이며, 물건을 가슴으로 안기 위함이다.

손을 굽히고 모으는 것은 몸을 가리기 위함이며 일거리를 놓기 위함이고, 행동을 규제하기 위함이며 몸을 움직이지 않게 지탱하기 위함이다.

손을 펴며 기대는 것은 물건을 짚고 몸을 지탱하기 위함이며, 관절을 펴기 위함이다.

손을 비트는 행위는 물건을 돌리기 위함이며, 물건을 짜기 위함이다. 손으로 반복된 행동을 하는 것은 일에 숙달되고자 하는 것이며, 단순한 노동일 것이며, 한번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손의 행동을 설명하려면 이렇게 산만하고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정말로 손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는지가 의문이 될 뿐이다. 일단 자질구레한 행위를 무시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위한 행위이며, 자신의 조화를 위한 행위만을 엄선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간의 손의 행위가 우주(宇宙)의 조화속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조화는 어떠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주는 시간과 공간의 조화가 함께하는 4차원의 세계이다. 이러한 곳에서 필요한 기운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핵심을 들추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주속의 기운은 이동을 한다.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바람과 같은 존재도 이동을 한다. 자체내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운을 품고서 이치에 벗어남이 없이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기운을 바람과 같은 기운이라 하며 은 인체내에서 행기(行氣)의 현상으로 표현된다. 바람이 지나는 곳에는 구름과 비가 따르는데 이때 천둥과 번개가 친다. 이 또한 이치에 벗어남이 없이 시행되는 우주의 현상이다. 이로써 우주의 기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확산이 된다. 마치 천둥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하듯이, 번개가 온누리에 광채를 발하듯이 확산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기운을 천둥과 같은 기운이라 하여 뢰()라 하며 인체내에서는 산기(散氣)의 현상으로 표현된다.

우주속의 기운은 이동을 하되 위로 이동을 하며 또 아래로도 이동을 할 수 있다. 이 또한 이치에 벗어남이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위로 오르는 것은 맑고 가벼우며 아주 활동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것들로서 이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하늘이라고 한다.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무겁고 탁하며 움직임이 없는 것들로서 이들이 이루어 놓는 것을 땅이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이러한 기운을 하늘과 땅 같은 기운이라고 하며 인체에서는 승기(升氣)와 강기(降氣)라는 현상으로 표현된다.

우주속의 기운이 위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더운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운 기운을 일으키는 것은 불이다. 불은 안으로 타들어 가는 것이며 결코 안에서 밖으로 타나가지 않는다. 마치 통나무를 나무의 중간에서 부터 태울 수 없으며 겉부터 태울 수 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이러한 기운을 화()의 기운이라고 하며 인체에서는 흡기(吸氣) 내지는 수기(收氣)라는 현상으로 표현된다. 우주속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찬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찬 기운을 일으키는 것은 물이다. 물은 땅속에서 스며나오기도 하며 스며들기도 한다. 물은 땅속에 깊이 스며들 수 있지만 스며나오기도 한다. 차가운 기운에 의하여 공기속에 숨어 있다가 스며나오기도 한다. 수증기가 맺히듯이. 인간은 이러한 기운을 입을 통하여 마셔서 땀과 대소변으로 스며나오게 한다. 이러한 기운을 물의 기운이라고 하며 인체에서는 배기(排氣)라고 표현된다.

우주속에 흡입되는 기운이 있고 배출되는 기운이 있는 것은 우주속에 막힌 기운과 통하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치에 어긋남이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막힌 기운은 보유한 기운을 보호하고 허비하지 않고자 하는 기운이니 마치 흘러드는 물이 고여있는 연못과 같은 것이다. 연못은 흘러 들어가는 물과 흘러 나가는 물 보다는 고여있는 물이 많이 있음이니 결국 보유하고 있는 물의 량이 많아 허비하지 않는다. 통하는 기운은 막혀있는 것이 소통되는 의미이니 마치 산의 계곡과 같다. 막혀있는 쪽은 산의 정상쪽이고 소통되는 쪽은 산의 계곡쪽이다. 그러니 흡입되어 이루는 것은 연못이며 배출되어 이루는 것은 산의 계곡이다. 이러한 기운이 연못과 산의 기운이라고 하며 인체내에서는 비기(秘氣)와 통기(通氣)라는 현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우주의 조화는 결국 인체내에서 인간의 모종의 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할 수 있으며 조절할 수도 있다. 기운을 위로 오르게 하려면 사람은 손을 위로 들면 된다. 기운을 위로 오르게 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하면 기를 오르게 할 수 있다. 기운을 내리게 하려면 사람은 손을 아래로 내리면 된다. 역시 기운을 아래로 내리게 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하면 기를 내리게 할 수 있다. 기운을 손으로 이동시키려면 손으로 일정한 행위를 시행한다. 기운을 손으로 확산시키려면 손을 비틀어 준다. 기운을 안으로 흡입시키려면 손을 몸쪽으로 거두어 들인다. 기운을 밖으로 배출시키려면 손을 밖으로 밀어 준다. 기운을 모아 손에 정체시키려면 주먹을 쥐고 팔꿈치를 굽힌다. 기운이 손에 통하도록 하려면 손을 펴거나, 펴서 사물을 짚고 기댄다. 이러면 최소한 손으로 기를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며 경험할 수 있다. 단 기운을 운용하려는 목적의식이 투철하여야만 이루어진다.

대체로 이상의 설명은 동양철학의 커다란 맥인 주역의 팔괘의 논리를 발전시킨 이론이다.(圖表II-2 참조) 대체로 이러한 시도는 태극권(太極拳)의 창시자로 추정되는 장삼봉이란 기공가에 의하여 주창된 것이다. 이것을 필자가 도인술의 행법을 설명하기 위하여 골격으로 삼아 살을 붙이고 모양을 좋게하여 이해하기 쉽게 이론을 전개하고자 노력하였던 결과이다. 이중에는 논리를 위한 설명의 비약을 일삼은 점도 없지 않으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논리가 먹혀드는 동양철학의 큰 맹점이자 강점을 십분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야에 대한 아무런 다른 기초가 될만한 이론을 찾지 못하였던 관계로 필자는 이것을 보다 확대시켜 해석하고자 한다.

 

圖表II-2. 팔괘(八卦)와 기()와 행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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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괘 팔상 음양 기의 운용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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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老陽(陽極) 升氣,上氣 손을 드는 행위()

연못() 太陰 濕土 秘氣,塞氣 손을 굽히는 행위()

() 少陰 君火 吸氣,築基 손을 거두는 행위()

우뢰() 少陽 相火 擴氣,散氣 손을 비트는 행위()

바람() 厥陰 風木 行氣 손의 반복된 행위()

() 太陽 寒水 排氣,推氣 손으로 미는 행위()

() 陽明 燥金 通氣,疎氣 손을 기대는 행위()

() 老陰(陰極) 降氣,下氣 손을 내리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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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행위를 손에 국한시키지 않고, 몸의 전체에 대한 행위로 확대시킬 경우 행위를 하는 주체가 되는 부위에 기를 운용하게 하여 모종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립된다면 도인술은 변증을 통하여 자세를 설정하고 행위의 방법을 설정하여 도인이라는 치료의학으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고전에 언급한 행법을 이해하고 수정하며 보다 나은 행법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고자 하는 의도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행법을 세세히 설명하겠다.

 

 

1. 드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

 

행위는 어떠한 것이든 여러가지 정신적인 의미와 육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행위를 하는 중에는 행위를 하는 마음이 따를 것이고 육체적으로 얻을 수 있는 댓가가 있다. 예를 든다면 손을 드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는 유아의 경우에 유치원에서 자신을 밝히기 위하여 저요, 저요하고 손을 드는 행위가 있을 수 있고, 경기에 승리하였을 때 만세를 부르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역도 선수가 바벨을 높이 드는 행위를 들 수 있으며, 농구 선수가 농구공을 높이 드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며 하다못해 선반위의 물건을 내리기 위하여 손을 높이 드는 경우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드는 경우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행위가 있다. 이들의 모든 행위는 모두 손을 내리는 행위를 하여야 할 절차가 남아 있으며 반대로 손을 내리는 행위를 한후 올리는 행위를 할 절차가 이어진다. 이러한 행위들 속에서 손을 높이드는 경우의 정신적인 의미와 육체적인 의미를 음미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손을 들고 있을 수 있는 행위를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시선이나 의지가 들어올린 손에 가 있으며 내릴 경우에는 역시 내리는 손으로 시선이나 의지가 있다. 이것은 최소한 정성을 다하여 행위에 임하는 어떠한 사람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행위에 내포된 현상이다. 하지만 인간이 손을 들어 올릴 때 생길 수 있는 심적인 감동은 들여다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의 행위의 예에서 각개의 감동을 살펴보면, 선생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을 가리키기 위하며 취하는 행동으로서 손을 드는 행위는 간절한 소망과 자신감, 자존심이 함께 할 것이며, 만세를 부르는 경우 희열과 만족감이 있을 것이고, 위에 있는 물건을 잡기 위하여 손을 드는 경우 손끝으로 집중되는 의지와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행동의 정신적인 의미는 자아의 표현이나 승리와 성취의 흥분이며, 육체적으로 기의 집중이 위로 향하는 승기(升氣)의 효과가 내포되어 있다.

반면에 손을 내리는 행위는 정신적으로 흥분된 마음에서 안정된 마음으로 복귀이며 패배나 자아의 은폐를 뜻한다. 그래서 패잔병의 행태는 고개를 들지 못하며 어깨를 펴지 못하고 축 늘어 뜨리고 손을 위로 들어 올리지 못하고 오징어 다리마냥 축늘어 뜨린다. 육체적으로는 기가 아래로 내려가는 강기(降氣)라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도인술에서 행해질 수 있는 올리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의 여러가지 행태를 분류하여 볼 필요가 있다. 가령 고개를 들거나 고개를 내리는 행위나 손을 들거나 내리는 행위, 들어누어 손이나 다리를 드는 행위나 내리는 행위, 엎드려서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들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이것들의 대체적인 분류와 효과를 밝혀 보면 다음과 같다.

 

 

1. 고개를 드는 행위와 숙이는 행위

기를 머리로 올리려면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보라는 왕자진(王子晉)의 인기법(引氣法)이 그 좋은 예이다. 단전호흡(丹田呼吸)에서 내관법(內觀法)으로 고개를 약간 숙여 눈은 코끝과 아래로 제부를 연결하는 선상에 두어 단전을 내시하는 바른 행법으로 소개된 점을 든다면, 그것은 기가 아래로 내려가도록 도인(導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하여 볼 일이다.

고개를 드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는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이 주로 관여한다. 가령 고개를 내리는 경우 턱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이것은 임맥(任脈)의 경기(經氣)를 강해지게 한다. 고개를 들면 목덜미에 힘이 들어가게 되며 코나 인당부위에 기가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 경우 독맥(督脈)이 쉽게 강하여 진다. 그러니 독맥이 강해지면 양적(陽的)이고 활발하며 도전적이며 자존심이 아주 강하다. 그리고 임맥이 강하여지면 음적(陰的)이고 침울하며 복종적이며 줏대가 없어 진다.

그렇다면 고개를 드는 행위는 기를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 자신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자신만만한 사람의 태도는 얼굴을 들어 턱이 꽤 앞쪽으로 들어 올려져 있는 경우가 많아 건방지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 착안 하여 몸이 무겁고 정신적으로 자신감이 없어 행위가 굼떠지고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고개를 들고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포효하는 행위를 인위적으로 하여 정신적으로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 예로 씨름선수가 경기에 임하며 자신을 북돗우기 위하여 행하는 행위와 포효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도인술을 행하는 행위이다. 구체적으로 독맥(督脈)을 자극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도인술중에는 팔단금(八段錦) 연법중에서 배후칠전백병소(背後七顚百病消)라는 행법이 대표적인 예인데 행법의 이름에 이미 행법의 효과로 백병을 모두 소멸시킬 수 있다는 표현을 하였다. 이 행법은 구체적으로 머리가 무겁거나 혼탁하고 정신이 산란한 음증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인 요법이라고 사려된다.

 

 

그림 45. 독맥(督脈)

 

반대로 고개를 내리는 행법은 좌선법의 자세에서 볼 수 있다. 이 행법을 행하다 보면 기가 단전(丹田)으로 모이고 축기를 이루게 되며 정신적인 안정을 이루며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여 진다. 그러니 주로 양증(陽證)을 내포한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사려된다. 특히 두부병이 발열이 나고 두통이 심하며 두부의 충혈이 심한 양적(陽的)인 증상일 경우에 기를 하강시켜 주는 것도 두통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림 46. 임맥(任脈)

 

그림 47. 배후칠전백병소 그림 48. 위타헌저제3

 

 

2. 손을 드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

 

손을 드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는 기존의 도인술에서도 많이 응용하는 행법이다. 그 예로 역근경(易筋經)의 위타헌저제삼세(韋馱獻杵第三歲)나 적성환두세(摘星換斗勢)가 있으며, 민간에 구전되어온 역근경(易筋經)의 쌍수탁천리삼초(雙手托天理三焦)라 든가, 팔단금(八段錦)의 양수탁천리삼초(兩手托天理三焦), 조리비위수단거(調理脾胃須單擧)같은 행법들을 예로 들 수가 있다. 대체로 이들 행법의 대강은 손을 드는데 마음을 두고 있으며 내리는 점에 대하여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리비위수단거(調理脾胃須單擧) 같은 행법은 내리는 손과 올리는 손에 균일한 의미를 부여한다. 또 이들 행법들은 대체로 시야가 올라가는 손을 향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손으로 집중하도록 주의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손을 드는 행위는 앞에서 주지한 바와 같이 자신을 표현하고 남에게 자신을 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희열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는 행위이다. 의지가 없으면 행해지지도 않는 것이다. 희열이나 흥분의 충만한 기운을 발산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기운을 북돋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분노하거나 슬프거나 침울한 기운이 충만하면 들어 올렸던 손도 내려뜨린다. 화가 난 사람이 손을 들어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분노에 못이겨서 손으로 물건을 내려치거나 내지르는 경우는 종종있다. 위에 있는 물건을 올려치지는 않는다. 손을 들어 올리며 울부짖는 사람은 없다. 가슴을 치거나 손을 좌우로 몸을 좌우로 비틀면서 우는 사람은 많다. 침착하고 흥분이 잘 되지 않거나 정신적으로 우울한 사람은 손을 들어 올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타래미며 청승을 떠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들의 행위는 분노나 침울하고 슬픈 기운을 발산하거나, 그러한 기운을 더하게 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반대로 정신적으로 흥분이 되어 있거나, 흥분이 너무되어서 가슴이 잘 뛰고 얼굴로 열이 잘 달아 오르는 사람은 손을 들어 올리는 행법보다는 손을 내려뜨리거나 누르는 행법을 응용하여야 한다. 침울하고 자신이 없으며 우울한 사람은 손을 들어 올리는 행법을 응용하여 침울한 기운을 감소 시키는 것도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경기에 지는 배구팀의 감독은 타임을 불러 선수를 불러 모으고 작전을 지시하고 코트에 들어가기 전에 화이팅을 부르게 한다. 이때의 손은 위로 치켜 올리게 하는 행위를 택한다.

 

 

그림 49. 적성환두세 그림 50. 양수탁천리삼초

 

그림 51. 조리비위수단거

 

결국 손을 들어 올리는 행위는 음적(陰的)인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양적(陽的)인 행위이다. 손을 내리는 행위는 양적인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음적인 행위라고 사려된다. 그리고 손을 들고 내리는 행위는 발산(發散)과 보강(補强)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흥분이 아주 심하면 행위를 통하여 발산시키는데 주로 손을 들거나, 머리를 치켜 들거나, 뛰어오르거나 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때 항상 태과(太過)한 기운은 사기(邪氣)라고 하여 그 기운을 감소시켜야 인체에 해롭지 않으므로 발산 시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보호작용이라고 평가된다. 이 경우를 기를 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표현한다. 역시 분노가 심할 경우에도 그렇고 침울한 경우에도 그렇다. 행위를 통하여 양이 아주 강하면 손을 들어 올리는 행위를 통하여 그 기운을 발산하여야 한다. 그리고 음이 아주 강하면 손을 내려치는 행위를 통하여 그 기운을 발산시키는 행위를 하게도 된다는 해석을 달 수 있다.

 

 

3. 다리를 드는 행위와 내리는 행위

 

다리를 드는 행위는 앙와세(仰臥勢)에서나 입세(立勢)에서 용이하며 고좌, 평좌, 준좌세에서는 제한적으로 행할 수 있다. 입세(立勢)에서 행할 수 있는 행위는 태권도의 올려차기와 돌려차기 같은 행위로 관찰된다. 준좌세에서는 앞으로 편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행위로 표현된다. 앙와세에서는 다리를 위로 치켜올리는 행위로 표현할 수 있다. 입세를 취하며 시행할 경우에는 장시간을 지탱할 수 없으며 신속하게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고 좌세나 와세의 경우에는 장시간을 같은 행위로 지탱할 수 있다. 다리를 드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일상 생활에서는 좀체 관찰되지 않으며 단지 높은 곳을 올라 갈 때나 이루어 지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거의가 의식적으로 다리를 드는 행위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행위의 정신적인 목적은 별로 없으며 단지 육체적으로 다리의 도인(導引)을 위하여 행하여 주는 행위이다. 각 자세에 따른 행법이 내포하는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서 행하는 행위의 정신적인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치어리더는 경쾌하게 다리를 들어 올리며 춤을 추는 행위를 볼 수가 있다. 다리를 높이 드는 행위는 경쾌하게 보이며 몸이 가볍지 않으면 행하기 어려운 운동이다. 그 밖에도 체조 선수의 마루운동이나 평균대에서의 행위중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대단한 유연성이 요망되는 운동이다. 태권도 선수의 앞차기 동작은 대단한 힘이 집약된 운동이며 이 경우만이 일상생활에 공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다리를 들어 올려 보면 일단 느끼는 것은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에 견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발끝에 힘이 들어가야 탄력에 의하여 다리가 올라가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능동적인 태도와 적극적인 의욕이 수반되어야 행하여 질 수 있으며 보다 활발하고 가벼운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다리를 위로 올릴 때 예상되는 기의 상승 작용은 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단지 다리로 하강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앉아서 행하는 행위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뻗어 위로 들어올리는 행위와 다리를 뻗고 앉아서 한쪽다리를 무릎을 굽히지 않고 들어 올리는 행위를 들수 있다. 이 경우 어떤 일상생활의 목적의식이 없는 무의미한 행위인데 도인술에서는 단지 다리의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자극을 위한 운동이라고 사려된다. 이 행위도 역시 기의 상승보다는 하강을 유발하는 작용을 하는데 운동이 되는 부위가 다리이기 때문이다.

누워서 행하는 행위는 장기간을 누워서 생활하는 사람의 다리운동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 역시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과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의 자극을 위한 운동이다. 특히 복근(腹筋)과 요부(腰部)를 구성하는 근육들에 긴장을 유발하며 기의 상승보다 하강을 위한 행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의 자세에 따른 행위의 설명에서 공통되는 점은 다리를 들 때 족양명위경근(足陽明胃經筋)이 자극을 받고, 내릴 때는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자극을 받으며, 모두 단전(丹田)이나 허리에 기운을 집중시켜야 행하여 질 수 있는 행위이다. 단지 입세를 택하는 경우는 신속히 행하여야 하며, 좌세나 와세는 보다 천천히 행하여야 그 효과가 있다. 그리고 다리를 내릴 때 힘을 빼고 내리지 말고, 긴장을 하고 천천히 내려야만 족태양방광경근(足太陽膀胱經筋)이 긴장을 한다. 이러한 행위는 하지가 무겁고 침울하며 정신노동을 많이 하여 두통이 많이 유발되는 유형의 경우에 기운을 하강시키다. 그리고 하지의 이완된 근육에 긴장을 줄 필요성이 있게 될 때 응용될 수 있는 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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