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자’ 고 김수행 교수가 남긴 10가지 메시지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입력 : 2015-08-03 15:52:58ㅣ수정 : 2015-08-03 16:37:33
지난달 31일 아들이 있는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73).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의 ‘선배이고 스승’이자, 서울대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자본주의체제를 변혁하려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것이 분명하다.
김수행 교수는 2009년 3월부터 2011년 8월까지 2년 6개월 동안 경향신문에 <김수행칼럼>을 연재했었다. 영국 유학 경험과 마르크스 경제학을 바탕으로, 세계와 한국 경제를 날카롭게 진단·전망하고 독자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4~6년 전 김 교수가 했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오늘 박근혜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김수행 교수가 ‘경향시민대학-김수행의 <자본론 공부>’ 강의(2014년 10월)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2011년 8월3일자 칼럼 <파시즘의 야만과 인민대중>에 김 교수는 이렇게 썼다.
“이제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서민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아래로부터 파시즘적인 자본주의를 변혁해야만 한다. 각 분야에 걸쳐 있는 노동운동-시민운동-환경운동-여성운동 등을 연결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고 파시즘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
이 말은 이제 고인의 유언처럼 남았다.
< 김수행칼럼>을 통해 그가 남긴 10가지 메시지를 뽑아봤다.
1. 지금과 같이 재벌이 정치와 경제 및 사법을 거의 지배하다시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방임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재벌이나 건설회사에 특혜를 주는 것, 금융과 산업을 융합시켜 더욱 거대한 독점자본을 만들어 내는 것, 부자에게는 더욱 큰 부를 안겨주고 빈민에게는 더욱 큰 빈곤을 안겨주는 것, 걸핏하면 집회와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등은 스미스의 ‘자유방임’과는 완전히 정반대이다.-2009년 4월21일자 [김수행칼럼]‘보이지 않는 손’은 혁명구호
2. 이명박 정부는 영국의 대처 정부가 망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1979년 5월에 ‘좌파’인 노동당 정부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은 대처는 노동조합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 이전의 ‘사회적 합의’-복지국가를 확대하고 개선하는 것, 인플레이션의 억제보다 완전고용의 유지를 경제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는 것-를 파기했다. 한편으로는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정치적 후원자인 부자들의 소득세율을 대폭 인하했다. 실업자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실업급여의 수준을 낮추더라도 실업급여의 총액은 증가할 수밖에 없었고, 생활고에 대한 반발로 대도시에서 자주 발생하는 ‘폭동’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력을 크게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재정 적자가 급증했다. 대처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지 않으면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공기업-전화통신·가스·수도·강철·전력·철도 등-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2009년 7월7일자 [김수행칼럼]英 대처 정부가 망한 길
3. 촛불시위, 교사들과 교수들의 시국선언, 복수노조나 노조 전임자 임금, 세종시와 4대강, 철도파업 등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취하는 태도는 ‘전지전능한’ 대통령과 정부에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이 어찌 감히 대들고 있느냐고 야단치는 꼴이다. 그러나 야단치기에 앞서 제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 미리 깊이 생각해서 국민의 우려에 답하는 형태라도 자료를 제공해야 ‘머리 나쁜’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닌가?-2009년 11월31일자 [김수행칼럼]노동자를 질타하는 대통령
4.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로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드는 ‘부유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총생산물(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에서 기계와 건물의 감가상각비, 원료와 반제품의 비용, 그리고 각종 세금을 뺀 것을 전체 인구 수로 나누면, 아기를 포함한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돈이 대체로 2000만원이 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이 둘을 가진 네 사람의 가족이 한 해에 쓸 수 있는 돈은 세금을 납부한 뒤 8000만원이 된다. 물론 실제로 이만큼의 소득을 얻는 가구는 상당히 적을 것이다. 그 이유는 소수의 부자가 너무 많은 소득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2010년 1월26일자 [김수행칼럼]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자
5. 우선 이명박 후보의 선거공약 ‘7·4·7’은 선거참모들의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유권자를 속이려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이므로 세계 경제의 변동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과, 세계 경제의 주축인 미국 경제가 그때는 이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침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7·4·7’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집권하자마자 7·4·7공약을 휴지통에 버렸는데, 경제대통령은 자기의 ‘죄를 회개’한 적이 없다.-2010년 5월25일자 [김수행칼럼]기가 막히는 ‘경제대통령’
6. 이제 모든 국가는 대규모 부채를 안게 되면서도 실질 국내총생산과 실업 문제에서는 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지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논리적으로 정부가 재정금융확장정책을 실시해 생산을 확대하고 고용을 늘려야만 한다. 그러나 국제적 금융자본은 이런 재정금융확장정책은 국가의 재정적자와 부채를 더욱 증가시켜 국가를 도산에 빠뜨림으로써 자기들이 가진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없게 한다고 생각해 재정금융긴축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가 서민에 대한 세금을 올리고, 공기업을 매각하며, 공무원 수를 줄이고, 임금과 실업급여를 삭감하며, 연금 받는 나이를 올리고, 연금액은 줄이며, 교육·의료·저소득층 보조 등에 대한 국가지출을 줄이라고 강요한다. 국민은 혈세로 금융기업을 구제했는데, 이제 그 혈세까지 국민이 생활수준을 더욱 낮추면서 메우라고 금융자본은 윽박지르고 있다. 참으로 불평등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2010년 6월16일자 [김수행칼럼]구제금융과 서민 희생의 악순환
7. “국가의 사회복지비 지출은 낭비”라는 우파의 주장에는 이론적 혼란이 많다. 사회복지비 지출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예컨대 육아시설에서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사회적 서비스의 ‘생산’일 뿐 아니라 청년들에게 주요한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인구 증가를 촉진하는 길이다. 실업급여도 실업자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주요한 수단이며, 국민건강보험은 민간의료보험보다 값이 훨씬 더 싸고 건강하고 명랑한 노동인구를 길러내는 제도다. 사회복지제도가 가장 잘 정비된 북유럽 나라들이 경제성장에서도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자.-2010년 8월17일자 [김수행칼럼]좌파는 분배, 우파는 생산을 강조한다?
8. “부모들의 소득수준을 따져서 공짜로 점심을 줄 학생과 주지 않을 학생을 가려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소득기준을 어디에다 그을 것이고, 소득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거짓으로 신고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따지는 행정비가 오히려 더 든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얄팍하고 얄미운 발상으로 사회복지를 처음부터 허물어뜨리려는 그런 사람들을 다음 선거에서 대폭 낙선시켜야 할 것이다.-2011년 2월16일자 [김수행칼럼]대공황의 탈출구 ‘보편적 복지’
9. “투자와 고용의 증대는 민간 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은 수익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장래 수익성이 불확실한 공황기에는 당연히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부는 수익성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사회적 필요가 크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분야인 출산·보육·교육·의료·노인요양 등에 투자할 수 있으며 투자해야 한다.-2011년 4월20일자 [김수행칼럼]사회와 경제를 다시 살리는 길
10. 반값 등록금이 부패 재단에 국고를 보조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물론 MB 정부가 검찰로 하여금 대학 재단의 부정과 부패를 파헤쳐서 기소하게 할 턱이 없지만, 학생에게서 받든 국고에서 받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비리 재단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특히 박근혜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해 사학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사학법 개정안을 “반미·친북 이념을 주입시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떠들어 대면서 사학법 개정을 사실상 막은 것을 반성해야 한다.-2011년 6월15일자 [김수행칼럼]등록금 투쟁은 사회변혁 신호탄